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판을 확 뒤집죠 (3)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이규한 대표 님이 제작하는 작품에 출연하려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상대가 가장 원하는 것을 잘 알고 공략하시네 요.”
‘복귀할 의사가 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이규한은 확신을 품었다. 그래서 표정이 밝아
진 순간,전혜수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두려워요.”
“뭐가 두려우신 겁니까?”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요.” 톱스타였던 전혜수의 결혼 소식.
세간의 화제를 한데 집중시켰다. 그런데 그녀는 결혼 생활을 오래 이 어 가지 못하고 이혼을 결정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 워하는 것이었다.
“아마 혜수 씨가 복귀한다면 사람 들이 수군거릴 겁니다. 간혹 색안경 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을 겁 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도 바로 그런 사 람들의……
“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 다.”
“왜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어차피 혜수 씨와 상관없는 사람 들이니까요.”
" ‘……?"
“그들은 혜수 씨의 인생을 대신 살 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요하지 도 않고,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말 씀드린 겁니다. 진짜 중요한 건 혜 수 씨의 행복이죠.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혼을 결심하셨던 것 아닙
니까?”
이규한의 현재 호적은 깨끗했다.
그렇지만 과거로 돌아오기 전,이 미 한차례 이혼을 경험했다.
당시 이혼을 했던 경험은 무척 아 팠다. 그리고 가장 힘든 순간에 자 신의 곁을 지키지 않고,먼저 이혼 을 요구했던 아내를 원망했었다.
그러나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은 생각이 바뀌었다.
더 이상 이혼을 요구했던 아내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어렵게 이혼을 선택하고 결심했을
테니까.
‘결국,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서 모든 선택을 내리는 법이다.’
이규한이 이혼을 경험하면서 깨달 은 결론이었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잠시 후,이규한이 다시 질문을 던 졌다.
전혜수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 다.
“행복하지 않네요.”
“누군가 제게 묻더군요. 영화 제작 자로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돈도 많이 벌지 않았느냐? 이제 영 화를 그만두고 벌어 둔 돈을 쓰면서 사는 게 더 편하고 안전하지 않겠느 냐고. 그때 저는 그럴 수 없다고 대 답했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왜죠?”
“영화를 만들 때 가장 행복하니까 요.”
전혜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때 이규한이 질문했다.
“혜수 씨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 제입니까?”
그 질문을 받은 전혜수가 눈을 감 았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그녀가 대답했
“배우로 작품에 참여할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예상했던 대답, 또 내심 기다렸던 대답이기도 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이규한이 제안 했다.
“저와 함께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시죠?”
전혜수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머뭇 거렸다.
여전히 세상의 삐딱한 시선이 마음 에 걸려서이리라.
로서 전혜수라는 좋은 배우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전혜수 라는 배우를 좋아하는 팬의 복귀 부 탁을 계속 외면하실 겁니까?”
이규한이 덧붙이고 나서야 전혜수 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어떤 작품인가요?”
‘됐다.’
그 순간 이규한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작품에 대해서 질문한 것.
전혜수가 확실히 복귀를 결심한 것 이라는 중거였기 때문이었다.
배급을 맡은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라는 작품입니다.”
“당연히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을 맡은 작품이겠죠?”
전혜수의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처 음으로 당황했다.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의 제작 사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아니었 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암살자, 보이지 않는 총구’라는 작품의 제작 사가 아니라고요?”
컴퍼니입니다.”
이규한이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 구’라는 작품의 제작사가 클라이언 트 컴퍼니라는 사실을 알려 준 순 간,전혜수가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그런데 이규한 대표님은 왜 절 만 나기 위해서 찾아오셨죠?”
“네?”
“아까 하신 말씀대로라면 이규한 대표님은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 구’라는 작품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저를 그 작품 에 캐스팅하기 위해서 여기 찾아왔 는지 물었던 겁니다.”
“그건……
잠시 망설이던 이규한이 대답을 꺼 냈다.
“한 명의 팬으로서 혜수 씨의 복귀 를 부탁드리기 위해 찾아온 겁니 다.”
그런 이규한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마뜩잖은 표정을 짓고 있던 전혜수 가 입을 뗐다.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라는 작품에 출연할 의사가 있어요. 그렇 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어떤 조건입니까?”
전혜수가 대답했다.
“이규한 대표님이 팬이 아닌 제작 자로서 이번 작품에 참여하는 겁니 다.”
‘이걸 좋아해야 해? 아니면 슬퍼해 야 해?’
두문불출하던 전혜수를 만나서 ‘암 살자,보이지 않는 총구’라는 작품 을 통해서 복귀하겠다는 약속을 받 아 낸 것.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기에 분명히 좋아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 다.
참여하는 것이 전혜수가 내건 복귀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복잡해졌어.’
잠시 후,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 다.
아까도 말했듯이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는 클라이언트 컴퍼니라 는 제작사가 준비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캐스팅 단계에서 블루문 엔 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으로 참여한 다면?
클라이언트 컴퍼니의 김평주 대표 가 환영할 리가 없었다.
당연히 이해관계가 얽힐 것이고,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았다.
‘좋게 생각하자.’
그렇지만 이규한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 냈다.
전혜수가 이런 조건을 내건 것.
영화 제작자 이규한에 대한 신뢰가 무척 깊다는 증거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고 판단하면서 이규한이 입을 뗐다.
“저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 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래서 즉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일단 돌아가서 상의를 한 후에 확답을 드리겠습니
마음이 급해진 이규한이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리려 했을 때였다.
“바쁘세요?”
“네?”
“오신 김에 목이라도 축이고 가세 요.”
전혜수가 제안했다.
‘어떡하지?’
이규한이 잠시 망설일 때,남지유 와 박보연이 끼어들었다 “같이 놀아요.”
“대표님,먼 길 오셨는데 맥주 한 잔 마시고 가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앉아 있 다 가겠습니다.”
이규한이 마음을 바꾸고 탁자 앞에 앉았다.
“술은 제가 따라 드릴게요.”
맥주병을 들고 앳된 얼굴의 여성이 다가왔다.
“아까 모르신다고 해서 제 소개를 드릴게요. 제아라고 해요.”
“네,이규한입니다.”
“우주 걸스는 아세요?”
“우주 걸스요?”
“헐,우주 걸스도 몰라요? 나름 인 기 있는 걸그룹인데.”
‘꽤 인기 많은 우주 걸스라는 걸그 룹의 멤버구나.’
그제야 이규한이 제아의 정체를 알 아냈다.
그렇지만 제아라는 이름도,우주 걸스라는 걸그룹 명도 낯선 것은 마 찬가지 였다.
평소 이규한이 TV 음악 프로그램 이나 예능 프로그램을 거의 보지 않 는 데다가,걸그룹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명한 영화 제작자세요? 혹시 내가 알 만한 작품도 제작하셨 어요?” “제아 씨가 알 만한 영화라면 ‘수 상한 여자’와 ‘변호사’ 정도가 있겠 네요.”
이규한이 대답하자,제아가 원래 큰 눈을 더욱 크게 떴다.
“두 작품 다 봤어요. 둘 다 완전 재밌게 봤었는데.”
호들갑을 떨던 제아가 새삼스런 시 선을 던졌다.
“갑자기 사람이 달라 보이는데요. 우리 친하게 지내요.”
“네?”
“왜요? 저와 친하게 지내기 싫으세 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럼 친하게 지내는 겁니다.”
“아,네.”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아와의 대화는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됐기 때문이었다.
그때, 남지유가 탁자 앞으로 다가 왔다.
“아까 제 팬이라고 하셨죠?”
“네? 네.”
“혹시 부탁하고 싶은 것 없으세 “부탁… 이요?”
“아까 혜수 언니한테는 팬으로서 작품에 복귀해 달라고 부탁하셨잖아 요. 저한테는 부탁하고 싶은 게 없 으신가 해서요.”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데요?”
“지유 씨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습 니다.”
남지유의 팬이라고 말했던 것.
빈말이 아니었다.
이규한은 독특한 음색과 풍부한 감 성을 가진 싱어송라이터인 남지유의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이었다.
‘언젠가 OST를 부탁해 봐야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부지불 식간에 남지유의 노래를 듣고 싶다 는 부탁을 꺼냈던 것이었다.
‘너무 무리한 부탁이 아닐까?’
여기는 공연장이나 녹음실이 아니 었다. 그래서 너무 무리한 부탁이란 생각이 들어서 이규한이 미안한 표 정을 지었을 때였다.
“기꺼이 부탁을 들어드리겠습니 다.”
남지유가 벌떡 일어서서 통기타를 꺼냈다.
“진짜 노래를 부를 거야?” 렇게 불러 달라고 부탁할 때는 한 번도 들어주지 않더니.”
전혜수와 박보연이 놀란 표정을 짓 고 있을 때,남지유가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특별한 팬의 부탁이니까요.”
잠시 후,통기타를 연주하며 남지 유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인연의 소 중함을 몰랐죠. 아주 중요한 인연들 을 모르고 그냥 홀려보내 버렸죠. 그래서 이번에는 더 놓치고……
남지유가 부르는 노래는 ‘인과 연’ 이라는 제목의 노래였다.
이규한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
그래서 이규한이 두 눈을 감은 채 남지유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 다.
잠시 후,이규한이 퍼뜩 떠올린 것 은 ‘비긴 어게인’이라는 영화였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던 음악 영화 인 ‘비긴 어게인’을 이규한도 무척 인상 깊게 봤었다. 그래서 음악 영 화를 한 편 제작해 보고 싶다는 욕 심을 가지고 있었고.
‘남지유를 주연으로 음악 영화를 제작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이규한이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지웠다.
‘좋다.’
음원으로 들을 때와 지금.
남지유가 직접 불러 주는 노래를 듣는 느낌은 또 달랐다.
그래서 쓸데없는 생각을 머릿속에 서 지워 버리고, 이규한은 노래를 감상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남 지유의 노래가 끝났을 때,이규한은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소중한 인연.’
인연은 소중했다.
상치 못한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갈 때가 있으니까.
짝짝짝.
이규한이 남지유의 노래를 감상하 고 난 후 떠올린 것은… 그동안 애 써 모른 척 외면하면서 묵혀 두었던 인연들이 었다.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회의 실.
“이 대표는 사람을 놀래키는 재주 가 있어.” 전혜수를 만나 ‘암살자,보이지 않 는 총구’에 출연하겠다는 구두 약속 을 받아 냈다고 이규한이 알려 주 자, 김태훈은 깜짝 놀랐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