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나와 비슷한 게 아닐까 (1) 이규한이 원래 제목에서 송성문이 라는 실명을 빼고 ‘변호사’로 제목 을 바꾸려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우섭 감독은 여전히 마뜩잖은 기색을 완전히 털 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겠군요.”
“뭘 말입니까?”
“감독님이 이 영화를 세상에 선보 이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픈 역사적 사건을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진실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더 많은 사람들 이 이 영화를 보는 편이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죠.”
“이 영화가 주는 울림이 강렬하려 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 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합니
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변 호사’란 제목을 사용하는 편이 낫다 고 판단하는 것이고요. 그러니 이 부분은 감독님께서 양보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마침내 양우섭 감독이 수긍한 표정 으로 대답하자 이규한이 말을 이었 다.
“수정은 캐릭터를 강화하는 방향으 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시나리오 수정을 맡을 작가는 누 굴 염두에 두고 있습니까?”
이규한이 대답했다.
가 막히게 살릴 줄 아는 작가죠.”
이규한이 말했던 각색의 적임자.
바로 안유천 작가였다.
안유천이 캐릭터를 살리는 능력 하 나만큼은 무척 뛰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안유천에게만 각색 작업을 맡 기는 것은 불안했다. 그래서 이규한 은 김단비 작가도 함께 불렀다.
커피 전문점 블루문에서 두 사람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창밖을 바라보 던 이규한이 잠시 후 두 눈을 빛냈 다.
그런 그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결국 성공했네.”
일전에 김단비의 호감을 사기 위해 서 열심히 들이대던 안유천이었는 데.
이규한의 두 눈에 손을 꼭 잡고 걸어오는 안유천과 김단비의 모습이 보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대표님.”
커피 전문점 블루문으로 들어온 김 단비 작가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 다.
“서운합니다.”
반면 안유천은 인사도 건너뛰고 다 짜고짜 서운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뭐가 서운하다는 거야?”
“절 너무 오래 잊으셨던 것 아닙니 까?”
“안 잊었어. 그래서 이렇게 불렀잖 아.”
이규한이 픽 웃으며 대답한 후 말 을 이었다.
“나야말로 서운하다.”
“왜 서운하신 겁니까?”
“둘이 사귄다는 이야기. 왜 안 했 어?”
이규한의 이야기를 들은 안유천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까 손잡고 걸어오는 것 다 봤 다.”
이규한이 짓궂은 표정을 지은 채 대답하자, 김단비가 얼굴을 붉혔다.
반면 안유천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백번 찍었더니 넘어왔습니다.”
그런 그를 상대하는 대신 이규한이 김단비를 바라보며 물었다.
“김 작가,불쌍해서 받아 준 거 야?”
“역시 이 대표님이시네요.”
“응?”
“어떻게 아셨어요?” 이규한이 껄껄 웃을 때,안유천과 김단비가 사랑싸옴을 시작했다.
“진짜 내가 불쌍해 보여서 내 고백 을 받아 줬던 거야?”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죠.”
“내가 잘생겨서 사귀는 것 아니었 어?”
“요새 거울 안 봐요?”
“봤는데.”
“다시 보고 오세요.”
“변했네. 예전에는 내가 잘생겨서 사귀는 거랬잖아?”
“과했어요.”
“과했다니? 뭐가?”
“그 말을 했던 날,술이 너무 과했 어요. 그래서 실언을 했나 봐요.”
사랑싸움을 벌이고 있는 안유천과 김단비를 바라보던 이규한이 헛기침 을 하며 핀잔을 건넸다.
“적당히들 하지? 솔로 앞에서 계속 사랑싸움 할 거야?”
그제야 사랑싸움을 멈춘 김단비가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네요.”
“뭐가?”
“대표님처럼 멋진 분이 왜 아직 솔 로일까요?”
“영화 만드느라 바빠서 연애할 시 간이 없어서 그래. 이번에 두 사람 을 부른 이유도 일을 하나 맡기기 위해서야.”
이규한이 본론을 꺼내자, 안유천과 김단비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번에도 공동 작업입니까?”
“그래. 너한테 혼자 맡기려니까 도 저히 불안해서 안 되겠더라.”
“어떤 작품입니까?”
“이거야.”
이규한이 ‘변호사 송성문’의 시나 리오 책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천이 두 눈을 빛냈다.
“어,송성문 변호사 이야기입니 까?”
“송성문 변호사에 대해 알아?”
“압니다. 예전에 송성문 변호사에 대해서 시나리오를 쓰려고 자료 조 사를 열심히 했던 적이 있거든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이규한이 반색했다.
안유천이 송성문 변호사에 대해 열 심히 자료 조사를 한 적이 있어서 시나리오 수정에 걸리는 시간을 줄 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송성문 변호사에 대해서 자 료 조사를 열심히 한 후에 어떤 이 야기를 쓰려고 했던 거야?”
“변호사 송성문이 아니라,인간 송 성문에 대한 시나리오를 쓸 생각이 었습니다.”
“인간 송성문?”
“자료 조사를 하다 보니까 무척 매 력적인 분이더라고요. 이력도 특이 했고,인생 역정도 평범하지 않았습 니다.”
“그런데 왜 자료 조사만 하고 시나 리오를 안 썼어?”
“세상이 바뀌었거든요.”
“세상이 바뀌었다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정권을 잡은 세력이 바뀌었죠. 그래서 이 이야기 는 투자를 받기 어렵겠다. 이렇게 판단을 내리고 깔끔하게 접었습니 다.”
안유천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흡 족한 표정을 지었다.
같은 소재라도 작가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법이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송성문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이렇게 같은 소재로 잡았음에도 양 우섭 감독과 안유천은 다른 부분에
집중했다.
양우섭 감독은 송성문 변호사가 재 판을 맡았던 사건에 집중한 반면, 안유천은 인간 송성문의 인생 여정 에 관심을 가졌다.
‘제대로 찾았네.’
안유천을 ‘변호사’라는 작품의 각 색 작가로 결정한 것이 최상의 선택 이었다고 속으로 판단하며, 이규한 이 입을 뗐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인간 송성문 중심으로 시나리오를 각색하는 거 야.”
“역시 작가 보는 안목이 있으시네 요.” “코미디 요소도 섞어야 해.”
“맡겨 주십시오. 제가 단비의 마음 을 얻은 게 유머 감각 때문이었습니 다.” 안유천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 답한 순간,김단비 작가가 물었다.
“저는 뭘 하면 될까요?”
“김 작가가 할 일은 두 가지야. 우 선 유천이가 시나리오 작업 도중에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지 않도록 잘 감시해.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신파 야. 관객들을 울릴 수 있는 신파적 인 장면이 필요해. 그런데 이게 간 단치가 않아.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 내는 촌스러운 신파가 아니라, 묵직 하게 울림을 주면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잔상이 남을 수 있게 만드는 세련된 신파가 필요해.”
‘어렵네.’
긴 이야기를 마친 이규한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말로 하면 쉬웠지만,세련된 신파 를 시나리오 상에서 구현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주문이네요.”
예상대로 김단비 작가가 한숨을 내 쉬었다.
“그래서 김 작가에게 이번 작업을 맡기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세련된 신파 를 시나리오 상에서 구현해 낼 수 있는 작가가 김 작가 외에는 떠오르 지 않았거든.”
이규한의 이야기를 들은 김단비 작 가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 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이 니까.’
돈이 안 들면서도 작가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는 칭찬 스킬 을 아낌없이 활용한 이규한이 백팩 에서 미리 준비해 온 계약서를 꺼냈 다.
“자,계약 빨리하고 고기 먹으러 가자.” ‘여전히 잘 먹네.’
불판 위에 소고기를 쉬지 않고 올 려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소고기 는 핏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불판 위에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참 잘 드시네요.”
고기를 구워 주던 종업원이 감탄했 을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할까.
있을 때,안유천이 만족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왜 많이 안 드세요?”
“내 걱정을 해 주는 걸 보니 배가 부르구나.”
“이제 겨우 앞이 제대로 보이기 시 작하네요.”
너스레를 떨던 안유천이 퍼뜩 떠오 른 듯 말했다.
“참,축하드립니다.”
“뜬금없이 뭘 축하해?”
“조물주보다 높은 건물주가 되신 거요.”
“일찍도 축하해 준다.”
이규한이 핀잔을 건넸지만,안유천 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집도 사고,건물도 사고. 진짜 성 공하셨네요. 그런데 재밌는 이야기 를 들었습니다. 이번에 집을 사실 때 시세보다 더 비싸게 주고 구입하 셨다면서요. 왜 그러셨습니까?”
“그 집을 꼭 사고 싶었거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내가 처음 제작했던 영화가 폭삭 망하는 바람에 그 집을 날렸거든. 그래서 그 집을 꼭 다시 되찾고 싶 었어. 일종의 성공의 상징이라고 판 단…… 안유천에게 그 집을 시세보다 비싸 게 주고 구입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 하던 이규한이 도중에 입을 다물었 다.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퍼뜩 스 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나랑 비슷한 케이스야.’
송성문 변호사와 자신의 케이스.
무척 흡사한 부분이 존재했다.
바로 바닥까지 추락했던 경험이었 다.
“송성문 변호사가 사법 고시를 준 비하는 과정에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막노동을 했다고 했지?” “네. 건설 현장에서 인부로 일했어
요.”
“그럼 송성문 변호사에게 성공의 상징은 집이 아니었을까?”
“집… 이요?”
“그래. 내가 사법 고시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돼서 돈을 벌고 나면 내 손으로 지었던 집을 꼭 사겠다. 건 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송성 문 변호사는 이렇게 각오를 다지지 않았을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작게 고개를 끄덕이던 안유천이 눈 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어떤 문제?”
“아파트는 최소 수백 세대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벽돌을 쌓아 만든 집 이 어딘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 까?”
“표식을 해 둔 거지.”
“표식이요?”
“여기가 내 손으로 벽돌을 쌓아 만 든 집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표식을 남겨 둔 거 야. 그 표식을 찾으면 자신이 공사 장 인부로 일할 당시 벽돌을 쌓아서 만든 집을 찾을 수 있지.”
“그래서 그 집을 찾은 후에 이 대 표님처럼 주변 시세보다 더 비싼 가 격에 구입한단 겁니까? 성공의 상징 이기 때문에?”
“맞아. 어때?”
“괜찮네요. 코미디적인 요소도 있 고,송성문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설 명할 수 있는 상징성도 있어요.”
안유천이 대답한 순간 이규한이 말 했다.
“뭐 해? 안 받아 적고.”
“지금 막 적으려고 했습니다.”
안유천이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기 위해서 막 손을 뻗을 때 김단비가
말했다.
“이미 제가 적고 있었어요. 얘기 계속하세요.”
‘부창부수가 따로 없네.’
그 두 사람을 바라보던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했다.
안유천은 천재성이 있지만 덜렁대 는 성격인 반면,김단비는 신중하고 매사에 무척 꼼꼼한 편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모여서 서로 의 단점을 메우고 있는 것이었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