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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156화 (156/272)

156화

판을 확 뒤집죠 (1)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회의 실

손예지와 미팅을 앞두고 김태훈과 함께 회의실에 앉아 있던 이규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오버 아닌가?’

퍼뜩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엄밀히 말하면 이규한은 ‘암살자, 보이지 않는 총구’와 무관했다.

그러니 손예지의 캐스팅을 위한 미 팅에 참여할 필요가 전혀 없는 셈이 었다.

오히려 미팅에 참여하는 자체가 이 상한 그림이었다.

“그러지 말고 끝까지 도와줘.”

그때 김태훈이 부탁했다.

그런 김태훈의 표정은 무척 조급했 다.

“선배가 착각하고 있어요. 하정후 를 캐스팅하면 손예지가 따라오는 게 아니라,손예지를 캐스팅해야만 하정후가 따라오는 거예요. 쉽게 말 해서 순서가 뒤바뀐 거죠.”

이규한의 설명을 듣고 난 후,자신 이 그동안 상황을 오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기 때문이었 다.

“알겠어요.”

“고맙다.”

손예지가 도착할 때를 기다리면서 이규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잘 진행되고 있나?’

안유천과 김단비 작가가 맡고 있는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의 각색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 는지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이규한이 쓴웃음을 머금었 다.

‘제목대로 굴러갔으면 좋겠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 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준비하고 있는 작품의 제목은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였다. 그리고 지금 이규한은 계략을 꾸며서 자신을 궁 지로 몰아넣은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의 김대환 대표에게 복수를 계획하 고 있었다.

그 복수의 방법은 씨제스 엔터테인 먼트에서 준비 중인 ‘해적의 시대’ 가 아니라,NEXT 엔터테인먼트에 서 준비 중인 ‘암살자, 보이지 않는 총구’에 하정후가 출연할 수 있도록 손을 쓰는 것이었다.

즉,범죄는 아니었다.

그리고 하나 더.

김대환 대표는 이규한이 복수를 계 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 고 있었다. 쉽게 말해 암살자가 보 이지 않는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 이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뜻 이었다.

‘재밌네.’

이규한의 입가에 머물러 있던 미소 가 짙어졌을 때였다.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손예지가 들 어섰다.

“안녕하세요.”

“예지 씨,어서 와. 오랜만이네.”

서로 안면이 있는 김태훈과 손예지 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이규한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확실히 다르네.’

여배우들은 대개 미인이었다.

당연히 손예지도 대단한 미인이었 다. 그렇지만 단지 미인이란 것만으 로는 여배우로 성공하기 힘들었다.

손예지가 경쟁이 치열하기로 소문 난 충무로에서 톱 여배우의 지위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데는 다른 여 배우들이 갖지 못한 무언가가 있었 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은 처 음 손예지를 본 순간 그게 눈빛이라 는 사실을 금세 알아챘다.

호수처럼 깊으면서도 강렬한 열망 이 묻어나는 눈빛에는 진정성이 담 겨 있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손예지 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고개를 돌린 그녀와 이규한의 눈빛이 마주쳤다.

“이분은 누구세요?”

대답했다.

“요새 충무로에서 가장 잘나가는 제작자.”

“혹시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이규 한 대표님이세요?”

“네,처음 뵙겠습니다. 이규한이라 고 합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꼭 한번 이규한 대표님과 같이 작업을 해 보고 싶었거든요.”

손예지가 인사한 순간,김태훈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하면 되지.”

“네?”

“내가 이 대표랑 무척 친하거든. 무조건 작품 같이하라고 압력을 팍 팍 넣을게.”

“그래 주시면 고맙죠.”

손예지가 사양하지 않고 두 눈을 빛낼 때,김태훈이 덧붙였다.

“대신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인데요?”

“이 대표가 제작하는 작품에 출연 하기 전에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작품에 출연해 줘.”

“어떤 작품이요?”

김태훈의 말이 끝난 순간, 손예지 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안 좋아.’

그녀가 눈살을 찌푸린 데는 이유가 있을 터.

그래서 이규한의 표정이 어두워졌 을 때,손예지가 대답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

김태훈이 초조한 표정으로 질문한 순간,손예지가 대답했다.

“다른 작품에 출연할 것 같아요.”

“어떤 작품?”

가장 바라지 않았던 대답을 들은 김태훈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충격이 큰 둣 말문을 닫아 버린 김태훈을 확인한 이규한이 대신 나 섰다.

“계약서를 작성했습니까?”

“아직 계약서는 쓰기 전이에요.”

‘다행이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아직 손예지의 마음을 돌릴 가능성이 남 아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일단 다 행이라고 판단한 이규한이 물었다.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가 아

니라 ‘해적의 시대’에 출연하려고 하시는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우선 감독님은 물론이고,투자와 배 급을 맡은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적극적으로 러브 콜을 해 주셨어요. 특히 김대환 대표님이 직접 전화를 거셨던 것이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어요.”

이규한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NEXT 엔터테인먼트보다 씨 제스 엔터테인먼트가 더 빨리,또 더 적극적으로 손예지 캐스팅에 뛰 어든 것이 차이를 만든 셈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배역의 매력이 었어요. ‘해적의 시대’에서 제가 맡 아서 연기할 배역이 ‘암살자,보이 지 않는 총구’보다 더 매력적이었거 든요.”

“그렇군요.”

이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다.’

이렇게 판단을 내린 순간,김태훈 이 끼어들었다.

“마음을 돌릴 여지는 없어?”

“죄송하지만 없습니다.”

손예지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하 자,김태훈이 이규한을 바라보았다. 도움을 갈구하는 시선.

그렇지만 이규한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손예지가 떠나고 난 후,회의실에 둘만 남겨지자 김태훈이 물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질문을 던지는 김태훈의 표정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그래서 조금 미 안했지만, 이규한은 솔직하게 대답 했다.

“포기하시죠.”

“정말 방법이 없을까?”

“이미 마음을 굳혔네요.”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김태훈이 한 숨을 푹 내쉬며 자책했다.

“내가 멍청했다. 손예지에 이어서 하정후까지 렛긴 셈이니,우리 영화 는 어떡하냐?”

이규한이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 물었다.

현재로서는 딱히 방법을 찾기 힘들 었기 때문이다.

“하정후 대신 누굴 캐스팅해야 하 나?”

김태훈이 막막한 표정으로 꺼낸 혼 잣말을 듣고 있던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직 그 고민을 할 때가 아니란 겁니다.”

“ ? ??”

“하정후가 ‘해적의 시대’에 출연하 기로 결정이 난 상황은 아니니까

요.”

이규한이 대답했지만,김태훈은 이 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정후를 캐스팅하면 손예지가 따 라오는 게 아니라,손예지를 캐스팅 해야만 하정후가 따라온다. 아까 이 대표 입으로 이렇게 말했잖아?”

“그랬죠.”

“그런데 왜 아직 안 끝났다는 거

야?”

이규한이 다른 대답을 꺼냈다.

“판을 확 뒤집죠.”

“봐라,이제 판 뒤집혔다.”

현재 한창 제작이 진행 중인 ‘베테 랑들’에 등장하는 대사였다.

갑자기 이 대사가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이규한은 지금의 난관을 타개 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 다.

“판을 확 뒤집자니? 어떻게?”

“일단 오늘 손예지를 만난 것은 분 명히 도움이 됐습니다.”

“도움이… 됐다고?” 김태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손예지를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 구’에 캐스팅하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해적의 시대’에 출연하기로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것만 알게 된 상황.

대체 어느 부분에서 도움이 됐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 었다.

“손예지가 ‘해적의 시대’를 선택한 두 번째 이유,기억하시죠?”

“배역이 더 매력 있다고 한 것?”

“네,그 부분을 간과했습니다. ‘암 살자,보이지 않는 총구’의 여주인 공 캐릭터를 더 매력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어떤 여배우든 꼭 연기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정도로.”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걸까.

고개를 끄덕이던 김태훈이 다시 물 었다.

“그런데 너무 늦지 않았을까? 지금 윤색 작업을 거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달라질 게 있습니다. 아까 제가 판을 뒤집자고 말했던 것. 다른 여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함이니까요.”

“다른 여배우? 누구?” 현재 충무로에서 활동하는 여배우 들 중에 손예지는 독보적이라고 해 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래서 김태훈이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낸 순간,이규한이 대답했다.

“전혜수요.”

“전혜수?”

예상치 못했던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일까.

김태훈이 두 눈을 치켜뜨며 말했 다.

“전혜수는 벌써 삼 년째 집에만 틀 어박혀서 두문불출하고 있는 상황이 라는 것,이 대표도 알잖아?”

“당연히 알죠.”

“그런데?”

“그래도 전혜수를 캐스팅해야 합니 다. 이미 기울어진 판을 확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김태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전혜수가 손예지의 대항마가 될 까?”

“저는 오히려 전혜수가 우위에 있 다고 봅니다.”

“내 생각은 달라.”

“이유는요?”

“예전에는 전혜수가 손예지보다 우 위에 있었지. 그렇지만 지금은 상황

이 바뀌었어. 전혜수는 이혼한 데다 가 작품 활동이 뜸했으니까.”

여배우 기근 현상에 시달리던 충무 로에서 가장 빛났던 두 여배우가 바 로 손예지와 전혜수였다.

그래서 쌍두마차라고도 불리던 시 절이 있었지만, 그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과 함께 전혜수의 작품 활동이 뜸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혼 소식이 알려진 후,전혜수는 아예 작품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영 마뜩잖은 표정을 짓고 있는 김태 훈에게 이규한이 말했다.

“이혼이 죄는 아니잖아요.”

“뭐,그렇긴 하지만……

“예전에는 이혼이 큰 흠이었겠지 만,지금은 더 이상 흠이 아닙니다. 이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이혼을 하느냐? 결혼 생활을 계속 유지하느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참고 사느 냐,참고 살지 않느냐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힘든 결혼 생활을 참고 버 티며 억지로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세상이 됐기에,요새 이혼은 흠이 아니었다.

이규한의 이야기에 수긍한 걸까.

김태훈은 그 부분에 대해서 더 논 쟁하는 대신 화제를 돌렸다.

“그 부분은 그렇다고 쳐도 난 여전 히 전혜수가 손예지보다 우위에 있 다는 것을 수긍하기 어려워.”

“왜요?”

“공백기가 길었으니까.”

김태훈의 말처럼 전혜수는 작품에 출연하지 않은 공백기가 길었다. 반 면, 손예지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왔다.

“그래서 전혜수는 많이 잊혀졌어.”

“저는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왜 반대라는 거야?”

“희소성 측면에서 가치가 더 올라 갔으니까요.”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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