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순수 제작비 + 흥보비 + 각종 부 대 비용.
제작 과정에 투입되는 자금을 모두 통틀어서 총제작비라고 불렀다.
‘변호사’의 총제작비는 약 80억 수 준.
그렇지만 순수 제작비는 60억대 후반 수준이었다.
각종 부대 비용을 제하고도 약 10 억 정도의 흥보비가 아직 남아 있었 다.
‘변호사’가 개봉 4일차에 접어들었 음에도 이규한은 최소한의 홍보비만 사용했었다.
그 흔한 버스나 지하철의 광고판조 차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변호 사’ 개봉 초기에 홍보를 한다 해도 비용 대비 효율이 현저히 낮다고 판 단했기 때문이었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민란’과 빅박스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신의 표적’이 홍보에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는 상 어설프게 홍보에 돈을 써 봐야 효 과가 나타날 확률이 낮았다.
그래서 이규한은 흥보비 지출을 의 도적으로 자제했다.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홍보비 를 절감한 것이 아니었다.
홍보를 했을 때,비용 대비 효율이 극대화될 수 있는 적기가 찾아오기 를 계속 기다렸던 것이었다.
“이제… 때가 됐다.”
약 100개 언저리인 ‘변호사’의 상 영관은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 자와 배급을 맡은 ‘기술자’가 개봉
하면 더 줄어들 것이었다.
그 전에 승부수를 띄워야 했다.
그리고 이규한이 승부수를 띄울 때 가 됐다고 판단한 근거는 바로 좌석 점유율이었다.
개봉 4일차에 접어든 ‘변호사’의 네티즌 평점은 8점대까지 치솟았다.
박스 오피스 순위는 4위까지 치고 올라갔고,예매율 순위에서도 2위에 올랐다.
그렇지만 가장 고무적인 것은 ‘변 호사’의 좌석 점유율이 60%를 돌파 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변호사’라는 작품을 보고 싶어 하 는 관객은 많지만,상영관이 부족하 다는 뜻이었다.
-대체 어딜 가야 ‘변호사’란 작품 을 볼 수 있는 거임?
-재밌단 소문은 무성한데 극장에 서 보려고 해도 당최 볼 수가 없음.
-‘민란’의 반,아니, 반의반만이라 도 상영관 좀 줘라.
-‘변호사’처럼 좋은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은 진짜 대기업의 횡포 아니냐?
실제로 관람 평을 남기는 공간에도 ‘변호사’의 상영관이 너무 부족하다 는 불평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 승부수가 먹혀들어야 하는데.”
이규한이 작게 혼잣말을 꺼내며 휴 대 전화를 집어 들었다.
“재판장님,이의 있습니다. 이건 아 니잖아요? 이거 옳지 않은 거잖습니 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습니까?”
“해야겠습니다. 지금까지 쌓은 것 을 다 잃는다고 해도 제가 이 사건
수임해서 변호해 야겠습니다.”
“모두가 외면했을 때, 당신을 향해 손을 내밀어 준 단 한 명의 변호사. 웃음과 감동,그리고 묵직한 울림을 전해 줄 당신을 위한 ‘변호사’. 현재 절찬 상영 중입니다. 가까운 극장을 찾아 주세요.”
프라임 시간대라 할 수 있는 공중 파 8시 뉴스가 시작되기 전, 영화 ‘변호사’의 TV 광고가 흘러나왔다.
그 광고를 지켜보던 이규한의 입가 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연기 참 잘해.”
잠시에 불과했지만,브라운관을 통 해서 보여진 송강오의 연기에서는 진정성이 묻어났다. 그리고 이규한 이 웃은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거짓말했네.”
광고 말미에 “현재 절찬 상영 중입 니다. 가까운 극장을 찾아주세요.”라 는 카피가 등장했다. 그렇지만 이 광고 카피는 거짓말이었다.
가까운 극장을 찾아가 봐야 ‘변호 사’를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이규한이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 연예면 을 훌어보고 있던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민란’의 상영관 독점. 관객의 선 택권을 빼앗는 독과점적 행태,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기사가 포털 사이트 연예면 메인에 떠올라 있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클릭했다.
기사의 내용은 메이저 투자 배급사 들이 투자와 배급을 맡은 ‘민란’과 ‘신의 표적’이 1,500개가 넘는 상영 관을 차지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그리고 기사 말미에 ‘변호사’에 대 해서도 언급했다.
-현재 좌석 점유율에서 압도적으 로 1위를 달리는 작품은 ‘변호사’이 다. ‘변호사’는 60%대 초반의 좌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20%대에 불과한 좌석 점유율을 기록하는 ‘민란’과 세 배 가까운 격차를 벌리고 있다. 그러나 상영관의 수에서 ‘변호사’는 ‘민란’의 1/10도 확보하지 못했다. ‘변호사’가 메이저 투자 배급사에서 투자와 배급을 한 작품이 아니기 때 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변 호사’를 보고 싶어서 극장에 찾아갔 는데 ‘민란’과 ‘신의 표적’밖에 상영 하지 않아서 그냥 발길을 돌렸다는 관객들의 쏟아지는 불평에 이제는 우리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
기사를 꼼꼼히 읽은 이규한이 스크 롤을 아래로 내렸다.
-‘민란’ 재미없음. ‘변호사’가 백배 더 재밌음.
-와,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 니냐? ‘변호사’ 보려면 버스랑 지하 철 갈아타고 두 시간 가야 함.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냐?
-관객의 작품 선택권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게 다 일부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 때문임. 특히 씨제스 엔터테인먼트가 진짜 심함.
-‘변호사’ 보고 싶어요. 제발 상영 관 좀 늘려 주세요.
기사 하단에 달려 있는 댓글들까지 확인한 이규한이 팔짱을 꼈다.
내심 원하던 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지만,아직 샴페인을 터트리기 에는 일렀다.
“나비 효과.”
이규한이 두 눈을 빛내며 혼잣말을 꺼냈다.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란 브라 질에 있는 나비가 날개를 한 번 퍼 덕인 것이 대기에 영향을 미쳐 긴 시간이 흐른 후 미국을 강타하는 토 네이도와 같은 엄청난 기후 변화를 발생시킨다는 예에 빗댄 표현이었 다.
즉,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 후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결과로 이 어진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이 승부수를 띄운 후 기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비 효과 였다.
잠시 후 이규한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뗐다.
“이제 씨제스 엔터테인먼트가 과연 움직이는가 여부가 관건이 되겠군.”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홍보팀 사무 실
홍보팀장인 김덕원은 전무이사 이 길주가 사무실로 들어서는 것을 확 인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무님께서 어쩐 일로……?”
“이거 뭐야?”
이길주가 출력한 기사를 내던졌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이 좋은 영화 률,또 한국 영화계를 죽이고 있 다.〉
극단적인 기사의 제목을 확인한 김 덕원이 표정을 굳혔다.
“죄송합니다.”
김덕원이 사과했지만 이길주의 화 는 풀리지 않았다.
“죄송하다는 말이 전부야? 어떤 대 책을 세워야 할 것 아냐?”
“대책… 이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지고 있잖아. 김 팀장은 이런 상황이 발생한 원인이 뭐라고 생각해?”
“제가 판단하기에는… ‘민란’의 완 성도입니다.”
잠시 망설이던 김덕원이 대답했다.
“‘민란’의 완성도가 떨어져서 이런 일이 생겼다?”
“그렇습니다.”
“왜 그렇게 판단한 거지?”
이길주의 질문을 받은 김덕원이 대 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마인지 알고 계십니까?”
“한 8점 정도 되나? 일주일 전쯤 확인했을 때는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6점대로 하락했습니다. 정 확히 6.25점입니다. 평점도 낮을 뿐 만 아니라,관람 평도 좋지 않은 편 입니다.” -인간적으로 너무 재미없다.
-뻔한 설정에 뻔한 신파,이제 지 겹다 지겨워.
-극장에 하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봤는데 진짜 재미없 음. 그런데 평점이 왜 이리 높아?
알바 쓰는 거 맞나 보네.
-‘변호사’〉‘신의 표적’〉〉〉‘민란’, 인정하는 사람 공감 눌러라.
‘민란’의 관람 평을 떠올리며 김덕 원이 다시 입을 뗐다.
“딱히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달라진 게 없다는 건 무슨 소리 지?”
“‘민란’이 확보한 상영관의 개수가 1,000개를 넘었다는 이유로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기존에도 별반 다 르지 않았습니다. 씨제스 엔터테인 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았던 기 대작들은 대부분 1,???개가 넘는 상 영관을 확보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는 아무런 말이 나 오지 않다가,‘민란’에만 이런 비난 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민란’의 작품성과 완성도가 떨어지 는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판 단한 이유입니다.”
김덕원이 자신의 의견을 똑 부러지 게 밝혔다. 그렇지만 이길주는 영 마뜩잖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뗐 다.
“이유가 하나 더 있었구만.”
“난 이런 사태가 벌어진 이유가 다 른 데 있다고 판단했거든. 그런데 방금 김 팀장과 대화를 나누고 나서 이유 하나를 더 찾아냈어. 김 팀장 이 무능하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 어진 거야.”
이길주가 거침없이 쏟아 낸 독설을 듣고 김덕원이 표정을 굳혔을 때였 다.
“이번 사태의 원인조차 제대로 진 단하지 못할 정도로 자네가 무능하 기 때문에 사태가 더 커진 거야.”
이길주가 언성을 높였다.
팀원들이 불편한 시선을 던지는 것 을 확인한 김덕원이 치밀어 오르는
“그럼 전무님께서 진단한 원인은 무엇입니까?”
“내가 판단하기에는 ‘변호사’라는 작품 때문이네. 그리고 진단이 정확 하면 해결도 쉬운 법이지.”
“ <7"
“‘변호사’라는 작품을 죽이면 이번 사태도 끝이 날 거야.”
“어떻게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약점을 공략해야지. ‘변호사’의 약 점이 정치색이 짙다는 것임을 모르 는 건 아니겠지? 기자들을 움직여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란 뜻
이길주가 입 밖으로 꺼낸 해결책을 들은 김덕원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 었다. 그런 그가 떠올린 것은 얼마 전 김대환이 했던 말이었다.
“내가 보기엔 꽤 흥행할 것 같군. 약점은 강점이 되기도 하거든. 아까 장 팀장이 말했던 ‘변호사’의 약점 가운데 하나가 정치색이 묻어난다는 거였지? 그게 투자 유치 과정에서 약점이 된다는 것은 분명해. 투자 배급사 입장에서는 투자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지만 만 약 투자 유치 과정을 넘어 개봉하게 된다면 약점이 강점으로 바뀔 수도
있어. 작품에 대한 논란이 분명히 불거질 거거든. 노이즈 마케팅과 비 숫한 개념이지. 그 단계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작품성이지. 작품이 좋다 면 논란을 이겨 내고 흥행할 수 있 을 거야. 그리고 내가 판단하기에 ‘변호사’라는 작품은 충분히 작품성 을 갖췄어.”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투자팀장인 장수찬에게 했던 이야기는 당시 동 석했던 김덕원의 기억 속에 남아 있 었다.
그래서 김덕원이 말했다.
“만약 대표님이라면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왜 그렇게 판단하는 거지?”
“자칫 잘못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