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49화 (149/272)

149화

진퇴양난 ⑴ “캐릭터가 이상하잖아. 이런 캐릭 터로 관객들의 공감을 살 수 있겠 어?”

“반전이 약해. 이렇게 약한 반전으 로는 촬영 못 들어가.”

“영화를 찍는 거냐? 다큐를 찍는 거냐? 촬영 기법이 너무 밋밋하잖 아.” “제작비가 부족해. 제작비를 초과

한 것,전부 당신 책임이야. 촬영 접고 관두거나,직접 돈을 구해오거 나 택일해.”

촬영 전 단계에서는 시나리오로 트 집을 잡았고,촬영이 들어간 후에도 갖은 트집을 잡아서 연출을 맡은 감 독을 쉬지 않고 흔들었다.

순진한 최호인은 전혀 이런 관행을 알지 못했지만, 이규한은 이런 부당 한 관행을 이미 여러 차례 목도했 다.

“만약에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가 발생하면 어떡할 거 야?”

“그때는 관둬야죠.” “위약금 십억,있어?”

“당연히… 없죠.”

최호인이 대답한 순간 가만히 듣고 있던 이규리가 끼어들었다.

“오빠, 대체 왜 그래?”

“내가 뭘?”

“아직 연출 계약 맺은 지 얼마 되 지도 않았어. 그리고 호인 오빠도 진짜 열심히 해서 흥행 감독 되겠다 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고. 그런데 오빠는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 안 된 다는 식으로 얘기를 몰아가는 건 데?” ‘망하는 프로젝트니까.’ 진짜 하고 싶었던 대답을 미루고 이규한이 소주잔을 들어 올렸다. 그 리고 소주잔을 입에 막 갖다 댄 이 규한이 멈칫했다.

‘진퇴양난이 아닌가?’

지금 상황에 딱 어울리는 사자성어 가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은 앞으로 전진 할 수도 뒤로 물러나기도 어려운 곤 경에 빠졌음을 일컫는 사자성어이 다. 그리고 지금 최호인이 처해 있 는 상황과 딱 맞아떨어졌다.

‘만약 이대로 작품의 제작이 순조 롭게 진행돼서 개봉을 한다면 최호 인은 입봉작을 거하게 말아먹은 퇴 물 감독이 된다. 그리고 작품의 제 작 단계에서 삐걱대더라도 감독직을 내려놓을 수 없다. 위약금만 무려 십억이니까. 당연히 이 녀석에게 십 억이란 거액이 있을 리가 없으니 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규한이 소 주잔을 단숨에 비웠다.

‘쓰다.’

지독히 쓰다는 생각을 하던 이규한 이 이상하리만치 많았던 연출료와 독소 조항에 생각이 미쳤다.

아까 계약서를 살필 때 괜히 찜찜 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퇴로를 막아 두기 위해서 연출료

를 일억이나 책정하고 일시불로 지 급했던 거야. 위약금을 물고 감독직 을 내려놓을 수 없도록.’

이게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 사인 김대환이 노린 것이란 생각이 든 순간,비로소 이규한의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매제가 될 수도 있는 최호 인이 퇴물 감독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계약 서를 봤다시피 십억의 위약금을 물 기 전에는 최호인이 감독직을 내려 놓고 빠져나갈 수도 없네. 자,이제 어떻게 할 텐가?”

그런 그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날 시험하고 있는 거야.’

마침내 김대환 대표가 숨기고 있던 의도를 파악한 이규한의 표정이 무 섭게 굳어졌다.

그런 이규한의 가슴속 깊숙한 곳에 서 분노가 치밀었다.

김대환 대표와 김기현.

부자지간이기 때문일까.

외양뿐 아니라 독한 심계도 닮아 있었다.

그렇지만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다.

덜 익은 사과처럼 풋내를 드러낼 때가 잦았다.

그렇지만 김대환 대표는 감정을 컨 트롤하는데 능숙했다.

웃는 가면 속에 진면목을 완벽히 감추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상대하기가 훨씬 까다로웠 다.

‘당신 뜻대로 움직이진 않을 겁니 다.’

김대환 대표가 원하는 대로 끌려가 는 것.

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뗐다.

“최 감독.”

“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최 감독이라고 불렀어. 연출 계약 을 맺었으니 호칭도 달라지는 게 맞 는 것 같아서.”

이규한의 달라진 호칭이 마음에 드 는 걸까.

최호인의 입가로 환한 미소가 떠올 랐을 때 이규한이 물었다.

“만약 내가 십억을 준다면,이번에 맺은 연출 계약을 해지할 의향 있 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안이었기 때 문일까.

최호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위약금 십억을 내가 대신 물어 줄 수 있단 뜻이야. 그럼 이번에 맺은 연출 계약을 해지할 의향이 있느냐 고 물었던 거야.”

“갑자기 왜……?”

“아직 내 얘기 다 안 끝났어.”

? ……?"

“내가 최 감독과 계약할게. 쉽게 말해 사거리 픽처스와 맺은 연출 계 약을 해지하고 난 후에 블루문 엔터 테인먼트와 감독 계약을 다시 맺자

는 뜻이야.”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전개되기 때 문일까.

최호인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망 설였다.

대신 이규리가 나섰다.

“갑자기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건 데?”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무슨 사정? 이제야 호인 오빠의 능력을 인정하는 거야? 아니면,남 이 손에 쥔 떡이 더 커 보여서 이 러는 거야?”

지었다.

사거리 픽처스와 연출 계약을 맺었 다고 해서 최호인이 갑자기 탐이 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너 때문이야!’

이렇게 쏘아붙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이규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콩깍지가 무섭긴 하네.’

그리고 이규한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최호인이 입을 뗐다.

“고마운 제안이지만,거절하겠습니 다.”

“거절하려는 이유는?”

최호인이 대답했다.

“형님의 도움 없이 제 힘으로 해 내고 싶어서입니다.” “요새 자주 만나는구만.”

이규한이 포장마차의 휘장을 걷고 들어서자,김대환 대표가 흐릿한 미 소를 지은 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물론 이규한은 그와의 만남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정색한 채 김대환 대표의 맞은편에 앉으며 입을 뗐다.

“의외군요.”

“뭐가 의외란 말인가?”

“포장마차에서 만날 줄은 몰랐습니 다.”

이규한이 만남을 청했을 때,김대 환 대표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대 표이사실이 아니라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같이 술이나 한잔하세.”

당시 그는 술을 마시자고 제안했 고,이규한은 당연히 호텔 바,혹은 고급 일식집에서 만날 거라 예상했 다.

그렇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 나갔다.

김대환 대표는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자고 제안했으니까.

“기현이, 그 녀석이 자주 찾는 바 가 퍼시픽 호텔 지하에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직 어려서 돈 무서운 줄 몰라서 그 모양이야.”

한숨을 푹 내쉬던 김대환 대표가 덧붙였다.

“누굴 탓하겠나? 자식 교육을 잘못 시킨 내 탓이지. 그러니 그 녀석을 너무 미워하거나 욕하지 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코웃음 을 치며 입을 뗐다.

“아마 기현이는 영원히 안 바1 겁 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대표님이 기현이를 대신해서 사과 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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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짓을 해도 아버지가 뒷 수습을 해 준다. 이런 생각이 깊숙 이 박혀 있기 때문에 기현이가 반성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기현이도 성인입니다. 계속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는 것은……

‘너무 주제넘은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이규한이 도중 에 말을 멈췄을 때였다.

“왜 말을 멈추나? 계속해 보게.”

김대환 대표는 오히려 이야기를 마 저 계속하라고 재촉했다. 그래서 이 규한이 망설임을 끝내고 원래 하려 던 말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계속 온실 속 화초처럼 키 우는 것은 오히려 기현이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수긍한 걸까.

이규한이 던지는 충고에 귀를 기울 이고 있던 김대환 대표가 말했다.

“충고 고맙네.” “왜 고맙다는 겁니까?”

“이런 충고를 한다는 게 기현이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는 증거니 까.”

‘애정 따윈 남아 있지 않습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녔으니까 요.’

이렇게 반박하고 싶었지만,이규한 에게는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 다.

김대환 대표가 말을 꺼내는 것이 더 빨랐기 때문이었다.

“난 이 포장마차가 좋더라고. 여기 올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나거든. 예

전에 영화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돈이 너무 없었어. 새벽에 일을 마 치고 지나갈 때마다 포장마차에서 새어 나오는 우동과 꼼장어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 없더라고. 그래서 나중에 성공하면 저 포장마차에 가 서 우동과 꼼장어를 배가 터질 때까 지 실컷 먹어야겠다. 당시에 그게 내 꿈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한 잔 받으시죠.”

이규한이 그의 말을 도중에 자르며 소주병을 들어 올렸다.

“늙은이가 꺼내는 옛날 추억 얘긴 별로 듣고 싶지 않은가 보군.” 한 순간 이규한이 받아쳤다.

“다음에 듣겠습니다.”

“다음?”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요.”

그 대답을 들은 김대환 대표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왜 마음의 여유가 없는가?”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스스로 채웠던 잔을 단숨에 비운 후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대표님 때문에 여유가 없습니다.” “나 때문이다?”

“장기 잘 두시죠?” “좀 두는 편이긴 하네만.”

“그래서 외통수에 걸렸습니다.”

“외통수라.”

김대환 대표가 목젖을 드러내며 껄 껄 웃었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군.”

“그렇게 즐거우십니까?”

“응?”

“무척 즐거워 보여서 드린 말씀입 니다.”

이런 덫을 쳐 놓고 기다렸던 김대 환 대표가 왜 립지 않을까?

은 화가 났다. 그러나 이규한은 화 가 났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김대환 대표와의 기 싸음에서 밀리 고 싶지 않아서였다.

‘먼저 화를 내면 지는 거야.’

이규한이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때 김대환 대표가 물었다.

“이제 어쩔 텐가?”

그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되물었 다.

“한 수 물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건 불가하네.” “그렇군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은 채 던졌 던 질문.

그러나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실망감도 크지 않았다.

이규한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뗐 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외통수에 몰렸 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 장기판 을 엎어 버릴 생각까지 했습니다.”

“장기판을 엎다니? 어떻게 말인 가?”

“위약금을 무는 거죠.”

“위약금 액수가 꽤 클 텐데?”

“10억이란 사실, 저도 알고 있습니 다.”

“최호인 감독을 위해서 10억을 대 신 내 주려고 했다? 내 짐작이 틀 렸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자네가 최 감독을 더 아끼는 편이로군. 그런데 왜 도중에 생각을 바꿨나?”

“최 감독을 아끼니까요.”

“상업 영화 감독 입봉을 하는 것, 최 감독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그를 실망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랬군.”

김대환 대표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 덕였다.

그 반응을 확인한 순간 이규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화를 내면 지는 것이라고 판단했 다. 그래서 마지막의마지막 순간까 지 화를 표출하지 않으려고 했었는 데.

마치 다 이해한다는 둣 김대환 대 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규한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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