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73화 (173/272)

173화

한 우물을 파시죠 (1) “중요한 약속인가 보죠?”

“네,그렇습니다.”

이규한이 대답하자,남지유가 흥미 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규한 대표님,확실히 특이한 분 이세요.”

“제가요? 어떤 면이 특이한가요?”

“저처럼 매력적인 여자가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도 단칼에 거절하시니 까요.”

“거절한 게 아니라 선약이 있어 서……

“보통은 약속을 취소하거든요. 그 런데 이규한 대표님은 그렇게 하지 않네요. 그래서 더 궁금해졌어요.”

“뭐가 궁금하신 겁니까?”

“이규한 대표님이 누굴 만나시려고 하는지가요.”

잠시 고민하던 이규한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작가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들어서 였다.

“엄청 유명한 작가님이세요?”

“그렇게 유명한 작가는 아닙니다.”

이규한이 만나려는 작가는 박동선 이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했던 영화인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각 본을 썼던 작가.

그렇지만 박동선은 유명함과는 거 리가 멀었다.

‘사관,왕을 만든 남자’가 그의 입 봉작이자 마지막 작품이었으니까.

“신인 작가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 군요.”

이규한이 덧붙인 순간,남지유가 팔짱을 꼈다.

“그러니까 신인 작가를 만나기 위 해서 제 데이트 신청을 거절하신 거 군요.”

“그렇습니다. 혹시 기분이 상했습 니까?”

“기분이 상했다기보다는 이유가 더 궁금해졌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먼저 약속을 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아까 말씀드 린 대로 박동선 작가가 신인 작가이 기 때문입니다.”

" ……?" “제가 박동선 작가에게 연락을 해 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것이 일주 일 전입니다. 날 왜 만나자고 한 걸 까? 혹시 내게 시나리오 작업을 맡 기려는 게 아닐까? 어떤 작품일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아마 그 후 일주일 동안 박동선 작가는 잠도 제 대로 자지 못하고 저와의 만남을 기 다렸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만약 약속을 미룬다면, 박동선 작가는 많 이 실망할 겁니다. 그 사실을 잘 알 고 있기 때문에 박동선 작가와의 약 속을 뒤로 미루고 싶지 않은 겁니 다.” 이규한이 솔직하게 대답한 순간,

남지유가 생긋 웃으며 입을 뗐다.

“확실히 특이한 분이시네요.”

“제가 그렇게 특이한가요?”

“어쩌면 남들과는 다른 그 특이함 때문에 이규한 대표님이 성공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혹시 기분이 상한 게 아닐까?’

이런 우려가 들어서 이규한이 남지 유의 표정을 살필 때였다.

“이유를 듣고 나서 납득했어요.”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규한이 말한 순간,남지유가 덧 붙였다.

“대신 다음에 꼭 술 한잔 사 주셔

야 합니다.

강남역 근처 호프집.

이규한이 약속 시간에 맞춰서 도착 했을 때,박동선 작가는 이미 호프 집 안에 도착해 있었다.

“박 작가님,오랜만에 뵙습니다.”

“네,이 대표님,오랜만에 인사드립 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이규한이 박동선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그냥… 그럭저럭 지냈습니다.”

‘그럭저럭?’

이규한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한 ‘사관,왕을 만든 남자’가 개봉했을 때,박동선 작가는 감격한 표정이었 다.

부모님에게 인정받는 떳떳한 작가 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이뤘기 때문 이었다.

그리고 ‘사관,왕을 만든 남자’는 흥행에도 성공한 편이었다.

당연히 충무로의 영화 제작자들은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시나리오 를 쓴 박동선 작가에게 관심을 표명 했고,실제로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는 소문도 들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다시 만난 박동선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혹시 집에 우환이 있나?’

이규한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작업은 잘돼 가십니까?”

“요즘은 쉬고 있습니다.”

“왜 쉬고 계신 겁니까? 재충전?”

“아니요,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요.”

박동선이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한 순간,이규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제작사와 시나리오 집필 계 약을 맺지 않으셨습니까?”

“네,계약을 하긴 했습니다. 그것도 두 곳의 제작사와 했습니다.”

“그런데 왜 할 일이 없다는 겁니

까?”

“계약을 파기했거든요.”

“시나리오 집필 계약을 파기했다고 요? 왜요?”

“이유는 하나죠.”

? 7”

“글을 못 쓰니까요.”

박동선이 자조 섞인 웃음을 지은 채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재차 고 개를 갸웃했다.

이미 박동선 작가와는 한차례 작업 을 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 이규한은 작가 박동선이 쓴 시나리오가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 다.

아니,신인 작가치고는 글을 잘 쓴 다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왜 다른 제작사들과 시나리 오 계약을 파기하는 상황까지 치달 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 까?” “아까 두 곳의 제작사와 계약을 맺 었다고 말씀드렸었죠? 제가 쓴 두 편의 오리지날 시나리오를 보고 난 후,반응은 거의 똑같았습니다. 재미 가 없다. 그리고 시나리오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서 계약을 파기하자고 하더군 요. 결국 제가 글을 못 쓴다는 뜻이

‘왜 그런 반응이 돌아왔을까?’

이규한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때, 박동선이 덧붙였다.

“심지어 대필한 게 아니냐는 의심 까지 하더군요.”

“대필… 이요?”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각본을 진짜 네가 쓴 게 맞느냐? 혹시 다 른 작가가 쓰고 각본 크레딧에 이름 만 올렸던 것이 아니냐? 이렇게 말 했습니다.”

‘그건 아냐.’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제작자가 이규한이기에 이건 확실히 알고 있 었다.

‘심각한데.’

대필 의혹까지 받았다는 것.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이규 한이 판단했을 때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박동선이 생맥주를 단숨에 비운 후 다시 입을 뗐다.

“‘사관,왕을 만든 남자’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운이었다. 나는 시나리 오 작가로서 재능이 없다. 이런 생 각이 들어서 다른 작업을 시작했습 니다.”

“다른 작업이라면?”

“드라마를 썼습니다.”

“제작사와 계약을 맺고 쓴 겁니 까?”

“꽤 유명한 드라마 피디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극 드라마를 쓰 면 잘 쓸 것 같다며 같이 작업을 해 보는 게 어떠냐고 하시길래 시놈 시스와 대본 2회를 써서 드렸습니 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그 대답을 하기 전에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어떤 부탁입니까?”

“맥주 한 잔 더 마셔도 될까요?”

박동선의 앞에 놓인 생맥주잔이 비 어 있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말했 다.

“편하게 드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생맥주 한 잔만 더 갖다 주세요.”

종업원에게 생맥주 한 잔을 더 주 문한 후,박동선이 아까 미뤘던 대 답을 꺼냈다.

“계약 논의는 없던 일이 됐습니 다.”

“이유는요?”

“아직 드라마에 대한 이해가 부족 하단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목이 탄 걸까.

벌컥벌컥.

박동선이 새로 주문한 생맥주를 절 반가량 비운 후,다시 입을 뗐다.

“그래서 다른 글을 썼습니다.”

“다른 글이라면?”

“소설이요. 그나마 이게 제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소설을 썼습니 다.”

박동선은 원래 판타지 소설 작가 출신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이규한 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처참했습니다.”

남은 절반의 맥주를 비운 후,박동 선이 휴대 전화를 꺼냈다.

“직접 확인하셔도 됩니다.”

이규한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와이번 전사 김무기’.

액정에 떠올라 있는 작품의 제목이 었다.

그리고 조회수는…….

1화 조회수: 2,285 2화 조회수: 1,225 3화 조회수: 650 4화 조회수: 214 24화 조회수: 23

이규한은 장르소설 연재에 대해 별 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조회 수를 대충 확인한 후 박동선에게 물 었다.

“이 정도면 조회수가 많이 낮은 겁 니까?”

“아까 말씀드렸듯이 처참한 수준입 니다. 일단 조회수가 전체적으로 많 이 낮은 데다가,연독률도 너무 좋 지 않으니까요.”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와이번 전사 김무기’의 1화 조회 수는 2,285.

그렇지만 24화 조회수는 23이었다.

장르소설 연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이규한이었지만,1화 조회수에 비해 24화 조회수가 1/100 수준이 라는 것을 통해서 연독률이 좋지 않 다는 것 정도는 간파할 수 있었다.

“만약 이대로 유료 연재로 들어간 다면 수익이 거의 나지 않을 겁니 다. 그래서 연재를 중단했습니다.”

박동선이 부연 설명을 들은 후,이 규한이 스마트폰을 돌려주었다.

그런 그가 박동선에게 새삼스런 시 선을 던졌다.

“훌륭하시네요.” 이규한이 칭찬하자,생맥주잔을 들 어 을려 입으로 가져가던 박동선이 움찔하며 다시 내려놓았다

“무슨 뜻입니까?”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면서 계속 도전하는 작가님의 자세가 훌륭하단 뜻이었습 니다.”

만약 멘탈이 약한 작가였다면?

시나리오 계약이 잇따라 파기됐을 때,엄청난 좌절감을 느꼈으리라.

또,자괴감에 빠져서 무기력해졌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지만 박동선은 달랐다.

드라마에 이어서 판타지 소설까지.

그는 분야를 바꿔 가면서 집필을 계속했다.

비록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강인한 정신력과 노력만큼은 박수를 받아 마땅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의 칭찬을 받았음 에도 박동선은 기뻐하지 않았다.

여전히 침통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 다.

“그래 봐야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제가 글을 못 쓴다는 사실만 새삼 확인했죠.”

“뭘 망설였다는 겁니까?”

“대표님과 오늘 약속,취소할까 여 부에 대해서 고민했거든요.”

“왜 취소하려고 했습니까?”

“이규한 대표님은 작가 박동선과 만나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작가가 아니니까 괜히 대표님 의 아까운 시간만 빼앗는 거란 생각 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왜 취소하지 않으셨습니 까?”

“기념사진 찍으려고요.” “네?”

“앞으로 작가로 살지 않기로 결심 했습니다. 그래도 한때 작가였다는 추억을 남기고 싶더군요. 그래서 대 표님과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박동선이 담담한 목소리로 꺼낸 대 답을 들은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 다.

‘진심이다.’

마음 정리가 끝난 둣 박동선의 두 눈에는 한 점의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이규한의 마 음이 조급해졌다.

이규한은 박동선 작가가 여전히 필 요했기 때문이었다.

“거절하겠습니다. 기념사진을 찍어 드리는 것,거절하겠단 말입니다.”

“왜 입니까?”

“저는 박동선이라는 좋은 작가를 잃고 싶지 않거든요.”

이규한이 대답했지만,박동선은 고 개를 흔들었다.

“대표님,저는 좋은 작가가 아닙니 다.”

박동선이 자신 없는 표정으로 꺼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맥주를 마시 며 생각했다.

‘자존감이 바닥이야.’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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