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31화 (131/272)

131 화

잠시 후,이규한은 자신에게 향해 있는 안유천과 김단비의 시선을 느 끼고 흠칫 했다.

“왜 그렇게들 봐?”

“계속해 보세요.”

“뭘 계속해 보란 거야?”

“필 받으신 김에 좋은 아이디어를 계속 내 보시란 뜻입니다.”

안유천이 재촉한 순간,이규한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난 영화 제작자다.”

“그런데요?”

“작가가 아니란 뜻이지.”

이규한이 말했지만 안유천을 콧방 귀를 꼈다.

“이번 작품이 잘되길 바라는 건 마 찬가지 입장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만……

“자,이럴 시간 없습니다. 흐름 깨 지기 전에 계속해 보세요.”

안유천의 재촉을 받고 부지불식간 에 다시 고민하던 이규한의 머릿속

에 또 하나의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 다.

‘결국… 나와 비슷한 게 아닐까?’

영화 제작자 이규한은 이미 한차례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다.

기적이 벌어지면서 실패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다시 과거로 돌아온 순간,이규한은 흥행하는 작품을 만 드는 제작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돈도 많이 벌고 싶었다.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규한이 입 을 뗐다.

이 벌고 싶었을 거야. 그렇지만 변 호사라고 해서 돈을 다 많이 벌 수 있는 건 아니었지. 그는 스카이 출 신이 아니라 지방대 출신이었으니 까. 다른 변호사들의 손가락질을 받 더라도 꼭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했 을 거야.”

그 이야기를 들은 안유천이 손뼉을 쳤다.

“있습니다.”

“뭐가 있다는 거야?”

“제가 자료 조사를 한 결과 송성문 변호사는 개업 초기에 사무실 월세 도 못 낼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습니 다. 그가 반등한 계기는 이전에 변 호사들이 맡지 않았던 부동산과 세 금 관련 업무를 저렴한 가격에 맡기 시작한 후부터 였습니다.”

‘내 짐작대로네.’

자신의 짐작대로라는 생각을 하던 이규한이 바쁘게 펜을 놀리며 받아 적고 있는 김단비를 힐끗 살피며 말 을 이어 나갔다.

“송성문 변호사는 덕분에 돈을 많 이 벌었을 거야. 그렇지만 돈을 많 이 벌어도 채워지지 않는 갈중 같은 게 분명히 존재했을 거야.”

“어떤 갈증이요?”

“돈을 많이 버는 변호사가 아니라, 진짜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갈증.” ‘과속 삼대 스캔들’부터 시작해서 ‘수상한 여자’,그리고 ‘스파이들’까 지.

이규한은 장차 영화계가 어떻게 흘 러갈지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흥행 작들을 제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원하던 대로 돈도 많이 벌 수 있었고.

그렇지만 여전히 갈증이 남았다.

꼭 만들어져서 대중들에게 선보여 야 할 좋은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는 갈증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이 홍행 작과는 거리가 멀었던 ‘변호사’의 제작에 나선 것도 일종의 영화인의 사명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송성문 변호사는 부영 사 건의 재판을 맡았던 걸 거야.”

“그 과정에서 많은 난관을 겪었을 테고요?”

“맞아. 지금의 나처럼.”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직원들은 물론이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그리 고 투자 배급사의 팀장들까지.

모두 ‘변호사’를 제작하려는 이규 한에게 우려의 시선을 던지며 어떻 게든 말리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거의 다 끝났네요.”

그때,안유천이 씩 웃으며 말했다.

“주인공과 콤비 플레이를 해 줄 사 무장 한 명만 더 추가하면,이번 이 야기의 사이즈는 딱 나오는 것 같습 니다.”

“자신 있어?”

“네,맡겨 주십시오.”

안유천이 힘주어 대답한 후, 김단 비와 함께 작품의 수정 방향에 대해 서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빠트린 것 없어?”

“하나 있어요.”

“뭔데?”

“인연이요. 변호사로서의 갈증이나 사명감도 송성문 변호사가 부영 사 건의 변호를 맡은 이유가 될 거예 요.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주인공의 내적 갈증이나 사명감은 극중에서 표현하기 쉽지 않아요. 송성문 변호 사가 부영 사건의 변호를 맡을 수밖 에 없는 좀 더 피부로 와닿을 수 있는 어떤 계기가 필요한데 그게 인 연이라고 생각해요.”

“신파적으로 접근하라는 거지?”

“맞아요.”

“뭐가 좋을까?”

톡,톡,톡톡.

마치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듯 투박 한 손가락으로 고기집 탁자를 두드 리던 안유천이 뭔가 떠오른 둣 입을 “아,이건 어때? 내가 좋아하는 돼 지 국밥집이 있었거든. 그런데 무명 작가 시절에 돈이 없을 때,돼지 국 밥 먹고 돈을 안 내고 도망쳤던 적 이 있어.”

“그건 범죄 아닌가요?”

“미담이니까 끝까지 들어봐. 내가 ‘수상한 여자’로 천만 영화 쓴 시나 리오 작가가 되고 난 후에,그때 못 냈던 돼지 국밥값보다 100배 많은 돈을 봉투에 넣어서 찾아간 거야. 그런데 주인아주머니가 그 돈을 끝 까지 안 받으셨어. 대신 아들이 시 나리오 작가가 꿈인데 잘 좀 봐 달

라고 부탁하시더라고.”

“그래서요?”

“아직 감이 안 와? 그 아들이 부 영 사건에 휘말리는 거야.”

r?,

“내게 있어서 그 돼지 국밥집 아주 머니는 이모나 다름없는 분이야. 그 런데 이모가 도와 달라고 하면 내가 모른 척 외면할 수 없을 것 같거

드 ”

두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던 김단비가 잠시 후 입을 열었 다.

“괜찮은데요?” “진짜 괜찮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느낌이 랄까요? 너무 촌스럽지도 않고 적당 히 세련된 신파 같아요.”

“그럼 이걸로 가 볼까?”

공동 작업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일 까.

안유천과 김단비는 죽이 척척 맞았 다. 그러나 이규한은 그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작가의 영역이었기 때 문이었다.

안유천과 김단비를 믿고 ‘변호사’ 의 각색 작업을 맡긴 이상,그들을

믿고 끝까지 기다려야 했다.

대신 이규한은 백팩에서 ‘변호사’ 의 시나리오 책을 꺼냈다.

한번 감정을 해 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제목부터 바꾸자.’

‘변호사 송성문’에서 ‘변호사’로.

양우섭 감독과 논의한 끝에 제목에 서 송성문의 이름을 빼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

이규한이 제목을 수정한 후,‘변호 사’의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었다.

잠시 후,이규한의 눈앞에 새로운 숫자가 떠올랐다.

495,811에서 1,442,348로.

예상 관객수가 약 세 배 가까이 늘어나 있었다.

이규한도 깜짝 놀랐을 정도로 많이 늘어난 예상 관객수.

처음 감정했을 때와 이번 감정에서 바뀐 점은 제목뿐이었다.

즉,‘변호사 송성문’에서 ‘변호사’로 제목을 바꿨을 뿐이었는데,예상 관 객수가 백만 명 가까이 늘어난 것이 었다.

‘작품의 제목이 이렇게 중요하구 나.’

새삼 제목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규 한이 다음으로 한 일은 캐스팅이었 다.

‘변호사’는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인 만큼,세팅이 무척 중 요했다.

그 세팅을 위해서 이규한이 찾아간 것은 송강오였다.

강남역 인근 고급 일식집.

먼저 도착한 이규한이 기다리고 있 을 때 룸의 문이 열렸다.

“이 대표,내가 좀 늦었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송강오가 룸 안으로 들어섰다.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연락 잘했어. 그렇지 않아도 내가 연락 한번 하려고 했었거든.”

“무슨 일 때문에?”

“술 한잔 사려고. 이 대표 덕분에 기사회생했는데 당연히 술 한잔 대 접해야지.”

근래 들어 송강오가 출연했던 영화 들의 흥행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상 그렇지만 이번에 출연한 ‘스파이 들’은 흥행에 성공했다.

최종 관객수 740만 명.

‘스파이들’의 흥행 덕분에 송강오 는 자신이 티켓 파워를 갖춘 배우라 는 것을 또 한 번 증명했다.

또,빼어난 연기로 최고의 배우라 는 찬사를 이끌어 냈다.

이것이 송강오가 아까 기사회생이 란 표현을 썼던 이유.

‘기사회생까지는 아닌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이규한이 입을 뗐다.

“술은 이번에도 제가 사겠습니다.”

“그건 안 될 말이지.”

송강오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지 만,이규한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려운 부탁을 드려야 하기 때문 입니다.”

“어려운 부탁? 어떤 부탁인데?”

“선배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규한이 백팩에서 ‘변호사’의 시 나리오 책을 꺼내며 대답했다.

“변호사? 어떤 작품이지?”

배우답게 송강오는 이규한이 백팩 에서 꺼낸 시나리오 책을 발견하자 마자 바로 흥미를 드러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새로 준 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런데… 투자 유치 단계에서 막혀 있습니 다.”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송강오가 의 아한 시선을 던졌다.

“이 대표가 준비하는 프로젝트인데 투자가 안 붙는다고?”

“무척 어려운 이야기거든요.”

“어렵다니?”

“송성문 변호사에 관한 이야기입니 다.”

이규한이 덧붙인 설명을 들은 송강 오가 비로소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투자가 잘 안 되는 데는 이유가 있군. 확실히 쉽지 않은 프로젝트 네.”

“그래서 선배님께 부탁을 드릴 게 있습니다.”

“내게 부탁할 게 뭐지?”

이규한이 대답했다.

“송성문 배역을 맡아 주십시오.”

안유천과 김단비 작가는 정치색을 최대한 배제하는 방향으로 ‘변호사’ 의 시나리오를 각색할 터였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배역을 맡아 달라고 부탁한 이유였 다.

티켓 파워와 연기력을 모두 갖춘 송강오가 주연 배우를 맡는다면?

‘변호사’란 작품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상승하기 때문 이었다.

쪼르륵.

송강오는 대답을 미루고 술잔을 채 운 후 잔을 비웠다.

‘쉽지 않은 선택이겠지.’

송강오의 입장에서도 결정이 어려 울 터였다.

‘어렵겠네.’

침묵이 길어졌다. 그래서 송강오가 부탁을 거절할 확률이 높다고 이규 한이 판단한 순간이었다.

“부담스러워.”

송강오가 한참 미루고 있던 대답을 꺼냈다.

“작품의 정치색 때문에 부담스러우 신 겁니까?”

이규한이 조심스럽게 묻자 송강오 가 고개를 흔들었다.

“실존 인물이었기 때문에 부담스러 워.”

‘내가 예상한 대답이 아니다?’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송강오가 ‘변호사’ 출연을 부담스 러워 하고 있는 이유는 작품의 정치 색이 짙기 때문이 아니었다.

실존 인물이었던 배역을 맡아서 연 기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 다.

“송성문 변호사,내가 존경하는 분 이야. 그런데 내가 연기를 못하면 그분에게 누를 끼치게 되거든.”

송강오가 덧붙인 말을 들은 이규한 이 고개를 끄덕였다.

는 것에 배우들이 부담을 느끼는 이 유였다.

“저는 조금 다르게 판단하고 있습 니다.”

“어떻게 말인가?”

“선배님이 연기를 통해서 실존 인 물이었던 송성문 변호사에 대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어떤 새로 운 면모를 보여 줄 수 있다면,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거라 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걸로 충분할까?”

“거기까지는 저도 확신할 수 없습 니다. 그렇지만 도전하는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대 중들의 평가는 엇갈리게 될지언정, 그 평가를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 의 사명 중 하나이니까요.”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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