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판을 확 뒤집죠 (2)
손예지는 꾸준히 작품에 출연하면 서 인지도를 쌓았다. 그러나 여러 작품에 출연하다 보니,대중들의 피 로감이 쌓인 것은 부인할 수 없었 다.
-또 손예지가 주연이냐?
-충무로에는 여배우가 손예지밖에 없냐?
-손예지 이제 지겹다.
손예지가 출연한 작품에 이런 댓글 들이 달리는 것이 대중들의 피로감 이 쌓였다는 증거였다.
반면 전혜수는 오랫동안 작품 출연 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연기 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만큼 그녀의 복귀작에 대한 관심 도 높아진 상황이었고.
“만약 전혜수를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에 캐스팅할 수 있다면, 하정후도 캐스팅할 수 있을 겁니 다.” 이규한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 자,김태훈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 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될까?”
“분명히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럼 시도해 봐야지.”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
전혜수 캐스팅에 강한 의지를 드러 냈던 김태훈의 표정이 이내 어두워 졌다.
“그런데… 전혜수가 과연 복귀할 까?” 전혜수의 복귀를 위한 첫걸음.
일단 그녀를 만나는 것이었다.
이혼 후 전혜수는 거의 집에서 두 문불출하고 있는 상황.
그녀를 만나야 설득을 하든가 말든 가 할 텐데,일단 만나는 것부터 어 려웠다.
그로 인해 고민하던 이규한은 박보 연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박보연과 전혜수가 가까운 사이였 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네요.”
“네,대표님.”
박보연의 집 근처 카페에서 그녀를 만나자마자 이규한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과속 삼대 스캔들’의 성공 덕분에 박보연은 다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언제 연락 주시나 손꼽아 기다리 고 있었어요.”
박보연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제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피디,아니 대표님이 제작하는 작 품에 다시 출연하고 싶었거든요.”
단 기떴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꼭 한번 이규한 대표님과 같이 작업을 해 보고 싶었거든요.”
박보연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 손예지도 이규한이 제작하 는 작품에 줄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었다.
즉,배우들이 함께 일해 보고 싶은 신뢰할 수 있는 제작자가 됐다는 증 거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한은 환하 게 웃지 못했다.
무척 오래간만에 박보연에게 연락
한 이유가 작품에 캐스팅하기 위함 이 아니어서였다.
“보연 씨에게 어울리는 작품이 있 으면 꼭 연락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다른 일 때문에 절 찾아오신 거군요.”
박보연은 눈치가 빨랐다.
“네,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이규한이 솔직하게 이야기를 꺼냈 다.
“무슨 부탁인데요?”
“전혜수 씨와 친분이 깊다고 들었 습니다.” ‘혜수 언니요?”
“네,전혜수 씨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연락을 취할 방법을 못 찾았 습니다. 그래서 보연 씨에게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을 드리려는 겁 니다.”
이규한이 본론을 꺼낸 순간,박보 연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곤란한가요?”
그 표정 변화를 살피던 이규한이 묻자, 박보연이 대답했다.
“네,곤란해요. 혜수 언니는 사람들 을 만나는 것을 기피하고 있거든 요.” ‘역시 어렵구나.’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의 표정이 어두워졌 을 때였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대표 님이라면 자리를 만들어 볼 수도 있 어요.”
박보연이 덧붙였다.
“왜 입니까?”
“대표님을 믿거든요.”
“ <……?"
“대표님이라면… 제가 다시 용기를 내서 세상에 나설 수 있도록,좋은 작품에 출현할 기회를 주셨던 것처 럼 혜수 언니도 도와줄 수 있을 거
란 믿음이 있어요.”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규한이 감사 인사를 할 때,박보 연이 일어섰다.
“가시죠.”
“지금… 이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이규한이 당황 한 순간,박보연이 생긋 웃으며 대 답했다.
“오늘이 아니면 한 달 뒤에나 혜수 언니를 만날 수 있거든요.”
라마티아 호텔 강남점 스위트룸. 복도를 걸으며 박보연이 설명했다.
“여기가 경국지색 정기 모임이 열 리는 곳이랍니다.”
“경국지색 정기 모임이요?” 경국지색 (傾國之色).
나라를 기울여 위태롭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모임 이름 참 거창하네.’
속으로 생각하던 이규한이 픽 하고 실소를 터트렸을 때,박보연이 쌍심 지를 켜고 노려보았다.
“지금 비웃으신 거죠?” 뒤늦게 박보연의 매서운 눈빛을 확 인한 이규한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 다.
“그런 것 아닙니다. 그냥……
“변명하지 않으셔도 돼요.”
“정말 비웃은 게 아니라……
“저도 안답니다. 제가 경국지색은 아니라는걸. 그렇지만 우리 모임에 참여하는 다른 언니와 동생들은 달 라요. 진짜 경국지색이란 말에 어울 리는 미모의 소유자들이거든요.”
“보연 씨와 혜수 씨 말고 또 누가 경국지색 모임의 멤버입니까?” “기대되세요?” “그냥 궁금해서 물은 겁니다.”
이규한도 신체 건장한 남자였다.
경국지색이란 단어가 어울릴 정도 로 대단한 미인들이 모인 곳에 참석 한다고 하니 살짝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또, 경국지색 모임의 멤버들이 누 군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렇지만 박보연은 이규한의 호기 심을 풀어 주지 않았다.
“곧 아시게 될 겁니다. 직접 확인 해 보세요.”
띠리릭.
박보연이 스마트 키를 갖다 대서
스위트룸 잠금장치를 풀었다.
잠시 후 이규한이 스위트룸 안으로 들어갔다.
“어……
이규한이 잠옷 차림의 여성들을 발 견하고 당황했다. 그리고 당황한 것 은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컨셉이 파자마 파티라는 것 을 제가 깜박했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상황 설명을 하고 올 테니까요.”
박보연 역시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 다.
경국지색 모임 참석자들 간에 대화 가 오갔다.
“보연 언니,누구예요? 설마 남 친?”
“아니거든.”
“다행이다,완전 미남이거든요.”
“왜 내 남친이 아니라는데,네가 다행이라는 거야?”
“듣고 보니 좀 이상하긴 하네요.”
“그렇지?”
“그런데 누구세요?”
“이규한 대표님.”
“이규한?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 데,혹시 배우예요?”
귀를 종긋 세운 채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이규한의 어깨에 살짝 힘 이 들어갔을 때였다.
“지유야,넌 가수라서 잘 모르겠지 만,유명한 영화 제작사 대표님이 야.”
‘지유라면… 남지유?’
박보연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남지 유라는 사실을 알아챈 이규한이 천 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남성 팬을 거느린 남지유는 경국지색이란 말에 어울리는 대단한 미모의 여가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였다.
“그런데 왜 이규한 대표님을 모시 고 온 거야?”
살짝 나른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혜수.’
그 목소리의 주인이 전혜수란 사실 을 이규한이 깨달았을 때였다.
“혜수 언니를 만나고 싶어 하셔서
요.”
“날 만나고 싶어 했다고? 왜?”
“그건 대표님께 직접들어 보세 요.”
자신이 직접 나설 때가 됐다고 판 단한 이규한이 빙글 몸을 돌렸다.
“까아악!”
잠시 후,남지유의 비명 소리가 홀 러나왔다.
“어 엇.”
이규한이 당혹성을 터트렸다.
스위트룸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 는 남지유는 상의를 벗고 있었다.
샤사삭.
그녀가 급히 양팔을 모아 가슴을 가린 순간,이규한이 본능적으로 두 눈을 감았다.
“변태!”
그때 남지유가 소리쳤다.
변태란 말을 들은 이규한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맹세코 어떤 의도를 갖고 돌아섰던 게 아니었다.
전혜수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몸 을 돌렸는데,하필 그때 남지유가 잠옷 상의를 벗었던 것뿐이었다.
어쨌든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인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이규한이 눈을 감는 것으로 모자라 빙글 몸을 돌렸을 때였다.
“언니는 왜 옷 안 갈아입어요?”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이유가 있 어?” “잠옷이잖아요.”
“그렇게 노출이 심한 잠옷도 아니 잖아?”
“그렇긴 하지만……
“지유,네가 더 수상한데.”
“제가 뭘요?”
“잘 보일 사람도 없는데 왜 옷을 갈아입으려는 거야? 너 혹시……?”
“혹시 뭐요?”
“아니다,옷을 입든 벗든 하나만 해. 내가 이규한 대표님과 할 얘기 가 있거든.”
‘날 알고 있어.’ 전혜수와 남지유가 나누는 대화를 듣던 이규한이 한 생각이었다.
잠시 후,남지유가 말했다.
“이제 됐어요.”
그 말을 듣고 이규한이 몸을 돌렸 다. 그리고 비로소 여유를 갖고 스 위트룸 안에 모여 있는 여성들을 살 폈다.
경국지색 모임의 멤버는 총 네 명.
전혜수와 박보연,남지유,그리고 한 사람이 더 있었지만,이규한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유심 히 바라보고 있을 때, 앳된 얼굴의 여성이 물었다.
“사인해 드려요?”
“네?”
“사인 받고 싶은데 차마 입이 안 떨어지는 것 아니세요? 너무 쑥스러 워 하실 필요 없으세요. 요새 삼촌 팬들도 많거든요.”
이규한이 표정을 굳혔다.
‘삼촌’이라는 표현이 심히 거슬렸 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정색한 채 대답했 다.
“사인 필요 없습니다.”
“왜요?”
“누군지 모르는데 사인을 받을 필
요가 없지 않습니까?”
“저를 모른다고요?”
“모릅니다.”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남지유가 끼어들었다.
“저는요? 저는 아세요?”
“네,남지유 씨… 맞죠?”
“절 알고 계시네요.”
“지유 씨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이규한이 솔직히 대답한 순간,남 지유의 표정이 밝아졌다. 반면 엣된 얼굴의 여성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봐? 내 인기가 더 많지?”
“인정하죠. 삼촌 팬은 언니가 더 많네요.”
‘삼촌이 아니라 오빠.’라는 말을 꺼 내려다가 이규한이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란 생각 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이규한이 전혜수에게로 고 개를 돌렸다.
“우선 연락도 드리지 않고 불쑥 찾 아온 무례를 사과드리겠습니다.”
이규한이 정중하게 사과한 후 덧붙 였다.
“혜수 씨를 꼭 만나고 싶어서 실례 를 범했습니다.”
“캐스팅 때문입니다.”
“캐스팅… 이요?”
이규한이 찾아온 용건을 들은 전혜 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뗐다.
“괜한 헛걸음을 하셨네요. 저는 영 화계로 복귀할 생각이 없습니다.”
전혜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 이었기에 이규한은 당황하지 않았 다.
또,한차례 거절당했다고 해서 순 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거짓말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알고 계시니까요.”
" ……?"
“이규한이라는 영화 제작자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이 혜수 씨가 영화계의 동향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증거죠. 그리고 영화계로 복귀하려는 의사가 있기 때문에 영화계의 동향을 살피 셨던 것이 아닙니까?”
정곡을 찔렸기 때문일까.
전혜수는 입을 열어 반박하지 않았 다.
대신 짤막한 한숨을 내쉬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재빨리 덧붙였다.
“혜수 씨가 복귀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전혜수가 처음으 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규한 대표님, 역시 소문대로 대 단하시네요.”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