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장사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박상구 작가는 고가에 판권을 매입 했다고 말했지만,이규한은 헐값에 매입했다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 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시죠. 빅박스 측에서 ‘은밀하면서도 위대 하게’ 판권을 구입하고 싶다는 의사 를 밝혔다는 거죠?”
“맞습니다. 아주 나쁜 놈들입니다.” “왜 나쁜 놈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절 거지 취급했으니까요.”
“네?”
“단돈 오백만 원에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의 판권을 구입하겠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대단한 선심이라 도 쓰는 투로 말하는데,제 기분이 어찌 좋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심했네.’
이규한이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최근 들어 웹툰이 대중들의 인기를 본격적으로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빅박스 투자팀장인 백기원은 본격적 으로 인기를 얻는 웹툰에 관심을 가 졌으리라.
웹툰 원작의 판권을 구입해서 영화 를 만드는 것이 백기원 팀장이 세운 계획.
‘감각은 있네.’
다른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보다 한 발 더 빨리 움직인 것이 빅박스 투 자팀장 백기원이 감각이 있다는 중 거였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아까 혀를 찬 이유는 그가 판권료를 너무 낮게 책 정했기 때문이었다.
‘감각은 있지만,양심은 없네.’
잠시 후 이규한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메이저 투자 배급사 중 한 곳인 빅박스의 백기원 팀장이 고작 오백 만 원에 판권을 구입하려던 것과 달 리,이규한은 이천만 원에 ‘은밀하 면서도 위대하게’의 판권을 구입했 다.
이것이 아까 박상구 작가가 백기원 팀장을 나쁜 놈들이라고 표현하고, 이규한에게 존경한다고 말했던 이유 였다
“제가 이미 판권이 팔렸다고 말했 습니다. 오백만 원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판권이 팔렸다는 사실도 알 려 줬고요.”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연재를 마무리해 주십 시오. 웹툰이 인기가 높을수록 영화 로 만들어졌을 때 흥행할 가능성도 높아지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이규한이 천천히 고개 를 끄덕였다.
“이제 알겠네.”
박상구 작가와 통화를 한 덕분에 백기원 팀장이 갑자기 연락해서 만 나자고 한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 었다.
그가 원작 판권을 구입하려 했던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웹툰 작품의 판권이 이미 자신에게 팔렸 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연락한 것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장사를 해 볼 까?”
이규한이 환하게 웃을 때,다시 전 화가 걸려왔다.
“태열 선배네.”
하태열에게서 걸려 온 전화라는 것 을 확인한 이규한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딩동. 딩동.
벨 소리가 울린 순간,이규한이 자 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나갈게.”
사무실 문을 열어 주기 위해 일어 나던 김미주를 제지한 후,이규한이 직접 문을 열었다.
“백기원 팀장님이시죠?”
“맞네.”
“처음 뵙겠습니다. 이규한입니다.”
백기원 팀장은 명함을 꺼내는 대신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며 입을 뗐다.
“꽤 멀군.”
그런 백기원 팀장의 표정에는 못마 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이규 한은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사무실에서 만나세.”
백기원 팀장은 미팅을 빅박스 투자 팀 사무실에서 갖기를 원했다. 그렇 지만 이규한은 단칼에 잘라 거절했 다.
‘내가 갑이니까.’
이번 미팅은 메이저 투자 배급사 팀장과 영화 제작사 대표의 미팅이 아니었다.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웹툰 작품의 판권을 구매하려는 사람과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미팅 이었다.
그러니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이규 한이 갑의 입장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메이저 투 자 배급사 팀장에게 갑질을 또 해 보겠어?’
이런 생각이 들었기에 이규한은 빅
박스 투자팀 사무실이 아니라,블루 문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미팅을 하자고 제안했던 것이었다.
그로 인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까 지 찾아와 있는 지금의 상황에 백기 원 팀장은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 고 있는 것이었다.
“차는 뭘로 드릴까요?”
“커피로 하겠네.”
“알겠습니다. 미주 씨,커피 두 잔 만 테이크아웃 해 줘.”
김미주에게 부탁한 이규한이 백기 원 팀장을 회의실로 안내했다. 그리 고 백기원 팀장은 성격이 급한 편이 었다.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웹툰 작품의 판권을 언제 구입했나?”
커피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을 던졌 다.
“꽤 됐습니다.”
“왜 판권을 구입했나?”
“웹룬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 들면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구 매했습니다.”
이규한이 모범 답안을 꺼냈다.
그 모범 답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갑자기 돈을 벌고 나니, 쓸데가 없었나 보군.”
이규한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백기원 팀장과 이규한이 만난 것. 오늘이 처음이었다.
쉰이 훌쩍 넘은 백기원 팀장이 말 을 놓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비 아냥대는 듯한 어투는 빈정을 상하 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갑질이 몸에 뱄어.’
속으로 생각하며 이규한이 물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뭘 말인가?”
“빅박스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금에 여유 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판권료로 오백만 원을 제시한 것,너무 치사 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규한이 슬쩍 비꼬자 백기원 팀장 이 눈살을 찌푸렸다.
“박상구 작가가 연락했나 보군.”
“네,제게 연락해서 울분을 토해 내더군요.”
“뭐라고 하던가?”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쁜 새끼들.”
“방금… 뭐라고 했나?”
백기원 팀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 랐다.
“나쁜 새끼들이라고 했습니다.”
이규한이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다시 대답하며 덧붙였다.
“박상구 작가가 제게 이렇게 말하 더군요.”
그때,노크 소리와 함께 김미주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탁자 위에 내려 놓고 김미주가 나갔다.
노기 때문에 목이 탄 걸까.
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렇지만 이 규한의 손이 조금 더 빨랐다.
“제 겁니다.”
“ 9”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거 든요.”
“갈증이 나서 그러니 내게 양보하 게.”
다른 영화 제작자라면 순순히 양보 했으리라.
백기원 팀장은 작품의 투자를 결정 할 권한이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 이었다.
다.
‘맘에 안 들어.’
백기원 팀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더욱 양보하기 싫은 것이었다.
미팅 장소부터 커피까지.
본인의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 자,백기원 팀장은 짜증 난 기색을 감추지 않고 표정에 드러냈다.
“얘기를 빨리 끝내지. 빅박스에서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의 판권을 구입하고 싶네. 판권료로 얼마를 생 각하고 있나?”
이규한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을 찡그렸다.
“이천? 너무 많……
“이천만 원이 아닙니다.”
“ 9”
“이억을 주시면 판권을 팔겠습니 다.”
아까 이규한이 펼쳤던 손가락 두 개가 이천만 원이 아니라 이억을 의 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백기원 팀 장의 말문이 순간 막혔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아랑곳하지 않 고 물었다.
“판권을 구입하시겠습니까?”
“진심… 인가?”
한참의 침묵 후,백기원 팀장이 물 었다.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의 판권료 로 이억을 부른 것이 능담을 한 것 이 아니었냐는 의미였다.
“왜 농담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터무니없는 가격이니까.”
지체 없이 대답한 백기원 팀장이 다시 물었다.
“박상구 작가에게 얼마를 주고 판 권을 구입했나?”
쳤다.
“이,려?”
백기원 팀장이 놀란 표정을 지은 순간,이규한이 고개를 흔들며 정정 했다.
“이억이 아니라,이천만 원입니다.” 그 대답을 들은 백기원 팀장이 와 락 인상을 구겼다.
“고작 이천만 원에 샀던 판권을 이 억에 되팔겠다는 건가?”
“방금… 고작이라고 하셨습니까?”
“맞네,고작이라고 했네.”
백기원 팀장이 대답한 순간,이규 한이 등을 의자 등받이에 묻으며 물
“그런데 왜 박상구 작가에게 판권 료로 고작 오백만 원을 제시하셨습 니까?”
“그건……
백기원 팀장의 말문이 다시 막히 자,이규한이 재빨리 덧붙였다.
“그러니까 나쁜 새끼들이라고 욕을 먹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백기원 팀장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 게 달아오른 순간,이규한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작가 나부랭이가 세상 물정을 뭘 알 겠어? 판권료로 오백만 원을 부르면 감지덕지하면서 달려들걸. 백 팀장 님은 아마 이렇게 판단하셨을 겁니 다. 맞습니까?”
“실은 저도 그렇게 판단했었습니 다.”
“그런데 왜 이천만 원을 주고 판권 을 구입했었나?”
“나쁜 놈이 되기 싫어서요.”
백기원 팀장이 움찔하자, 이규한이 다시 물었다.
가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은 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웹툰 작 품을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가 흥행 에 성공하면 이억이란 판권료가 전 혀 아까운 게 아니라는 사실. 백 팀 장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크흠.”
헛기침을 한 백기원 팀장이 입을 뗐다.
“정정하지. 터무니없는 액수는 아 니야. 그렇지만… 너무 비싼 건 사 실이야.”
“그럼 백기원 팀장님이 판단하는 적정가는 얼마입니까?”
“일억을 내지. 판권을 내게 팔게.” 잠시 고민하던 백기원 팀장이 판권 료로 일억을 제시한 순간,이규한이 떠올린 것은 단풍나무 출판사의 흥 달수 대표였다.
이규한과 백기원 팀장이 ‘은밀하면 서도 위대하게’의 판권을 두고 벌이 는 협상 과정을 그가 곁에서 지켜보 았다면?
아마 두 눈이 휘둥그레졌을 터였 다.
이천만 원에 구입했던 작품의 판권 가격을 앉은 자리에서 다섯 배 많은 일억으로 끌어올렸으니까.
‘장사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희미한 웃음을 지은 채 이규한이 대답했다.
“판권 안 팔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십시오.”
이규한이 백기원 팀장을 배웅했다.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그가 매섭게 노려보았지만,이규한은 모른 척 문 을 닫았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온 순간,황진호가 걱정스레 바라보며 물었다.
“이 대표,왜 그랬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 서요.”
“무슨 기회?”
“빅박스 투자팀장에게 갑질할 수 있는 기회요.”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했지만,황진 호는 마주 웃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표정이 굳어졌다.
“괜찮을까?”
그런 그가 던진 질문을 들은 순간, 이규한이 아까 회의실에서 백기원 팀장이 꺼냈던 말을 떠올렸다.
“후회할 걸세.”
당시 그의 언성은 꽤 높았다.
사무실에 앉아 있던 황진호도 백기 원 팀장이 협박조로 내뱉었던 말을 들었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리라. “빅박스와 손잡지 않고도 지금까지 잘 굴러왔습니다. 그러니 신경 쓸 것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황진호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통쾌하기는 했어.”
그때,김미주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장사 잘하시네요.”
“그래 보였어?”
“봉이 김선달이 울고 갈 정도였어
김미주가 감탄한 표정으로 엄지를 추켜세웠다. 그러나 이규한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손해 봤어.”
“네?”
“장사를 잘한 게 아니라 손해를 봤 다고.”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