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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132화 (132/272)

132화

“이 대표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군.”

이규한이 열변을 토해 낸 순간 송 강오가 새삼스런 시선을 던졌다.

“흥행작을 제작할 수 있는 젊고 감 각 있는 제작자. 그동안 이렇게 평 가했었거든. 그런데 영화인으로서 사명감도 갖추고 있군.”

“그 정도는 아닙……

“해 보지.”

송강오의 대답이 돌아온 순간 이규 한이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출연하실 겁니까?”

“방금 이 대표가 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내 마음이 변했어. 그동안 너 무 쉽고 평탄한 길만 걸어왔던 게 아닌가 하는 자기반성도 했고 말이 지. 영화인의 사명감이랄까. 가슴이 뜨거워지는데 계속 도망치고 피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송강오가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나 강렬했다.

‘전환점!’

강렬하면서도 순수한 열정이 담겨 있는 송강오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이규한이 퍼뜩 떠올린 단어였다.

‘변호사’라는 작품.

영화 제작자 이규한에게만 전환점 이 될 작품이 아니었다.

배우 송강오에게도 전환점이 될 작 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기 잘하는 배우.

송강오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수식 어 였다.

분명히 연기를 잘하는 편이긴 하지

만 송강오는 국민 배우 혹은 최고의 배우로 불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가 펼친 연기가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었고,오락성이 강한 영화들에 주로 출연했기 때문 이었다.

그렇지만 ‘변호사’에서 송성문 변 호사 배역을 맡아,진정성이 전해지 는 열연을 펼친다면?

그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연기 인생 또한 달라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 것 이다.

“한 잔 받으시죠.”

“그러지.” 이규한이 송강오의 잔을 채운 후 자신의 잔도 채웠다. 그리고 건배를 하기 위해 술잔을 들며 약속했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리고 선배님이 이번 작품 에 출연하신 걸 절대 후회하지 않으 시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이잉. 지이잉.

이규한이 잠결에 손을 뻗어 진동하 는 휴대 전화를 귀에 갖다 댔다.

“여보세요?” “대표님,접니다.”

안유천의 목소리를 들은 이규한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몇 시냐?”

“아직 두 시밖에 안 됐습니다.”

“아직?”

새벽 두 시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규한이 재차 한숨을 내쉬며 입을 뗐다.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전화했어?” “다 썼습니다.”

“뭘 다 썼다는 거야?”

“뭐긴 뭐겠습니까? ‘변호사’ 시나

리오죠.”

안유천이 상기된 목소리로 꺼낸 대 답을 들은 이규한이 억지로 몸을 일 으켰다.

“그거라면 날이 밝고 나서 전화해 도 되잖아?”

“원래는 그러려고 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요.”

“왜 못 참아?”

“흥분이 돼서요.”

9”

“방금 제 인생의 역작을 완성했는 데,어찌 흥분이 안 되겠습니까?”

안유천의 목소리는 무척 컸고,귀 가 따가워서 이규한의 잠은 모두 달 아났다.

냉장고 앞으로 다가가서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나자 비로소 정신이 돌 아왔다.

“일단 진정하고 하나씩 이야기하 자. 아까 뭐라 그랬지?”

“방금 ‘변호사’ 시나리오를 완성했 다고 했습니다.”

안유천의 대답을 듣자마자 이규한 이 질문했다.

“난 분명히 시나리오 각색을 맡겼 는데, 왜 시나리오를 썼다고 표현하 는 거야?” “새로 쓴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무슨 소리야?

“기존 시나리오에서 건질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로 쓰다시피 했습니다.”

‘이게 호재야? 악재야?’

시나리오를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 다는 안유천의 이야기를 듣고,이규 한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잠시 후,이규한은 호재라고 판단 했다.

그편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정 치색을 걷어 내는 역할을 하는 데 오히려 더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었

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시 밝아졌던 이규한의 표 정은 이내 다시 어두워졌다.

‘너무 빨라!’

안유천과 김단비 작가에게 ‘변호 사’ 시나리오 각색을 맡긴 지 아직 보름도 흐르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 벌써 각색을 마쳤다는 게 이규한이 불안감을 느낀 이유였다.

“너무 빨리 끝낸 것 아냐?”

해서 이규한이 묻자 안유천이 당당 하게 대꾸했다.

“신기가 내렸습니다. 완성된 시나 리오 책을 보시고 나면 분명히 깜짝

놀라게 될 겁니다.”

“어디야?”

“지금 오시게요?”

이규한이 대답했다.

“잠 다 깼다. 얼마나 잘 썼는지 궁 금하기도 하고.” 노원역 근처에 위치한 카페.

24시간 문을 여는 프랜차이즈 카 페 내부에 손님은 안유천과 김단비 작가,두 사람뿐이었다.

“너무 빨리 끝낸 거 아냐?”

택시를 타고 오는 내내 생각해 봐 도,안유천이 각색 작업을 너무 빨 리 끝냈다는 것이 불안했다. 그래서 이규한이 우려 섞인 표정으로 질문 했지만,안유천은 여전히 자신만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짜 신기가 내렸다니까요.”

이규한이 안유천을 상대하는 대신 김단비 작가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김 작가가 보기엔 어때?”

“그게……

“잘 썼어?”

“잘 쓰긴 했어요.” 이규한은 안유천을 믿지 않았다. 그렇지만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인 김단비에게는 신뢰를 갖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잘 썼다고 대답한 것 을 들은 이규한이 안도하며 안유천 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줘 봐.”

“제 인생작이 어지간히 궁금하신 거군요.”

“그래. 궁금해 죽겠다.”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 안유천이 각 색을 마친 시나리오 책을 건넸다.

‘예상 관객수가 얼마나 바뀌었을 까?’

이규한이 치미는 호기심을 꾹 눌렀 다.

아직 감정을 할 때가 아니었기 때 문이다.

안유천에게서 건네받은 ‘변호사’ 각색고를 펼치는 대신,이규한이 백 팩에서 펜을 꺼내서 정보를 기입했 다.

-감독: 양우섭.

-주연 배우: 송강오.

‘후우!’

숨을 들이견 후 시나리오 책을 들어 올렸다.

잠시 후,이규한의 눈앞에 새로운 숫자가 떠올랐다.

-9,772,459.

‘구백만 명이 넘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감정 결과를 확인한 이규한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때 이규한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 고 있던 안유천이 질문했다.

“혹시 또 그것 하셨어요?”

“그거라니?”

“그거 있잖습니까? 감정이란 거

요.”

“맞아.”

이규한이 순순히 인정하자 안유천 이 다시 물었다.

“감정 결과가 어떻습니까?”

“내가 시나리오 책을 보지도 않고 감정한다는 걸 진짜 믿어?”

“당연히… 못 믿죠.”

“그런데 왜 물어?”

“감정을 한다는 건 못 믿지만,이 규한 대표님은 믿거든요.”

" 구" “벌써 충무로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이규한 대표는 시나리오 책을 딱 보 기만 하면 흥행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소문이요.”

“그걸 흔히 제작자의 직감이라고 하지.”

“직감… 이요?”

“그래. 그 직감이 말하고 있다. 이 번 작품 대박이라고.”

이규한이 말을 마치고 한참 후에야 안유천이 말뜻을 이해했다.

“잘 썼다는 뜻이죠?”

“느낌은 좋아.” “제가 그랬잖습니까? 이번에 신기 가 팍 내렸다고.”

“기다려 봐. 직접 읽어 보고 난 후 에 판단할 테니까.”

안유천의 입을 다물게 만든 후,이 규한이 ‘변호사’ 각색고를 펼쳤다. 그렇지만 글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 지 않았다.

1,442,248에서 9,772,4595..

예상 관객수가 무려 팔백만 명이 넘게 증가한 감정 결과를 확인하고 난 후,홍분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 문이었다.

‘왜 이렇게 많이 늘어났을까?’ 간신히 흥분을 누르는 데 성공한 이규한이 예상 관객수가 엄청나게 늘어난 이유에 대해서 고민했다.

‘변한 건 두 가지.’

1,442,248명의 예상 관객수라는 결 과가 도출된 지난번 감정과 9,772,459명의 예상 관객수 결과가 도출된 이번 감정에서 차이는 두 가 지였다.

하나는 송강오가 원톱 주연 배우로 출연을 확정한 것이었고,나머지 하 나는 안유천과 김단비 작가가 ‘변호 사’ 시나리오를 각색한 것이었다.

‘어느 쪽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까?’

잠시 후,이규한이 고개를 흔들었 다.

거기까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 기 때문이었다.

‘일단 읽어 보자.’

이규한이 결심을 굳히고 안유천과 김단비 작가가 각색을 마친 시나리 오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약 한 시간 후, 이규한이 시나리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감상 평을 꺼냈다.

“야! 이거 내가 다 쓴 거나 마찬가 지잖아.”

소리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 고기집에서 이규한이 꺼냈 던 의견들이 안유천과 김단비 작가 가 각색한 시나리오에 대거 반영됐 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안유천은 당당한 표정으 로 대꾸했다.

“말로 하는 것과 글로 쓰는 건 엄 연히 다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억울하시면 이름 올리시던 가요.”

“이름을 올리라니?”

“각색 크레딧에 이 대표님 이름도

올리시란 뜻입니다.”

“내가 거기 이름 올려서 뭐 해?”

이규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시나리오 책을 물끄러미 내려 다보았다.

‘이제 끝난 건가?’

예상 관객수가 900만 명을 넘었다 는 감정 결과가 나왔으니,만족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았다.

현재 예상 관객수는 약 977만 명.

조금만 더 노력하면 ‘변호사’를 천 만 영화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그때 였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거나,걸리는 부분은 없으세요?”

김단비 작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김단비 작가의 표정은 자신만 만한 안유천의 표정과는 달랐다.

뭔가 개운치 않은 표정이었다.

“김 작가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실은 엔딩이 마음에 좀 걸립니 다.”

“엔딩?”

“나이가 지긋한 송성문 변호사가

과거를 회상하는 게 현재의 엔딩이 잖아요. 뭔가 울림이나 강렬함이 부 족한 것 같아서요.”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급히 닫았던 시나리오 책을 다시 펼쳤다.

무심코 놓치고 지나쳤던 부분이 떠 올랐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이규한이 입을 뗐다.

“회상하지 말자.”

“네?”

“그냥 거기서 끝내자는 뜻이야. 회 상을 할 당시,송성문은 변호사가 아니라 정치인이었어. 정치인 송성 문이 회상하는 장면이 들어가면 또 정치색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논 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 건 차라리 빼 버리자고.”

이규한의 의견을 들은 김단비가 수 긍한 둣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럼 엔딩을 다시 잡아야겠네요. 당시 송성문 변호사는 부영 재판에 나섰던 것 때문에 재판을 받고 감옥 에 갔어요. 송성문 변호사 덕분에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던 부영 재 판 피해자들이 교도소로 수감되는 송성문 변호사를 배웅하며 안타까워 서 우는 장면,혹은 교도소에 수감 되어 있는 송성문 변호사를 그들이 면회하면서 미안함과 고마움에 눈물 을 홀리는 장면이 현재 퍼뜩 떠오르 는 엔딩인데요. 너무 촌스러운 신파 가 아닐까요?”

김단비의 우려대로였다.

관객의 눈물을 억지로 쥐어짜 내려 는 촌스러운 신파는 오히려 역효과 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았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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