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왜 다들 내게 고맙다고 하는 걸까? (1)
이규한이 작품의 흥행 여부를 확신 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우선 ‘사관,왕을 만든 남자’는 이 번에 처음 개봉하는 영화였다.
‘과속 삼대 스캔들’이나 ‘수상한 여 자’처럼 이규한의 기억 속에서 크게 흥행했던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었 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사관,왕을 만 든 남자’의 제작 과정에서 감정이라 는 특수한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으로 제작 단계에 돌입하기 전에 이미 한 작품당 일곱 차례 사 용할 수 있는 감정 횟수를 다 써 버려서 였다.
‘양도윤 감독과 김명인 조합의 시 너지,그리고 진호 형을 믿는 수밖 에.’ 이규한이 고개를 돌려서 황진호를 바라보았다.
중요한 세팅 작업은 이규한이 맡았 지만,‘사관, 왕을 만든 남자’의 제 작을 주도한 것은 황진호였다.
그래서일까.
황진호는 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진호 형에게도 무척 중요한 작품 이니까.’
직접 제작했던 영화 ‘지옥도’의 흥 행 참패로 황진호에게는 실패한 제 작자라는 낙인이 찍힌 상황.
영화 제작자로서 재기를 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피디로서 능력을 보 여 줘야 했다.
그 첫 시험대가 바로 ‘사관,왕을 만든 남자’였다.
중요한 작품인 건 마찬가지야.’
이규한 혼자서 블루문 엔터테인먼 트에서 진행하고 있는 모든 프로젝 트를 도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에 분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분업의 첫 결과물이 바로 ‘사 관,왕을 만든 남자’였다.
만약 ‘사관,왕을 만든 남자’가 성 공한다면?
앞으로 황진호를 믿고 더 많은 프 로젝트를 맡길 수 있었다.
반면,‘사관,왕을 만든 남자’가 실 패한다면?
황진호를 믿을 수 없기에 이규한의
부담이 더 늘어날 것이었다.
그사이 극장 내부는 손님들로 꽉 들어찼다. 그리고 잠시 후, 극장 안 의 불이 꺼졌다.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한 순간 이규 한의 시선이 화면에 고정됐다. 그렇 지만 이규한은 영화를 제대로 감상 하지 못했다.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반응에 집중하느라 신경이 분산됐기 때문이 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시간이 흐를수록 이규한의 불안감 이 커져 갔다.
‘수상한 여자’의 시사회 때와는 분 위기가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웃음소리도,울음소리도 들리지 않 는 극장 내부는 숨소리마저 크게 들 릴 정도로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사관은 종구품에 불과한 말단 관 직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사관을 우습게 여기지 못했다. 그 이유는 사관이 역사를 기록하는 자이기 때 문이다.”
‘사관,왕을 만든 남자’에서 남자 주인공 배역을 맡은 김명인의 내레 이션이 흘러나왔다.
샤사삭.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은 김명인이 붓을 들어 사초를 기록하는 장면이 보여지던 도중 화면이 암전됐다. 그 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 한 순간이었다.
“하아!”
“하아아!”
객석 곳곳에서 깊은 한숨 소리들이 홀러나왔다.
그 한숨 소리가 귓가로 파고든 순 간 이규한이 떠올린 것은 영화 ‘만 월’이었다.
‘만월’이 끝나고 난 후,시사회가 열렸던 객석 곳곳에서는 관객들의
깊은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었다.
‘비슷해.’
당시와 지금.
영화가 끝나고 난 후,객석에 자리 한 관객들의 반응이 비슷하다는 생 각이 든 순간 이규한은 온몸에서 힘 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망한 건가?’
이규한의 불안감이 극으로 치달은 순간,관객들의 평가가 홀러나오기 시작했다.
“와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대박이다,대박. 숨 쉴 틈을 안 주네.” “원작이 있어서 그런가? 이야기에 힘이 있네. 다음 장면이 너무 궁금 해서 화면에서 눈을 멜 수가 없어.”
“몰입도 찐다. 쩔어.”
객석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그 평가를 들은 순간 이규한은 자 신이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엔딩 크 레딧이 올라갈 때, 객석 곳곳에서 홀러나왔던 관객들의 깊은 한숨 소 리에 담긴 의미.
‘만월’이 끝나고 났을 때,객석에서 터져 나왔던 한숨 소리와는 의미가 달랐다.
‘만월’의 경우에는 영화가 너무 재 미없는 탓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한숨을 토해 냈었다.
그렇지만 ‘사관,왕을 만든 남자’가 끝나고 난 후,객석 곳곳에서 관객 들이 깊은 한숨을 토해 냈던 이유는 작품에 실망해서가 아니었다.
사초를 둘러싼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그 연쇄 살인 사건이 왕 권을 위협하는 사건으로 번져 가는 과정에서 긴장감과 몰입감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관객들은 숨을 크게 내쉴 여유도 없이 영화에 집중했었 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면서 깊은 한숨
을 토해 낸 것이었다.
‘나쁘지 않다.’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의 평가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 고 나서야,이규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이규한의 앞으로 누군가 다가 왔다.
“이규한 대표님.”
“훙 대표님,오랜만입니다.”
단풍나무 출판사의 홍달수 대표를 마주한 이규한이 반갑게 인사를 건 넸다. 그렇지만 홍달수 대표의 표정 은 밝지 않았다.
“저희가 마지막으로 만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습니다.”
“네?”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사초 살인 사건’이 진짜 영화로 만들어질 지 몰랐거든요. 그것도 이렇게 빨리 개봉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흥달수 대표는 축하해 주는 대신 연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그가 연신 한숨을 내쉬고 있는 이 유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맺을 당시,이규한은 홍달수 대표에 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전자는 판권을 넘기는 대가로 초기 금액을 적게 받고 영화가 개봉한 후 흥행했을 경우 계약서에 적시한 일 정 비율의 러닝 개런티를 받는 방식 이었고,후자는 판권을 넘기는 대가 로 더 많은 금액을 받고 모든 권리 를 넘기는 방식이었다.
당시 홍달수 대표가 선택했던 것은 후자.
그리고 흥달수 대표가 후자 방식의 계약을 선택했던 이유는 ‘사초 살인 사건’이 영화로 제작될 확률이 낮다 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정작 ‘사초 살인 사건’이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을 앞두고 있 자,예상과 다른 전개로 인해 속이 쓰린 것이었다.
“이 대표님,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영화가 무척 재밌네요.”
“왜 인정하고 싶지 않으신 겁니 까?”
“홍행할 것 같아서요.”
“네?”
“그럼 제가 판권 계약을 맺을 당시 에 내렸던 선택이 더 뼈아프게 다가 올 것 같아서요.”
가로 미소가 번졌다.
방금 흥달수가 꺼낸 말.
‘사관,왕을 만든 남자’가 흥행에 성공할 정도로 무척 재미있다는 뜻 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이규한이 고개를 돌렸다.
흥달수 대표와 동행한 사람을 발견 했기 때문이었다.
“함께 오신 분은 누구십니까?”
“윤규진 작가입니다.”
“아! 윤규진 작가님이시군요. 반갑 습니다.”
윤규진 작가는 ‘사초 살인 사건’이 란 소설책을 쓴 원작자.
그가 쓴 소설을 읽기는 했지만,직 접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반갑게 인사를 건 넨 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제가 쓴 재미없는 소 설을 이렇게 재밌는 영화로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윤규진 작가는 감사 인사를 건넸 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고개를 흔들었 다.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 윤규 진 작가님이 좋은 소설을 써 주신 덕분에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으니까요.” 본인이 쓴 소설이 영화로 개봉한 것이 아직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는 걸까.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윤규진 작가를 바라보던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윤규진 작가님,자신감을 가지셔 도 됩니다.”
“네?”
“작가님이 집필하셨던 소설 ‘사초 살인 사건’,무척 재밌었습니다. 적 어도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꼈습 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부탁인데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많이 집필해 주십시오. 제가 작가님이 쓰신 작품의 판권을 또 구매하고 싶으니까요.”
이규한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 유.
윤규진 작가가 ‘사초 살인 사건’의 판매량이 부진해서 생활고를 겪으며 작품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홍달수 대표에게 전해 들었 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그에게 집필 의욕을 불어넣기 위해 던졌던 이야기였는데,그런 이규한 의 의도는 먹혔다.
습니다.”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있는 윤규진 작가를 바라보던 이규한이 홍달수 대표에게 고개를 돌렸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뭘 서두르라는 말씀입니까?”
“실수를 만회하셔야죠?”
“ 용……?"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개봉이 멀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영화 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제목이 바뀐 터라,‘사초 살인 사건’이란 소설책 이 ‘사관,왕을 만든 남자’라는 영화 의 원작 이라는 것을 대중들이 모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빨리 그 사실을 알려야죠.”
이규한이 충고했지만 홍달수 대표 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두 눈을 낌벅이며 석상처럼 서 있 었다.
“저더러… 어떻게 하란 겁니까?”
오히려 자신에게 방법을 묻는 홍달 수 대표를 확인한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장사 수완이 이렇게 없어서야.’
흥달수 대표를 답답하게 바라보던 이규한이 방법을 알려 주었다.
“‘사초 살인 사건’을 재출간하십시 오.”
“판매가 부진해서 절판했던 책을 대체 왜 다시 출간하라는 겁니까?”
“상황이 변했으니까요.”
“무슨 상황이 어떻게 변했다는 겁 니까?”
“흥행할 겁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 는 흥달수 대표에게 이규한이 덧붙 였다.
“이번에 제가 제작한 ‘사관,왕을 만든 남자’. 개봉한 후에 분명히 흥 행할 겁니다. 그러니 상황이 변한
셈이죠. ‘사관,왕을 만든 남자’라는 영화가 흥행하면,자연스레 관객들 이 원작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겁니 다.”
“대중들이 ‘사초 살인 사건’이란 소설책을 찾을 거란 뜻이군요.”
“네. 그러니 재출간하셔야죠.”
이규한이 덧붙인 말을 듣고서야 홍 달수 대표는 비로소 이해한 기색이 었다. 그런 그에게 이규한이 다시 말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작 과정에 서 영화의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그 러니 ‘사초 살인 사건’이란 소설책 이 영화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원작이라는 사실을 대중들에게 알려 야 합니다. 띠지를 새로 만들든,표 지를 새로 만들면서 카피 문구를 삽 입하든 그 사실을 알리십시오. 제가 드린 말씀,무슨 뜻인지 이해하셨
죠?”
“네,확실히 이해했습니다.”
힘주어 대답하던 흥달수 대표의 표 정은 조급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윤 규진 작가도 덩달아 표정이 조급하 게 바뀌어 있었다.
“분명히 책이 잘 팔릴 겁니다.”
그들이 서둘러 떠나고 난 후,이규 한이 웃으며 혼잣말을 꺼냈을 때였 다.
“대표님.”
이번에는 박동선 작가가 이규한을 찾아왔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