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53화 (153/272)

153화

사기꾼 제작자 (1)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

현재 최호인이 쓴 시나리오에는 문 제점이 많았다.

“각색 안 할 겁니다. 현재 시나리 오상의 문제가 너무 많아요. 각색으 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판 단이 드네요. 차라리 새로 쓰는 편 이 더 나을 것 같아요.”

이었다.

지금 시나리오로는 각색조차 불가 능할 정도였다.

‘아예 환골탈태 수준으로 시나리오 를 수정하는 작업이 최우선 과제.’

이렇게 판단한 이규한이 다음으로 떠올린 것은 작가진이었다.

이미 제작비를 줄이기로 결정한 상 황.

가성비를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최상의 경우는 혈값에 월리티가 좋 은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작가와 계약하는 것.

계약을 맺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한참을 고심하던 이규한 이 휴대 전화를 꺼내 저장된 연락처 를 검색한 후,통화 버튼을 눌렀다.

“대표님,또 뵙네요.”

김단비 작가가 생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요새 자주 보긴 했지?”

이규한이 웃으며 인사한 후,김단 비 작가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아서 얘기해.”

“네.”

이규한이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 셨다.

김단비 작가를 만났으니 이제 용건 을 꺼낼 차례였다.

그런데 막상 그녀와 마주 앉고 나 니,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애꿎은 탁자만 노려보고 있 자,김단비 작가가 먼저 입을 뗐다.

“평소답지 않으신데요?”

“응?”

“오늘 이 대표님이요.”

“어떤 점이 평소와 다른데?”

“항상 자신감이 넘치셨는데,오늘 은 좀 달라서요. 아까부터 계속 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으시잖아 요.”

정곡을 찔려 버린 이규한이 쓴웃음 을 머금은 채 말했다.

“미안해서 그래.”

“뭐가 미안한데요?”

“내가 김 작가한테 어려운 부탁을 하나 하려고 하거든.”

“어려운 부탁이요? 어떤 부탁인데

이규한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백팩 을 열었다.

“일단 이것부터 봐.”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의 시나리오 책을 이규한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각색 작업을 맡기시려고요?”

탁자 위에 올려놓은 시나리오 책을 확인한 김단비 작가가 흥미를 드러 낸 순간,이규한이 덧붙였다.

“보고 나서 얘기해.”

“알겠습니다.”

이규한의 재촉을 받은 김단비 작가 가 시나리오 책을 펼쳤다.

잠시 후 그녀의 두 눈이 커졌다.

“이건……

“낯이 익지?”

“얼마 전에 리뷰를 했던 작품이네 요.”

“맞아.”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김단비 작가 가 말했다.

“혹시,제게 각색을 부탁하려던 게

이 작품인가요?”

? ? "

■方、

“지난번에 제가 드린 말씀,잊으셨 어요?”

“각색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 말 이지?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왜……?”

“그래서 김 작가를 찾아왔어.”

제대로 말뜻을 이해 못 한 김단비 작가가 의아한 시선을 던질 때 이규 한이 덧붙였다.

“내가 원하는 건 각본 같은 각색이 거든. 부연 설명을 하자면,‘변호사’ 케이스를 원해.”

이규한이 덧붙인 설명을 들은 김단 비가 비로소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변호사’의 각색 작업을 맡았던 것 은 안유천과 김단비 작가였다.

당시 두 작가는 각색을 맡았음에도 기존의 시나리오를 배제하고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었다.

한마디로 각본 같은 각색을 해 온 셈이었다.

그리고 두 작가가 완성해 왔던 결 과물은 무척 훌륭했다.

천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변호 사’의 흥행 성적이 두 작가의 각색 작업 결과물이 무척 좋았다는 증거 였다.

이것이 이규한이 김단비를 찾아온 이유.

“세 가지 의문점이 있어요.”

이규한이 기대에 찬 시선을 던지고 있을 때 김단비가 입을 뗐다.

“세 가지씩이나? 많기도 하네.” 핀잔을 건네면서 이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김단비가 신중한 성격의 소유 자임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해 봐.”

“첫 번째 의문점은 왜 이 작품을 이 대표님이 제작하시는가 하는 거 예요.”

김단비도 명색이 쌍천만 작가였다. 작품을 보는 눈이 없을 리 없었다. 그래서 리뷰를 하는 과정에서 이미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작품의 흥행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는 사실을 간파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한이 굳이 이 작품을 제작하려 하는 이유에 대 해서 의문을 품은 것이었다.

“설명하기 좀 복잡해. 확실한 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이 작품을 꼭 제작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거 야. 그 정도로 넘어가 주면 안 될

까?”

이규한의 부탁을 들은 김단비 작가 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였다.

하셨는가 하는 거예요.”

“안 작가에게 왜 연락하지 않았느 냐는 거지?”

“네,맞아요.”

“이유는 간단해. 돈이 없어서야.”

“네?”

“공동 작가를 붙일 정도로 자금의 여유가 없어.”

김단비 작가의 두 눈에 깃들어 있 던 의아한 감정이 짙어졌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했던 영화들은 모두 손익 분기점을 넘겼 을 뿐만 아니라 흥행에 성공했다.

답한 것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 었다.

“일단 넘어가죠. 마지막 세 번째 의문점은 왜 아까 미안한 부탁이라 고 표현하셨는가 하는 거예요.”

“아까 대답했던 이유와 일맥상통 해.”

? ,?,

“각색료를 많이 줄 수가 없거든.”

‘답답하네.’

이규한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일을 시 키자.

영화 제작자 이규한이 가진 소신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는 그 소신을 잘 지켜 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졌 다.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라 는 작품의 손익 분기점을 최소로 낮 추기 위해서는 제작비 절감이 절실 한 상황.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획 개발비를 최대한 아껴야 했고,이것 이 이규한이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이유였다.

“김 작가,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요즘 각색 작업의 대가로 각색료를 얼마나 받는지 알 수 있을까?”

“‘변호사’ 각색 작업을 하기 전에 다른 제작사에서 각색 작업 의뢰를 받았던 적이 있어요. 그때 오천만 원을 받고 계약했어요.”

신인 작가의 경우 천만 원과 이천 만 원 사이에서 각색료가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기성 작가의 경우는 각색료 가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김단비 작가가 받은 각색료는 많은 편이 아 니었다.

천만 영화인 ‘수상한 여자’의 각본

크레덧에 그녀가 이름을 올렸으니 까.

‘계약 잘했네.’

김단비 작가에게 한 말이 아니었 다.

그녀와 각색 계약을 맺었던 제작사 에게 한 말이었다.

당시와 지금.

김단비 작가의 위상은 또 달라져 있었다.

쌍천만 작가.

‘수상한 여자’에 이어 그녀가 각색 작가로 참여했던 ‘변호사’ 역시 천 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상황이었

천만 영화 두 편에 작가로 참여한 만큼, 그녀의 몸값이 더 치솟는 것 은 당연했다.

‘지금이라면 최소 칠천만 원은 줘 야 하지 않을까?’

김단비 작가에게 책정될 각색료에 대해 내심 추정하던 이규한이 입을 뗐다.

“내가 김 작가에게 제시할 수 있는 각색료는 최대 이천만 원이야.”

예상보다 훨씬 적은 액수이기 때문 일까.

있었다.

그 표정을 확인하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커졌지만,이규한이 덧 붙였다.

“이번 한 번만 도와줄 수 있을까? 다음 작품 계약할 때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걸 약속할게.”

이규한이 약속과 함께 김단비 작가 를 바라보았다.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걸까.

한참을 고민하던 김단비 작가의 입 술이 열렸다.

“저는…… 그렇지만 김단비 작가의 대답은 끝 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에잇,이건 아니죠.”

갑자기 불청객이 나타나 대화에 끼 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불 청객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설마, 이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려 했던 건 아니지?”

예고 없이 등장한 불청객의 정체는 안유천이었다.

안유천을 뒤늦게 발견한 이규한이 물었다.

“네가 지금 여기서 왜 나와?”

“우연입니다.”

안유천이 당당하게 대꾸했다. 그러나 이규한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규리의 말에 따르면 두 집 건너 한 곳인 서울에 위치한 수많은 커피 전문점들 가운데,하필 김단비 작가 와 만나고 있는 커피 전문점에서 안 유천과 우연히 맞닥트릴 확률.

너무 낮았기 때문이었다.

“김 작가가 알려 줬던 거야?”

“진짜 아닌데요.”

“그런데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우연이라니까요.”

“진짜 우연이야?”

이규한이 매섭게 노려보며 추궁하 자,안유천이 멋쩍게 웃으며 솔직하 게 털어놓았다.

“실은 단비 몰래 따라왔습니다.”

“왜?”

“단비가 사기꾼 제작자에게 걸려서 순진하게 당할까 봐 걱정돼서요.”

“그럼 이제 돌아가도 되겠네. 김 작가가 사기꾼 제작자가 아니라 날 만나고 있는 걸 확인했으니까.”

이규한이 말했지만,안유천은 몸을 돌려 나가지 않았다.

대신,비어 있던 김단비의 옆 좌석 에 털썩 주저앉았다.

“못 갑니다.”

“왜 못 간다는 거야?”

“단비가 사기꾼 제작자와 만나고 있으니까요.”

“내가… 사기꾼 제작자라고?”

“네.”

? ……?"

“지금 이 대표님이 하시는 말씀, 딱 이 바닥에 널리고 널린 사기꾼 제작자들이 늘어놓는 감언이설이지 않습니까?”

“그게 아니라……

“진짜 아닙니까?”

이규한이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반박할 말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 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네.’

이규한이 반박하는 대신 한숨을 내 쉬었다.

“이번 작품만 계약금 없이 진행하 자. 내가 요새 사정이 좀 어려워서 그래. 대신 이번 작품 성공하고 나 면, 다음 작품에는 진짜 대우 잘해 줄게. 업계 톱클래스 수준으로 계약 해 줄 테니까,이번 한 번만 나 믿 고 열심히 일하자. 왜 대답이 없어? 설마 나 못 믿어?” 이규한이 가장 경멸해 마지않는 양 아치나 다름없는 영화 제작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좀 전에 이규한이 김단비 작가에게 했던 말이 그동안 경멸해 왔던 다른 제작자들이 했던 말과 별 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잘못했네.’

그래서 이규한이 자책할 때 안유천 이 입을 뗐다.

“서운합니다.”

“뭐가 서운하단 거야?”

“왜 단비만 부르고 저는 안 불렀습 니까? 저와 단비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팀이라는 것,이 대표님이 어느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

까?”

“그게……

“돈이 없어서요?”

‘들었네.’

안유천은 지금 막 커피숍으로 들어 온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질문한 것이 아까부터 이규 한과 김단비가 나눈 대화를 들었다 는 증거였다.

그때 였다.

“그래서 더 서운합니다.”

“왜 더 서운하다는 거야?” “저희가 어디 보통 사이입니까? 그 런데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지 왜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지 않는 겁니 까? 저희 사이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됩니까?”

안유천이 살짝 언성을 높였다.

결국,이규한이 한숨을 내쉬며 물 었다.

“듣고 싶어?”

“네.”

“알았다,한 번만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이규한이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해 서 간략하게 요약해서 설명했다.

그 설명이 끝나자마자 안유천이 혀 를 찼다.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라 는 말도 안 되는 작품을 이 대표님 이 제작하시려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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