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44화 (144/272)

144화

노이즈 마케팅 (1)

“역풍?”

“노이즈 마케팅 효과가 발생해서 오히려 ‘변호사’라는 작품에 도움을 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김덕원이 차분하게 설명했지만,이 길주는 제대로 알아들은 기색이 아 니었다.

“지금 대표님은 부재중이고,회사 내 주요 사안에 대한 결정권이 내게 있다는 것쯤은 김 팀장도 알고 있겠 지?”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내 지시대로 움직여.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이길주의 말처럼 씨제스 엔터테인 먼트의 대표 이사인 김대환은 해외 출장 중인 상황이었다. 그러니 현재 결정권자는 이길주 전무가 맞았다. 그리고 김덕원의 입장에서는 그 지 시를 거스를 수 없는 입장이었다.

“…알겠습니다.”

김덕원이 대답을 꺼낸 후 속으로 생각했다.

‘이 결정을 머잖아 후회하시게 될 겁니다.’ 커피 전문점 블루문.

창가 쪽 탁자를 차지한 이규한이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을 때였 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이규리가 커피 두 잔을 들고 다가 왔다.

“왜 두 잔이야?” “얘기 좀 하려고.”

이규한이 손목시계를 힐끗 살폈다.

우중완 감독과의 약속 시간까지 아 직 조금 남았다는 것을 확인한 이규 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 그런데 할 얘기가 뭐야?”

“괜찮아?”

다짜고짜 괜찮냐고 묻는 이규리에 게 이규한이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무슨 뜻이야?”

“기사 봤어.”

이규리가 스마트폰을 건넸다.

그 스마트폰을 건네받은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영화는 영화로 봐 달라? 정치 미 화? 논란에 휩싸인 영화 ‘변호사’를 해부하다.〉 이 기사만이 아니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변호사’ 의 정치색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 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규리가 우려 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괜찮아.”

이규한이 대수롭지 않다는 둣 대꾸 했지만,이규리는 여전히 불안한 기

색을 지우지 못했다.

“진짜 괜찮아?”

“응. ‘변호사’라는 작품의 진정성이 결국 논란을 이겨 낼 거야.”

이규한이 재차 대답하며 안주머니 에서 지갑을 꺼냈다.

“만난 김에 부탁 하나만 하자.”

“무슨 부탁인데?”

“이거 받아.”

이규한이 지갑에서 오만 원권 지폐 몇 장을 꺼내서 내밀었다.

“혹시 용돈이야?”

“용돈 아니거든. 이 돈으로 부모님 모시고 극장에 가서 영화 한 편 보

고 맛있는 저녁 사 드려.”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리가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오빠가 직접 하지?”

“쑥스러워서 그래.”

“왜 쑥스러운데?”

“내가 제작한 영화니까.”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이규리가 상 황을 눈치챘다.

“혹시 ‘변호사’를 보란 거야?”

“맞아.”

“왜 ‘변호사’를 극장에서 보여 드 리려는 건데?”

“걱정하고 계실 테니까.”

모른 척,무관심한 척하시지만 부 모님도 영화 제작자 이규한의 행보 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계실 것이 었다.

이규한이 자식이기 때문이었다.

아마 부모님도 이규한이 제작한 ‘변호사’라는 작품이 논란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터였다.

또,많이 걱정하고 계실 터였다.

그런 부모님께 이규한이 찾아가서 괜찮을 거라고 말한다고 해서 걱정 을 덜어 드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선택한 것이 부모 님께 ‘변호사’란 영화를 보여 드리 는 것이었다.

직접 영화를 보고 나면 ‘변호사’란 작품이 정치색과는 무관한 좋은 영 화라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

그리고 이규한이 부모님께 ‘변호 사’라는 작품을 보여 드리려는 이유 는 하나 더 있었다.

‘당신들에게 자랑하고 싶습니다.’

이규한이 이전에 제작했던 영화들.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이번에 제작한 ‘변호사’ 는 이전에 제작했던 작품들과 또 달 랐다.

영화인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제작 한 영화라는 점이 이전에 제작했던 작품들과는 다른 점이었다.

‘당신들의 아들이 이런 영화도 제 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랑도 하고 싶었고,또 칭 찬도 받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 었다.

“들어줄 수 있지?”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대체 이유가 뭔데?”

“이유는 나중에 설명해 줄게. 약속 시간이 다 됐거든.”

있는 우중완 감독의 모습을 이규한 이 눈짓으로 가리켜며 대답했다.

마지못한 표정으로 이규리가 일어 나서 카운터로 돌아갔다.

잠시 후,이규한이 우중완 감독과 마주앉았다.

그런 그는 인사도 건너뛰고 이규한 의 얼굴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걱정했던 것보다 얼굴이 괜찮으시 네요. ‘변호사’라는 작품을 둘러싼 논쟁 때문에 밤잠을 설쳤을 거라 예 상했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아까 이규리에게 했던 대답과 똑같 은 대답을 이규한이 꺼냈을 때였다.

“저도 ‘변호사’를 봤습니다.”

“감독님도 보셨습니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더군요.”

“어떻게 보셨습니까?”

“역시 천재 제작자라는 확신을 가 졌습니다.”

우중완 감독의 대답을 듣고 이규한 이 실소를 터트렸을 때였다.

“정치색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는 작품임에도 전혀 정치색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작품을 구성해서 완성 시킨 것,이게 이규한 대표님이 천 재 제작자라는 증거가 아니겠습니 까? 그리고 하나 더,아무래도 씨제 스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수작을 부 린 것 같습니다.”

“수작… 이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았던 ‘민란’이 1,000개가 훌쩍 넘는 상영관을 확보하면서 스 크린 독과점 논란에 휩싸였지 않습 니까? 그 논란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변호사’의 정치색 논란을 의도적으 로 부추기는 것 같다는 뜻입니다.” 우중완 감독이 열변을 마친 순간 이규한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다고요?”

그 대답을 들은 우중완 감독이 깜 짝 놀랐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담담하실 수 있습니까?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가 괘씸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화도 나지 않으십니까?”

“전혀요.”

“왜 화가 나지 않으시는 겁니까?”

우중완 감독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이규한이 대답 했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입니다.”

……?"

“제가 원하던 대로 움직여 줬으니 까요.”

이규한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아끼고 아꼈던 ‘변호사’의 흥보비 를 일제히 쏟아 부으며 프라임 시간 대 공중파 광고까지 하면서 이규한 이 노렸던 것은 대중들의 분노를 일 으키는 것이었다.

‘변호사’란 작품이 보고 싶은데 상 영관이 없어서 볼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되면 대중들은 분노할 것이었고,그 분노는 자연스 레 1,000개가 훌쩍 넘는 상영관을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는 ‘민란’에게 로 향할 것이었다.

물론 이규한의 목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직접 투자와 배급을 맡았던 ‘민란’ 의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불거지며 당황한 씨제스 엔터테인먼트가 움직 이게 만드는 것이 이규한의 진짜 목 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이규한은 그 목표를 달 성한 셈이었다.

“‘변호사’를 둘러싼 여러 논란이 불거진 것은 결국 노이즈 마케팅 효 과가 있으니까요.” 이규한이 덧붙인 이야기를 들은 우 중완 감독이 두 눈을 빛냈다.

“그럼 여기까지 의도하셨다는 뜻입 니까?”

“맞습니다.”

“정말 의도하셨다고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될 거라 고 처음부터 예상했습니다. 이 불리 한 싸옴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치밀 하게 전략을 수립할 수밖에 없었

우중완 감독이 입을 쩍 벌린 채 말했다.

‘괜히 천재 제작자가 아니시군요.

존경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웃으며 입을 뗐다.

“곧 그 마음이 사라질 겁니다.”

“왜 입니까?”

“제가 깐깐하게 괴롭힐 테니까요. ‘베테랑들’의 시나리오 책을 줘 보 시죠.”

이규한이 오늘 우중완 감독과 미팅 을 하는 이유.

우중완 감독이 수정을 마친 ‘베테 랑들’의 감독고를 확인하기 위해서 였다.

“여기 있습니다.” 긴장한 기색의 우중완 감독이 수정 을 마친 ‘베테랑들’의 시나리오 책 을 이규한에게 건넸다.

‘감정부터 할까?’

잠시 고민하던 이규한이 생각을 바 꿨다.

지금까지 ‘베테랑들’이란 작품의 감정을 한 횟수는 여섯 차례.

감정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뿐이 었다.

그래서 좀 더 아끼기로 결정한 것 이었다.

“일단 살펴보겠습니다. 커피를 드 시고 계시죠.”

그로부터 약 한 시간 후,시나리오 책의 마지막 장을 읽은 이규한이 두 눈을 감았다.

‘잘 고쳤네.’

이규한이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일 까.

우중완 감독은 숲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는 거의 건드 리지 않았다.

대신 나무라 할 수 있는 액션신과 디테일적인 부분을 수정하는 데 공 을 들였다.

“감독님.”

“말씀하시죠.”

“딱 한 곳만 수정하시죠.”

“어떤 부분의 수정을 원하시는 겁 니까?”

“엔딩 신 쪽에서 호흡이 너무 가쁜 것 같습니다.”

이규한이 의견을 제시하자 우중완 감독이 난색을 드러냈다.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물었 다.

“수정하는 것이 내키지 않으십니 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이유는요?”

“엔딩신에서 절정으로 달려가는 과 정인 만큼,쉼표를 주는 것보다는 속도감을 높여서 쭉 달려가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중완 감독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 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었기 때 문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은 이런 경 우의 대처법도 이미 마련해 둔 상태 였다.

“감독님이 연출하셨던 장편 영화 세 편이 모두 손익 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인지 아 십니까?”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려 드리죠. 귀를 닫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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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감독님께서는 제가 드리는 충고는 귀담아 듣겠다고 약속하셨습 니다. 그 약속 기억하십니까?”

“그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럼 약속을 지키시죠.”

“…알겠습니다.”

우중완 감독이 더 고집을 피우는 대신 크게 한숨을 내쉰 후 수긍했 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규한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마 지금도 우중완 감독은 수정을 하는 것이 내키지 않으리라.

다만 약속을 했기에 또 수정을 하 자고 제안한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닌 천재 제작자라고 인정하는 이규한이 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수정을 수락 한 것이리라.

그렇지만 방금 우중완 감독은 본인 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무척 중요 한 한발을 내디딘 셈이었다.

본인의 고집을 꺾고 귀를 열어 타 인의 의견을 처음으로 수용했으니 까.

‘진짜 천재 감독이 되어 가는 과 정.’

이규한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질문했다.

“혹시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좋아하십니까?”

“네,기분이 울적할 때 가끔씩 봅 니다.”

“저희 작품에도 히어로를 등장시키 는 게 어떨까요?”

“‘베테랑들’에 히어로를요?”

“네.”

“어디에 등장시킨단 말입니까? 등 장시킬 공간이 마땅치 않은데요?”

우중완 감독이 재차 난색을 드러낸 순간 이규한이 대답했다.

“제가 말씀드린 히어로는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히어로가 아닙니 다. 일상의 히어로를 말씀드린 겁니 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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