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50화 (150/272)

150화

진퇴양난 (2)

“대표님이 원하는 것은 제 능력을 시험해 보는 것이죠. 맞습니까?”

“맞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대표님 이 이용한 것은 최호인 감독의 꿈입 니다. 한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꿈 을 이용해서 사욕을 채우시려 한 거

“듣고 보니 그렇군.1 “그런데 최 감독에게 미안하지 않 습니까?”

이규한이 언성을 높였다. 그렇지만 김대환 대표는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시선을 던졌다.

“자넨 참 재밌군.”

‘재밌다고?’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표현이 아니 라는 생각이 들어 이규한이 미간을 찡그렸을 때였다.

“보기보다 감성적이야.”

“지금 저에 대한 평가를 들으려는 게……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지?”

김대환 대표가 질문을 던졌다. 그 리고 이번 질문은 이규한에게 던진 게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

고개를 갸웃하던 김대환 대표가 다 시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 는지 아는가?”

" <……?"

“수많은 동료들의 등에 비수를 꽂 았네. 그들이 쓰러지며 홀린 피 덕 분에 겨우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 었지. 성공하려면 독하게 마음을 먹 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었고,지금 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지. 그런 데… 자넨 내가 판단했던 성공의 기 준과 많이 달라.”

“무슨 뜻입니까?”

“자넨 동료들의 등에 칼을 꽂지도 않았고,쓰러진 그들이 흘린 피를 밟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했 어. 그래서 재밌다는 뜻이네.”

김대환 대표가 흥미로운 시선을 던 졌다.

결국 이규한이 참지 못하고 입을 뗐다.

“그래서 배가 아프신 겁니까?”

“동료의 등에 칼을 꽂지 않고도 제 가 성공한 게 운이 좋은 것처럼 느 껴졌겠죠. 그걸 지켜보면서 배가 아 팠고,그래서 저를 궁지로 몰아넣은 것 아닙니까?”

“마음대로 생각하게.”

김대환 대표는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던 이규한이 백팩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그게 뭔가?”

“계약서입니다. 대표님이 바라는 대로 해 드리기로 결심했거든요.” “직접 나서기로 결심했다는 뜻이로 군.”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계약서가 또 필요한가? 이미 최 감독은 사거리 픽처스와 연 출 계약을 체결한 상황인데?”

그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대답했 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최호인 감 독이 연출을 맡은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작품에 공동 제 작사로 참여하겠습니다.”

“공동 제작?”

여기까지는 예상치 못했던 걸까.

김대환 대표가 놀란 표정을 지었 다.

그런 그의 반응을 살피던 이규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의 복 수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작품의 공 동 제작자로 참여하려는 겁니다.”

“어떤 이유들인가?”

“우선 명분입니다. 제가 작품을 제 작하는 단계에서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명분 이 필요하니까요.”

“자네 말이 맞군. 또 하나의 이유 는 뭔가?” “각오입니다.”

“각오?”

“이번 프로젝트에 제가 얼마나 단 호한 각오를 갖고 임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 공동 제작자로서 참여 하려는 것입니다.”

이규한이 설명하자 김대환 대표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만 족했기 때문이리라.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작품에 공동 제작으로 참여하는 것에 불만 이 없으십니까?” “불만이 없네. 오히려 내가 바라던 바이네.”

김대환 대표의 대답은 이규한의 예 상대로였다.

“그럼 계약서를 보시죠.”

“그러지.”

잠시 후 이규한에게서 계약서를 건 네받아 살피던 김대환 대표의 두 눈 이 커졌다.

“구 대 일?”

그가 놀란 이유는 수익 배분 비율 때문이었다.

이규한은 계약서에 블루문 엔터테 인먼트와 사거리 픽처스의 수익 배

분 비율을 9 대 1로 적시했다.

“왜 수익 배분 비율을 이렇게 정했 는가?”

이규한이 대답했다.

“그 수익 배분 비율이 제가 얼마나 절실한 각오로 이 프로젝트에 임하 고 있는지를 알려 주는 증거입니 다.”

김대환 대표가 먼저 떠났다.

홀로 포장마차에 남겨진 이규한이 소주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쓰네.”

술이 여전히 무척 쓰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포장마차의 휘장이 걷히고 황진호 가 들어왔다.

“오셨어요?”

이규한이 황진호에게 자리를 권했 다.

“무슨 일 있어?”

황진호가 걱정스런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아주 어려운 프로젝트를 맡았습니 다.”

이규한이 쓴웃음을 지은 채 대답하 자,황진호의 표정이 불안하게 바뀌 었다.

“얼마나 어려운 프로젝트인데?”

“많이요.”

“혹시 ‘변호사’보다 더 어려운 프 로젝트야?”

“이 프로젝트에 비하면 ‘변호사’는 쉬운 편이었죠.”

이규한이 대답하자 황진호의 낯빛 이 어둡게 변했다.

“일단 한 잔 마시고 본격적으로 얘 기하자.”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황진 호가 이규한의 앞에 놓여 있던 잔을 들어 연거푸 두 잔을 비웠다.

마치 벌주를 마시듯 세 번째 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황진호가 멈칫하며 술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설마 그 어려운 프로젝트가… ‘우 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작 품은 아니지?”

“그 설마가 맞습니다.”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황진호가 한 숨을 내쉬며 물었다.

“지난번에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작품을 사거리 픽처스 에서 제작한다고 하지 않았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 하기로 했습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데?”

이규한이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해 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 설명을 모두 들은 황진호의 표 정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김대환 대 표,진짜 무서운 사람이네.”

“괜히 그 자리에 오른 게 아니죠.”

“이제 어떡할 거야?”

“일단은 물에 빠져서 떠내려가고 있는 사람부터 건지고 봐야죠.”

이규한이 대답했지만 황진호는 여 전히 우려 섞인 시선을 던졌다.

“그게 쉽지가 않다는 게 문제잖 아.”

“그렇긴 하죠.”

“내가 볼 땐 10만 간신히 넘길 수 준이던데.”

황진호 역시 최호인 감독이 직접 쓴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 의 시나리오 책을 이미 읽어 본 상 황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우려를 표하는 것이 었고.

그렇지만 이규한은 황진호가 꺼낸 이야기를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보기엔 10만은커녕 5만도 안 들 것 같거든요.”

이규한이 확인했던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의 감정 결과는 이만 명을 갓 넘긴 수준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씁쓸한 미소를 짓 고 있을 때 황진호가 물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거야?”

그가 방금 질문한 것은 ‘우리의 복 수는 범죄가 아니다’의 시나리오 책 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정할 계획 이냐는 뜻이었다.

답을 꺼내지 못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이규한도 전혀 감을 잡지 못하 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일단은 목표를 정하는 게 우선인 것 같습니다.”

“그래. 이 대표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네.”

수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황진호가 다시 물었다.

“무엇을 목표로 할 생각이야?”

이규한이 대답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는… 손익 분기점을 넘기는 겁니다.”

커피 전문점 블루문.

이규한이 창가 쪽 탁자에 앉아서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무모한 도전이 아닐까?”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프로젝트에 비하면 ‘변호사’는 쉬운 편이었죠.”

황진호에게 엄살을 피웠던 것이 아 니었다.

‘변호사’보다 ‘우리의 복수는 범죄 가 아니다’라는 작품을 성공시키는 게 훨씬 더 어려웠다.

간신히 2만 명을 넘겼던 감정 결 과가 그 증거였다.

“그렇지만 피할 수도 없어.”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에 공동 제작자로 참여한 순간, 이규한 은 이미 무모한 도전에 나서기로 결 심을 굳힌 후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해서 이규한이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이규리가 다가왔다.

“요새 한가한가 보네.” 그 말을 들은 이규한이 쓰게 웃으 며 말했다.

“한가할 뻔했지. 그런데 내가 쉬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네.”

“누구?”

“저기 오네.”

이규한이 문을 열고 커피 전문점 블루문으로 들어오는 최호인을 턱짓 으로 가리켰다.

뒤늦게 최호인을 발견한 이규리가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쪼르 르 달려갔다.

‘역시 갈라놓긴 어렵겠어.’ 고 있는 이규리를 발견한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생각했을 때 였다.

“형님.”

최호인이 꾸벅 인사했다.

이규한이 인사를 받는 대신 호칭부 터 정정했다.

“앞으로 대표님이라고 불러.”

“네?”

“공적인 관계로 얽혔으니까.”

이규한이 설명을 더하자 최호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직접 봐.”

이규한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 계 약서를 살피던 최호인이 두 눈을 치 켜 떴다.

“형님,아니, 대표님이 ‘우리의 복 수는 범죄가 아니다’의 공동 제작자 가 된 겁니까?”

“그래.”

“어떻게……?”

“어제 김대환 대표를 만나서 얘기 끝냈어.”

“김대환 대표라면… 씨제스 엔터테 인먼트의 김대환 대표님이요?”

“맞아.”

“대단하시네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김대환 대표 는 한국 영화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 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몇 안 되 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규한이 그런 김대환 대표를 직접 만났다는 사실에 최호인은 놀란 것 이었다.

그때 이규리가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오빠가 호인 오빠가 준 비하는 작품인 ‘우리의 복수는 범죄 가 아니다’는 작품에 공동 제작자가 됐다는 뜻이야?”

마찬가지야.”

“왜? 오빠도 호인 오빠의 작품이 흥행에 성공할 걸 눈치겠구나?”

‘정확히 반대야!’

이규한이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의 공동 제작자로 참여한 이 유.

작품이 성공할 것 같아서가 아니었 다.

망할 것 같아서였다.

‘이게 다 너 때문에 사서 하는 고 생이다.’

이구리에게 이렇게 쏘아붙이고 싶 은 것을 꾹 참고 이규한이 대답했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 있 는 법이거든.”

“응?”

“일단은 그 정도로만 알아둬.”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 대신 이규한 이 부탁했다.

“자리 좀 비켜 줘.”

“누구? 나?”

“그래. 최 감독과 둘이서 할 얘기 가 있어.”

이규리가 아쉬운 기색으로 떠났다. 둘만 남게 되자 이규한이 말했다.

“아닌 거 알지?”

“네?”

“최 감독이 쓴 ‘우리의 복수는 범 죄가 아니다’는 작품이 탐이 나서 내가 공동제작자로 참여한 게 아니 라는 사실 말이야.”

“…아닙니까?”

최호인이 조심스럽게 되묻자 이규 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주제 파악부터 확실히 시킨다.’

이게 이규한이 판단한 최우선 과제 였다.

이것이 오늘 최호인을 만난 가장 큰 이유였고.

“이대로 개봉하면 무조건 망한다.”

이규한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최호인이 표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1억 관객 제작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