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67화 (167/272)

167화

탁.

백진엽이 젓가락을 탁자 위에 내려 놓았다.

“왜 안 드세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앞에 있는데 어떻게 벌써 젓가락을 내려놓을 수 있냐는 듯 박상구 작가가 의아한 시 선을 던지며 물었다.

“입맛이 없네.”

“왜요?”

“야,입맛이 없는 데도 무슨 이유 가 있어야 해?”

백진엽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백진엽을 힐끗 살핀 이규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백진엽이 갑자기 입맛이 사라진 이 유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대적 박탈감.’

본인과 비슷한 처지라 여겼던… 아 니,본인보다 더 어려운 처지라 여 겼던 박상구 작가는 인기 작가로 변 신해 있었다.

반면,백진엽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었다.

그로 인해 백진엽은 상대적 박탈감 을 느꼈기 때문에 입맛이 사라진 것 이었다.

‘내 책임도 있어.’

이규한이 자책했다. 그리고 한시라 도 빨리 ‘부산행 열차’를 영화로 제 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 이규 한이 입을 뗐다.

“박 작가님,‘부산행 열차’는 블루 문 엔터테인먼트에서 꼭 영화로 제 작할 겁니다. 그리고 제가 결심을 굳힌 이유는 ‘부산행 열차’라는 작 품의 스토리가 무척 홉입력이 있고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박상구 작가는 회의적인 시선을 던졌다.

“정말 그렇게 판단하십니까?”

“네.”

“이상하네요.”

“왜 이상하단 겁니까?”

“저도 ‘인천행 버스’를 봤습니다. 대체 어느 부분이 흡입력이 있고 재 미있는지 전혀 모르겠네요.”

박상구 작가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 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가 이런 평가를 내린 것.

어쩌면 당연했다.

이규한도 ‘인천행 버스’라는 작품 을 처음 접했을 때, 너무 황당해서 기가 막혔을 정도였으니까.

“야,‘인천행 버스’가 아니라 ‘부산 행 열차’라니까.”

그때,백진엽이 다시 소리쳤다.

“별 차이도 없지 않습니까?”

박상구 작가가 항변했을 때,이규 한이 나섰다.

“차이가 있습니다. ‘인천행 버스’에 서 ‘부산행 열차’로 제목만 바뀐 것 이 아닙니다. 스토리가 많이 변했고, 내용도 보강됐습니다. 아까 제가 스 토리가 흡입력이 있고 재미있다고 표현한 작품은 ‘인천행 버스’가 아 니라 ‘부산행 열차’라는 작품입니 다.”

그 설명을 들은 박상구 작가가 백 진엽에게 물었다.

“형 생각도 같아요?”

“좀 나아진 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우리 대표님이 한 말은 좀 오버야. 엄청나게 흡입력이 있거나, 재밌다 는 느낌은 없어.”

백진엽이 꺼낸 대답을 들은 이규한 이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같은 작품이 맞는가 의심이 들 정도로 달라졌어. 거의 환골탈태 수준이랄까. 흡입력 쩔어서 숨 쉴

틈도 없을 정도야.”

박상구 작가를 만나기 전, 이규한 과 백진엽이 연습했던 대답이었다. 그렇지만 백진엽은 막상 실전에서 다른 대답을 꺼냈다.

‘답답하네.’

이규한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연습했던 대답을 꺼냈다 하더라도 박상구 작가가 ‘부산행 열차’라는 작품을 맡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이었다.

그런데 정작 시니리오를 쓴 장본인 인 백진엽이 이렇게 미적지근한 대 답을 꺼내 놓는데 어찌 박상구 작가 에게 확신을 심어 줄 수 있을까.

‘어렵겠네.’

해서 이규한이 이렇게 판단한 순간 이었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박상구 작가가 ‘부산행 열차’라는 작품을 맡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왜 맡겠다는 거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오히려 이규 한이 당황했을 때였다.

“갑자기 왜 생각이 바뀌었어?”

백진엽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이유 를 물었다.

“두 분의 안목을 믿기 때문입니 다.”

“응? 이 대표님은 오버했지만,난 아까 솔직히 말했는데?”

“이 대표님의 안목을 믿습니다.”

박상구가 잘라 말한 순간,백진엽 이 다시 물었다.

“아까는 두 사람의 안목을 믿는다 면서?”

“물론 형의 안목도 믿죠.”

" 9”

“항상 반대시잖아요.”

“반대… 라니?”

“기억 안 나세요? 형이 대박 난다 고 확신했던 작품들은 다 반응이 뜨 뜻미지근했어요. 반면 형이 잘 안

될 것 같다고 했던 작품들은 대박이 났어요.”

“그러니까… 내가 별로라고 해서 ‘부산행 열차’라는 작품에 대한 확 신이 생겼다는 거야?”

“정확합니다.”

“이걸 좋아해야 해? 슬퍼해야 해?”

백진엽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 다.

‘좋아해야 할 일이지.’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 던 이규한이 속으로 말했다.

박상구 작가의 손을 거쳐 ‘부산행 열차’ 웹툰이 연재되는 것.

‘부산행 열차’라는 영화 제작 과정 의 첫걸음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첫걸음은 뗐어.’

그래서 이규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입을 뗐다.

“어려운 부탁을 들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박상구 작가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맡 을 생각이었습니다.”

“네?”

“이 대표님을 믿거든요.”

박상구 작가가 웃으며 덧붙였다.

“제가 알고 있는 이 대표님은 다른 영화계 사람들과 달리 좋은 사람이 니까요.”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고깃집.

이규한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직 원들과 함께 고깃집 안으로 들어갔 다.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램프 엔터테인먼트 박태혁 대표와 하태열 피디를 발견한 이규한이 걸음을 옮 겼다.

“잘 지냈지? 아니,요새 잘나간다 는 소문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나쁜 놈. 내 밑에 있을 때 이렇게 잘했으면 얼마나 좋아?”

박태혁의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랬으면 이렇게 열심히 안 했을 걸요.”

“말이나 못하면.”

인상을 팍 구긴 채 고개를 절레절 레 흔드는 박태혁에게 이규한이 말 했다.

“내가 지금 기분이 좋겠냐?”

“기분이 안 좋을 이유는 또 뭐가 있습니까?”

“왜 혼자 안 나오고 회사 직원들은 주렁주렁 달고 왔어? 내 돈으로 회 식까지 겸하려는 거야?”

‘여전하네.’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하며 쓴웃음 을 머금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옛말 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박태혁을 탓하기는 어려

‘과속 삼대 스캔들’ 이후 램프 엔 터테인먼트는 더 이상 작품을 내놓 지 못했다.

작품을 준비하던 중에 계속 문제가 발생하면서, 제작이 무산되는 것이 반복됐다.

‘시간은 돈.,

일단 제작사를 유지하고 있는 이 상, 계속 고정 지출은 발생할 수밖 에 없었다.

지금쯤이면 ‘과속 삼대 스캔들’의 홍행 덕분에 벌었던 돈도 거의 다 소진된 상황일 터.

박태혁은 점점 초조해졌을 터였고, 예전보다 더 금전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였다.

“참 한결같으시네요.”

김미주가 박태혁에게 인사를 건넸 다.

“이게 누구야? 날 떠난 배신자 2 호가 아닌가?”

박태혁이 못마땅한 시선을 던졌지 만,김미주는 주눅 들지 않고 대답 했다.

“입은 삐뜰어져도 말은 똑바로 해 야죠. 전 배신한 게 아니라 해고됐

거든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로 옮길 준비 마치고 난 후,내가 잘라 주길 기다 렸던 것,내가 모를 것 같아?”

툴툴대던 박태혁이 다시 물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로 옮기니까 좋아?”

“네,아주 좋아요.”

“뭐가 그렇게 좋은데?”

“예전에 함께 일했던 어떤 대표님 과 다르게 우리 대표님은 작품이 흥 행하면 소고기 사 주시거든요.”

“흥,겨우 먹는 것 갖고……

“소고기만 사 주는 게 아니라 인센

티브도 챙겨 주시거든요.”

“인센티브? 진짜야?”

박태혁이 이규한에게 고개를 돌리 며 물었다.

“사실입니다.”

“왜 직원들에게 작품 흥행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건데?”

“같이 고생했으니까요.”

이규한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 다. 그렇지만 박태혁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이규한이 하태 열에게 고개를 돌렸다.

합니다.”

“내가 미안하지.”

“진호 선배는 아시죠? 그리고 여기 는 미주 씨와 백진엽 피디입니다.”

이규한이 하태열에게 블루문 엔터 테인먼트 직원들을 소개했다.

“일단 술이랑 고기부터 시키고 먹 으면서 얘기하시죠.”

“네가 사는 거지?”

이규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태 혁이 물었다.

“박 대표님이 사셔야죠.”

“왜 내가 사야 하는데?”

“최 연장자이시잖아요.”

“야,나이 먹은 것도 서러운데 계 산까지 해야 해?”

“그리고 부탁하러 오신 입장이시잖 아요.”

“껍,그렇긴 하지만.”

영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던 박태혁이 결심한 듯 말했다.

“알았다,내가 산다. 여기 등심… 3 인분?”

메뉴판을 보며 가격을 살피던 박태 혁이 3인분을 주문하려 한 순간,김 미주가 타박했다.

“사람이 몇 명인데 3인분을 시켜

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따 로 시켜서 먹어야지.”

“충무로 최고의 좀팽이.”

“뭐? 이제 램프 엔터테인먼트 직원 아니라고 막 나가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앙숙지간인 톰과 제리처럼 설전을 벌이고 있는 박태혁과 김미주를 바 라보던 이규한이 나섰다.

“그냥 제가 사겠습니다.”

“그래,요새 잘나가는 이 피디,아 니,이 대표가 사. 여기 등심 10인 부 ”

을 이규한에게 떠넘겼다. 그리고 아 까 등심 3인분을 주문했던 것을 취 소하고,등심 10인분으로 주문량을 늘렸다.

“얄미워 죽겠어요.”

김미주가 그런 박태혁을 노려보며 이규한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왜 대표님이 사시는 건데요?”

“얄미워서.”

“네?”

“소탐대실이란 사자성어,알아?”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면…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걸 잃는다는 뜻이 잖아요.” “맞아,오늘 박 대표님에게 소탐대 실이란 사자성어를 뼈저리게 깨닫게 해 드릴 거야.”

“무슨 속셈이 있다는 뜻이죠?”

“두고 봐.”

“기대할게요.”

김미주가 비로소 안심한 기색으로 착석했다.

잠시 후, 박태혁이 소주병을 들었 다.

“이 대표,한 잔 받아.”

“제가 먼저 따라드리겠습니다.”

이규한이 소주병을 건네받아 박태 혁의 잔을 채울 때였다.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웹툰 작품의 판권 넘겨줘.”

박태혁이 부탁했다.

“아직 결정 못 했습니다.”

“너무 튕기지 말고……

“자신 있으십니까?”

“무슨 자신이 있냐는 거야?”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작품 의 판권을 넘겨드리면,영화로 제작 해서 개봉할 자신 있으십니까?”

“당연히 자신 있지.”

“흥행은요?”

“흥행? 그거야 개봉해 봐야 알지.

이 대표도 알잖아. 어떤 작품이 흥 행할지는 신이 아닌 이상 모른다는 것.”

이규한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박태혁이 꺼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작품을 제작하는 게 목표 다?’

방금 박태혁과 나눈 대화를 통해서 그의 의도를 이규한은 어느 정도 캐 치해 낼 수 있었다.

현재 박태혁은 작품을 만들어서 홍 행하는 것보다 투자를 유치하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자금난이 심각한 건가?’

이규한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였다.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하태열이 말했다. 그런 그가 일어 서며 눈짓을 보내는 것을 놓치지 않 은 이규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요한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 다.”

대충 핑계를 대고 일어난 이규한이 고깃집 밖으로 나갔다.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하태열을 발견한 이규한이 그의 곁으로 다가 갔다.

“왜 불을 안 붙이세요?”

“담배 끊었어. 그냥 답답해서 입에 물고만 있는 거야.”

하태열이 마치 담배 연기를 내뿜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램프 엔터테인먼트,어떤 상 황인데요?”

“문 닫기 일보 직전이야.”

1억 관객 제작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