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왜 다들 내게 고맙다고 하는 걸까? (2) “약속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약속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떳떳한 아들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다는 약속이요. 각본 크레딧 에 제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확 인한 순간,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 다.” 소름만 돋은 것이 아니었다.
박동선 작가의 눈시울은 붉게 달아 올라 있었다.
그런 그를 웃으며 바라보던 이규한 이 지갑을 꺼냈다.
“받으세요.”
“이게… 뭡니까?”
“영화 티켓입니다.”
이규한이 박동선 작가에게 건넨 것 은 로터스 극장에서 상영하는 모든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 티켓이었 다.
예전 권지영 팀장에게서 받아 두었 던 영화 티켓을 건네며 이규한이 말 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서 함께 영화 를 보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떳떳한 0}들이 되고 난 후,다시 저를 찾아오십시오.”
"왜……?”
“앞으로도 함께 작업할 작품들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동선 작가가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떠났다.
멀어져 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던 이규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규한은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앞다 투어 이규한에게 고맙다고 인사했 다.
“오히려 내가 감사해야 하는데.”
윤규진 작가가 ‘사초 살인 사건’이 라는 소설을 집필하지 않았다면? 그 리고 홍달수 대표가 이규한에게 ‘사 초 살인 사건’의 판권을 팔지 않았 다면?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제작은 시작조차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또,박동선 작가가 원작을 바탕으 로 훌륭한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못
했다면?
‘사관,왕을 만든 남자’는 제작되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이규한이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정작 그들이 이규한에게 감사해 하고 있 었다.
“어쨌든 해피 엔딩이 됐으니까.”
잠시 후,이규한의 입가로 뿌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이 만들고 있는 한 편의 영화 로 인해 새로운 희망을 얻고,다시 힘을 얻은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 보 기 좋았기 때문이었다.
관객들의 호평 세례 덕분에 긴장이 풀린 걸까.
환하게 웃고 있는 황진호의 앞으로 다가간 이규한이 말했다.
“형,고생하셨어요.”
“이 대표,고맙다.”
“아마 ‘사관,왕을 만든 남자’가 형 의 인생을 바꿔 줄 겁니다.”
“정말 그렇게 될까?”
황진호의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대 답했다.
“분명히 그렇게 될 겁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이규한은 홀로 극장을 찾았다.
야심한 시간이었지만 ‘사관,왕을 만든 남자’가 상영되는 극장 내부는 손님들이 거의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제대로 한번 보자.”
이미 시사회에 참석해서 ‘사관,왕 을 만든 남자’를 봤던 이규한이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영화관 을 다시 찾아와서 ‘사관,왕을 만든 남자’를 또 한 번 보려는 데는 이유
가 있었다.
시사회장에서 ‘사관,왕을 만든 남 자’를 관람하긴 했지만,이규한은 영화 내용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 다.
시사회장을 찾아온 관객들의 반응 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집중해서 제대로 보자.’
‘사관,왕을 만든 남자’는 이미 개 봉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제작자인 이규한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에 서 아쉬움을 느낀다고 해도,어떻게 손을 쓸 도리는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 제작자들은 자신이 제작한 영화가 개봉한 후 극 장에 찾아가서 다시 보는 경우가 드 물었다.
그리고 이규한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허점이나 아쉬 운 부분을 발견하면,아쉬옴만 더 커지기 때문에 일부러 자신이 제작 한 영화를 극장으로 찾아가서 다시 보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른 선택을 내렸 다. 그리고 이규한이 ‘사관, 왕을 만 든 남자’를 집중해서 다시 보려는 진짜 이유는… 양도윤 감독 때문이 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사관, 왕을 만든 남자’ 후속작으로 제작하 고 있는 영화는 ‘스파이들’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은 ‘스파이들’의 연출 을 양도윤 감독에게 맡기는 것을 염 두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가 연출했던 ‘사관,왕을 만든 남자’를 제대로 볼 필요가 있 었다.
양도윤 감독에 대한 마지막 확인 절차라고 표현하면 될까.
“관객이 많아서 다행이네.”
극장 내부를 둘러보던 이규한이 미 소를 머금었다.
“영화 반응 좋습니다. 걱정 안 하 셔도 됩니다.”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투자와 배급을 맡은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권지영 팀장이 통화 중에 들 뜬 목소리로 건넸던 말이었다. 그러 나 권지영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들 었을 때는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직접 영화관에 찾아와서 극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자 실감이 났다.
잠시 후,극장 안의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오롯이 집중한 채 영화를 지켜본 후,이규한이 만족한 기색을 드러냈 다.
“연출 능력이 있네.”
액션에 강점이 있는 감독, 감정선 을 잘 표현하는 강점이 있는 감독, 코미디 감각에 강점이 있는 감독 등 등.
영화감독들은 각각 강점을 가진 부 분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양도윤 감 독도 강점을 가진 부분이 존재했다.
바로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능력이 었다.
김명인이라는 배우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카메라에 담아내는 연출력 은 이규한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 분했다.
“스토리고 좋고,배우들 연기도 끝 내준다.”
“와아. 벌써 끝났어? 시간 순삭이 다.”
“웰메이드 작품이라더니 진짜였 네.”
그때 이규한의 귓가에 ‘사관,왕을 만든 남자’를 함께 관람했던 관객들 이 쏟아 낸 평가가 들렸다.
‘이것도 나쁘지 않네.’
그 평가를 들은 이규한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장으로 찾아온 관객들의 차이점은 관람료의 지불 유무였다.
자신의 돈을 직접 내고 극장으로 찾아와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의 평 가.
시사회장을 찾아왔던 관객들에 비 해서는 더 엄격하고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 마련이었다.
‘김명인이 연기를 잘한 것도 있지 만,양도윤 감독의 섬세한 연출 때 문에 그의 연기가 더 돋보인 거야.’
김명인의 연기에 감탄하던 관객에 게 이렇게 알려 주려다가 이규한은 꾹 참았다.
너무 오버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잠시 후,이규한이 상영관을 빠져 나왔다.
극장 로비에서 꺼 두었던 휴대 전 화의 전원을 켜고 문자를 확인하고 있을 때,한 무리의 관객들이 우르 르 로비로 쏟아졌다.
“동완 오빠 눈빛 진짜 아련하더 라.”
그들이 나누는 대화 중에 임동완의 이름이 흘러나온 순간,이규한이 귀 를 종긋 세웠다.
지금 등장한 한 무리의 관객들이 ‘사랑이 운다’를 관람하고 나오는 관객들임을 금세 알아챘기 때문이었 다.
“수지랑 잘 어울리더라.”
“속상하다. 해피 엔딩이면 좋았을 텐데.”
“결국 죽였네. 감독 진짜 독하더 라.”
그들이 쏟아 내는 ‘사랑이 운다’의 관람 평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규 한이 쓰게 웃으며 혼잣말을 꺼냈다.
“결국… 죽였구나.” 153,781 명.
이규한이 감정을 통해서 확인했던 ‘사랑이 운다’의 예상 관객수였다.
그리고 이규한은 감정만 한 것이 아 니었다.
‘사랑이 운다’의 시나리오를 직접 읽기도 했었다.
당시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이규 한이 가장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은 시나리오의 결말 부분이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말기암 환자 인 남자 주인공이 극중에서 결국 죽 음을 맞이하면서 새드 엔딩으로 영 화가 끝이 났기 때문이었다.
‘엔딩을 바꿔야 영화가 산다.’
이규한이 ‘사랑이 운다’의 시나리 오 책을 모두 읽고 내렸던 판단이었 다. 그래서 배정훈 감독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던 중에 넌지시 이런 의 견을 전달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배정훈 감독은 단호했다.
“무조건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감 정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습니 다.”
일언지하에 이규한이 꺼냈던 의견 을 거절했다. 그리고 배정훈 감독은 이규한의 예상대로 자신의 고집을 절대 꺾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개봉한 ‘사랑이 운다’에서도 남자 주인공인 임동완이 결국 극중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이규 한이 웃었다.
운다’.
두 영화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 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네티즌 평점: 8.89 / 10
‘사랑이 운다’의 평점은 9점대에 육박할 정도로 높았다. 그리고 영화 를 관람한 관람객들의 감상 평도 나 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정통 멜로. 너무 애절하고 좋았음.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
-임동완과 박수지의 케미 끝내준 다. 둘이 진짜 사귀어도 어울릴 둣.
-슬폈다. 그래서 많이 울었다. 아 쉬운 점은 개봉 시기. 쓸쓸한 바람 이 부는 가을에 개봉했으면 더 슬펐 을 텐데.
높은 평점에 이어서 관람객들이 남 긴 호평들까지 확인했음에도 김기현 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높은 평점과 호평 세례에도 불구하 고 ‘사랑이 운다’의 흥행 성적이 기 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 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홍보팀장 인 김덕원이 들어왔다.
“대표님, 찾으셨습니까?”
‘사랑이 운다’의 흥행 성적이 기대 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김덕원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눈 치를 살피고 있었다.
“훙보 더해요. 프라임 시간대에 TV 광고 잡고,이벤트 상품 세게 걸고 SNS 마케팅도 좀 더 강화하세 요.”
로 대답하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습니까?”
“그게……
“뭡니까?”
“지금 상황에서 흥보비를 더 지출 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는 분석 결 과가 나왔습니다.”
“왜 손해라는 겁니까?”
“‘사랑이 운다’는 정통 멜로 장르 의 영화입니다. 트랜드에 맞지 않는 장르인 데다가 시한부라는 진부한 설정과 새드 엔딩을 불편해 하는 관 객들의 심리로 인해 아무리 흥보를 한다고 해도 100만 관객을 동원하 는 게 한계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 다. 그래서 홍보비를 더 지출하지 않는 편이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 법이라는 분석이 나온 겁니다.”
‘최대 백만?’
김기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관객수 는 얼마나 됩니까?”
“개봉 4일차였던 어제까지 누적 관 객수가 95만 명 정도였습니다. 오늘 백만 관객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습 니다.”
김덕원에게서 돌아온 대답을 들은 김기현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또… 졌다.’
개봉 4일차.
흥보에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사 랑이 운다’는 박스 오피스 3위로 밀 려난 상황이었다.
박스 오피스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사관, 왕을 만든 남자’를 상대로 극 적인 역전을 만들어 낼 가능성은 희 박했다.
또 한 번 패배를 직감한 김기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와 연출 계약 을 이미 맺었던 배정훈 감독을 빼앗 아오는 편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이규
한을 이기고 싶었다.
그렇지만 두 번째 맞대결에서도 김 기현은 패배했다.
‘왜 패한 거지?’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던 김기현의 귓가에 이규한이 했던 말이 떠올랐 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