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46화 (146/272)

146화

더럽게 재미없어요 “골치 좀 아프겠네.”

황진호도 ‘부산행 열차’가 투자를 받기 무척 어려운 프로젝트라는 사 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관 자놀이 부근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 르며 말하는 것을 들은 이규한이 웃 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죠.” 그때,김미주가 끼어들었다.

“골치 아픈 얘긴 나중에 하고 회식 한번 하죠.”

“회식?”

“‘변호사’가 800만 관객을 돌파했 는데,그냥 입 닦으시려는 건 아니 겠죠?”

“미주 씨.”

“왜요?”

“700만 돌파했을 때도 회식했었잖 아?”

“700만과 800만은 의미가 또 다르

당당하게 대꾸하는 김미주를 확인 한 이규한이 손사래를 쳤다.

“다음에 하자. 오늘은 내가 선약이 있거든.”

“거짓말이죠?”

이규한이 대답했다.

“오늘 아버지 생신이거든.” 딩 동.

이규한이 벨을 누르자 현관문이 열 렸다.

“왔구나.”

앞치마를 두른 어머니를 마주한 이 규한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외식하자니까요.”

“아냐. 네 아버지 생일상은 내가 챙겨 주고 싶어서 그런 거야. 오느 라 힘들었지? 상 다 차렸으니까 어 서 들어와.”

이규한이 거실로 들어서자 미리 도 착해 있던 이규리와 최호인이 인사 했다.

“오빠,왔어?”

“형님,오셨습니까?”

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이 규한이 아버지에게 인사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고맙다. 앉아라.”

이규한이 자리에 앉으며 안주머니 에서 봉투를 꺼내서 내밀었다.

“이게 뭐냐?”

“여행 경비입니다.”

“여행 경비?”

“두 분이서 가까운 곳에 다녀오세 요.”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좋네.’

이렇게 용돈이 든 봉투를 부담 없 이 드릴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좋다 는 생각을 이규한이 속으로 했을 때 였다.

“생일 선물을 왜 또 주는 거냐?”

“네?”

이규한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의 전화를 며칠 전에 받은 덕분에 오늘이 아버지의 생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이규한은 다 른 선물을 준비했던 적이 없었다.

그때 아버지가 덧붙였다.

“영화 말이다.”

“영화… 요?”

“이번에 네가 제작했던 ‘변호사’라 는 영화 말이다. 오랜만에 재밌게 봤다. 그래서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내 자식 놈이 만든 영화라고 자랑했 아버지가 무심한 목소리로 꺼낸 이 야기를 들은 이규한의 입가로 희미 한 미소가 번졌다.

이규한이 알고 있는 아버지는 감정 표현이 풍부한 편이 아니었다.

방금 꺼내신 표현은 최고의 칭찬이 나 마찬가지였다.

“애비 생일 선물로 충분했다.” 아버지에게서 인정을 받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는 것 과는 기분이 또 달랐다.

“재밌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규한이 인사한 후 농담을 건넸

“제가 제작했던 ‘변호사’란 작품이 생일 선물로 충분하셨다니까,이건 다시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식탁 위에 올려 두었던 여행 경비 가 든 봉투를 향해 이규한이 손을 뻗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의 손은 봉 투에 닿지 못했다.

아버지의 손이 조금 더 빨랐기 때 문이었다.

“낙장불입.”

그 말을 꺼내신 아버지가 무안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내년에는 다른 선물로 부탁한다.' “새 영화를 제작할까요?”

“그거 말고.”

“그럼요?”

“새 식구 좀 데려와라.”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 이 살짝 당황했다. 그리고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서둘러 화제를 돌 렸다.

“규리야. 년 선물 없어?”

“물론 준비했지.”

“뭔데?”

이규리가 대답했다.

“새 식구.”

이규한이 두 눈을 연신 깜박였다. 방금 이규리가 꺼낸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였다.

그리고 당황한 기색을 드러낸 것은 이규한만이 아니었다.

부모님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 다.

“설마… 아니지?”

이규한이 대표로 물었다.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새 식구가 생겼다는 말 이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그건 아니 지?”

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의 배

쪽으로 향해 있다는 것을 뒤늦게 눈 치챈 이규리가 쌍심지를 켰다.

“다른 무슨 생각들을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거든.”

비로소 안도한 이규한이 물었다.

“그럼 아까 새 식구가 아버지 생신 선물이란 건 무슨 뜻이야?”

“호인 씨와 머잖아 결혼할 거거

드 ”

이규리가 최호인의 팔짱을 끼면서 대답하는 것을 들은 이규한이 눈살 을 찌푸렸다.

“규리야.”

“왜?”

“나와 약속했던 것,벌써 잊었어?” 이규한이 정색한 채 말했다. 그렇 지만 이규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그래서 머잖아 호인 씨와 결혼할 거라고 말했던 거야.”

…?"

“호인 씨,곧 입봉할 거거든.”

이규리가 더한 말을 들은 이규한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방금 뭐라고 했어?”

최호인이 대신 대답했다.

“시간을 좀 갖고 지켜보자. 그 녀 석이 밥벌이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만약 그때까지 못 기다 린다면 나도 절대 허락 못 해.”

최호인과 이규리가 만나는 것을 인 정하는 대신,이규한이 내걸었던 조 건이었다.

‘최호인이 연출 계약을 맺었다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

그래서 이규한이 당황한 기색을 감 추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게 정말이야?”

“네. 사실입니다.”

“잘됐네,잘됐어.”

어머니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계 셨다.

“고생했다.”

아버지도 기꺼운 기색으로 입을 뗐 다.

모두가 기뻐하고 있었지만 이규한 만은 예외였다.

‘너무 일러.’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떤 작품으로 연출 계약을 맺었 어?”

“내가 아는 작품이라고?”

“네.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 다’라는 작품입니다.”

최호인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의 표정은 더욱 일 그러 졌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다른 작품으로 최호인이 연출 계약을 맺었길 내심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였더라?’

이규한은 최호인이 직접 시나리오 를 썼던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 니다’라는 작품을 감정했던 적이 있

당시 감정 결과를 이규한이 한참 만에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10,203명.’

처참할 정도로 적었던 예상 관객수 를 떠올린 이규한이 참지 못하고 한 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제작자가 이 작품을 보고 연출 계약을 맺은 거 야?’

이렇게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 참 고 이규한이 표현을 순화했다.

“어느 제작사와 계약한 거야?”

“사거리 픽처스입니다.”

“방금… 어디라고 했어?”

“사거리 픽처스요.”

재차 확인을 거친 후 이규한이 냉 수를 마셨다.

“왜? 오빠도 아는 곳이야?”

이규리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던진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대답했 다.

“그래. 아는 곳이야.”

“유명한 제작사,맞지? 내가 검색 해 봤더니 꽤 유명한 영화 제작사인 것 같던데.”

“꽤 규모가 큰 제작사이긴 해.” 마지못해 대답한 후 이규한이 재빨 리 생각을 이어나갔다.

‘왜 사거리 픽처스에서 최호인과 계약을 맺은 거지?’

아무리 이해해 보려 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잠시 후 이규한이 최호인에게 물었 다.

“혹시 내게 ‘우리의 범죄는 복수가 아니다’라는 작품을 보여 준 후에 다시 수정 작업을 거쳤어?”

“네,새로 고쳤습니다.”

“그래?”

‘혹시 기가 막히게 수정이 된 게 아닐까?’

이규한이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떠 올리며 물었다.

“수정한 시나리오 책,갖고 있어?”

“한번 봐 주시려고요?”

“일단 줘 봐.”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게 만든 ‘변 호사’의 흥행 덕분에 이규한의 주가 는 더욱 치솟은 상황이었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최호인은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가방에서 ’우 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의 시나 리오 책을 꺼내서 건넸다.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 책을 건네받았다.

‘얼마나 늘었을까?’

잠시 후,이규한의 눈앞에 새로운 숫자가 떠올랐다.

-20,857.

‘늘긴 했네.’

10,203에서 20,857로.

예전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 다’의 시나리오 책에 비해서 수정을 거친 시나리오 책의 감정 결과는 늘 어나 있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증가폭이 너무 적

다는 것이었다.

두 배 이상 예상 관객수가 늘어났 지만, 그래 봐야 이만 명을 간신히 넘긴 수준이었다.

‘호박에 줄 그어 봐야 수박 안 되 는 법이지.’

굳이 비교를 하자면 배정훈 감독이 연출했던 ‘사랑이 운다’와 비슷한 케이스였다.

감정을 마친 후 이규한이 고개를 가웃했다.

‘대체 왜 계약했지?’ 이런 상황임에도 사거리 픽처스에 서 최호인과 연출 계약을 맺은 이유

를 도무지 알아내기 어려웠다.

잠시 후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뗐다.

“최 감독.”

“네? 네.”

호칭이 낯설기 때문일까.

최호인이 당황한 기색으로 대답했 다.

반면,이규리의 표정은 밝아졌다.

“이제 호인 오빠를 감독으로 인정 해 주는 거야?”

이규리가 던진 질문에 대답하는 대 신 이규한이 최호인에게 지시했다.

“시나리오 검토해 볼 테니까 모레

저녁에 내 사무실로 찾아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사무실.

오늘 회의의 안건은 ‘우리의 복수 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작품이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규한이 입을 뗐다.

“시나리오 읽어 보셨어요?”

그 질문을 받은 황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신히 다 읽긴 했어.” “간신히요?”

“가독성이 너무 떨어지더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황진호가 덧붙였다.

“그래도 이 대표가 검토해 보라고 했으니까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꾹 참고 다 읽긴 했어.”

황진호가 한숨을 내쉬며 꺼낸 대답 을 들은 이규한이 미안한 표정을 지 었다.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평가는 둘째치고 시나리오 책을 읽는 내내 계속 의문이 맴돌았어.”

“어떤 의문이요?”

“대체 이 대표가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시나리오 책을 내게 검토해 보라고 지시한 이유가 대체 뭘까 하는 의문 말이야. 혹 시… 아니지?”

“뭘 물으신 겁니까?”

“이 작품,우리가 제작하려는 건 아니지?”

“저희가 제작하면 안 됩니까?”

“당연히 안 되지. ‘변호사’ 때도 제 작을 반대하긴 했지만,그때와는 또 달라. 이번엔 필사적으로 말릴 거 야.”

웃음을 머금었다.

그가 이렇게 강하게 반대 의사를 피력한 것은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작품에서 흥행 요소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그러니 더 자세히 질문할 필요도 없었다.

“미주 씨는 어떻게 봤어?”

“재미없어요.”

“재미가 없다?”

‘변호사’의 시나리오 책을 검토했 을 때와 똑같은 의견이었다.

그때 김미주가 다시 입을 뗐다.

“아,단어를 하나 빠트렸네요.”

“무슨 단어?”

“‘더럽게’란 단어요.”

김미주가 빠트린 단어를 추가하면 “더럽게 재미없어요.”였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반박하지 못했 다.

자신이 읽어 봤음에도 ‘우리의 복 수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시나리오 는 가독성이 무척 떨어지는 데다가 내용도 더럽게 재미가 없었으니까.

1억 관객 제작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