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19화 (119/272)

1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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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잘못된 선택이었어. 배정훈 은 그만한 가치가 없는 감독이거든. 오히려 날 적으로 돌리는 최악의 결 과만 초래했어. 두고 봐. 잘못된 선 택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테니까.”

당시에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이 규한이 막말을 한 거라 판단했다.

그렇지만 두 영화가 맞붙었던 대결 의 결과가 나오고 나자,당시 이규

한이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때 였다.

지이잉. 지이잉.

책상 위에 놓아둔 휴대 전화가 진 동했다.

-아버지.

액정에 떠올라 있는 발신자 정보를 확인한 김기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427만 1,356명.

개봉 20일 차에 ‘사관,왕을 만든 남자’가 동원한 관객수였다.

‘내 선택이 옳았어.’

관객수를 확인한 이규한이 주먹을 불끈 움켜쥔 순간 김미주가 핀잔을 건넸다.

“‘사관,왕을 만든 남자’가 박스 오 피스 2위로 밀려난 건 알고 계시 죠? 그런데 왜 기뻐하세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그 이유가 대체 뭔데요?” 4,254,441 명.

이규한이 감정을 통해서 마지막으 로 확인했던 ‘사관,왕을 만든 남자’ 의 예상 관객수였다.

양도윤 감독과 배우 이선규의 조합 이었을 때의 예상 관객수.

이미 검중이 끝난 상황이었기에 이 규한은 양도윤 감독과 배우 이선규 의 조합으로 ‘사관,왕을 만든 남자’ 의 제작을 진행시키는 것에 대해 고 민했었다.

그렇지만 양도윤 감독과 배우 김명 민의 조합에 못내 미련이 남았다.

비록 감정을 할 수 있는 횟수가 초과되었기 때문에 예상 관객수를 확인할 수 없다는 불안 요소를 안고 있었지만,이규한은 과감하게 모험 을 선택했다.

양도윤 감독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이 했던 모험은 성공 했다.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관객수가 425만 명을 넘어섰다는 것이 이규 한이 했던 모험이 성공했다는 중거 였다.

‘오백만은 넘을 거야.’

개봉 4주차에 접어들면서 상승세가 주춤하긴 했지만, 충분히 오백만 관 객 동원은 가능한 흥행세였다.

그리고 호재는 아직 끝이 아니었 다.

지이잉. 지이잉.

단풍나무 출판사의 흥달수 대표에 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훙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사관,왕을 만든 남자’가 흥행에 성공하면서,단풍나무 출판사에서 재출간한 ‘사초 살인 사건’도 덩달 아 인기를 얻었다.

‘사초 살인 사건’이 대형 서점에서 집계한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10위 권 내에 진입한 것을 확인했기에 이 규한이 축하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이게 전부 이 대표님 덕분입니 다.”

홍달수에게 대답이 돌아온 순간 이 규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재출간한 ‘사초 살인 사건’이 베스 트셀러 순위에 진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홍달수의 목소리가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 었다.

“그런데 별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어두우신데요.”

“표가 났습니까?”

“무슨 일이 있습니까?”

“배가 아파서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실은 오늘 위키드 컴퍼니라는 곳 에서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혹시 위키드 컴퍼니에 대해 알고 계십니 까?”

“물론 압니다.”

위키드 컴퍼니는 국내에서 세 손가 락 안에 드는 뮤지컬 제작사.

향후 OSMU 시장이 더 커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규한도 연극과 유 지컬 등 공연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위키드 컴퍼니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위키드 컴퍼니의 정국연 대표가 ‘사초 살인 사건’을 뮤지컬로 제작 하고 싶으니 판권을 사고 싶다고 했 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배가 아픈 겁니다.”

비로소 상황을 파악한 이규한의 입 가로 미소가 번졌다.

자신과 판권 계약을 맺을 당시,단 풍나무 출판사의 홍달수 대표는 영 상화 판권뿐만 아니라 공연 판권까 지 모두 넘겼었다.

즉,정국연 대표에게 ‘사초 살인 사건’의 공연 판권을 팔 수 없는 상 태라는 뜻이었다.

‘사초 살인 사건’의 공연 판권은 이규한이 갖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것이 흥달수 대표가 배가 아픈 이유였다.

“이 대표님에게 ‘사초 살인 사건’ 의 영상화 판권뿐만 아니라 공연 판 권까지 모두 넘겼다고 정국연 대표 에게 알려 줬습니다.”

“그럼 곧 제게 연락이 오겠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이렇게 소식을 전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이규한이 감사 인사를 건넨 후 전 화를 끊으려고 했을 때였다.

“잠시만요.”

흥달수 대표가 급히 말했다.

“아직 하실 말씀이 남았습니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부탁입니까?”

“‘사초 살인 사건’의 공연 판권을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냥 돌려 달라는 게 아닙니다. 저도 염치는 있습니다. ‘사초 살인 사건’의 공연 판권을 천만 원에 사 겠습니다.”

흥달수 대표가 서둘러 덧붙였다.

그 제안을 들은 이규한이 말했다.

“위키드 컴퍼니의 정국연 대표가 ‘사초 살인 사건’의 공연 판권 가격 으로 오천만 원 정도 불렀나 보군 요.”

정곡을 찔린 탓일까.

흥달수 대표의 말문이 막힌 순간 이규한이 덧붙였다.

“혹시 낙장불입이란 말 들어 보셨 습니까?”

소설책 ‘사초 살인 사건’의 영상 판권과 공연 판권을 모두 가져오는 대가로 이규한이 지불했던 대가는 이천만 원이었다.

그런데 ‘사초 살인 사건’을 원작으 로 제작을 마치고,개봉한 ‘사관,왕 을 만든 남자’가 흥행하면서 공연 판권을 사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공연 판권 가격으로만 오천만 원을 지불하겠다는 정국연 대표의 의사를 확인한 순간, 홍달수는 당시의 선택 을 땅을 치며 후회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너무 늦었다.

이규한은 이미 구입한 ‘사초 살인 사건’의 공연 판권을 다시 넘겨줄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내 말을 귀담아들었어야지.’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입 을 뗐다.

“제가 충고 하나 드려도 될까요?”

“충고… 요?”

흥달수의 목소리는 떨떠름했다.

공연 판권을 다시 돌려받고 싶다는 의사를 고심을 거듭한 끝에 밝혔음 에도 거절당한 상황.

그런데 원치 않던 충고까지 듣게 된 마당에 반가울 리 없었기 때문이 “어떤 충고입니까?”

“훙 대표님이 좋은 작가와 작품들 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다는 것은 저 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예전이었다 면 그걸로 충분했을 겁니다. 그렇지 만 요즘은 시대가 변했습니다. 단순 히 좋은 책을 출간하는 것에서 그치 면 안 됩니다. 영화나 드라마,뮤지 컬로 제작될 수 있는 작품을 발굴하 기 위해서 더 노력하셔야 합니다.”

출판사 대표로서 홍달수의 능력은 뛰어난 편이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경험했던 홍달 수의 장사 수완은 형편없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단 풍나무 출판사에서 출간한 소설책들 가운데 앞으로 판권이 팔릴 작품들 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때는 이 번처럼 후회하지 않도록 판권 계약 에 신중을 기하십시오.”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렇게 판단했기 때문에 이규한은 낚시를 하는 법을 홍달수 대표에게 알려 준 셈이었다.

‘내 충고를 귀담아들었을까?’

거기까지는 이규한도 알 수 없었 다. 그리고 이규한이 할 수 있는 것 은 여기까지였다.

이규한의 충고를 받아들여 달라지 느냐?

아니면 형편없는 장사 수완으로 계 속 손해를 보느냐?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결정을 내 리는 것은 홍달수의 몫이었다.

흥달수와의 길었던 통화를 마친 이 규한이 환하게 웃을 때 김미주가 물 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좋은 일,있어.”

“뭔데요?”

“복권이 당첨됐어.”

“정말 복권에 당첨됐어요?” 김미주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은 순간 이규한이 대답했다.

“응,그래서 이사할 생각이야.”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대표실.

한동안 이어지고 있는 침묵이 무척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김기현 이 애꿎은 찻잔의 손잡이만 매만지 고 있을 때였다.

“네가 제작한 영화를 봤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이 자 아버지인 김대환이 먼저 침묵을

깨트렸다.

“보셨습니까?”

그 이야기를 들은 김기현은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사랑이 운다’는 아직 극장에서 상 영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박 스 오피스 순위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었고,상영관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지금까지 동원한 관객수는 969,988명.

만약 다른 영화였다면 이미 진즉에 극장 상영을 종료했을 것이었다. 그 렇지만 ‘사랑이 운다’는 여전히 극 장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김기현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 덕분이야!’

‘사랑이 운다’가 백만 관객을 돌파 하기까지 남은 관객은 약 3만 명 정도.

아버지는 ‘사랑이 운다’가 백만 관 객을 돌파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계속 극장 상영을 해 달라고 압력을 가하거나 부탁을 했을 것이었다.

‘아직 애정을 완전히 거둬들이지는 않으셨다.’

김기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이 운다’가 흥행 부진에도 불 구하고 아직 극장에 걸려 있는 것이 김대환이 아들인 자신에게 애정이 남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기 때 문이었다.

그때 였다.

“내 평가가 궁금하지 않으냐?”

김대환이 던진 질문을 들은 김기현 이 움찔했다.

사적으로는 부자 관계였지만 공적 으로는 투자 배급사 대표와 제작사 대표의 관계였다.

국내 최대 규모의 메이저 투자 배 급사인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대표 김대환이 ‘사랑이 운다’를 보고 내 린 평가가 어떨지 궁금했다.

해서 김기현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 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일단 트랜드에 맞지 않았다. 요 근래 몇 년간 정통 멜로 장르의 작 품은 흥행에 성공한 적이 없었으니 까. 그리고 설정도 진부했다. 암 말 기 시한부라는 설정, 그동안 지겹도 록 봐 왔던 것이니까. 그리고 엔딩 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약 내가 제작했다면 영화의 결말을 바꿨을 것이다. 새드 엔딩보다는 차라리 열 린 결말이 나았을 테니까.”

예상대로 혹평이 쏟아진 순간 김기 현은 다시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

다. 그래서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 져가던 김기현이 속으로 물었다.

‘그럼 왜 투자를 하신 겁니까?’

‘사랑이 운다’가 그렇게 형편없는 작품이었다면,왜 씨제스 엔터테인 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았느냐?

‘사랑이 운다’의 투자와 배급을 결 정한 당신의 안목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김기현이 반발심이 담긴 시선을 김 대환에게 쏘아 낼 때였다.

“그렇게 잘 알면서도 왜 씨제스 엔 터테인먼트에서 ‘사랑이 운다’라는 영화에 투자를 했는지 궁금하겠지?” “그렇습니다.”

“내부에서 ‘사랑이 운다’에 투자하 는 것을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지만 내가 억지로 밀어붙였다.”

“왜 그러셨습니까?”

“약속을 했으니까.”

……?"

“일전에 이규한과 함께 갈 수 없다 면 네가 더 낫다는 걸 증명하라고 말했다. 그걸 증명할 기회를 준 거 지. 그런데 증명하지 못했더구나.”

“…네.”

패배를 인정하는 것.

김기현에게는 결코 익숙한 일이 아

니었다.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럼 인정하거라.”

“뭘 인정하란 말씀이십니까?”

“네가 이규한을 이길 수 없다는 것 을 인정하란 뜻이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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