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27화 (127/272)

127화

왜 아직 개봉 안 했지?

이규한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오래 쉬었더니 힘이 넘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파이팅합시다. 파이팅.”

“천만 영화 한번 만들어 봅시다. 파이팅.”

스태프들이 앞다투어 파이팅을 외 쳤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이규 한이 다시 입을 됐다.

“그리고 촬영이 재개된 기념으로, 또 지열이가 퇴원한 기념으로 오늘 촬영 일찍 끝내고 회식 한번 할까

요?”

“와아!”

“아싸,회식이다.”

“대표님,최고!”

이규한이 회식을 제안하자 스태프 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그 가운데서 김태훈만이 유일하게 못마땅한 표정 을 짓고 있었다.

촬영 일정이 빠듯한데 오늘 회식을 하는 건 좀……

“어차피 늦어진 것 조금 더 늦어지 면 어떻습니까?”

“하지만……

“선배님,영화는 결국 사람이 만드 는 겁니다. 양도윤 감독 이하 스태 프들 그리고 배우들까지. 촬영 현장 에서 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모 두의 표정이 밝지 않습니까? 이 긍 정의 에너지가 분명히 작품에도 전 달될 겁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는 분명히 흥행할 겁니다.”

이규한이 힘주어 말하고 나서야 김 태훈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런

그에게 이규한이 제안했다.

“기왕 오신 김에 회식비나 쏘고 가 시죠?”

“지금은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

기계음이 흘러나온 순간 김기현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런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 다.

기분 탓일까.

오늘따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기계음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왜… 전화를 안 받으시는 거지?”

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는 다는 것이 불안했다.

그때 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스카이 엔터테 인먼트 기획팀장인 강철수가 대표실 로 들어왔다.

그런 그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 을 확인한 김기현이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그게……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보세 김기현이 재촉하고 나서야 강철수 가 입을 뗐다.

“투자 제안을 했던 작품의 투자가 거절됐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김기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만약 다른 영화 제작사였다면 투자 배급사에 투자 제안을 했던 작품의 투자가 거절당했을 때 그러려니 했 을 것이었다.

투자 심사에서 물 먹는 것은 부지 기수였으니까.

그렇지만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의

경우는 달랐다.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인 김 기현의 아버지가 국내 최대 투자 배 급사인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이사인 김대환이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동안 한 번도 투자 심사 에서 물을 먹은 적이 없었는데.

투자 요청을 거절당한 것.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큰 충격이 밀려들었다.

“왜… 거절하셨지?”

“모르겠습니다.”

강철수가 이유를 모르겠다고 대답 했다.

그렇지만 강철수의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김기현이 이 질문을 던진 상대는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제안서를 수정해서 다시 넣어 볼 까요?”

잠시 후 강철수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지만 김기 현은 가타부타 대답하는 대신 다시 휴대 전화를 들었다.

“지금은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 습……

다시 기계음이 흘러나온 순간 김기 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규한이 서랍을 열어 메모지를 꺼 냈다.

571,515 명.

작품당 일곱 차례가 가능한 ‘스파 이들’의 마지막 감정 결과였다.

그 숫자를 기억하기 위해 애쓰며 이규한이 포털 사이트로 들어갔다.

박스오피스 순위.

1위. 스파이들.

2위. …….

3위. ?"….

박스 오피스 순위 2위와 3위에 올 라 있는 다른 작품의 제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박스 오피스 순위 1위에 ‘스파이 들’이 자리한 것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한은 안심 하지 못했다.

‘몇 명이나 들었을까?’

이규한이 잔뜩 긴장한 채 개봉 첫 날 ‘스파이들’의 관객수를 확인했다.

“59만 1,327명?”

개봉 첫날 ‘스파이들’을 보기 위해 서 찾아온 관객수를 확인하고 난 후,이규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 다.

“됐다!”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쥔 이규한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질 렸다.

그때 였다.

“뭐 하세요?”

김미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미주 씨? 언제 들어왔어?”

“쓰레기통 비우려고 좀 전에 들어

왔어요.”

“그랬어?”

워낙 긴장하고 집중했던 터라 김미 주가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 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뭐 하시냐니까요?”

그때 김미주가 다시 물었다.

“그게… 기뻐하고 있었어.”

“뭘요?”

“우리 영화 ‘스파이들’이 박스 오 피스 순위 1위에 올랐잖아. 그리고 개봉 첫날 관객수도 60만 명 가까 이 들었고.” 지만, 김미주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왜 이래요? 아마추어같이.”

“응?”

“박스 오피스 순위 1위에 오른 게 처음도 아닌데 괴성까지 지르면서 기뻐하는 것 너무 촌스럽잖아요.”

김미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과속 삼대 스캔들’부터 ‘수상한 여 자’,‘사관,왕을 만든 남자’까지.

이규한이 직접 제작했거나,제작에 관여했던 작품들은 모두 박스 오피 스 순위 1위에 등극했었다.

또,최소 중박 이상의 흥행을 기록

그렇지만 이번 ‘스파이들’의 흥행 은 의미가 남달랐다.

‘스파이들’의 마지막 감정 결과가 57만 명에 불과했던 상황.

그래서 계속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 데.

개봉 첫날 ‘스파이들’의 스코어가 마지막 감정 결과인 57만 명을 뛰 어넘어 58만 명을 기록한 것은 무 척 고무적이었다.

마지막 감정 결과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란 게 확실해졌기 때문이 었다.

“참,손님 찾아왔어요.”

“손님? 누가 찾아왔는데?”

“감독이라던데요. 이름이… 양우석 이라고 했었나?”

김미주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 이규 한이 물었다.

“양우섭 아냐?”

“맞다. 양우섭이라고 했다.”

무릎을 탁 치던 김미주가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이규한이 대답했다.

“꽤 실력 있는 감독이거든.”

양우섭 감독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그렇지만 직접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양우섭이라고 합니다.”

“이규한입니다.”

가볍게 악수를 나누며 이규한이 양 우섭을 빤히 바라보았다.

은테 안경 너머로 쏘아 내고 있는 눈빛은 무척 날카로웠고,꽉 다물고 있는 입매에서는 고집이 느껴졌다.

“우선 축하드립니다. 블루문 엔터 테인먼트에서 제작한 ‘스파이들’이 압도적으로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

신 것이요”

그때 양우섭 감독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 양우섭 감독 이 힘껏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스파이들’의 흥행이 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규한 대표 님께서 제작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 고 있습니다.”

…?"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던 영화 스 태프들의 처우 개선에 앞장선 것이 촬영 현장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

어넣었을 겁니다. 그 긍정적인 에너 지가 영화에까지 전달됐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 탄생했고,홍행에 성공 한 걸 겁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네.’

이규한이 새삼스런 시선을 던지고 있을 때 양우섭 감독이 다시 입을 뗐다.

“그래서 이규한 대표님을 무작정 찾아왔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규한 대표님이라면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주실 것 같아서요.”

한 권의 시나리오 책을 꺼냈다. 그 리고 이규한의 앞으로 내밀었다.

‘변호사 송성문’.

시나리오 책의 앞장에 적혀 있는 제목을 확인한 이규한이 두 눈을 가 늘게 좁히며 속으로 생각했다.

‘왜 이 작품이 아직 개봉하지 않았 지?’

‘변호사 송성문’이라는 작품.

이규한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2013년 가을쯤이었던 것 같은데.’

‘변호사 송성문’에 관한 기억을 더 듬던 이규한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 은 개봉 시기였다.

이규한이 알고 있는 미래 속에서 ‘변호사 송성문’은 2013년 가을경에 개봉을 했었다.

그래서 당연히 ‘변호사 송성문’이 란 작품이 이미 개봉했을 거라고 막 연하게 판단하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변호사 송성문’은 개봉 하지 않았다.

지금 이규한의 앞에 ‘변호사 송성 문’의 감독이었던 양우섭이 시나리 오 책을 들고 찾아온 것이 증거였 다.

‘왜 아직까지 개봉을 하지 않았 지?’

의문을 품은 채 ‘변호사 송성문’의 시나리오 책을 내려다보던 이규한이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다른 제작사는 찾아가 보지 않으 셨습니까?”

“물론 찾아가 봤습니다. 그리고 연 출 계약도 맺었었습니다. 그런데 제 작 도중에 영화가 엎어졌습니다.”

“어느 제작사와 작업하셨습니까?”

“반딧불이 입니다.”

양우섭 감독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 이 흠칫하며 놀랐다.

반딧불이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한때 악연으로 얽힌 적이 있었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반딧불이 제작사와 영화를 제작하는 도중에 엎어진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자금 사정이 악화됐기 때문입니 다. ‘젊어진 그녀’라는 작품이 제작 도중에 무산되면서 반딧불이의 자금 사정이 크게 악화됐고,그로 인해 ‘변호사 송성문’의 제작도 결국 무 산됐습니다.”

꽤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

양우섭 감독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 답했다. 그렇지만 정작 질문을 던졌 던 이규한은 담담할 수 없었다.

‘나 때문이다?’ 반딧불이 제작사에서 준비하던 ‘젊 어진 그녀’의 제작이 무산되며 자금 난을 겪게 된 원인에는 이규한이 존 재했다.

만약 이규한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반딧불이 제작사는 ‘젊어진 그녀’ 를 제작하고 개봉해서 손익 분기점 을 넘겼으리라.

그랬다면 반딧불이 제작사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고, ‘변호사 송성문’의 제작도 무난하게 이뤄져서 이미 개봉했을 터였다.

반딧불이 영화사에서 준비하던 ‘변 호사 송성문’의 제작이 무산되고, 지금까지 개봉하지 못한 것에 자신

이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이규한 을 당혹스럽게 만든 것이었다.

“그 후에 다른 제작사는 찾아가 보 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여러 제작사들을 찾아가 봤 습니다. 그렇지만 ‘변호사 송성문’ 제작에 모두 난색을 표했습니다.”

“이유는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색이 짙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규한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변 호사 송성문’이란 작품.

영화에 정치색이 짙었기 때문이었 다.

문제는 호보다 불이 더 많았던 탓 에 흥행에 실패했단 점이었다.

그리고 흥행에 실패한 게 다가 아 니었다.

‘변호사 송성문’을 제작했던 제작 사 대표는 물론이고 투자했던 투자 배급사까지 특별 세무 조사를 받으 면서 한동안 고생하기도 했었다.

‘제작하고 싶지 않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규한이 었기에 ‘변호사 송성문’의 제작을 해서 바로 거절하려고 했던 이규한 이 아까 양우섭 감독이 꺼냈던 말을 떠올리고 우선 질문을 던졌다.

“아까 저를 무작정 찾아오신 이유 가 저라면 이 작품을 제작해 줄 것 같아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저 는 이 작품을 제작할 거라고 생각하 셨던 겁니까?”

“신념을 엿봤습니다.”

“신념… 이요?”

이규한이 의아한 표정을 지은 순간 양우섭이 덧붙였다.

“설령 가시밭길이 앞에 펼쳐져 있

다고 하더라도 그 길을 가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면 우직하게 걸어가시 는 신념을 갖고 계시다고 판단했습 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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