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41화 (141/272)

141 화

올 겨울에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했으니 이미 ‘기술자’란 작품은 촬 영을 마치고 난 후일 터였다.

즉,시나리오 수정이나 재촬영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아직 작품이 개봉도 하기 전인데 미리 이런 사실을 알려 줘서 실망감 을 안겨 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경쟁작들의 면면은 어때?”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하 는 ‘민란’이란 작품이 최대 기대작 으로 꼽히고 있어요. 빅박스에서 배 급하는 ‘신의 표적’과 NEXT 엔터 테인먼트에서 배급하는 ‘그 날’ 순 으로 기대치가 높게 형성되어 있는 상황이에요.”

권지영의 설명을 들은 이규한이 작 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방금 언급한 세 작품 가운 데 이규한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민란’이란 작품뿐이었다.

나머지 두 작품은 이규한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은 걸로 봐서 홍

행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승자 독식 구조이니까.’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올 겨울 극장 성수기 시즌 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고 유한수 팀장이 밝혔었다. 그렇지 만 최종 승자가 되는 작품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현재로써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 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민란’이 최 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고.

“전략은 짰어?”

이규한이 다시 질문하자,권지영이 대답했다.

"'민란'을 제외하고는 눈치 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어요. 개봉 시기가 흥행과 직결되는 상황이니까요."

"그러니까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민란'은 개봉일이 이미 정해졌단 뜻이지?"

"아직 대외적으로 공표는 안 했는데 12월 23일로 정해졌어요. '민란'을 피해서 앞에 개봉하느냐, 아니면 뒤에 개봉하느냐를 두고 나머지 작품들이 눈치 싸움을 펼치고 있는 중이구고요."

-올 겨울 성수기 시장 최대 기대작인 '민란'을 피해서 개봉하자.

쉽게 말해 현재 이런 분위기가 형 성되어 있는 셈이었다.

자신의 짐작대로 상황이 홀러가고 있음을 알아챈 이규한이 다시 질문 했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는 결론을 내 렸어?”

“거의요. ‘민란’이 개봉하고 난 후 일주일 뒤로 개봉일을 생각하고 있 어요.”

“다른 투자 배급사들은?”

르죠. 그런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빅 박스는 ‘민란’ 개봉 한 주 전에 ‘신 의 표적’을 개봉해서 주도권을 움켜 쥐려 한다고 하고,NEXT 엔터테인 먼트는 ‘그 날’ 개봉을 ‘민란’ 개봉 일 이주 뒤로 잡았다고 해요.”

‘소문이 거의 정확하네.’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했다.

권지영을 찾아오기 전, 이미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인 김 태훈과 통화를 했었다. 그리고 이규 한이 질문을 던졌을 때,김태훈도 같은 대답을 꺼냈었다.

이것이 권지영이 입에 올렸던 소문 이 신빙성이 있다는 증거.

그때 권지영이 물었다.

“참,‘변호사’는 개봉 일정을 언제 로 잡았어요?”

이규한이 대답했다.

“올 겨울 극장 성수기 시즌을 생각 하고 있어.”

“네?”

“‘민란’과 정면 대결을 펼쳐 볼까 생각 중이야.”

“왜요?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데요?”

권지영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이미 비슷한 반응을 경험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너무 무모하다고 생각하 지 않아?”

‘변호사’의 개봉일을 씨제스 엔터 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민란’과 같은 날로 할 생각이라는 이규한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김 태훈에게서 돌아왔던 반응이었다.

“권 팀장,기억 안 나?”

“뭐가요?”

“모 아니면 도.” “‘수상한 여자’와 ‘광안리’의 개봉 일을 같은 날로 잡았던 것 말이야. 모두가 무모하다고 만류했지만,결 과가 어땠어?”

당시 두 작품의 맞대결 결과는 모 두의 예측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수상한 여자’가 ‘광안리’를 상대로 말 그대로 압승을 거두었으니까.

그래서 이규한이 예로 들었지만, 권지영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요. 당시에 는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 간의 대결 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권지영의 지적은 정곡을 찔렀다.

당시와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수상한 여자’의 투자와 배급은 자 체 극장 체인을 갖고 있는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맡았지만,‘변호 사’의 투자는 자체 극장 체인을 보 유하고 있지 않은 케이 컴퍼니에서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알아. 그래서 권 팀장에게 부탁이 있어.”

“저한테 부탁할 게 있다고요?”

“맞아.”

“어떤 부탁인데요?”

“로터스 극장 상영관을 좀 잡아 줘.” 이규한이 부탁을 꺼낸 순간, 권지 영이 난색을 드러냈다.

“그건 좀 곤란한데요. 상영관을 잡 는 건 제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부분도 아닐뿐더러,저희도 ‘기술자’ 흥행에 목을 매고 있거든요.”

“나도 알아. 그래서 일주일만 부탁 하려는 거야.”

“일주일… 이요?”

“‘기술자’가 개봉할 때는 당연히 로터스 극장에서 그 작품을 상영해 야지. 그 사이 일주일간만 ‘변호사’ 가 상영될 수 있게 해 줘.”

“그 일주일이 지나면요?” “둘 중 하나지. 쓸쓸히 묻히거나, 역주행을 하거나.”

?

“내가 바라는 건 물론 역주행이 야.”

이규한이 내심 바라고 있는 큰 그 림을 권지영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 나 권지영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 는 표정이었다.

“‘변호사’의 제작비가 얼마라고 했 “총제작비는 80억 수준이야.”

“적지 않네요. 제작비 규모를 감안 하면 너무 위험한 도박수이지 않을

까요?”

“위험한 도박인 건 사실이야.”

“차라리 극장가 비성수기 시즌에 개봉하는 편이 좀 더 안전할 것 같 은데요?”

권지영의 충고를 들은 이규한이 희 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누가 투자 배급사 직원 아니랄까 봐.’

권지영 팀장만이 아니었다.

역시 투자 배급사에서 근무하는 김 태훈 팀장과 유한수 팀장도 같은 충 고를 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같은 충고를 한 이유는 투자의 제1원칙이

안정성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규한의 생각은 확고했다.

“비성수기 시즌에 개봉하면 잘해야 본전이야. 그래서 모 아니면 도의 도박을 해 보려는 거야.”

“그러다가 본전도 못 찾으면요?”

“믿어.”

“뭘요?”

“‘변호사’의 작품성과 완성도를 믿 는다는 뜻이야.”

무모한 도박이 아니었다.

이규한은 ‘변호사’라는 작품에 대 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과감한 도박 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 조건이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노력해 볼게요.”

“고마워.”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그래 봐 야 ‘변호사’ 상영관 확보를 많이 하 지는 못할 테니까요.”

“이미 각오하고 있어.”

이규한이 대답한 후 속으로 생각했 다.

‘이젠 기도할 수밖에.’

상영관의 개수였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민란’은 개봉 첫날 1,???개가 넘은 상영관을 독식하다 시피 했다.

빅박스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신의 표적’은 ‘민란’의 개봉으로 700개 후반이었던 상영관 수가 반 토막이 났다.

마지막으로 케이 컴퍼니에서 투자 를 한 ‘변호사’는 채 100개의 상영 관도 확보하지 못한 채 불안한 출항

을 알렸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독과점의 폐 해 아냐?”

황진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언성 을 높였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영화 ‘민란’이 개봉 첫 날, 1,100개가 넘는 상영관을 확보 한 것으로 인해 분통이 터졌기 때문 이다.

“‘민란’의 제작사가 어딘지 아세

요?”

“어느 제작사인데?”

“사거리 픽처스요.”

“사거리 픽처스라면……?”

기억을 더듬는 황진호를 돕기 위해 이규한이 덧붙였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나 마찬가지예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미간을 좁힌 채 잠시 생각하던 황 진호가 다시 언성을 높였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과 투자 그리고 배급까지 다 한 거잖 아.”

“맞아요. 그래서 더욱 ‘민란’의 홍 행에 총력전을 기울이는 거죠.” 북 치고 장구 치고,혼자 다 하겠다 는 뜻이잖아?”

“형 말처럼 옳지 않죠.”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에서 투자와 배급을 함께 맡는 것도 이규한은 불 만을 갖고 있었다.

투자와 배급을 함께 맡는 것만으로 도 소위 공룡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영화계에서 막강한 파워를 갖기 때 문이었다.

그런데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이 제 작까지 참여한다면?

중소 규모의 영화 제작사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었다.

또, 장기적으로는 메이저 투자 배 급사들의 입맛에 맞는 영화만 제작 되어서 다양한 영화가 개봉하는 것 이 점점 불가능해질 터였다.

“그래서 더 이기고 싶네요.”

잠시 후,이규한이 각오를 밝히자 황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승부욕이 막 불타오른다. 그 런데…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민 란’을 이기기에는 ‘변호사’의 상영관 이 너무 부족하잖아.”

‘민란’이 확보한 개봉 첫날 상영관 은 1,100여 개.

상영관은 95개에 불과했다.

상영관의 숫자만 비교하면 1/10에 도 미치지 못했다.

황진호가 우려하는 것이 어쩌면 당 연했다.

“‘공은 둥글다’라는 얘기 들어 보 셨죠?”

“들어 보긴 했는데 그 얘긴 갑자기 왜 꺼내는 거야?”

“축구 경기에서 팬들이 가장 열광 할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때입니 다. 그리고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공이 둥글기 때문이죠. 축구장 안에서는 어떤 일이든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선수가 퇴장을 당해서 수 적으로 열세인 팀이 승리를 거두는 경우도 발생하죠.”

“벌써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단 뜻이지?”

“일주일 입니다.”

…?"

“일주일 안에 승패가 갈릴 겁니 다.”

〈박스오피스 순위〉 1위. 민란.

2위. 신의 표적.

9위. 변호사.

개봉 첫날,‘변호사’는 박스 오피스 순위에서 9위로 10위권 내에 간신 히 턱걸이를 하는 데서 그쳤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당황하거나 실 망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기 때문 이었다.

반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직원들 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오전 회의에서 이규한이 아이스커 피를 마실 때,황진호가 초조한 표 정으로 물었다.

“이 대표도 애가 타지?”

“전 괜찮습니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괜찮아. 평점 확인하고 나서 이제 포기한 것 아 냐?”

황진호의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쓰 게 웃었다.

-네티즌 평점: 2.11.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영화 ‘변호 사’의 현재 평점이었다. 그리고 관

람 평도 평점 못지않게 나빴다.

-세상에 나올 가치가 없는 작품. -감성팔이 하려는 뻔한 영화.

-이 영화를 만든 의도가 대체 뭐 냐?

-단언컨대 올해 최악의 영화.

이규한도 ‘변호사’의 평점과 관람 평을 이미 확인한 후였다.

그렇지만 황진호의 예상처럼 ‘변호 사’라는 작품을 아직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규한이 내심 바라던 대로

상황이 홀러가고 있었다. “기록이라고 하더군요.” “뭐가 기록이란 거야?”

“평점 2점대가 나온 것 말입니다. 최초의 기록이라고 하더라고요.”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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