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74화 (174/272)

174화

자연스레 박동선을 처음 만났을 때 가 떠올랐다.

당시의 박동선도 자존감이 무척 낮 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만나고 있는 박동선 은 그때보다 자존감이 더 바닥을 치 고 있었다.

‘일단은 자존감을 올려 주는 것이 우선이야.’

이렇게 판단한 이규한이 입을 뗐 다.

“제가 오늘 박 작가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두 사람과의 만남을 포기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누구입니까?”

“김수한,그리고 남지유입니다.” 김수한은 한류 스타.

남지유는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그런 두 사람의 이름을 들은 박동 선이 두 눈을 치켜떴다.

“농담… 이시죠?”

“물론 농담 아닙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저와의 약속을 취소하시고 두 사람을 만나셨어야

박동선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 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단호하게 고개 를 흔들었다.

“저는 그 두 사람보다 작가님을 만 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 다.”

“그러니까 대체 왜요?”

“그 두 사람보다 작가님이 더 필요 하니까요.”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박동선은 여 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 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표정은 아 까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다. 그리고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다.”

누군가에게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 에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구나 상대가 바로 김수한과 남지 유였다.

그 두 사람보다 더 중요하고 필요 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이규한에게서 들은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것이리 라.

또,부지불식간에 자존감도 올라갔 으리라.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다시 입을 됐다.

“혹시 웹툰 좋아하십니까?”

“즐겨 보는 편입니다만… 그건 갑 자기 왜 물으시는 겁니까?”

“그럼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작품도 아십니까?”

“물론 압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웹룬입니다.”

박동선 작가의 목소리 톤이 살짝 올라갔다.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웹툰 작품을 그만큼 좋아하기 때문이었 다.

“그 작품의 판권을 제가 구입했습 니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럼 머잖아 영화로 제작되겠군요. 벌써 기대가 되네요. 과연 어떻게 바뀌어서 영화 로 나올지가요.”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박동선에게 이규한이 말했다.

“그건 작가님에게 달렸습니다.”

“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설 마 ‘?”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저는 ‘은 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웹툰 작 품의 시나리오 작업을 박 작가님에 게 의뢰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오늘 만나자고 약속을 잡은 것이고요.”

이규한이 본론을 꺼낸 순간,박동 선이 입을 쩍 벌렸다.

그런 그의 표정은 무척 복잡했다.

다시 찾아온 기회로 인한 기쁨,좋 아하던 웹툰 작품을 직접 시나리오 로 바꾸는 것에 대한 기대와 흥분,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회 의 등등.

이런 여러 감정들로 표정이 급변하 던 박동선의 낯빛이 이내 어둡게 변 했다.

“죄송합니다.” 잠시 후,박동선이 말했다.

“왜 사과하시는 겁니까?”

“박동선이라는 작가를 믿어주신 것,또 좋은 기회를 주신 것에 보답 하지 못하니까요.”

“거절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좋은 기회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 면서도 거절하시는 이유가 대체 월 니까?”

“자신이 없어서입니다.”

박동선 작가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 답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실망하지 않았

그 대답을 꺼내는 박동선의 목소리 에 짙은 아쉬움이 깃들어 있다는 것 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할까?’

잠시 고민하던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시 안유천 작가를 아십니까?”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워낙 유명 한 작가니까요.”

다행히 박동선은 안유천에 대해 알 고 있었다.

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유명 작가가 됐지만,예 전 안유천 작가의 글은 형편없었습 니다.”

“그걸 대표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제가 안유천 작가를 입봉시켰거든 요.”

안유천과 박동선.

두 작가의 공통점은 이규한이 대표 로 있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 참 여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서로 만난 적 이 없었다.

작가들의 성향이 워낙 폐쇄적이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박동선 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바 라보던 이규한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글 솜씨가 형편없던 안유 천 작가가 불과 몇 년 만에 업계 톱클래스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데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계기입니까?”

“한 우물을 팠죠.”

선……?"

“제가 판단하기에 안유천 작가의 강점은 캐릭터를 잘 살린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래서 코미디에 강한 편 이었죠. 그런데 안유천 작가는 자신 의 장점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스릴 러나 공포 장르의 작품에 자꾸 기웃 거린 탓에 글이 형편없었던 겁니다. 제가 그 사실을 알려 주고 난 후, 안유천 작가는 코미디 혹은 휴먼 코 미디 장르의 글만 썼습니다. 덕분에 업계 톱클래스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비로소 한 우물을 팠다는 말뜻을 이해한 박동선이 천천히 고개를 끄 덕였다. 그리고 부러운 기색을 감추 지 못하는 박동선에게 이규한이 덧 붙였다.

“작가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뜻입니 다.”

이규한이 대답했지만,박동선을 제 대로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 래서 이규한이 부연 설명을 했다.

“영화,드라마, 소설까지. 박 작가 님은 너무 많은 분야에 발을 담그고 계십니다. 좋게 말하면 재능이 많다 는 뜻이지만,나쁘게 말하면 어느 한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 하고 떠도는 입장이죠.”

정곡을 찔렸기 때문일까.

박동선이 얼굴을 붉히자 이규한이 덧붙였다.

“영화만 하세요.”

‘난 어떤 글을 써야 할까?’

박동선은 오랫동안 고민하며 방황 했다. 그리고 박동선은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작가 생활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것 이 박동선이 결국 답을 찾아내지 못 했다는 증거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규한이 대신 답을 알려 준 상황.

박동선의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밖

에 없었다.

“영화, 한 우물만 파라는 말씀이십 니까?”

“맞습니다.”

“그렇지만 영화만 할 때도 좋은 결 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박동선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 을 꺼냈다.

두 차례의 시나리오 계약 파기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규한이 말했다.

“좀 더 범위를 좁혀야 합니다.”

“범위를… 좁히라니요?”

“왜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은 없습니까?”

박동선이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사 관, 왕을 만든 남자’는 개봉했을 뿐 만 아니라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 었다.

그렇지만 다른 두 곳의 영화 제작 사와 계약을 맺고 집필했던 두 편의 사나리오는 제작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더러 계약 파기까지 당했다.

이규한이 물은 것은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였다.

“물론 저도 고민해 봤습니다.”

“그래서 어떤 결론을 얻었습니까?”

“운이요.” 박동선이 대답했다.

“‘사관,왕을 만든 남자’가 개봉을 하고 흥행에서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 다. 그리고 내 운은 거기까지였다.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고개를 흔들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럼 이 대표님이 내린 결론은 무 엇입니까?”

“오리지널 시나리오이냐? 원작이 있는 작품의 시나리오이냐? 이 차이 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박동선이 맥주잔 을 매만졌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물었다.

“그 차이가 이렇게 다른 결과를 만 들어 낼 수 있을까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원작이 있 는 경우 시나리오 구조를 만들기 더 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더 쉬웠던 것 같습니 다.”

박동선이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대 답했다.

그런 그의 표정은 아까에 비해 한 층 밝아져 있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찾았기 때문이리 라.

잠시 후,박동선이 입을 뗐다.

“그래서 제게 웹룬 작품인 ‘은밀하 면서도 위대하게’의 시나리오 작업 의뢰를 맡기려 하신 거군요.”

“맞습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의 시 나리오 작업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작가가 누가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가장 먼저 떠오른 게 박 작가님 이 었습니 다.”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규한이 본인을 인정하고 기회를

준 것에 대해서 박동선이 감사 인사 를 건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동 선의 표정에는 어두운 기색이 여전 히 남아 있었다.

“또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십니

까?”

그래서 이규한이 묻자,박동선이 대답했다.

“시나리오 작가 박동선의 미래가 마음에 걸립니다.”

…?"

“시한부 환자라는 생각이 문득 들 었거든요.”

겁니까?”

“이 대표님이 기회를 주신 덕분에 이번 작품에는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다음엔? 이런 질문을 던 지니 답이 나오지 않네요.”

“잘못 생각하고 계시네요.”

“제가요?”

“네,아까 웹툰 작품을 좋아하신다 고 하셨으니,‘부산행 열차’라는 작 품도 알고 계십니까?”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를 집필했 던 박상구 작가의 신작이 아닙니 까?” “그 작품도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

서 영화로 제작할 겁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게 다가 아닙니다. 현재 연재 중이거나 인기리에 완결이 난 여러 웹툰 작품들의 판권을 블루문 엔터 테인먼트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기 회가 닿는 대로 영화로 제작하기 위 해서입니다. 그리고 블루문 엔터테 인먼트뿐만 아니라 다른 제작사들과 투자 배급사에서도 웹툰 작품이나 소설 작품들의 판권을 앞다투어 구 매하고 있습니다. 장차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로 만들려는 시도가 계 속 있을 거란 뜻입니다. 그러니 앞 으로 박 작가님은 무척 많이 바빠질

겁니다.”

마지막 고민까지 해결됐기 때문일 까.

비로소 박동선의 얼굴 한편에 남아 있던 그늘마저 사라졌다.

“그럼 다시 질문 드리겠습니다. 작 가 생활 계속하실 거죠?”

“네,한 우물만 파겠습니다.”

“제가 한 시나리오 의뢰도 받아들 이실 거죠?”

“물론입니다.”

“그럼 한잔하실까요?”

이규한이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홀가분한 표정의 박동선도 맥주잔

을 들어 올릴 때 이규한이 제지했 다.

“잠시만요. 그 전에 할 일이 하나 남았네요.”

“무슨 할 일이 남았습니까?”

“기념사진 촬영이요.”

이규한이 대답하자 박동선이 의아 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기념사진 촬영은 거절하겠다 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으니까요.”

“네?”

“작가 박동선의 인생 2막이 시작되 는 것을 기념하는 사진 촬영이라면 언제든 환영이거든요.”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한 후 박동선 의 곁으로 자리를 옮겨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찰칵.

환하게 웃는 이규한과 박동선의 얼 굴이 사진에 담겼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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