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세련된 신파 그로 인해 고민하던 이규한이 두 눈을 감았다.
아까 읽었던 시나리오의 내용을 되 짚어 보던 이규한이 감았던 눈을 떴 다.
“아까 송성문 변호사가 형이 확정 돼서 교도소에 수감됐다고 했지?”
“그럼 송성문 변호사도 재판을 받 았겠네?”
“그렇죠.”
“그 재판의 변호는 누가 했어?”
이규한의 질문을 받은 김단비가 고 개를 흔들었다.
거기까지는 자료 조사를 하지 않았 다는 뜻이었다.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안유천 에게 시선을 던졌다.
“너도 몰라?”
“변호사니까 직접 하지 않았을까 안유천이 자신 없는 표정으로 대답
하는 것을 바라보던 이규한이 틀렸 다는 둣 고개를 흔들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 몰 라? 분명히 누군가 변호를 했을 거 야. 누가 변호를 맡았는지 알아봐.”
이규한의 지시를 받은 안유천이 분 주히 움직였다.
잠시 후,안유천이 흥미로운 표정 을 지은 채 입을 뗐다.
“이 대표님 말씀대로네요. 당시 송 성문 변호사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 사가 있어요.”
“누군데?”
“많아요.”
“황순형 변호사가 대표 변호사였지 만,부울 지역 변호사들 수십 명이 변호를 맡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재 판에 참여했어요.”
‘이거다!’
이규한이 속으로 이렇게 판단한 순 간이었다.
“엔딩이 떠올랐어요.”
김단비가 상기된 목소리로 소리쳤 다.
“재판,맞지?”
이규한이 묻자 김단비가 화답했다.
“맞습니다.” “어디까지 보여 줄 생각이야?”
“수십 명의 동료 변호사들이 송성 문 변호사를 위해서 모두 힘을 합쳐 서 변호하는 장면을 보여 줄 생각입 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송성문 변 호사가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는 장 면 정도가 어떨까요?”
김단비가 퍼뜩 떠오른 의견을 개진 한 것을 듣고 있던 이규한이 입을 뗐다.
“과한 것 같아.”
“이 정도도 과하다고요?”
“그 전에 끝났으면 좋겠어. 음,그 냥 송성문 변호사의 재판에 참여할 변호사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는 선에서 끝내면 딱 적당할 것 같아.”
“그건 너무 드라이하지 않을까요?” 드라이하다는 표현.
감정선을 너무 건드리지 않는 게 아니냐는 뜻이었다.
이규한과 김단비의 의견이 엇갈린 셈이었다.
‘어느 쪽이 나을까?’
잠시 고민하던 이규한이 떠올린 것 은 감정이었다.
‘아직 네 번 남았어.’
작품당 감정할 수 있는 횟수는 총 일곱 차례.
‘변호사’의 감정을 한 횟수는 세 차례뿐이었다.
세팅이 거의 완성된 상황인 만큼, 감정을 아낄 필요는 없다고 판단을 내린 이규한이 입을 뗐다.
“이렇게 해 보자.”
“어떻게요?”
“김 작가는 아까 말한 방식으로 엔 딩을 수정해 봐. 그리고 유천이 너 는 내가 아까 말한 방식으로 엔딩을 수정해서 비교해 보자.”
“지금이요?”
“그래. 지금.”
긴 하네.’
이규한이 이렇게 생각하며 팔짱을 꼈다.
약 반 시간 후,김단비와 안유천이 거의 동시에 수정을 마무리했다.
“두 사람 다 내게 줘 봐.”
각자 출력한 수정고를 건네받은 이 규한이 먼저 김단비 작가가 수정한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었다.
-9,937,761.
이규한의 눈앞에 떠오른 숫자.
예상 관객수는 약 15만 명가량 늘
어 있었다.
그 숫자를 확인한 이규한이 다음으 로 안유천이 수정을 끝마친 시나리 오 책을 집어 들었다.
잠시 후,이규한의 눈앞에 새로운 숫자가 떠올랐다
-10,714,568.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회의 실.
이규한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권지영이 입을 뗐다.
“참 대단하긴 하시네요.” “무슨 뜻이야?”
“송강오 선배를 캐스팅하는데 성공 하실 줄은 몰랐거든요.”
권지영은 감탄한 표정을 짓고 있었 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여전히 긴장 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질문했다.
“각색한 시나리오는 어땠어?”
“솔직히 말씀드리면 충격받았어 요.”
“왜 충격을 받았다는 거야?”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시나리오 가 좋아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 거든요. 대체 무슨 마법을 어떻게 부리신 거예요?”
“마법은 없어. 작가들과 밤새 머리 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지.”
“애 많이 쓰셨네요.”
권지영이 꺼낸 평가를 들은 이규한 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자신의 시선을 줄곧 피하 고 있는 권지영의 태도를 통해 투자 유치가 어려울 거라는 직감이 들었 기 때문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고. 투자할 거야?”
“두 가지 조건만 받아들여진다면 요.” ‘말해 봐.”
“우선 감독을 교체해 주세요.”
“양우섭 감독은 신인 감독이라 불 안하다?”
“가뜩이나 위험 부담이 많은 프로 젝트예요. 그런데 신인 감독이라는 위험 부담까지 떠안고 싶지 않아
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
그래서 더 질문하는 대신 이규한이 화제를 돌렸다.
“나머지 하나의 조건은?”
“제작비를 40억 수준으로 낮춰 주 세요.”
기에 이규한이 못마땅한 기색을 감 추려 들지 않고 드러냈다.
“이유가 뭐야?”
“리스크를 줄이고 싶거든요.”
이규한이 예상하고 있는 ‘변호사’ 의 제작비는 70억에서 80억 사이였 다. 그런데 40억이라면 제작비를 절 반으로 줄이라는 뜻이었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로군.’
잠시 후 이규한이 쓴웃음을 머금었 다.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권지영의 말 에 담긴 뜻은 ‘변호사’라는 작품이 흥행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변호사’가 흥행에 실패했을 경 우, 투자 손실을 최소화하겠다는 의 미.
그만큼 ‘변호사’라는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는 것이었다.
그때 권지영이 물었다.
“저희 측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 이시면 위험 부담이 많은 프로젝트 이긴 하지만 투자를 하겠습니다. 두 가지 조건,받아들이실 거죠?”
“아니,그렇게는 못 하겠어.”
이규한이 거절 의사를 밝히자,권 지영이 답답하단 표정을 지었다.
“선심 쓰듯이 투자를 해 주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부터 마음에 안 들 어.”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런 뜻이 맞잖아.”
이규한이 권지영의 말을 도중에 잘 랐다.
“‘변호사’라는 작품에 대한 기대치 가 없는 상황에서 투자를 한다 한들 제작 과정에서 분명히 트러블이 생 길 거야. 그리고 하나 더,난 제작 비를 줄일 생각이 전혀 없어. 이번 영화, 제대로 만들고 싶거든.”
이규한이 덧붙인 대답을 들은 권지 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회하실 거예요.”
“왜 후회한다는 거지?”
“이번에 저희가 드리는 기회를 걷 어차면 ‘변호사’의 투자 유치 기회 는 더 없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권 팀장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 네.”
“뭐죠?”
“대한민국에 투자 배급사가 로터스 엔터테인먼트만 있는 게 아니다.”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이규 한이 덧붙였다.
“진짜 후회하는 건 권 팀장이 될 거야. 두고 봐. 이번에 준비하는 ‘변 호사’,천만 영화가 될 거니까.”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확률이 높 아.”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인 권지영을 만나고 사무실로 돌아온 이규한이 고심에 잠겼다.
“우선 감독을 교체해 주세요.”
권지영이 내세웠던 조건이었다. 그 리고 다른 투자 배급사를 찾아간다 하더라도 비슷한 의견이 나올 확률 이 높았다.
“양우섭 감독을 교체해야 하나?”
감독 교체 여부에 대해서 고심하던 이규한이 떠올린 단어는 싱크로율이 었다.
흥행의 공식이라고 표현하면 될까.
이규한이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 하면 미래는 기억대로 흘러가지 않 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광안리’라는 작품이었다.
이규한의 기억 속에서 천만 관객을 넘겼던 ‘광안리’였지만,얼마 전에 개봉했던 ‘광안리’는 200만 관객도 돌파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쭉 지켜보면서 이규한은 싱크로율의 중요성에 대해 간파했다.
감독,주연 배우,개봉 시기 등등.
흥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 들이 달라지면,작품의 관객수에서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
싱크로율을 맞춘다면?
즉,기존의 정보와 가장 흡사하게 영화를 제작하면 관객수의 차이가 줄어드는 것이었다.
“내 기억 속 ‘변호사 송성문’의 관
객수는 백만도 들지 않았어.”
‘변호사 송성문’의 관객수를 떠올 린 이규한이 떠올린 것은 역시 싱크 로율이 었다.
‘변호사 송성문’은 흥행에 실패했 다.
그렇지만 지금 블루문 엔터테인먼 트에서 제작하고 있는 ‘변호사’의 예상 관객수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상황이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우선 제목이 바뀌었고,시나리오의 내용이 바뀌었고,주연 배우도 바뀌 었다는 것이 차이가 발생한 원인.
다시 말해 기존에 제작해서 개봉했 던 ‘변호사 송성문’과 달라지면 달 라질수록,‘변호사’의 예상 관객수가 늘어나고 있는 셈이었다.
“유일한 공통점은… 양우섭 감독이 군.”
‘변호사 송성문’과 ‘변호사’로 제목 을 바꿔서 제작하는 과정에서 유일 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양우섭 감독 이 연출을 맡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감독까지 교체한다면 예상 관객수가 더 올라가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이규한 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펜을 들 었다.
짝악. 좌악.
양우섭 감독의 이름 위에 두 줄을 그은 이규한이 새로운 이름을 적었 다.
-감독: 심이준.
‘얼마나 늘어날까?’
이규한이 기대를 품은 채 ‘변호사’ 의 시나리오 책을 들어 올렸다.
-7,764,589.
잠시 후,눈앞에 떠오른 숫자를 확 인한 이규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혼 잣말을 꺼냈다.
“왜 다시 줄었지?” “재밌네.”
‘변호사’의 시나리오 책을 모두 읽 은 김대환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 다.
그런 그의 눈에 의아한 시선을 던 지고 있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투 자팀장 장수찬과 홍보팀장 김덕원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 김대환은 투자를 받기 위해서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 들어오는 시 나리오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투자팀에서 심의해서 씨제스 엔터 테인먼트에서 투자할 작품의 리스트 를 뽑으면 결재만 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장수찬 과 김덕원은 이례적으로 ‘변호사’의 시나리오 책을 읽고 있는 김대환에 게 의아한 시선을 던졌던 것이다.
“장 팀장.”
“네,대표님.”
“‘변호사’라는 작품에 대한 투자팀 내부 의견은 어떤가?”
“투자 반대 의견이 압도적입니다.”
“이유는?”
“총 제작비 규모가 80억 수준입니 다. 신인 감독인 양우섭에게 맡기기 에는 영화의 사이즈가 너무 크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또,작품에 정치 색이 묻어 있다는 것도 투자가 어렵 다는 결론이 나온 이유입니다.” 장수찬의 대답을 들은 김대환이 천 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사’라는 작품의 약점을 정확 하게 짚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엔 ‘변호사’란 작품,꽤 흥행할 것 같군.”
“네?”
“약점은 강점이 되기도 하거든.”
김대환이 이유를 덧붙였지만,장수 찬은 제대로 알아들은 기색이 아니 었다.
자신의 앞이기 때문일까.
잔뜩 긴장한 기색의 장수찬이 조심 스럽게 물었다.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