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35화 (135/272)

135화

몰락한 천재 감독 (1) “굳이 설명해 주시지 않아도 이 대 표님이 얼마나 큰 위험을 무릅썼는 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제게도 그리고 ‘변호사’라는 작품에도 마지 막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도요. 이 대표님과 ‘변호사’라는 작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죽을힘을 다하겠습니 다.” 이규한의 의도는 먹혀들었다.

다부진 각오를 밝히던 양우섭 감독 을 확인한 이규한이 웃음기를 쏙 뺀 채 덧붙였다.

“저는 감독님만 믿겠습니다.” 이규한이 ‘변호사’라는 작품에 투 자한 이십억.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일반 직장인들은 평생을 모아도 만 져 보지 못할 정도로 큰돈이었다.

그래서일까.

“제작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서 그렇게 큰돈을 벌었으면 건물을 사 서 세를 받아먹고 살거나,다른 일 을 하면서 사는 게 더 안전하지 않 습니까?”

간혹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 다.

실제로 대박 영화들을 잇따라 제작 해서 수백억을 벌어들였던 영화 제 작자가 제작했던 다른 영화들이 흥 행에 실패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빈 털터리 신세가 된 경우도 존재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그가 영화계를 떠나지 않았던, 아니,영화계를 떠나 지 못했던 이유를 알고 있다.

이규한만이 아니라 영화를 하는 사 람들이라면 모두 그 이유를 알고 있 다.

바로 영화가 가진 마력 때문이었 다.

한번 영화판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 평생 이 바닥을 떠나지 못한다는 이 야기가 나온 것도 바로 영화가 가진 마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규한 역시 영화가 가진 마력 때문에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 자본을 투자한 상황이었다.

걱정되는 마음?

당연히 없을 리 없었다.

그래서 직접 ‘변호사’ 촬영이 시작 된 현장으로 찾아가서 촬영이 잘 진 행되고 있는지 체크해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꾹 참았다.

가뜩이나 부담이 클 양우섭 감독인 데 자신이 촬영 현장에 찾아가면 더 큰 부담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뭘 하면서 기다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멍하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이규한이 잠 시 후 두 눈을 빛냈다.

재 감독의 몰락을 알리다〉

기사의 제목을 확인한 이규한이 혼 잣말을 꺼냈다.

“언제 개봉했던 거야?”

‘생존의 법칙’은 우중완 감독이 준 비하던 작품이었다.

정작 이규한은 ‘생존의 법칙’이 개 봉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어느새 극장 상영을 끝마치고 쓸쓸히 퇴장 하고 있었다.

“관객수가 얼마나 들었지?”

이규한이 당시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오십만 명이 조금 넘었었

잠시 후,이규한은 ‘생존의 법칙’의 시나리오를 들어 올렸을 때 감정 결 과를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정확히 540,786명.

그리고 이규한이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서 확인한 ‘생존의 법칙’의 최종 관객수는 약 37만 명이었다.

“더 줄었다?”

당시에 감정했던 ‘생존의 법칙’의 예상 관객수에 비해,실제 최종 관 객수는 약 15만 명가량 더 적었다.

정확한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지 만,‘생존의 법칙’ 제작 과정에서 어

“이제 때가 된 것 같네.”

‘데스매치, 카운트다운’과 ‘죽어도 산다’가 손익 분기점을 넘기지 못하 며 흥행에 실패했을 때만 해도 우중 완 감독은 아직 천재의 오만함이 남 아 있었다.

그렇지만 세 번째 작품인 ‘생존의 법칙’까지 흥행 참패를 기록한 지금 은 그의 마음가짐이 달라졌을 가능 성이 높았다.

세 작품 연속으로 흥행에 실패하며 손익 분기점조차 넘기지 못한 영화 감독이 차기작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극히 낮았다.

우중완 감독도 마찬가지일 터.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더 초 조해질 것이었고,그 과정에서 자연 히 마음가짐도 달라졌을 것이었다.

이것이 이규한이 때가 됐다고 판단 한 이유였다.

“술 한잔 사 줘야겠네.”

휴대 전화를 들어 올린 이규한이 우중완 감독의 전화번호를 검색했 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 전 이규한이 쓰게 웃으며 혼잣말을 꺼냈다.

“요새 위로주 살 일이 잦네.” 잠실역 인근에 위치한 호프집.

약속 장소에 도착한 이규한이 손목 시계를 살폈다.

약속 시간인 오후 8시보다 약 10 분가량 일찍 도착했음을 확인한 후, 이규한이 호프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 대표님.”

당연히 우중완 감독이 약속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도착할 거라 판단했 던 이규한의 예상은 빗나갔다.

미리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기다리 다가 벌떡 일어서서 자신에게 꾸벅 인사하는 우중완 감독의 모습을 발 견한 이규한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 가 번졌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것은 물론이고,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

첫 만남 때와는 무척 달랐다.

이런 달라진 모습이 지금 우중완 감독이 무척 초조해하고 있다는 반 중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웃음을 지 었던 것이다.

잠시 후,이규한이 입가에 떠올렸 던 미소를 지운 채 우중완 감독과 마주 앉았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간단한 인사말을 건넸을 뿐이었는 데.

우중완 감독은 가볍게 맞받지 못하 고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잘 못 지냈습니다. 얼마 전에 개 봉했던 ‘생존의 법칙’이 폭삭 망했 거든요.”

이규한이 굳이 질문할 필요도 없었 다.

우중완 감독은 본인이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해서 술술 털어놓기 시작 했다.

망한 후,세상이 제 뜻대로 되지 않 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세 상이 참 무서운 걸 깨달았습니다.”

“왜 그렇게 느끼신 겁니까?”

“연락이 뚝 끊겼습니다. 그리고 제 가 먼저 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친하게 지냈던 제작자분들 중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더군요.”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으니까.’

이규한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 주는 것은 너 무 잔인할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 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이 대표님의 연락이 더 반 가웠습니다.”

우중완 감독이 두 눈을 빛내며 말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웃으며 입을 뗐다.

“너무 기대하지 마십시오.”

“네?”

“혹시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이규 한 대표가 감독 계약을 제안하지 않 을까? 이런 기대를 품고 이 자리에 나오신 것 아닙니까?”

정곡을 찔렸기 때문일까.

우중완 감독의 말문이 막힌 순간 이규한이 덧붙였다.

위로주를 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위로주요?”

“그게 영화 제작자 이전에 인간으 로서의 도리인 것 같아서요.”

과한 기대였다는 것을 깨달은 우중 완 감독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러 나 이규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생맥 주잔을 들어 올리며 제안했다.

“시원하게 한잔하시죠.”

“네? 네.”

채앵.

가볍게 잔을 부딪친 후,이규한이 생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 다.

속이 타기 때문일까?

단숨에 잔을 비우고 내려놓는 우중 완 감독에게 이규한이 말했다.

“영화도 시원하게 말아 드시더니, 맥주도 시원하게 잘 드시네요.”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는 우중완 감 독의 표정을 확인한 이규한이 물었 다.

“왜요? 화가 나십니까?”

“당연히 화가……

“‘생존의 법칙’이 흥행 참패를 기 록한 것으로 인해 진짜 화를 내야 할 사람은 감독님이 아닙니다.” “그 영화에 투자를 했다가 큰 손실 을 입은 투자자들,그리고 그 영화 한 편에 인생을 걸었던 조성운 제작 자가 진짜 화를 내야 할 사람들이

이규한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판단 한 걸까.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는 우중완 감독을 살피던 이규한이 다시 물었 다.

“감독님도 이번 영화 ‘생존의 법 칙’에 인생을 걸고 최선을 다하셨습 니까?”

“저는… 그러니까 저는……

“제가 판단하기에 감독님은 ‘생존 의 법칙’이란 작품을 성공시키기 위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판단하신 겁니까?”

“귀를 닫았으니까요. ‘생존의 법칙’ 의 제작자였던 조성운 대표가 했던 조언들을 다 무시했던 것이 그 증거 입니다. 나는 천재 감독이다. 내가 무조건 옳다. 이런 오만함에 사로잡 혀 있었기 때문에 감독님은 ‘생존의 법칙’을 인생을 걸고 연출하는 명작 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시작한 것 이 아니라, 내 천재성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며 접근 했던 겁니다. 맞습니까?” ‘화를 내지 않을까?’

이규한이 꺼낸 이야기들.

무척 직설적인 데다가 우중완 감독 의 아픈 부분들만을 찔렀다. 그래서 우중완 감독이 화를 내며 자리를 박 차고 벌떡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 했는데.

이규한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 다.

“이 대표님께서 방금 하신 말씀이 다 맞습니다.”

우중완 감독은 화를 내는 대신 순 순히 인정했다.

“인정합니다. 제가 너무 오만했습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내심 원했던 반응과 대답이었기 때 문이다.

이규한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우중완 감독에게 질문했다.

“만약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 면 잘하실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자신 없습니 다.”

“왜 자신이 없으십니까?”

“아까 말씀하신 대로 세 번째 작품 인 ‘생존의 법칙’마저 시원하게 말

아먹고 나니,문득 그런 생각이 들 었습니다. 제가 천재 감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요. 그래서 자신 이 없어진 겁니다.”

우중완 감독이 자조 섞인 웃음을 지은 채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서둘러 말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과연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감독님이 천 재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천재 라고 해서 모든 부분을 다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래서 감독님이 계속 실패하신 겁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하는 부분만 집중한다면 감독님 의 천재성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 을 것 같다는 제 생각을 말씀드린 겁니다.”

이규한이 덧붙인 설명을 들은 우중 완 감독이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는 말뜻을 이해한 기색 이었지만,이내 아쉬운 표정을 드러 냈다.

“너무 늦었습니다. 더 이상 기회가 없을 테니까요.”

그런 우중완 감독에게 이규한이 말 했다.

“아직 확실한 건 없습니다.” “아까 세상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세상 이 무섭다고 말씀하셨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살 만한 이유는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 생이거든요.”

이규한이 위로주를 겸한 술자리를 마련한 이유.

과연 지난번 만남 때와 우중완 감 독의 생각과 마음가짐이 얼마나 달 라졌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직접 그를 만나서 대화를 나 누고 난 후,이규한은 확신했다.

우중완 감독이 지난번에 자신과 만 났을 때와는 분명히 달라졌다는 사 실을.

‘미안한 이야기지만 ‘생존의 법칙 이’ 크게 망한 것이 오히려 내게는 다행이야.’

이규한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 서 백팩에서 ‘베테랑들’의 시나리오 책을 꺼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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