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4,567,856명.
이승규를 송강오의 상대역으로 선 택하고 감정했을 당시의 예상 관객 수였다.
임동완을 송강오의 상대역으로 선 택하고 감정했을 당시의 예상 관객 수였던 4,769,543명에 비해 약 20 만 명 정도 적은 숫자.
그렇지만 임동완과 이승규의 인지 도와 티켓 파워 차이를 감안하면, 격차가 크지 않아서 의아함을 품었 었는데.
양도윤 감독과 송강오 그리고 이승 규의 케미가 좋은 편이기 때문에 이 런 감정 결과가 나온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였다.
“다른 배우는 없어?”
“유아현과 정동훈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배우입니다. 그런데 유아현 은 캐스팅에서 배제한 상황입니다.” 이유는?” “양도윤 감독이 유아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서요. 유아현이 좋은 배우이긴 하지만 이번 배역에는 어 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 다.”
“내 생각도 그래. 그럼 정동훈만 남은 건가?”
“그렇습니다.”
“괜찮네.”
“네?”
“개인적으로는 동훈이가 내 상대역 으로 더 마음에 들어. 연기를 잘한 다는 소문도 들었고,배역에 딱 어 울리는 이미지거든.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동완이와 연기하는 것 별로야.”
“이유가 있으십니까?”
“괘씸해서.”
“ 구"
“이 대표와 같은 이유야. 이미 나 한테 미운털이 박혔다고 하면 될 까?”
송강오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백 팩에서 ‘스파이들’의 시나리오 책을 꺼내며 물었다.
“정동훈이 상대 배역을 맡을 배우 로 마음에 든다는 말씀이시죠?”
“맞아.” “일단 알겠습니다.”
정동훈은 양도윤 감독이 직접 추천 했던 배우였다.
양도윤 감독의 성격상 어떤 이유 없이 추천했을 가능성은 낮았다.
아마 정동훈이란 배우에 대해 조사 를 거친 후, 그를 캐스팅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확신이 섰기에 추천 했으리라.
즉,양도윤 감독과 정동훈의 케미 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또,송강오도 정동훈의 캐스팅에 긍정적인 반응을 드러낸 상황이었 다.
감독과 배우의 케미에 이어 배우들 간의 케미도 좋다는 증거.
물론 임동완에 비해서 정동훈의 인 지도나 티켓 파워가 부족한 것은 사 실이 었다.
그렇지만 이런 요인들은 충분히 변 수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었다.
‘감정을 해 볼 가치가 충분해.’ 이렇게 판단한 이규한이 펜을 집어 들었다.
-감독: 양도윤.
-주연 배우: 송강오,정동훈.
새로운 조합을 기입한 후 이규한이 ‘스파이들’의 시나리오 책을 들어올 렸다
잠시 후,이규한의 눈앞에 새로운 숫자가 떠올랐다.
-5,223,476.
영화 ‘스파이들’의 촬영 현장.
황진호가 팔짱을 낀 채 투톱 주연 을 맡은 송강오와 정동훈이 세트장 에서 펼치는 연기를 지켜보았다.
“싸움 잘한다면서요?”
“잘한다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떨고 계십니
까?”
“그게… 너무 쪽수가 많잖아. 그래 서 하는 말인데 내가 위험에 처하면 좀 도와……
“알아서 살아남으십시오.”
“뭐?”
송강오가 당황하는 사이 베트남 불 법 체류자들과의 대결이 시작됐다.
꾸역꾸역 버티는 송강오와 달리 정 동훈은 빼어난 싸움 실력을 선보이 면서 베트남 불법 체류자들을 차례
로 여유 있게 쓰러트렸다.
“컷! 오케이입니다”
양도윤 감독이 액션 신에 만족한 표정으로 디렉션을 내린 순간 황진 호가 시계를 살폈다.
“십오 분 정도 남았군.”
이규한이 새로 만든 계약서에는 촬 영 현장 스태프들이 하루 열 시간 이상 일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포함 되어 있었다.
“내일로 미뤄야 하나?”
황진호가 고민에 잠겼다.
계약서에 적시된 조항인 일일 열 시간 노동에서 약 십오 분가량 남은 원래라면 여기서 오늘 촬영을 마치 는 것이 옳았다.
그렇지만 폐공사장 세트에서 촬영 해야 하는 신은 딱 한 신만이 남아 있었다.
폐공사장을 하루 임대하는데 수백 만 원의 비용이 들고,엑스트라들에 게 지급해야 하는 비용도 적지 않음 을 잘 알고 있는 황진호는 못내 미 련이 남았다.
서둘러 한 신만 더 촬영하면 제작 비를 최소 천만 원 이상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 보자.” 그로 인해 고민하던 황진호가 결국 배지열을 불렀다.
“지열아. 한 신 더 촬영하자.”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습니 다.”
“응?”
“아깝잖습니까?”
배지열은 연출부 경험이 풍부한 편 이었다. 그래서 구구절절 말을 하지 않아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서둘러야 해.”
“대신 제작비 아낀 걸로 회식 한 번 시켜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마.”
“약속하신 겁니다.”
잔뜩 신이 난 배지열의 독려와 함 께 다음 신 촬영 준비가 분주하게 시작됐다.
‘제작비를 대체 얼마나 절감한 거 야?’
황진호가 속으로 계산하고 있을 때 였다.
“으아악!”
단발마의 비명성이 울려 퍼졌다.
그 비명성을 듣고 급히 상념에서 깨어난 황진호가 비명 소리가 들려 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사다리 에 올라갔다가 추락하고 있는 배지 열의 모습도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 럼 황진호의 눈에 들어왔다.
쿵.
배지열이 사다리에서 떨어지며 추 락하는 모습을 확인한 황진호가 소 리 쳤다.
“지열아. 배지열!”
추락한 배지열의 곁으로 다가간 황 진호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의식을 잃은 배지열의 뺨을 때리던 황진호의 손이 덜덜 떨렸다.
듯 소리쳤다.
“119. 빨리 119 불러!”
‘스파이들’ 촬영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한 이 규한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일단 병원으로 달려간 이규한이 수 술실 앞 대기 의자에 앉아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황진호를 발 견하고 앞으로 다가갔다.
“형.”
“이 대표,왔어?” “지열이는요?”
“아직 수술 중이야.”
“괜찮겠죠?”
“모르겠어. 지금은 괜찮길 기도하 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황진호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꺼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 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이규한이 신혼여행 비용으로 사용 하라고 건넨 봉투를 받아 들고 무척 기뻐하면서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네 던 배지열의 모습.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 다.
이제 막 가정을 이룬 그가 ‘스파이 들’ 촬영장에서 벌어진 불의의 사고 로 인해 수술대에 올라 있다는 것이 미안했다.
‘무슨 면목으로 제수씨 얼굴을 보 지?’
이규한이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내 탓이야.”
황진호가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자책하지 말아요. 형 탓이 아 니 ” “아니,내 탓이 맞아.”
“ 9”
“멈췄어야 했어. 거기서 촬영을 접 었어야 했는데, 내가 욕심을 부린 탓에 이런 사고가 발생한 거야.”
“무슨 소리입니까?”
“약속한 열 시간이 다 됐는데 폐공 장 신을 한 신만 더 촬영하면 제작 비를 많이 절감할 수 있겠다. 이런 욕심이 생겨서 내가 촬영을 서두르 면서 밀어붙인 탓에 이번 사고가 발 생한 거야. 그러니까 내 탓이 맞아.”
“후우.”
계속 자책하고 있는 황진호를 바라 보던 이규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 다.
어떤 상황이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황진호를 탓하 지 않았다.
그가 촬영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서둘러 밀어붙였던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갔기 때문이었다.
“형,우리 자책은 나중에 합시다.”
“하지만……
“지금은 지열이가 무사하길 빌고, 또 사고를 수습하는 게 우선이에
이규한이 위로하기 위해서 황진호 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을 때였다.
수술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지 친 기색으로 수술실을 빠져나오는 의사를 발견한 이규한이 서둘러 다 가갔다.
“어떻게 됐습니까?” 〈흥행 영화의 이면,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는 스태프들의 피고름을 쥐 어 짜내서 이룬 성과.〉
한 처우,영화계가 더 이상 묵과해 서는 안 된다〉
〈정녕 사람이 다치고 죽어 나가야 만 흥행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가?〉
〈스태프들의 꿈과 희망을 착취해 서 만든 영화를 과연 우리가 볼 필 요가 있을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둣 일제히 쏟 아져 나온 기사의 제목들을 바라보 던 이규한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영화 촬영 현장에 참여하는 스태프 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져 있었다.
그 와중에 ‘스파이들’ 촬영 현장에 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런 기 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 다.
이규한 역시 영화계 종사자.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건 너무 과하다는 생각 이 들었다.
영화 촬영 현장의 여건이 워낙 열 악하다 보니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는 부지기수였다.
그 가운데서는 사망 사고도 많았 다.
그렇지만 ‘스파이들’ 촬영 현장에 서 발생한 사고는 사망 사고가 아니 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배지열의 부상은 크지 않았다.
그리고 사망 사고가 아님에도 불구 하고 이런 기사들이 일제히 쏟아지 는 것.
어딘가 수상쩍게 느껴졌다.
‘배후가 있는 게 아닐까?’
이규한이 이런 의심을 막 품었을 때였다.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양도윤
“이 대표님.”
“오셨습니까?”
‘스파이들’의 연출을 맡은 것은 양 도윤 감독.
현장의 총책임자였던 양도윤 감독 역시 촬영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은 처음인 터라 당황한 기색이 역 력 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양도윤 감독이 사과를 한 순간 이규한이 쓰게 웃으며 입을 뗐 다.
“이번이 다섯 번째입니다.” “사고 이후 감독님과 다섯 번째로 만나는 것이고,그때마다 감독님께 서는 제게 사과를 했다는 뜻입니다. 이제 그만하셔도 됩니다.”
“그렇지만……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어디까 지나 불의의 사고였습니다. 불의의 사고까지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합 니다.”
양도윤 감독의 마음을 좀 더 가볍 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이규한이 애 써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양도윤 감독의 굳은 표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촬영이 중단되면서 제작비가 상승 되고 있습니다. 대표님께 큰 부담을 드리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 실이죠. 그래서 부탁이 하나 있습니 다.”
양도윤 감독이 부탁이란 단어를 입 에 올린 순간 이규한의 표정이 딱딱 하게 굳어졌다.
“설마… ‘스파이들’ 연출을 안 하 실 생각은 아니시죠?”
“그건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이규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비상시국이었다.
만약 여기서 또 다른 악재가 더 터진다면 ‘스파이들’이란 작품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제작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어떤 부탁을 하시려던 겁니 까?”
“제 연출료를 절반만 받도록 해 주 십시오.”
“네?”
“나머지 연출료 절반은 앞으로 추 가될 제작비를 충당하는 데 사용해 주십시오.”
이 고개를 흔들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책임자는 감독님입니다. 그렇지만 ‘스파이들’이란 영화를 제 작하는 과정의 총책임자는 저입니 다. 당연히 제가 책임을 지는 게 맞 습니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