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천재 감독 우중완 (1) “사고?”
“네가 시킨 대로 말해 버렸거든.”
“……?"
“더러운 수작질 부렸던 것,분명히 땅을 치고 후회하는 날이 있을 거라 고 버럭 소리치고 나와 버렸어.”
“잘했네.”
“참았어야 했는데.”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한 장준경에 게 이규한이 말했다.
“이미 저지르고 나서 후회는 해서 뭐 해?”
“그건 나도 알지만……
“지금은 후회할 때가 아니라 네 말 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할 때 야. 진짜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 어 줘야 할 때란 뜻이지.”
이규한이 꺼낸 말은 효과가 있었 다.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장준경이 입을 뗐다.
“그래서 묻는 건데. 누구야?”
“‘베테랑들’의 연출을 맡을 감독을 묻는 거야?”
“그래. 이제 말해 봐.”
장준경의 재촉을 받은 이규한이 대 답했다.
“우중완 감독이야.”
“방금 누구라고 했어?”
장준경이 다시 물었다.
“우중완 감독이라고 했어. 몰라?”
“알아. 그래서 다시 물었던 거야.”
“ …?"
“왜 하필 우중완 감독이야?”
장준경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않
또,영 탐탁잖은 표정을 짓고 있었 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솔직히 썩 내키지는 않네. 심수창 감독에 비해서 이름값이 많이 떨어 지니까.”
장준경의 말대로였다.
심수창 감독에 비하면 우중완 감독 은 명성이 한참 떨어졌다.
단편 영화인 ‘변절자가 되는 순간’ 이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자신 의 이름을 알린 우중완 감독에 대한 충무로의 기대는 컸다.
많은 기대를 받았던 우중완 감독의 상업 영화 데뷔작은 ‘데스매치,카 운트다운’.
그렇지만 너무 실험적이고 어렵다 는 평가를 받은 ‘데스매치,카운트 다운’은 손익 분기점을 넘기지 못하 며 흥행에 실패했다.
십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천 재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우중 완에게 쏟아졌던 기대에 한참 미치 지 못했던 아쉬운 흥행 성적이었다.
심기일전한 우중완 감독의 상업 영 화 두 번째 연출작은 ‘죽어야 산다’ 였다 좀 더 관객이 많이 들었지만,‘죽어 야 산다’ 역시 흥행과는 거리가 멀 었다.
‘죽어야 산다’도 손익 분기점을 넘 기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데스매치,카운트다운’과 ‘죽어야 산다’가 잇따라 흥행이 부 진하자,충무로 관계자들의 태세 전 환은 빨랐다.
실력에 비해 과대평가된 감독이란 평가를 내리며 우중완 감독에 대한 관심을 서둘러 거두어들였다.
이것이 우중완 감독에게 ‘베테랑 들’의 연출을 맡겨 보자고 이규한이 제안했을 때,장준경이 탐탁잖은 반
응을 드러낸 이유였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꼭 우중완 감독 에게 ‘베테랑들’의 연출을 맡기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연출 실력은 괜찮아.”
이규한이 입을 됐지만,장준경은 재빨리 반박했다.
“연출 실력이 괜찮은 감독들은 많 아. 굳이 우중완 감독에게 ‘베테랑 들’의 연출을 맡길 이유는 없는 것 아냐?”
“이유가 있어.”
이규한이 힘주어 대답했다. 그리고 ‘베테랑들’의 연출을 우중완 감독에
게 맡기려는 진짜 이유는 이규한이 미래를 알고 있어서였다.
-연출: 우중완.
이규한의 기억 속 ‘베테랑들’의 연 출은 우중완 감독이 맡았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규한은 우중완 감독을 ‘베테랑들’의 연출을 맡을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과속 삼대 스캔들’과 ‘광안리’.
두 작품의 공통점은 이규한의 기억 속에서 흥행작이었다는 점이었다.
갈렸다.
‘과속 삼대 스캔들’은 7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이 된 반 면,‘광안리’는 200만 명의 관객도 동원하지 못하며 흥행 참패를 기록 했으니까.
‘차이가 뭐였을까?’
‘과속 삼대 스캔들’과 ‘광안리’의 운명이 확연히 엇갈린 것을 확인한 후,이규한은 이런 의문을 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찾아낸 답은 싱크 로율이 었다.
-연출: 강형진.
-주연 배우: 차태훈,박보연.
이규한이 제작에 참여했었던 ‘과속 삼대 스캔들’의 감독과 주연 배우는 이규한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과 속 삼대 스캔들’과 같았다.
제작사와 투자 배급사는 달랐지만, 그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영화의 흥행에 가장 큰 영향을 미 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감독과 주연 배우였으니까.
반면,김기현이 제작했던 ‘광안리’ 의 감독과 주연 배우는 이규한의 기 억 속에 남아 있던 ‘광안리’와 달랐
‘이것이 ‘광안리’가 흥행에 실패한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이규한은 이렇게 판단을 내렸던 것 이었다.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개봉 시기 역시 영화의 흥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속 삼대 스캔들’이 ‘추적자’와 같은 시기에 개봉해서 이규한이 기 억하던 스코어보다 약 백만가량 관 객이 줄었고,‘광안리’는 이규한이 기억하던 것보다 약 2년 먼저 개봉 해서 CG의 완성도에 문제점을 드 러내며 흥행 참패를 기록한 것이 증
거였다.
‘연출과 주연 배우 그리고 개봉 시 기.’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서 이규한 은 영화의 흥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세 가지라고 확신하 고 있었다.
이 세 가지 변수들 가운데 어떤 변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느냐?
아직 여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한 상 태였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이 한 가지 있 었다.
보와 싱크로율을 맞추면 맞출수록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 진다는 점이었다.
‘우중완 감독을 꼭 잡아야 해!’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이규한이 우중 완 감독에게 ‘베테랑들’의 연출을 맡기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였다.
“그 이유가 대체 뭔데?”
장준경이 질문했다.
‘어렵네!’
그 질문을 받은 순간 이규한이 한 숨을 내쉬었다.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변하기 곤란했다.
그렇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 다.
이런 경험이 자꾸 쌓이다 보니 어 느덧 이규한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서 따로 답변을 준비해 두고 있었 다.
“내가 우중완 감독에게 ‘베테랑들’ 의 연출을 맡기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야. 첫 번째 이유는 상업 영화 감독으로 두 작품을 말아먹었기 때 문이야.”
이규한이 첫 번째 이유를 밝히자 장준경은 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 을 지었다.
“그러니까 더 연출을 맡기면 안 되 는 것 아냐?”
“반대야. 이제 정신을 차렸을 테니 까.”
“무슨 정신을 차렸다는 거야?”
“우중완 감독이 연출한 두 편의 상 업 영화가 모두 흥행에 실패하면서 본인이 천재 감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거란 뜻이야.”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 하다는 말,들어 본 적 있어?” “그거 스포츠 선수들에게 많이 쓰 는 말이잖아.”
“맞아. 베테랑 선수들이 일시적으 로 슬럼프에 빠졌을 때 팬들이 자주 쓰는 말이야.”
축구나 야구 선수들이 일시적으로 부진한 슬럼프에 빠졌을 때,팬들이 선수를 옹호하기 위해서 쓰는 말이 었다. 그리고 그 말은 대부분 적중 한다.
슬럼프에 빠졌던 스포츠 선수들은 곧 본인이 가진 기량을 드러내며 슬 럼프에서 탈출해서 폼은 일시적이지 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옳다 는 것을 증명해 낸다.
“그러니까 우중완 감독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거야?”
장준경의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고 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괜히 천재 감독이라고 소문난 게 아니거든.”
우중완 감독의 단편 영화 데뷔작이 었던 ‘변절자가 되는 순간’은 토론 토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었다. 그리고 영화제 심사 위원들의 눈은 아주 정확한 편이었다.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작품이 수상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마 우중완 감독 역시 그 사실을
그러나 장편 영화 데뷔작이었던 ‘데스매치, 카운트다운’과 차기작인 ‘죽어야 산다’가 잇따라 흥행 부진 을 겪고 나서 우중완 감독은 당황했 을 것이었다.
스포츠 선수로 비유하자면 슬럼프 를 겪는 상황.
슬럼프를 겪으면서 우중완 감독은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었다.
이러다가 앞으로 감독 생활을 계속 이어 나가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위기감도 경험했을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느낀 점도 분명 많았을 것이었다.
‘그 시간들이 우중완 감독을 변하 게 만들었을 거야.’
충무로에서 잊혀져 가는 천재 감독 의 화려한 부활.
우중완 감독이 바라 마지않는 상황 일 터였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우중완 감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눈물 을 흘리면서 노력하고 있을 것이었 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할 때가 멀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 이규한이 우 중완 감독에게 ‘베테랑들’의 연출을 맡기려는 첫 번째 이유였다.
“하긴 ‘변절자가 되는 순간’의 임 팩트가 대단하긴 했지.”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 면 거의 대부분 우중완 감독의 단편 영화인 ‘변절자가 되는 순간’을 보 았다.
그리고 대부분 감탄하면서 우중완 에게 천재 감독이란 칭호를 안기기 에 주저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만큼 ‘변절자가 되는 순간’의 임 팩트가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리 고 장준경 역시 ‘변절자가 되는 순 간’을 보았기에 이런 평가를 내린 것이었다.
잠시 후 장준경이 다시 질문했다.
“아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잖 아? 우중완 감독에게 ‘베테랑들’의 연출을 맡기려는 두 번째 이유는 뭐 야?”
“두 번째 이유는 ‘베테랑들’의 시 나리오가 이미 나와 있기 때문이 야.”
“무슨 뜻이야?”
이규한이 대답했다.
“천재 감독이라 불렸던 우중완 감 독이 연출한 두 편의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이유 말이야. 나는 시나리오 를 직접 썼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어.” ‘데스매치,카운트다운’과 ‘죽어야 산다’.
이미 잘 알려졌둣이 우중완 감독이 연출한 두 작품은 손익 분기점을 넘 기지 못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그렇지만 두 작품의 평점은 높은 편이었다.
‘데스매치,카운트다운’의 관람객 평점은 8.45, ‘죽어야 산다’의 관람 객 평점은 8.69로 8점대 중반이었 다. 그리고 관람 평은 호불호가 갈 리었다.
-괜히 천재 감독이 아님.
-와,이런 소재로 이런 이야기를 풀다니. 진심 천재다.
-이렇게 진행될 거다 예상한 순간, 어김없이 뒤통수를 때림. 예상대로 흘러가는 전개가 하나도 없음.
두 영화에 대한 좋은 관람 평이었 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음.
-돈 내고 자다가 나왔음.
-감독도 B급,영화도 표급. 보다가 도저히 못 참고 나왔다.
반면,나쁜 관람 평도 많았다.
말 그대로 극과 극으로 갈린 관람 평.
그리고 직접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난 후,이규한이 느낀 점은 하나였 다.
“우중완 감독이 강박에 시달리고 있어.”
“무슨 강박?”
“내가 천재 감독이라는 것을 증명 해야 한다는 강박.”
이규한이 직접 본 두 편의 영화에 서는 중간중간 우중완 감독의 천재
성이 번뜩이는 장면들이 등장했었 다.
거기에 열광한 관객들은 좋은 관람 평을 남겼고,그것을 간파하지 못한 관객들은 허술한 스토리에 불만을 품고 나쁜 관람 평을 남긴 것이었 다.
“그래서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 하는 거야. 이게 상업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우중완 감독이 성공하지 못 했던 이유지.”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