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작품을 고르는 안목 (1)
농담을 던진 이규한이 다음으로 김 미주를 바라보았다.
“미주 씨는 어때?”
“폭삭 망한다에서 덜 망한다로 바 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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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색이 잘된 덕분에 손실 폭을 줄 일 수 있긴 하겠지만,블루문 엔터
테인먼트에서 제작한 작품 중 처음 으로 손익 분기점을 못 넘길 작품이 될 거란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이규한이 고소를 머금었다.
안유천과 김단비 작가가 각색을 잘 했음에도 불구하고,‘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가 손익 분기점을 넘 기기 힘들 거라는 것을 김미주는 정 확히 예측했으니까.
“또,없어?”
이규한이 물은 순간,김미주가 고 개를 절레절레 혼들며 대답했다.
“관심 없어요.”
“왜 관심이 없다는 거야?” “인센티브가 안 나올 테니까요.”
‘역시 냉정해.’
-작품이 손익 분기점을 넘기면 제 작사 수익의 일정 비율을 인센티브 로 지급한다.
김미주의 계약 조건이었다.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라 는 작품은 손익 분기점을 넘길 가능 성이 낮다. 그러니 어차피 인센티브 를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니 더 관심 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미 마음이 떠나 버린 김미주에게 더 묻는 게 소용이 없다고 판단한 이규한이 마지막으로 백진엽에게 고
개를 돌렸다.
“생각해 봤어?”
“제목이요?”
“그래.”
“제목을 바꾼다고 해서 손익 분기 점을 넘길 수 있을까요?”
백진엽도 회의적인 반응을 드러냈 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고개를 흔들었 다.
“그건 내가 판단해. 그러니까 대답 이나 해 봐.”
이규한이 재촉하자,백진엽이 마지 못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아저씨.”
“야,그건 이미 있는 제목이잖아.”
‘아저씨’라는 제목의 작품은 이미 존재했다. 게다가 흥행에도 크게 성 공했던 작품인 터라 ‘아저씨’란 제 목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규한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을 때, 백진엽이 덧붙였다.
“나를 사랑한 아저씨.” 최호인이 쓴 ‘우리의 복수는 범죄 가 아니다’라는 작품.
정체성이 무척 모호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제목을 바꿀 엄두 조차 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안유천과 김단비 작가가 각색을 거치면서 ‘우리의 복수는 범 죄가 아니다’는 정체성을 찾는 데 성공했다.
어설픈 스릴러에서 휴먼 드라마로.
장르가 바뀌고 나서 이규한은 제목 에 대해서 고민했다.
작품의 제목이 흥행에 영향을 미치 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임을 알 아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규한 은 백진엽에게 시나리오 각색고를 보고 난 후에 새로운 제목에 대해서
고민해 보라고 지시했었다.
백진엽이 제목을 짓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을 ‘사관,왕을 만든 남 자’를 제작하면서 알아챘기 때문이 었다.
‘나를 사랑한 아저씨라.’
이규한이 백진엽이 제안한 제목을 속으로 되뇌었다.
‘괜찮지 않다. 아니,좋다.’
일단 귀에 착 감기는 느낌이 있었 다.
또,뒷골목 인생을 살아가던 소녀 가장이 범죄에 연루된 순간,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하고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서는 한 남자의 지고지 순한 사랑에 대해 다루는 작품의 내 용과도 딱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감정해 보자.”
적당한 때가 됐다고 판단한 이규한 이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 의 시나리오 책과 펜을 동시에 꺼냈 다.
-‘나를 사랑한 아저씨’
-주연: 남지유.
우선 제목을 바꾸고 난 후,여주인 공에 남지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잠시 후,시나리오 책을 들어 올린 이규한의 눈앞에 새로운 숫자가 떠 올랐다.
-1,454,427.
‘일단 백만은 돌파했다.’
새로운 감정 결과를 확인한 이규한 이 환하게 웃었다.
7,70,156에서 1,454,427로.
지난 감정 결과에 비해서 약 두 배가량 예상 관객수가 늘어나 있었 다.
“참,어렵네.” 잠시 후,이규한이 혀를 내둘렀다..
“백만 관객을 돌파하는 것이 이렇 게 어려울 줄이야.”
‘나를 사랑한 아저씨’라는 작품을 억지로 떠맡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규한이 새삼 깨달은 것은 영화의 밑그림이 되는 시나리오의 중요성이 었다.
좋은 시나리오는 그 자체만으로도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힘이 있었 다.
실제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수 상한 여자’와 ‘변호사’의 경우,시나 리오 단계에서도 수백만 명의 관객 을 동원할 수 있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던 게,영화의 뼈대가 되는 시 나리오가 무척 중요하다는 증거였 다.
“이제 와서 하소연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어.”
이규한이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 어 냈다.
“일단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관객 을 동원하는 데 집중한다.”
재차 각오를 다진 이규한이 다음으 로 고민한 것은 남지유와 투톱 주연 을 맡을 남자 주인공 캐스팅이었다.
‘누가 좋을까?’
이규한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휴대 전화에 문자가 도착했다.
-하정후 잡았다. ‘해적의 시대’가 아니라 우리 작품에 출연하기로 확 정했어. 이 대표, 고생했다. 그리고 고맙다.
김태훈이 보낸 문자를 확인한 이규 한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잘됐네.”
이규한의 예상대로였다.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에 전혜 수를 여자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것 이 하정후가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 심한 결정적인 계기였을 터였다.
“자꾸 잊으시는가 본데 저도 ‘암살 자,보이지 않는 총구’의 공동 제작 자입니다.”
잠시 후 이규한이 혼잣말을 꺼낸 후 씩 웃었다.
하정후가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 구’에 출연을 확정한 것.
이규한의 입장에서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확인해 보자.”
공동 제작자로서 작품의 진행 상황 에 대해서 점검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었다. 그래서 ‘암살자, 보이지 않 는 총구’의 시나리오 책을 꺼낸 이 규한이 펜을 들었다.
-주연: 하정후.
남자 주인공 배역에 하정후의 이름 을 기입한 후,이규한이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었다.
잠시 후,새로운 숫자가 나타났다.
-8,846,954.
3,831,497에서 8,846,954로.
예상 관객수가 무려 오백만 명 가 까이 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난 후,이규한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래서 하정후,하정후 하는구나.”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와 NEXT 엔 터테인먼트만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제작사와 투자사들이 하 정후 캐스팅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드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복수는 성공할 것 같군.”
하정후는 대체 불가 배우라는 사실 이 감정을 통해 입증된 상황.
그런 하정후가 ‘해적의 시대’가 아 니라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에 출연을 확정했다는 것은 흥행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 낼 터였다.
“비상이 걸렸겠군.”
하정후 캐스팅에 실패한 씨제스 엔 터테인먼트는 지금쯤 비상이 걸렸을 터였다.
잔뜩 표정이 구겨져 있을 김대환 대표를 떠올린 이규한이 환하게 웃 었다, 그러나 이규한의 입가에 머물 러 있던 미소는 잠시 후 흔적도 없 이 지워졌다.
‘너무 약해.’
퍼뜩 ‘나를 사랑한 아저씨’의 여주 인공으로 책정된 남지유의 급이 너 무 낮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 가수 남지유는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배우 남지유는 아 직 걸음마 단계일 뿐이었다.
배우로서 전혀 검증되지 않은 남지 유가 ‘나를 사랑한 아저씨’의 여주 인공으로 결정된 상황인 만큼,티켓 파워를 갖춘 남자 배우를 캐스팅하 는 것은 더 어려워진 셈이었다.
‘개런티도 많이 못 주는 데다가 여 자 주인공은 남지유로 확정된 상황. 과연어떤 배우가 캐스팅에 응할 까?’
점점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고민이 더욱 깊어진 이규한
이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머리 좀 식히자.”
머리에 쥐가 날 때까지 계속 고민 한다 해도,쉽게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 능 프로그램을 보며 머리를 식힐 요 량으로 TV를 켜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이규한이 잠시 후 채널을 고 정했다.
“이성균이네.”
이규한이 멈춘 채널에서는 ‘아내의 바람을 막아라’라는 자극적인 제목 의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리 고 이규한이 채널을 멈춘 이유는 이 성균을 브라운관을 통해서 보는 것
이 낯설면서도 반가워서였다.
주로 영화에 출연했던 이성균은 열 정적인 배우였다.
비록 한 작품에서 배우와 제작자 관계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이규한 은 이성균이라는 배우를 좋아했다.
연기도 잘하는 데다가,주변에서 인품도 좋다는 평가를 하는 것을 워 낙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영화배우 이성균에게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존재했다.
바로 그가 출연한 영화는 흥행이 저조하다는 것이었다.
터 가장 최근 출연작이었던 ‘임금님 은 명탐정’까지.
한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이성균이 출연한 작품들은 손익 분기점을 넘 기지 못했다.
특히 ‘임금님은 명탐정’이라는 작 품의 흥행 부진이 치명적이었다.
최종 관객수 56만 명.
‘임금님은 명탐정’이 사극 작품이 었기 때문에 손익 분기점이 220만 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엄청난 손해를 본 셈이었다.
물론 작품의 홍행 성적은 부진했지 만,이성균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기존 사극에서 보여지던 왕의 이미 지를 탈피해 새로운 왕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 았으니까.
그렇지만 결국 배우에게 가장 중요 한 것은 흥행 성적이었다.
작품의 흥행이 부진했던 것에 대해 배우 역시 책임을 져야 했다.
“아마 더 이상 영화 출연 제안이 안 들어왔을 거야.”
이성균은 티켓 파워가 약하다. 그 래서 그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작품 은 대부분 흥행에 실패한다.
이런 평가가 내려진 상황이니,더 이상 그를 작품의 주연으로 캐스팅 하려는 제작자나 투자자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이성균이 영화가 아닌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것이 었고.
물론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가 드라 마에 출연하는 배우보다 급이 낮다 는 뜻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톱배우 들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보다 영 화에 출연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 은 사실이었다.
촬영 여건이나 스케줄 등에서 영화 가 드라마보다 배우들에게 유리한 면이 존재했고,연기를 할 때 운신 의 폭도 영화가 더 넓기 때문이었 “그래서… 더 슬퍼 보이는 건가?”
브라운관에서 이성균이 펼치고 있 는 슬픔에 잠겨 있는 연기를 바라보 던 이규한이 혼잣말을 꺼냈다.
“이성균이 다시 영화계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어려울 거란 생각을 막 떠올렸던 이규한이 고개를 흔들며 스스로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꺼 냈다.
“곧,영화계로 돌아올 수 있겠군.” 상암동 근처 커피 전문점.
이규한이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을 때,드라마 촬영을 마친 이성 균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규한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성균입 니다.”
악수와 함께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이규한이 이성균의 얼굴을 살피 며 입을 뗐다.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드라마 촬영 스케줄이 빡빡하네 요. 후반부 촬영은 거의 생방송 수 준으로 진행이 되는 터라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이성균이 손으로 푸석한 본인의 얼 굴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생이 라는 표현을 쓰기도 부끄럽습니다. 저보다 몇 배 더 고생하는 스태프들 도 있으니까요.”
‘소문대로네.’
이규한이 속으로 감탄했다.
빡빡한 촬영 스케줄로 인해 이성균 도 많이 피곤할 터였다. 그러나 그 는 촬영 스태프들을 먼저 챙기고 있 실제로 그가 얼마 전 드라마 촬영 스태프들에게 고가의 의류를 선물한 것은 기사로도 나와서 화제가 됐었 다.
이것이 이성균의 인성이 좋다는 증 거.
새삼스런 시선을 던지던 이규한이 질문했다.
“다시 영화 하고 싶으시죠?”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