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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169화 (169/272)

169화

구조 요청 (1)

쿵.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 틀거리던 박태혁이 가로수에 어깨를 부딪치고 바닥에 쓰러졌다.

“대표님,괜찮으세요?”

하태열이 재빨리 다가가 부축했다. 혼자서는 힘들 거란 생각이 들어서 이규한이 합류해서 박태혁의 오른팔

을 잡았을 때였다.

“이 대표,아니,규한아.”

“왜요?”

“못난 형 좀 살려 줘라.”

“못났고,조잔하고,치사한 형이란 거 알지만,그래도 좀 도와줘라. 내 가… 이 박태혁이가 지금 기댈 데가 너밖에 없다.”

덥석.

박태혁이 이규한의 손을 움켜쥐었 다.

잠시 후,박태혁을 택시에 태우는 하태열에게 이규한이 말했다.

“잘 부탁해요.”

“그래,연락할게.”

부우옹.

배기음과 함께 출발하는 택시를 이 규한이 바라보고 있을 때,김미주가 곁으로 다가왔다.

“어쩌실 거예요?”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

“마음 같아서는 확 망하게 내버려 뒀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좀 안됐긴 하네요.”

“그래서 미운 정이 무섭다는 거

이규한이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 을 뗐다.

“내가 어떻게 램프 엔터테인먼트에 서 근무하게 됐는 줄 알아?”

“이력서 내고 면접 봐서 합격했던 것 아닌가요?”

“이력서 냈으면 서류에서 떨어졌을 걸.”

“왜요?”

“줄줄이 망한 영화에만 참여한 피 디 겸 제작자를 누가 채용하고 싶겠 어?”

덧붙였다.

“무작정 램프 엔터테인먼트를 찾아 갔어. 램프 엔터테인먼트의 박태혁 대표가 영화판을 잘 모른다는 이야 길 들었거든. 이 사람은 나에 대해 잘 모르겠구나. 이렇게 판단했던 거 지. 그리고 박태혁 대표를 찾아가서 살려 달라고 부탁했어.”

“그래서 램프 엔터테인먼트에 입사 했던 거였어요?”

“응.”

“사기를 친 거네요. 그리고 박태혁 대표는 그때도 사기를 당했으니 순 진했네요.”

“사기를 당한 게 아니야.” “그럼요?”

“이미 나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모른 척하고 받아 줬던 거 였어.”

“왜 다 알면서도 대표님을 받아 줬 던 건데요?”

“무서웠다고 하더라.”

" ‘……?"

“내가 진짜 죽을까 봐.”

이규한이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다시 말했다.

“그래서 살려 주려고. 그냥 모른 척 외면하면 박태혁 대표가 극단적 인 선택을 내릴까 봐 무서워졌거

드 ”

“설마요. 소심해서 죽을 용기도 없 을걸요?”

“이거 봐.”

이규한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 김 미주의 앞으로 내밀었다.

“멍들었네요.”

“응,아까 박태혁 대표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든 멍이야. 그만큼 절박 하단 거지.”

손등의 멍을 바라보며 이규한이 덧 붙였다.

“소심하긴 하지만 자존심이 센 양 반이야. 그 자존심을 다 내던지고 내게 구조 요청을 보냈는데,차마 외면할 수가 없네.”

“대표님은 마음이 너무 약해요.”

“그게 내 유일한 약점이지?”

“그 약점 때문에 내가 대표님을 좋 아하죠.”

진지한 얼굴로 대답한 김미주가 물 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려 줄 건데요?” 다음 날 아침.

이규한이 램프 엔터테인먼트 사무 실로 찾아갔다.

딩동. 딩동.

벨이 울리고 한참 후, 부스스한 얼 굴의 박태혁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규한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한 박태 혁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대표가 여기 웬일이야?”

“치료비 청구하려고요.”

“치료비? 혹시… 내가 어제 때렸 어?”

“기억 안 나세요?”

“그게… 너무 급하게 마셔서 필름 이 끊겼어.” 머리를 긁적이던 박태혁이 이규한 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얼굴은 안 때렸나 보네.”

“고맙게도요.”

“그럼 내가 어딜 때렸어?”

“여기요.”

이규한이 멍든 손등을 앞으로 내밀 었다.

“겨우 멍든 것 때문에 여기까지 찾 아왔어?”

박태혁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순간, 이규한이 대답했다.

“형한테 배웠습니다.” “뭘 나한테 배워?”

“절대 손해는 보면 안 된다. 형이 저한테 이렇게 가르치셨잖아요.”

이규한의 대답을 듣고 픽 웃던 박 태혁이 이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런데 왜 박 대표가 아니라 형이 라고 부르는 거야?”

“그래서 싫어요?”

“꼭 싫다기보단……

“어차피 램프 엔터테인먼트 곧 망 할 거라서 대표님이란 호칭 대신 형 이라고 불렀어요.”

이규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태 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꼭 그렇게 아픈 데를 쿡쿡 찔러야 겠냐?”

“없는 말을 한 건 아니잖아요.”

“나쁜 놈.”

박태혁이 인상을 와락 구기자,이 규한이 말했다.

“밥 사 주시죠.”

“날더러 밥을 사라고?”

“치료비요.”

이규한이 다시 멍든 손등을 앞으로 내밀자,박태혁이 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부자가 더 무섭단 말이 사실이 네.” “야,고작 해장국 먹으러 가는데 이렇게 멀리 오는 법이 어딨어? 택 시비가 밥값보다 더 나오겠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박태혁이 불 만을 토해 냈다.

“택시비 제가 냈잖아요.”

“그렇긴 해도……

“해장국 기가 막히게 하는 집이 있 다니까요.”

박태혁과 더 실랑이를 벌이는 대 신,이규한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 잠시 후,해장국 한 그릇씩을 먹고 나온 박태혁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 었다.

“유명한 집이라 맛있긴 하네.”

“이제 커피 마시러 가죠.”

“커피는… 네가 사는 거지?”

“제가 삽니다.”

“빨리 가자. 입이 텁텁해 죽겠다.” 이규한이 다시 앞장서서 걸음을 옮 겼다. 그리고 커피 전문점 불루문 앞에 도착한 순간,박태혁이 걸음을 멈추었다.

“커피 전문점 이름이… 블루문?” 간판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박태 혁에게 이규한이 말했다.

“여기 커피 맛이 괜찮아요.”

“커피 맛이야 다 거기서 거기지. 그런데 왜 가게 이름이 블루문이야? 혹시 이 대표,돈 벌어서 커피 전문 점 연 거야?”

박태혁이 부러운 시선을 던지며 물 었다.

그런 그에게 이규한이 말했다.

“이 층을 보세요.”

“이 층?”

시키는 대로 고개를 들었던 박태혁 대표가 잠시 후 눈을 크게 떴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간판을 보 았기 때문이었다.

“이 대표,사무실 옮겼어?”

“네,얼마 전에요.”

“왜 나한테 소식 안 알렸어?”

“깜박했어요.”

“깜박할 게 따로 있지.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내게 알렸어야지.”

박태혁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방금 깜박하고 박태혁에 게 사무실 이전 소식을 알리지 못했 다고 했던 이규한의 대답은 거짓말 이었다.

구입해서 사무실을 이전한 소식을 알리지 않은 진짜 이유.

박태혁을 위해서였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게 사람 심리.

박태혁은 원래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배 아파하고 부러워하는 편이 었다.

그런데 램프 엔터테인먼트를 퇴사 하고 독립했던 이규한이 번듯한 건 물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면?

박태혁은 배가 너무 아파서 한동안 잠도 못 자며 건강을 해칠 수도 있 다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그때,박태혁이 두 눈을 빛내며 말 했다.

“빅스빅 픽처스 사무실도 여기 있 네?”

뒤늦게 빅스빅 픽처스의 간판을 발 견한 박태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빅스빅 픽처스를 아세요?”

“장준경 대표가 운영하는 제작사잖 아.”

“제가 여기로 오라고 제안했어요.”

“왜?”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와 빅스빅 픽 처스가 공동 제작을 하는 작품이 있 거든요. 가까이 있는 편이 공동 제

작을 하기 더 편할 것 같아서요.”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박태혁이 흥 미를 드러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와 빅스빅 픽 처스가 공동 제작하는 작품 제목이 뭔데?”

“‘베테랑들’이란 작품입니다.”

“얼마나 진행됐어?”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받 았고,올 겨울 개봉을 목표로 진행 중입니다.”

“큰 산은 다 넘었네.”

박태혁이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장준경 대표도 그동안 어지간히 일이 안 풀리더니 드디어 빛을 보는 건가? 여기가 터가 좋나?”

마치 지관처럼 주변을 살피는 박태 혁에게 이규한이 제안했다.

“램프 엔터테인먼트도 여기로 사무 실 옮기세요. 비어 있는 사무실이 꽤 있거든요.”

“사무실을 이전하라고? 여기 임대 료가 얼마나 하는데?”

“공짜입니다.”

“방금 뭐라고 했어?”

“공짜라고 했습니다.”

이규한이 재차 확인해 주었지만, 박태혁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 “어떻게 임대료가 공짜일 수 있어? 그 정신 나간 건물주가 대체 누군 데?”

이규한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신 나간 건물주,접니다.” ‘커피 맛있네.’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신 이규한 이 박태혁의 앞에 놓인 잔을 힐끗 살폈다.

전혀 줄어들지 않는 커피를 확인한

이규한이 물었다.

“왜 안 드세요?”

“그게……

“배 아프세요?”

“응?”

“제가 건물주가 된 걸 알고 나니 배 아프신 것 아닙니까?”

정곡을 찔린 박태혁이 멋쩍게 웃으 며 대답했다.

“갑자기 배가 좀 아프긴 하네.”

그런 그에게 이규한이 충고했다.

“좋게 생각하세요. 제가 성공해서 건물주가 된 덕분에 사무실 공짜로 쓸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렇긴 한데… 이 대표에게 하나 궁금한 게 있어.”

“뭐가 궁금하신데요?”

잠시 망설이던 박태혁이 물었다.

“내가 알립지 않아?”

“조금 얄미운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 줘?”

박태혁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잘못한 건 알고 있네.’

속으로 생각하며 픽 웃은 이규한이 대답했다.

“그렇긴 한데… 이 대표에게 하나 궁금한 게 있어.”

“뭐가 궁금하신데요?”

잠시 망설이던 박태혁이 물었다.

“내가 얄립지 않아?”

“조금 알미운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 줘?”

박태혁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잘못한 건 알고 있네.’

속으로 생각하며 픽 웃은 이규한이 대답했다.

뭐라 그랬어?”

“판권료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게 ‘은밀하면서 위 대하게’의 판권을 팔겠다는 뜻이 지?”

“그렇습니다.”

박태혁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 다.

구명줄이 내려왔다고 판단했기 때 문이리라.

“어제는 판권 안 판다고 했잖아?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뀐 거야?”

“살려 달라고 부탁하셔서요. 그래 서 살려 드리려는 겁니다.”

“이 대표,아니 규한아. 고맙다. 고 마워.”

박태혁이 덥석 이규한의 손을 움켜 잡으려 했다.

슬그머니 손을 뒤로 빼며 이규한이 입을 뗐다.

“제게 감사 인사를 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의 판권을 넘기는 대신 조건이 있으니까요.”

“어떤 조건?”

이규한이 대답했다.

을 하셔야 합니다.”

“공동 제작을 하자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안이기 때문 일까.

박태혁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규한이 판권을 넘긴 대가로 내건 조건이 본인에게 유리한 건지 불리 한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해서 박태혁 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박태혁이 질문을 던졌다.

“왜 공동 제작을 하자는 거야?”

“걱정이 돼서요.”

“내가 걱정이 돼서 도와주려는 거 야?”

“박 대표님이 아니라 ‘은밀하면서 도 위대하게’라는 작품이 걱정이 되 는 겁니다.”

이규한이 정정하자,박태혁이 다시 물었다.

“왜 작품이 걱정이 된다는 거야?”

“이대로 돈만 받고 램프 엔터테인 먼트에 판권을 넘기면,제대로 영화 로 만들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거든요.”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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