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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168화 (168/272)

168화

신용 좋으세요?

“그 정도예요?”

막연히 예상했던 것보다 램프 엔터 테인먼트의 자금난이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규한이 눈살을 찌 푸렸을 때였다.

“내 탓도 있어.”

“선배가 왜요?”

“램프 엔터테인먼트 입사 후에 아 직 한 작품도 제작하지 못했으니까, 나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 지.”

불이 붙어 있는 것처럼 담배의 필 터를 힘껏 빨아들였던 하태열이 덧 붙였다.

“박 대표님,너무 욕하지 마. 진짜 궁지에 몰려서 그런 거니까.”

“오천만 원은 어디서 구했어요?”

“판권료? 나한테도 말을 안 해 줘 서 잘 모르겠지만,아무래도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것 같아.”

하태열이 한숨과 함께 꺼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부탁했다.

“저도 하나 주세요.”

“뭘 달라는 거야?”

“담배요.”

“담배 안 피우잖아?”

“가슴이 답답해서 선배처럼 입에 물고 있기라도 해야겠어요.”

“알았다.”

담뱃갑을 꺼내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건네며 하태열이 물었다.

“박 대표님,좋아하나 보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좋아하니까 박 대표님이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답답 한 것 아냐?”

이규한이 고개를 흔들며 부인했다.

“아닌데요.”

“그럼 왜 가슴이 답답해?”

“예전 생각이 나서요.”

이규한이 담배 연기를 내뿜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 역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 았던 적이 있었다.

당시 초조하고 절박했던 심정이 다 시 되살아나서 가슴이 답답해졌던 것이었다.

“들어가시죠.”

“그래,들어가자.” 불을 붙이지 않고 입에 물고만 있 었던 담배 개비를 재떨이에 버리고 이규한이 고깃집 안으로 들어갔다.

“자,한 잔 받아.”

이규한이 앉자마자 박태혁이 소주 병을 들었다.

쪼르륵.

이규한이 들어 올린 잔을 채워 주 며 박태혁이 물었다.

“이제 결정했어?”

“네,결정했습니다.”

“판권 넘길 거지?”

소주잔을 단숨에 비운 후,이규한 이 대답했다.

“판권 못 넘기겠습니다.”

“판권을 못 넘기겠다고?”

예상치 못했던 전개이기 때문일까. 박태혁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탁.

젓가락을 탁자 위에 내려놓는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그가 무척 당황했 다는 증거였다.

“왜 판권을 못 넘기겠다는 거야? 판권료로 오천만 원 지불한다고 했 잖아? 오천만 원이 적어?”

“네,적습니다.”

“뭐라고?” “빅박스 백기원 팀장이 찾아와서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 판권을 구 입하는 대가로 일억을 제시했습니 다.”

“백기원 팀장이 판권료로 일억을 제시했다고?”

놀란 표정을 짓던 박태혁이 서둘러 다시 물었다.

“설마 판권을 이미 넘긴 거야?”

“아직 안 넘겼습니다.”

“후우.”

박태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반응을 유심히 살피던 이규한이 입을 뗐다.

“솔직히 털어놓으시죠.”

“뭘 털어놓으라는 거야?”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자 체적으로 기획 개발 과정을 거쳐서 작품을 제작하지 않고 ‘은밀하면서 도 위대하게’의 판권을 구입해서 제 작하려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아까 말했잖아. 작품이 마음에 들 어서 램프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박태혁이 대답했다. 그렇지만 이규 한은 그가 슬그머니 시선을 아래로 내리까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 거짓말하고 계시죠?” “내가 왜 거짓말을 해?”

“어떤 약속을 받으셨죠?”

“무슨 약속? 이 대표가 대체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네.”

박태혁은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확신이 있었다.

“제가 가장 이상하다고 여긴 게 뭔 지 아십니까? ‘은밀하면서도 위대하 게’의 판권료로 오천만 원을 책정한 겁니다.”

“그게 뭐가 이상하단 거야?”

“너무 많습니다.”

이규한이 대답하자,박태혁이 어이

없단 표정을 지었다.

“아까는 너무 적다고 말했잖아?”

“물론 빅박스 백기원 팀장이 제시 했던 판권료에 비하면 적습니다. 그 렇지만 박 대표님이 제시한 판권료 로는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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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안 나십니까? 제가 예전 램 프 엔터테인먼트 소속 피디였을 때, 소설책 판권료로 얼마를 부르셨는 지?”

“알마를 불렀었지?”

“백만 원이요.” “백만 원 주면서 제게 소설책 판권 구해 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그랬었나?”

진짜 기억이 안 나는 듯 박태혁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그가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가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그랬던 분이 ‘은밀하면서도 위대 하게’의 판권료로 오천만 원을 제시 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건……

“더 버티지 말고 지금이라도 솔직 하게 털어놓으시죠. 만약 끝까지 숨 기신다면,절대 판권 못 넘깁니다.” 이규한의 협박이 통했을까.

박태혁이 소주잔을 들어 비운 후, 어렵게 입을 뗐다.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웹툰 작품의 판권을 구입해서 제작에 들 어가면 투자를 받기로 했어.”

“누가 투자를 하기로 한 겁니까?” “창투사 라임, 이 대표도 알지?”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투사 라임은 투자사 중 하나였 다.

“얼마나 투자받기로 했습니까?” “이억 오천.”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결심한 박태 혁은 구체적인 투자금의 액수까지 알려 주었다.

‘예상대로네.’

자신의 짐작이 적중했음을 알게 된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창투사 라임은 규모가 크지 않은 투자사.

많은 금액을 투자하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딱 이규한이 예상했던 만큼의 금액 을 투자하려는 셈이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 오천만 원 을 지급하고 ’은밀하면서도 위대하

게‘의 판권을 구입하면 창투사 라임 으로부터 이억 오천만 원의 투자금 을 받을 수 있다. 그럼 램프 엔터테 인먼트에 이억의 여윳돈이 생긴다.’

재빨리 계산을 마친 이규한이 박태 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억이 남네요.”

“맞아.”

“그 이억이 다 소진되면요?”

“그 전에 다른 데서 투자를 받아야 지.”

“그게 쉽지 않다는 것,박 대표님 도 아시잖아요?”

“알지만… 해 봐야지.”

박태혁이 힘없이 꺼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여전히 순진하시네요.”

“무슨 뜻이야?”

박태혁이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여전히 영화판에 대해 모르신다고 요.”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박태혁이 발끈했다.

“나도 이제 짬밥이 좀 쌓였어. 이 바닥 돌아가는 상황은 훤히 꿰고 있 어.”

“제가 보기에는 전혀 아닌데요. 창 투사 라임에게서 투자를 받기 위해 서 이렇게 동분서주하는 게 박 대표 님이 영화판을 모른다는 증거입니 다.”

“무슨… 뜻이야?”

“지금 박 대표님이 하시는 일,언 발에 오줌 누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왜 언 발에 오줌 누기나 마찬가지 라는 거지?”

“임시방편에 불과하니까요. 이억으 로 얼마나 버틸 자신이 있으세요?”

“대략… 육 개월 정도.”

“그 후에는요?”

“다른 데서 투자를 받을 거라니 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다른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만약 투자를 못 받으시면 어떻게 하 실 겁니까?”

“…최악의 경우에는 신용 대출이라 도 받아야지.”

박태혁이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 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수순.

그래서 이규한이 답답한 표정을 지 은 채 물었다.

“신용 좋으세요?”

“영화 제작자들 중에 신용 등급 높 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그럼 기껏해야 몇천 정도 신용 대 출 받을 수 있겠네요. 그 돈으로는 길어야 석 달 정도 더 버티겠네요. 그다음에는요?” 박태혁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입 을 다물었다.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 이리라.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다시 물었다.

“왜 창투사 라임에서 램프 엔터테 인먼트에 투자를 하려는 걸까? 여기 에 대해서 의심해 본 적 없으세요?”

서도 위대하게’라는 웹툰 작품이 워 낙 좋으니까 투자를 하려는 거지.”

박태혁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 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고개를 흔들었 다.

“이게 박 대표님이 여전히 이 바닥 을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 <……?"

“만약 창투사 라임이 ‘은밀하면서 도 위대하게’라는 작품에 투자를 하 고 싶었다면,굳이 램프 엔터테인먼 트를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건…… “굳이 램프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의 판권을 구입한 다른 제작사에 투자를 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

박태혁이 당혹스런 기색을 드러냈 다.

이규한의 설명을 듣고 난 후에야 비로소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뒤 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게 잘 보이지 않을 테니까.’

박태혁이 둔하거나 멍청해서가 아 니었다.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다.

“창투사 라임은 왜 하필 램프 엔터 테인먼트에 투자를 하려고 했던 걸 까?”

박태혁이 뒤늦은 질문을 던졌다.

“저와 박 대표님의 관계를 알고 있 어서일 겁니다.”

“응? 무슨 소리야?”

“창투사 라임 측에서는 ‘은밀하면 서도 위대하게’라는 웹툰 작품의 판 권을 제가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한때 박 대표님 밑에서 일했다는 사실도 알 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램프 엔터 테인먼트에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 의 판권을 구입하는 데 성공하면, 투자를 하겠다는 제의를 한 걸 겁니 다.”

이규한이 꽤 길었던 설명을 마쳤지 만,박태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앞뒤가 안 맞잖아.”

“어느 부분이요?”

“창투사 라임은 왜 한 다리를 건너 서 투자하려는 거지? 그냥 이 대표 한테 연락해서 ‘은밀하면서도 위대 하게’라는 작품의 판권을 구입하면 되잖아?”

“그게 불가능하단 걸 안 겁니다.”

“왜 불가능해?” “소문을 들었을 테니까요.”

“무슨 소문?”

“빅박스에서 ‘은밀하면서도 위대하 게’의 판권을 구입하려고 블루문 엔 터테인먼트와 접촉했지만 실패했다 는 소문이요.”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박태혁이 두 눈을 껌벅일 때,하태열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창투사 라임에서 램프 엔터테인먼트에 투자를 약속한 게 이 대표와의 인연을 이용해서 ‘은밀 하면서도 위대하게’의 판권을 구입 하려는 목적 때문이란 거야?” “제 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그럴 겁 니다.”

“이제야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네.”

하태열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 규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창투사 라임은 램프 엔터테 인먼트가 다른 투자사에서 투자를 받는 것을 원치 않을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램프 엔터테인먼트가 망하길 바랄 겁니다.”

이규한이 말을 마친 순간,박태혁 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다.

“내가 망하길 원한다고? 왜?”

“그럼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의 판권을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램프 엔터테인먼트가 망하 면 창투사 라임에서 투자한 돈은?”

“그건 박 대표님이 갚아야죠.”

“내가?”

“그리고 창투사 라임은 ‘은밀하면 서도 위대하게’의 판권을 손에 넣게 되면,램프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한 이억 오천만 원의 몇 배의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내부적으로 결 론을 내린 후일 겁니다.”

태혁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 대표 말이 맞았네. 내가 너무 순진했어. 아니, 멍청했어.”

자책하던 박태혁이 소주잔을 다시 비운 후 물었다.

“그럼 램프 엔터테인먼트는 이제 망하는 것밖에 남지 않은 건가?” 이규한이 대답했다.

“지금 망하느냐? 조금 더 늦게 망 하느냐?”

…?"

현재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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