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55화 (155/272)

155 화

한 방 먹이고 싶거든요 김태훈의 입에서 대세 배우 하정후 의 이름이 흘러나온 순간,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충무로의 30대 남자 배우들 가운데 가장 막강한 티켓 파워와 연 기력을 갖춘 것이 바로 하정후였다. 그리고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 와 ‘해적의 시대’는 모두 하정후를 캐스팅하기 위해서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하정후가 동시에 두 작품 에 모두 출연할 수는 없었다.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와 ‘해 적의 시대’.

두 작품 모두 여름 성수기 시즌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상황이었 기 때문이다.

“하정후를 캐스팅하는 쪽이 승자가 된다. 우리와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양측 모두 이렇게 판단하고 있어. 심지어 하정후 캐스팅에 실패하면 최악의 경우에는 막대한 자금이 이 미 투입된 영화의 제작이 무산될 수 도 있는 상황이야. 그래서 현재 하 정후 캐스팅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 황이지.”

김태훈의 부연 설명을 들은 이규한 이 질문했다.

“어느 쪽이 유리한 상황이에요?”

“우리가 더 유리한 상황이라면,내 가 이렇게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소 주잔을 기울이고 있겠어?”

“씨제스 엔터테인먼트가 더 근접해 있다는 뜻이로군요.”

“맞아.”

“이유는요?”

“일단 "해적의 시대’ 연출을 맡은 정원우 감독과 하정후가 친분이 있 어.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하더 라고. 그리고 김대환 대표가 직접 나서서 지시한 만큼,씨제스 엔터테 인먼트가 물량 공세를 아낌없이 쏟 아붓고 있어.”

김태훈의 이야기가 끝난 순간 이규 한이 물었다.

“아직 결정이 난 건 아니라는 뜻이 죠?”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하정후가 ‘해적의 시대’ 에 출연하기로 결정이 난 상황은 아 닌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던 김태훈 이 두 눈을 빛내며 이규한을 바라보 았다.

“혹시… 하정후와 친분이 있어?”

“전혀 없습니다.”

“그래?”

김태훈이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만약,이규한이 하정후와 친분이 있다면?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에 하정 후를 캐스팅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부탁할 요량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규한은 김태훈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현재까지의 상황에 대해서 찬 찬히 짚어 보기 시작했다.

‘하정후는 의리가 있다고 소문이 난 편이야. 그런데 정원우 감독과 친분이 있는 데다가, 씨제스 엔터테 인먼트라는 든든한 투자 배급사가 ‘해적의 시대’를 밀고 있다는 사실 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아직 출연 결정을 미루고 있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이규 한이 물었다.

“왜 하정후가 아직까지 어느 작품 에 출연할지 결정하지 않고 계속 미 루고 있는 걸까요? 형,생각은 어때

“뻔하지. 몸값 올리려는 수작 아니 겠어?”

캐스팅 경쟁이 붙으면 몸값이 올라 가는 것은 당연지사.

김태훈의 대답은 일리가 있었다.

자신의 몸값과 가치를 더 올리기 위해서 하정후가 어떤 작품에 출연 할지 결정을 미루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했다.

‘아닐 거야.’

그렇지만 이규한은 이내 고개를 흔 들었다. 그리고 김태훈의 추측이 틀 렸다고 판단한 이유는 하정후가 이 미 톱 배우였기 때문이다.

충무로에서 주연 배우에게 제시할 수 있는 개런티는 한계가 있었다.

이미 하정후는 배우들 가운데 최고 수준의 개런티를 받고 있는 상황이 었다.

즉,작품 출연 결정을 더 미룬다고 하더라도 몸값이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는 구조라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 결정을 미루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 야. 그 이유가 대체 뭘까?’

잠시 후,이규한이 고민을 멈추었 다.

결론을 내린 후 화제를 돌렸다.

“선배,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쪽 상 황은 어때요?”

“어떠냐니?”

“만약 이번에 투자와 배급을 맡은 ‘해적의 시대’가 흥행에 참패하면,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도 타격이 크겠

죠?”

이규한이 묻자, 김태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광안리’와 ‘민란’, 야심차게 준비 했던 두 대작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탓에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도 휘청이 고 있지. 그런데 이번에 준비하는 ‘해적의 시대’까지 흥행에 실패하면

분명히 타격이 있을 거야. 국내 최 대 투자 배급사라는 위상도 흔들릴 지경이 될 테니까. 그렇게 되면 김 대환 대표의 입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야.”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심 원했던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때,김태훈이 물었다.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야?”

이규한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김대환 대표에게 한 방 먹이고 싶 거든요.”

이규한이 시나리오 책을 덮었다.

김태훈에게 부탁해서 받은 ‘암살 자,보이지 않는 총구’의 시나리오 책을 읽고 난 후, 이규한이 혼잣말 을 꺼냈다.

“매력 있네.”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의 시나 리오 책은 꽤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매력 있다고 느낀 것은 캐 릭 터였다.

의 캐릭터.

개인의 삶과 대의명분 사이에서 갈 등하다가 결국 스스로를 희생하는 남자 주인공 캐릭터는 분명히 매력 적이었다.

“이것 때문인가?”

이규한이 팔짱을 낀 채 다시 혼잣 말을 꺼냈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하정후는 이미 충무로 톱 배우인 만큼,더 많은 개 런티를 바라고 작품 출연 결정을 미 루고 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이런 경우,배우들의 작품 선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배역의 매력도 였다.

배우들의 입장에서 작품성 못지않 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맡아서 연기 해야 할 배역이 매력적인가 여부였 다.

이것이 이규한이 ‘암살자, 보이지 않는 총구’의 시나리오 책을 직접 읽고 확인한 이유였다.

‘비교 대상이 없다는 게 아쉽네.”

아쉽게도 ‘해적의 시대’의 시나리 오 책은 구하지 못했다. 그러니 씨 제스 엔터테인먼트와 제작사에서 밝 힌 홍보물을 통해서 짐작해 볼 수밖 에 없었다.

“엇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잠시 후,이규한이 내린 결론이었 다.

만약 한쪽으로 기울었다면?

하정후는 어떤 작품에 출연할지 결 정을 미루지 않았을 것이었다.

두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캐릭터의 매력도가 엇비슷하기 때문에 하정후 가 결정을 미루고 있을 가능성이 높 았다.

“내가… 놓치고 지나간 게 없을 까?”

이규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가 앞으로 다가간 이규한이 입술 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상하리만치 연이 안 닿았어.’

하정후와 이규한.

하정후는 충무로의 톱클래스 배우 였고,이규한도 충무로의 톱클래스 제작자였다.

그렇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접점도 없었다.

‘결국… 하정후야!’

하정후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에 따라서 출연할 작품을 결정할 터 였다. 그래서 하정후의 얼굴을 떠올 리고 있던 이규한이 두 눈을 빛내며 혼잣말을 꺼냈다.

“혹시… 제목이 바뀐 건가?”

‘해적의 시대’라는 작품.

이규한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 았다.

그렇지만 ‘해적,조선의 바다를 지 킨 자들의 이야기’라는 작품은 이규 한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감독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 만,하정후가 ‘해적, 조선의 바다를 지킨 자들의 이야기’라는 작품에 출 연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 작품이 천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했다는 것도.

“일단 확인부터 하자.”

고 판단한 이규한은 김태훈에게 전 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규한의 예상 대로였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해적의 시대’라는 작 품의 원래 제목이 ‘해적,조선의 바 다를 지킨 자들의 이야기’였다고 김 태훈은 확인해 주었다.

“어느 쪽이 낫지?”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규한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이었다.

두 제목 가운데 어느 쪽이 나은지 가 궁금했다.

“‘해적의 시대’가 더 깔끔하긴 한 것 같은데.” 만약 시나리오 책이 있었다면,감 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만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준비 중인 ‘해적의 시대’의 시나리 오를 구할 방법은 없었다.

그로 인해 아쉬움을 느끼던 이규한 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대로라면 하정후는 ‘해적 의 시대’에 출연한다.”

이규한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원하던 방향이 아니었기 때 문이다.

“복수는 물 건너간 건가?”

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규한이 아이스커피가 담긴 잔을 향해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인터뷰.”

‘해적,조선의 바다를 지킨 자들의 이야기’가 개봉하고 난 후,하정후 가 했던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 인터뷰에서 하정후가 이 작품 에 출연한 결정적인 계기로 밝혔던 것은… 손예지였어.”

배우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

자존심이 무척 강하다는 점이었다.

제작사 측에서 본인이 작품에 출연

하기를 얼마나 강하게 원하고 있느 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고,그래 서 개런티에 민감했다.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배우들과 비교해서 단돈 만 원이라도 더 많은 개런티를 받길 원할 정도로 배우들 은 자존심이 강했다.

그리고 자존심이 센 배우들이 개런 티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은 함께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이 었다.

특히 투톱 체제일 경우,함께 작품 의 주인공을 맡은 다른 배우가 누구 인지를 무척 중요하게 여겼다.

투톱으로 출연하는 상대 배우가 정 해졌을 때 급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배우가 출연을 거부하고 하차한 경 우도 부지기수였다.

“하정후가 ‘해적,조선의 바다를 지키는 자들의 이야기’에 출연하기 로 결정한 이유는 손예지 때문이었 어.”

거기까지 기억해 낸 순간,이규한 이 다시 휴대 전화를 들었다.

“이 대표, 요새 연락 자주 하네.”

김태훈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순간,이규한이 다짜고짜 본 론을 꺼냈다.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의 시

나리오 책 다 읽었어요.”

“벌써? 빨리 읽었네. 어때?” 김태훈이 조심스럽게 이규한의 의 견을 물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전화를 건 이유 는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의 작 품에 대한 평가를 해 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해서 이규한이 대답 대신 되레 질 문을 던졌다.

“캐스팅은 누구로 생각하고 있어 “응? 전에 말했잖아. 하정후라고.”

“남자 주인공 말고 여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 누굴 것 같아?”

“손예지,맞아요?”

“맞아.”

예상이 적중했음을 알아챈 이규한 이 물었다.

“진행 상황은요?”

“누구? 손예지?”

“네.”

“일단 소속사에 책은 넣었어.” 김태훈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 한 순간,이규한이 답답함을 느끼며 물었다.

“아직 미팅은 안 한 걸로 알고 있 는데.”

“왜요?”

“핵심은 손예지가 아니거든. 하정 후 캐스팅이 가장 중요해서 공을 들 이고 있었지.”

‘포인트를 잘못 짚고 있어.’

김태훈의 대답을 통해 이규한은 NEXT 엔터테인먼트가 완전히 핵심 을 잘못 짚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로 인해 마음이 조급해진 이규한 이 다시 물었다.

“‘해적의 시대’는 여주인공으로 누 굴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손예지일걸.”

“왜 그렇게 판단했어요?”

“현재 충무로에서 대작 영화의 여 자 주인공을 맡아서 극을 끌고 갈 수 있는 티켓 파워를 갖춘 여배우는 손예지뿐이니까.”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답답하다 는 둣 소리쳤다.

“그걸 알면서 왜 그러고 있어요?”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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