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청첩장 김태훈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간단합니다. 전혜수를 만나서 ‘암 살자,보이지 않는 총구’라는 작품 으로 복귀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게 다야?”
물론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규한은 진심을 다해서 설득했고, 그 설득이 전혜수의 마음을 움직이 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복귀 약속을 받아 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자세하게 밝힐 생각은 없 었다.
‘일종의 영업 비밀이니까.’
그래서 이규한이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 다.”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야?”
“전혜수가 이번 작품에 출연하는 데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어떤 조건인데?”
“제가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 에 제작자로 참여하는 겁니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이규한이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 구’에 제작자로 참여하는 게 전지현 의 출연 조건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마자,김태훈은 금세 상황의 심각성 을 알아챘다.
“김평주 대표 성격이 무척 다혈질 이라 분명히 난리 칠 텐데.”
“설득이 불가능할까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김태훈이 난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건 클라이언트 컴퍼니의 김평주
‘만약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다 면?’
이규한 역시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치밀었을 테니까.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전혜수 를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못 하지. 하정후의 캐스팅도 달려 있으니까.”
김태훈에게서 바로 대답이 돌아온 순간,이규한이 말했다.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입니다. 제 가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에 공 동 제작자로 참여하는 겁니다.”
“그렇지. 그런데……
“관건은 김평주 대표를 설득할 수 있느냐는 거죠.”
“맞아.”
“일 대 구 정도면 가능하지 않겠습 니까?”
이규한이 말하자,김태훈이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수익 배분 비율을 말하는 거야?”
“맞습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일이다?”
“네.” 이규한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자,
잠시 후,그의 두 눈에 미안한 감 정이 깃들었다.
“너무 적잖아?”
김태훈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으로 참여했을 때,일 대 구라는 수익 배분 비율이 너무 적다 고 표현한 이유.
전혜수를 캐스팅하는 것이 ‘암살 자, 보이지 않는 총구’의 흥행에 무 척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태훈 이 알고 있는 사실을 이규한이 모를 리 없었다.
-3,831,497.
전혜수에게서 ‘암살자,보이지 않 는 총구’에 출연하겠다는 구두 약속 을 받아 낸 후,이규한은 감정을 거 쳤다.
2,795,678에서 3,831,497로.
전혜수의 이름을 적어 놓고 나서 감정을 한 결과,예상 관객수는 100 만 명 이상 늘어나 있었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전혜수가 오랜 공백을 깨고 ‘암살 자,보이지 않는 총구’에 출연하기 로 결정한 만큼,하정후도 ‘암살자,
보이지 않는 총구’에 출연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하정후만이 아니었 다.
전혜수와 하정후가 출연을 확정한 다면,다른 주연급 배우들 및 조연 배우들의 급도 동반 상승할 확률이 높았다.
‘최소 삼백만 명.’
이규한이 내심 판단하는 전혜수의 가치였다.
이 정도로 작품의 흥행에 큰 영향 을 끼치는 캐스팅을 성사했는데, 수 익 배분이 일 대 구라는 것.
너무 적은 것이 사실이었다.
“상관없습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개의치 않았다.
“왜 상관없다는 거야?”
“제 목표는 이번 작품에 참여해서 수익을 많이 올리는 게 아니었으니 까요. 다른 목표가 있었습니다.”
이규한이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 구’라는 작품에 전혜수를 캐스팅하 기 위해서 직접 나섰던 이유.
어디까지나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 었던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김대환 대표에게 복수하려는 일환이었다.
“정말… 괜찮겠어?”
김태훈이 마지막으로 확인하듯 물 었고,이규한이 대답했다.
“네,진짜 상관없습니다.” 커피 전문점 블루문.
창가 쪽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이규한이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 셨을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탁자 위에 올려 두었던 휴대 전화 가 진동했다.
NEXT 엔터테인먼트의 투자팀장인 김태훈에게서 걸려 온 전화임을 확
인한 이규한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선배님.”
“김평주 대표 만났다.”
“어떻게 됐습니까?”
“이 대 팔로 하기로 했다.”
원래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암살 자,보이지 않는 총구’의 공동 제작 사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이규한이 제시했던 수익 배분 비율은 일 대 구.
그런데 김태훈은 협상 과정에서 수 익 배분 비율이 이 대 팔로 바뀌었 다고 말했다.
“왜 수익 배분 비율이 바뀌었습니
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맞는 것 같 아서.”
“ 9”
“그래서 내가 고집을 피웠다.”
“하지만……
“이게 맞아. 김평주 대표가 알아듣 도록 이야기하고 잘 마무리했으니 까,이 대표는 더 신경 쓸 것 없 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규한이 김태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뀐 것.
숫자상으로는 일이었지만,실제 정 산이 끝나고 난 후 들어올 수익금에 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최소 수천만 원에서 최대 수억 원 의 차이가 발생할 터.
이것이 이규한이 협상을 통해서 수 익 배분 비율을 바꿔 준 김태훈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이유였다.
“오히려 내가 고맙지. 이 대표 아 니었으면 전혜수 캐스팅은 꿈도 못 꿨을 테니까.”
“그럼 나중에 소주 한잔 사 주시
죠 “그래,내가 거하게 한잔 살게. 다 시 연락하자고.”
“알겠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 다.”
김태훈과의 통화를 마친 후 이규한 이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왔다!’
잠시 후,이규한의 눈에 낯익은 얼 굴이 보였다.
“너무 오랜만에 연락했지?”
이규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송하윤 을 맞이하며 인사했다.
“응,너무 오래간만이라 목소리 잊 어버릴 뻔했어.”
송하윤이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 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이규한이 안 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보다 송하운의 표정이 밝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미안한 마음을 조금 덜어 낸 이규한이 자리를 권했다.
“앉아,차는 뭘로 마실래?”
“아메리카노로 할게.”
“잠시만 기다려.”
이규한이 카운터로 다가가 주문했 다.
“아메리카노,한 잔.:
신용 카드를 건네받아 결제하던 이 규리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졌다.
“누구야?”
“대학 동창.”
“대학 동창? 너무 미인이라 난 신 인 여배우인 줄 알았네. 그런데 두 사람,어떤 사이야?”
이규리가 던진 질문을 받은 이규한 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우리는 어떤 사이일까?’
이 질문에 대한 마땅한 답을 찾기 어려워서였다.
‘뜨겁게 사랑했고,죽이고 싶을 정 도로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했던 사 이. 그리고 이제는 흘러가 버린 인 연의 편린.’
이규한이 어렵사리 답을 찾아냈다. 그렇지만 이규리에게 그 답을 알려 주지 않고 커피만 받아서 자리로 돌 아왔다.
“자,마셔.”
“고마워.”
송하윤이 머그잔을 들어 입으로 가 져갔다.
‘무슨 말부터 꺼낼까?’
이규한이 고민하는 사이, 송아현이 먼저 입을 뗐다.
“영화 잘 봤어.” “어떤 영화?”
“‘변호사’란 영화 재밌더라. 감동적 이기도 했고.”
“고마워.”
‘변호사’를 재밌게 봐 준 것도 고 마웠지만,먼저 말문을 열어서 침묵 을 깨 준 송하윤이 고마웠다.
그때, 송하윤이 다시 입을 뗐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무슨 생각을 했는데?”
“네가 참 부럽다고 생각했어.”
“왜 부러웠어?” “세상과 부딪치면서 결국 꿈을 이 뤘으니까. 난 무서워서 일찌감치 도 망쳤는데,넌 끝까지 도망치지 않았 잖아.”
“운이 좋았어.”
이규한이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 을 때,송하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연극영화과 출신이야. 운만 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잘 알 아.” “그래서 더 속상했어.”
“왜 속상했어?”
“너와 나 사이가 더 멀어진 것처럼
느껴졌거든.”
“무슨… 뜻이야?”
조심스럽게 질문하자,송아현이 대 답했다.
“이규한은 진짜 영화인이다. 분명 히 평생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할 사 람이다. 이런 확신이 들었거든.”
그 대답을 들은 순간,갈증이 치밀 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아이스커피 를 들어 한 모금 마셨을 때,송아현 이 다시 입을 뗐다.
“시간이 약이다.”
“
데,기억나?”
“응,기억나.”
“시간이 약이 된 것 같아?”
“응,도움이 됐어. 그래서 하고 싶 은 말이 있는데……
이규한이 송아현에게 연락한 본론 을 꺼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송아현이 한발 더 빨랐 다.
“시간이 약이란 이야기,내게도 도 움이 됐어. 그래서 줄 게 있어.”
“내게 줄 게 있다고?”
“만약 네가 먼저 연락 안 했으면, 내가 먼저 연락하려고 했어. 너한테 꼭 줄 게 있거든.”
‘나한테 주려는 게 대체 뭘까?’
송아현이 주려는 게 무엇인지 짐작 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규한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질 때였다.
송아현이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서 내밀었다.
“이게 뭐야?”
“청첩장이야.”
“방금 청첩장… 이라고 했어?”
“응,나 결혼해.”
송아현이 청첩장을 건넬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규한이 당혹 스러운 기색을 드러냈을 때였다.
“안 받을 거야?”
“응?”
“축하해 주러 와 줄 거지?”
“당연히… 그래야지.”
이규한이 자신의 앞으로 내밀어져 있는 청첩장을 받으며 물었다.
“너와 결혼할 사람,어떤 사람이 야?”
“평범한 직장인이야.”
“직장인?”
“증권 회사 다니고 있고,성실한 면에 반해서 결혼을 결심했어.”
“그랬구나.”
이규한이 봉투에서 청첩장을 꺼내 살폈다. 그렇지만 충격이 커서 청첩 장에 적혀 있는 내용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멍하니 청첩장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을 때, 송아현이 웃으며 물었다.
“놀랐어?”
“응? 좀… 아니,많이 놀랐어.”
이규한이 솔직하게 대답한 순간, 송아현이 덧붙였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규한 이라는 남자는 평생 영화를 만들 사 람이다. 지금은 이규한이 만든 영화 들이 성공했지만,계속 성공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실패를 할 테고, 그 때는 이규한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 이다. 만약 그때가 찾아왔을 때,내 가 이규한의 곁을 든든히 지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
이규한이 마른침을 삼켰다.
‘지키지 못했어.’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이규한 과 송아현은 뜨거운 사랑만 믿고 결 혼했다. 그 결혼의 종착점은 불행이 었다.
송아현은 영화에 미쳐 있는 이규한 을 이해하지 못했고,생활고를 버티 지 못하고 곁을 떠났었다.
‘그래서… 더 멀어진 것처럼 느껴
졌다고 생각했구나.’
이런 송아현을 탓할 생각은 없었 다.
오히려 불확실한 자신이 아니라 성 실한 금융맨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송아현을 응원하고 싶었다.
‘이게 맞아.’
어차피 정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 었던 걸지도 몰랐다.
만약 송아현이 먼저 말해 주지 않 았다면, 이규한이 우리는 인연이 아 니라고 말할 생각이었으니까.
“난 그냥 영화 제작자 이규한의 팬 으로 남을게.”
마음의 정리가 끝났기 때문일까. 송아현이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했 다.
덕분에 조금 홀가분해진 이규한이 화답했다.
“결혼,진심으로 축하한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