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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138화 (138/272)

138화

“일전에 빅스빅 픽처스 장준경 대 표와 함께 미팅을 했던 것 기억하십 니까?”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우중완 감독님이 제게 지금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을 후회할 거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기억하 십니까?”

“…기억하고 있습니다.”

살짝 뜸을 들인 후 우중완 감독이 대답했다.

그런 그의 낯빛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당시 자신이 했던 오만한 발언이 내심 부끄럽기 때문이리라.

“그때 제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제가 했던 말이 옳았던 것 같네요.” “감독님이 연출하셨던 ‘생존의 법 칙’이 흥행에 실패했으니,당연히 계약을 할 때 연출료가 줄어들 겁니 다.” 자책하고 있는 우중완 감독에게 이 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상업 영화 감독의 몸값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작품의 흥행 성적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그냥 듣는 것과 연 출료가 확 줄어들어 있는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직접 경험하는 것.

체감상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 다.

그리고 이것이 우중완 감독에게 새 삼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터였다.

“각오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데… 막상 이런 순간이 닥치니 당혹 스럽 네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어떤 방법입니까?”

“이번 작품을 흥행시킨다면, 다시 감독님의 몸값이 올라갈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각오를 다지던 우 중완 감독이 질문했다.

“조건은 그게 다입니까?”

“하나 더 있습니다. 작품 수정의 전권을 ‘베테랑들’의 공동 제작자인 저와 장준경 대표에게 위임해 주십

예상치 못했던 요구 조건이기 때문 일까.

우중완 감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 어졌다.

“그럼 저는 뭘 합니까?”

“연출에 집중하십시오.”

“그렇다면 카메라 감독과 다를 바 가 없지 않습니까?”

우중완 감독이 발끈한 순간 이규한 이 고개를 흔들었다.

“단단히 착각하고 계시군요. 저는 수정을 하지 말라고 말씀드린 게 아 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조금 전에……

“수정은 하셔도 됩니다. 단,제게 허락을 받으셔야 한다는 뜻이었습니 다.”

“왜 그래야 합니까?”

이규한이 대답했다.

“감독님은 숲을 보지 못하시니까 요.”

“제가 나무는 보지만 숲은 보지 못 한다는 뜻입니까?”

우중완 감독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물었다.

‘반성을 하긴 했지만,아직 자신의 문제가 뭔지는 파악하지 못했어.’ 현재 우중완 감독의 상태를 파악하 는 데 성공한 이규한이 대답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몇 그루의 나 무를 가꿀 순 있습니다. 그렇지만 숲을 조경하는 역량은 부족하다는 게 제가 내린 판단입니다.”

거침없는 이규한의 평가에 우중완 감독의 입술이 달싹였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그는 끝내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 순간 이규한이 덧붙였다.

“감독님의 능력을 폄하하는 게 아 닙니다. 몇 그루의 나무를 예쁘게 가꿀 수 있는 능력조차 없는 감독들 도 수두룩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도 움을 드리려는 겁니다.”

“어떤 도움을 주겠다는 말씀입니 까?”

“숲은 제가 조경하겠습니다. 감독 님은 그 숲의 핵심이 될 수 있는 몇 그루의 나무들을 보기 좋게 가꿔 주시면 됩니다. 아마 그게 서로에게 윈윈이 될 겁니다.”

우중완 감독이 가진 천재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끝에 이규한이 내린 결론이었다.

이규한이 내건 조건을 선뜻 수락하 지 못하고,고민하는 우중완 감독을 확인한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지난번에 제게 후회할 거라고 말 씀하셨죠? 그 말씀 그대로 돌려드리 겠습니다.”

“제가 드린 제안을 거절하시면 아 마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왜 후회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번 기회가 감독님께 주어지는 마지막 기회가 될 공산이 크니까 요.”

이규한이 여유 있게 기다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 문일까.

대답했다.

“제게 마지막 기회를 주셔서 감사 합니다.” “시사회 때보다 더 떨리네.”

책상 앞에 앉은 이규한이 혼잣말을 꺼냈다.

양우섭 감독이 촬영을 마친 ‘변호 사’ 초반부 영상이 도착했지만,이 규한은 선뜻 영상을 재생시키지 못 하고 계속 망설였다.

“이십억짜리 영상이네.” 이규한은 ‘변호사’ 초반부 촬영을 진행하기 위해서 이미 20억을 투자 한 상황이었다.

만약 양우섭 감독이 촬영한 ‘변호 사’ 초반부 영상이 기대에 한참 미 치지 못한다면?

20억의 투자금을 고스란히 허공에 날릴 위기에 처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규한이 잔뜩 긴장하고 있 는 이유.

그러나 계속 확인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내가 내렸던 선택이야.”

‘설령 최악의 결과물이 나왔더라도

양우섭 감독을 원망하지는 말자.’

이렇게 각오를 다지며 이규한이 재 생 버튼을 눌렀다.

“부동산이랑 세금? 변호사가 그런 것도 합니까?”

“돈 되는 건 다 합니다. 변호사가 무슨 벼슬입니까?”

“그럼 비싼 거 아잉교?”

“박리다매. 이게 제 영업 전략입니 다.”

“역시 변호사 양반이 어디가 달라 도 다르네. 이리 어려운 말을 쓰는 걸 보니 믿음이 팍팍 가입니다.”

여기는 시사회장이 아니었다.

이 영상을 보는 관객은 이규한이 유일했다.

‘이 부분에서 웃음이 터졌을 거야.’ 그래서 혼자서 관객들의 반응을 예 상하면서 이규한이 계속 영상을 지 켜 보았다.

“아지매,이 집 내한테 파소.”

“우리 집 안 내놨는데요?”

“부동산에서 내놨다 카던데.”

“아인데요. 착각한 거 아잉교?”

“일단 좀 봅시다.”

막무가내로 집안으로 들어간 송강 오가 베란다의 붙박이 수납장을 열 자, 특별한 벽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래의 변호사 송성문이 만든 집.

벽돌에 적혀 있는 문구를 바라보던 송강오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걸 렸다.

경찰에 신고하려는 주인아주머니의 전화를 렛은 송강오가 명함을 건넸 다.

“내 변호사입니다. 잘나가서 돈도 많이 번 변호사입니다. 이 집 내한 테 파세요. 제가 시세보다 천만 원 더 쳐 드릴게요.”

“시세보다 천만 원 더요?”

“내가 이 집을 꼭 사야 할 이유가 있어서 그랍니다.” 뚝

영상이 멈추었지만,엔딩 크레딧은 올라가지 않았다.

아직 작품의 초반부였기 때문이었 다.

“후우.”

최소 이십억이 걸려 있는 ‘변호사’ 의 초반부 영상을 모두 보고 난 후, 이규한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지만 답답한 마음을 표출한 한숨 이 아니었다.

오히려 안도의 한숨이었다.

‘좋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양우섭 감독이 얼마나 간 절한 마음으로 연출에 임했는지 느 낄 수 있었다.

또,송강오의 연기에서는 실존 인 물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고심 하고 또 고심한 흔적이 묻어나고 있 었다.

그런데 어찌 좋지 않을 수 있을까.

여전히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이규한이 작게 혼잣말을 꺼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케이 컴퍼니.

대한민국에서 다섯 번째로 규모가 큰 영화 투자사였다.

쉽게 말해 네 곳의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을 제외하면,가장 자금력 이 있는 투자사란 뜻이었다.

케이 컴퍼니의 투자팀장인 유한수 가 도착하길 기다리면서 혼자 회의 실에 앉아 있던 이규한이 오른손을 들었다.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는 손바닥을 확인한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기적이 벌어지면서 다시 한 번 제 작자로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난 후,이규한은 투자 유치 과정에 서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었다.

비교적 쉽게 작품에 대한 투자를 유치해 왔었던 이규한이었는데.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전액 투자도 아닌 부분 투자라도 받기 위해서 투자 배급사의 문턱이 닮을 정도로 뻔질나게 찾아갔던 시 절의 기억들이 떠오른 순간,이규한 의 입가에 떠올라 있던 쓴웃음이 짙

어 졌다.

“나쁘지 않네.”

오랜만에 다시 느끼는 긴장감이 나 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었다.

그때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유한수 팀장이 들어섰다.

“이규한 대표님,기다리게 해서 죄 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영화 제작자로 살다 보니,기다리는 것에는 이골이 났습 니다.”

이규한이 유한수 팀장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시 선을 피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이규 한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투자 배급사를 찾아갔을 때 투자 유치에 성공을 했든 실패를 했든 간 에 그 과정들은 차곡차곡 경험으로 쌓였다. 그래서 상대의 눈만 봐도 투자 유치의 성패 여부를 대략 짐작 할 수 있었다.

유한수 팀장이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고 있다는 것.

‘변호사’에 투자를 할 확률이 높다 는 증거였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확률이 높을 뿐이었다.

투자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전까지 는 안심해서는 안 됐다. 그래서 이 규한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질문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미 케이 컴퍼니에 ‘변호사’ 초반 부 촬영 분량을 보낸 상황.

이규한이 묻자,유한수 팀장이 코 끝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혹스러웠습 니다.”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물었다.

“왜 당혹스러웠던 겁니까?”

“우선 초반부 촬영을 마치고 투자 심사를 받기 위해서 찾아오는 경우

가 극히 드문 케이스이기 때문입니 다.”

새삼스런 시선을 던지던 유한수 팀 장이 다시 입을 뗐다.

“또 하나 당혹스러웠던 점은 왜 ‘변호사’란 작품이 투자를 받기 위 해서 케이 컴퍼니까지 찾아왔을까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입니 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쉽게 말해 순서가 맞지 않다는 생 각이 들었습니다. 왜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을 건너뛰고 저희를 찾아오 신 겁니까?”

유한수 팀장이 던진 질문을 들은 이규한은 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 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건너뛰지 않았습니다.”

“네? 그럼……?”

“투자 심사에서 물을 먹었습니다.”

이규한이 솔직하게 대답한 순간, 유한수 팀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 정을 지은 채 물었다.

“왜요?”

“투자 결정을 내리는 데 마음에 걸 리거나 부담을 느낀 이유가 있었겠 죠. 제가 짐작하는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우선 고인이 된 송성문 변 호사의 이야기를 그리는 만큼 정치 색이 짙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또 연출을 맡은 양우섭 감독이 신인 감독이라는 점도 약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이규한이 굳이 감추려 들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유한수 팀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 이며 입을 뗐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가네요.”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가시는 겁 니까?”

“제가 직접 봤던 ‘변호사’라는 작 품. 그런 약점들을 충분히 뛰어넘을 정도로 좋은 작품이라고 판단했거든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일단 안 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유한수 팀장이 꺼낸 이야기. 말 그대로 극찬이었기 때문이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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