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화
오디션 심사 위원 (2) 이규한이 추궁하자,전혜수가 작성 한 심사표를 보여 주었다.
-불합격.
오디션 지원자 남지유의 이름 옆에 적혀 있는 불합격이란 세 글자를 이 규한이 확인했을 때였다.
“내 실수였어요.”
전혜수가 자책했다.
“왜 혜수 씨의 실수였다는 겁니 까?”
“미옥 배역에 지유는 어울리지 않 으니까요. 지유에게 다른 배역의 오 디션을 추천하는 게 더 나을 뻔 했 어요.”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남지유가 무대 위에서 펼치는 오디 션 연기가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면 서도 이규한은 아쉬움을 느꼈다.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남지유가 펼친 연기는 악역인 미옥 배역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이규한은 김태훈이 매긴 심사 결과가 궁금해졌다.
“선배도 불합격을 줬나요?”
그래서 이규한이 묻자,김태훈은 고개를 흔들었다.
“난 합격을 줬어.”
“이유는요?”
“나와 혜수 씨는 입장이 다르니 까.”
“입장이 다르다?”
“혜수 씨는 배우지만,난 투자자니 까.”
김태훈의 말대로였다.
모두 오디션 심사 위원으로 참여했 지만,각자 포지션은 달랐다.
전혜수는 배우,김태훈은 투자사 직원,이규한은 제작자였으니까.
그리고 각자의 포지션이 다르기 때 문에 심사 위원으로 평가를 하면서 바라보는 시각도 다를 수밖에 없었 다.
“내 입장에서는 남지유의 스타성을 절대 무시할 수 없거든.”
연기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악역인 미옥 배역에 남지유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투자사 직원 입장에서 남지유의 스타성과 두터운 팬층을 놓치고 싶지 않다.
이것이 김태훈이 남지유에게 합격 을 준 이유였다.
“이 대표는 어떤 평가를 내렸어?”
그때,김태훈이 물었다.
전혜수도 남지유의 연기를 본 이규 한의 평가가 궁금한 듯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불합격 입니다.”
이규한이 평가 결과를 알려 준 후,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렇지만 배우 남지유가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네요.” 오디션 무대 뒤편 대기실.
전혜수를 만나고 가기 위해서 남지 유는 오디션이 끝났음에도 매니저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지유야.”
전혜수가 대기실로 들어서자,남지 유가 일어섰다.
“언니.”
전혜수에게 반갑게 인사하던 남지 유가 이규한을 발견하고 고개를 꾸 벅 숙였다.
“안녕하세요,이 대표님.”
“오래간만이네요.”
이규한이 인사를 한 순간,전혜수 가 제안했다.
“술 한잔하러 가자.”
“술이요?”
“그래.”
“갑자기 왜 술을 마시자고 제안하 시는 건데요? 혹시……
“혹시,뭐야?”
“위로주인가요?”
“우리 지유,역시 눈치가 빨라.”
전혜수가 웃으며 대답하자,남지유 가 아쉬운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한 표도 못 얻었나요?”
그녀가 말하는 한 표.
심사 위원들의 평가를 말하는 것이 었다.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에서 미 옥 배역을 맡을 배우를 선발하는 이 번 오디션은 1차와 2차로 나누어 진행했다.
1차 심사에서 세 명의 심사 위원 가운데 두 명 이상의 심사 위원에게 서 합격을 받은 오디션 응시자들은 2차 심사에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오늘 열린 오디션은 1차 심사.
남지유는 세 명의 심사 위원들 중 에서 한 명에게서도 합격 평가를 얻 지 못했느냐고 질문한 것이었다.
“한 표는 얻었어.”
전혜수가 웃으며 대답한 순간,남 지유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다행이다.”
최악의 결과는 면했다고 판단한 걸 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남지유가 전 혜수에게 물었다.
“한 표의 주인공, 언니인가요?”
“아닌데.”
“언니가 아니라고요?”
“너무해요.”
서운한 표정을 짓던 남지유가 이규 한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 대표님이 제게 한 표를 주신 건가요?”
이규한이 남지유의 기대에 찬 시선 을 슬그머니 피하며 대답했다.
“저도 아닙니다.”
“이 대표님도 아니라고요?”
“네.”
“헐,믿는 도끼에 두 번이나 발등 을 찍힌 셈이네요.” 분한 표정을 짓던 남지유가 덧붙였 다.
“진짜 위로주 마셔야겠네요.” “한 잔 주세요.”
남지유가 술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규한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남지 유의 눈빛은 강렬했다.
또,반항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말 안 듣는 막냇동생 같은 이미지 네.’
남지유가 내민 잔에 술을 따라 주 면서 이규한이 속으로 한 생각이었 다.
수수하면서도 반항적인 이미지,그 리고 빼어난 가창력이 가수 남지유 가 대중들의 인기를 얻은 이유였다.
그리고 이규한도 그런 남지유의 매 력에 흥미를 느꼈었고.
“너,얼굴이 왜 이렇게 많이 상했 어? 스케줄이 많아?”
그때,전혜수가 남지유에게 물었다.
“이게 다 언니 때문이죠.”
남지유가 입술을 삐죽이며 대답했 다.
“왜 나 때문이라는 거야?”
“언니가 이번 오디션에 참가해 보 라고 부추겼잖아요.”
" <……?"
“미옥 배역 연기를 연습하는 게 많 이 힘들었거든요.”
남지유가 하소연을 하자, 이규한이 끼어들었다.
“지유 씨에게 어울리지 않는 배역 이기 때문일 겁니다.”
“저와 어울리는 배역이 아니기 때 문이라고요?”
“네,지유 씨와 악역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규한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 한 순간,남지유가 속상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그럼 괜한 헛수고를 한 셈이었네 요.”
그러나 이규한은 고개를 흔들었다.
“헛수고는 아니었습니다. 이번 오 디션을 통해서 지유 씨의 연기를 눈 여겨본 제작자가 있으니까요.”
“그 제작자가 누구인가요?”
“접니다.”
이규한이 대답했지만, 남지유는 못 미더운 시선을 던졌다.
“그랬죠.”
“그런데… 왜?”
“제가 지유 씨의 연기에 불합격을 준 데는 사심이 조금 깃들었습니 다.”
“사심… 이요?”
남지유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전혜수 역시 호기심을 드러 냈다.
“어떤 사심이 깃들었단 건가요?”
“욕심이 생겼거든요.”
“어떤 욕심이요?”
이규한이 대답했다.
“배우 남지유를 캐스팅하고 싶은 욕심이요.”
‘합격을 줘도 무방하지 않을까?’
남지유가 오디션 무대에서 펼친 연 기를 보고 난 후,이규한이 처음 품 었던 생각이었다.
배우 남지유의 가능성을 엿봤고,2 차 오디션에서 그녀가 어떤 연기를 펼칠지 기대가 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규한은 도중에 생각을 바 꿔서 남지유에게 불합격을 줬다. 그 리고 이규한이 마음을 바꾼 데는 당 시 전혜수와 김태훈이 했던 이야기 가 큰 영향을 미쳤다.
“내 실수였어요. 미옥 배역에 지유 는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지유에게 다른 배역의 오디션을 추천하는 게 더 나을 뻔했어요.”
전혜수가 했던 자책이었다.
“난 합격을 줬어. 나와 혜수 씨는 입장이 다르니까. 혜수 씨는 배우지 만,난 투자자거든. 그리고 내 입장 에서는 남지유의 스타성을 절대 무 시할 수 없어.”
그리고 김태훈이 남지유에게 합격 을 주며 밝혔던 이유였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종합한다 면?’
남지유가 몸에 맞는 것처럼 어울리 는 배역을 맡는다면,좋은 연기를 펼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리고 그 녀가 출연한다면,두터운 팬층의 지 지를 받을 수 있고 화제성도 충분하 다는 뜻이었다.
‘만약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 다’에 남지유를 캐스팅한다면?’
당시 이규한이 퍼뜩 떠올렸던 생각 이었다.
작품의 여주인공인 한나 배역과 남 지유의 이미지.
싱크로율이 무척 높다는 판단이 들 었다.
또한 가성비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 를 매길 수 있었다.
일단 개런티가 높지 않은 데다가, 가수 남지유의 첫 영화 주연작이라 는 사실만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만큼,굳이 흥보비를 쓰지 않더라도 저절로 흥보가 될 터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작품이었다면?’
이규한은 아직 연기가 검증되지 않 은 남지유를 여주인공으로 섭외하려 는 모험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 니다’는 손익 분기점을 넘기기 위해 서 제작비를 최대한 줄여야 하는 작 그래서 이규한은 일종의 모험을 감 행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정식으로 책을 드리겠습니다.”
이규한이 백팩에서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의 시나리오 책을 꺼 내서 남지유에게 내밀었다.
“이걸 왜 제게 주시는 건가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남지유라는 배 우에게 욕심이 생겼으니까요.”
남지유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회사명이 적혀 있는 시나리오 책을 바라보고 있을 때,이규한이 설명을 더했다.
“이 작품의 제작자인 저는 여주인 공 배역이 지유 씨와 무척 어울린다 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지유 씨에 게 캐스팅을 제안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게 작품 출연 제안을 하시는 거죠?”
“맞습니다.”
이규한이 재차 대답해 준 순간, 남 지유가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럼 전 이제 어쩌면 되죠? 하고 싶다고 말하면 되나요? 아니면 출연 계약서부터 써야 하나요?”
‘귀엽네.’
반응을 살피던 이규한이 희미한 미 소를 머금었을 때였다.
“일단 작품을 읽어 보는 게 우선이 야.”
전혜수가 끼어들어 남지유에게 충 고했다.
그 충고를 들은 남지유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데요.”
“뭐가 이상해?”
“언니도 안 읽어 보시고 출연 약속 을 하셨잖아요?”
이규한이 ‘암살자, 보이지 않는 총 구’의 섭외를 하기 위해서 전혜수를
찾아갔을 때,남지유도 그곳에 있었 다.
당시 전혜수는 ‘암살자,보이지 않 는 총구’라는 작품을 읽지 않고 구 두로 작품에 출연하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그 사실을 남지유가 지적하자,전 혜수가 살짝 당황했다.
“난 이규한 대표님을 믿었기 때문 에 그랬지.”
“그럼 저도 출연해도 괜찮은 것 아 닌가요?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 니다’라는 작품,이규한 대표님이 제작하시는 영화이니까요.”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규 한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 다.
“우선 절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계약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지유 씨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네,알겠습니다.”
시원하게 대답한 남지유가 맥주가 든 잔을 들며 덧붙였다.
“그럼 이제 위로주에서 축하주로 바뀌어야겠네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사무실.
오늘 회의의 안건은 ‘우리의 복수 는 범죄가 아니다’였다.
안유천과 김단비 작가가 각색을 마 친 시나리오 책을 읽고 모인 직원들 을 둘러보던 이규한이 평가를 물었 다.
“형,어떤 것 같아요?”
그 질문을 받은 황진호가 바로 대 답했다.
“욕심난다.”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다시 물 었다.
“각색을 거치면서 바뀐 작품이 욕 심이 난다는 뜻이죠?”
“아니,내가 욕심이 난다고 한 건 작가들이야. 형편없던 작품을 이 정 도 수준으로 끌어올린 게 안유천과 김단비,두 작가의 능력이 뛰어나다 는 증거니까. 어느 정도냐면 전속 계약을 맺고 싶은 심정이야.”
이규한이 서둘러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안 됩니다.”
“왜 안 된다는 거야?”
의아한 시선을 던지는 황진호에게 이규한이 대답했다.
“식비를 감당 못 할 것 같거든요.”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