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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112화 (112/272)

112화

남이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기 (3)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심수창은 똑똑했다.

자신이 유능한 감독이란 사실을 알 고 있기에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후회 안 합니다.”

지체 없이 대답한 이규한이 덧붙였 다.

니까요.”

분한 듯 매서운 시선을 던지고 있 던 심수창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 이며 다시 입을 뗐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 죠. 아시다시피 계약 파기를 먼저 언급한 것은 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계약서에 적시된 대로 배상해 주시 지요.”

‘베테랑들’을 연출하는 것이 물 건 너갔다고 판단한 심수창은 계약금의 세 배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규한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계약상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감독님입니다. 그 러니 배상은 저희가 받아야겠습니 다.”

“그게 무슨 헛소리입니까?”

“헛소리가 아닙니다. 변호사가 그 렇게 말했으니까요.”

이렇게 상황이 전개될 것을 이규한 은 이미 예측한 후였다. 그래서 계 약서를 들고 변호사를 찾아가서 이 미 논의를 마친 후였다.

“여기 계약서가 있습니다. 직접 보 시죠.”

이규한이 심수창의 앞으로 계약서 를 내밀었다.

심수창이 계약서를 낚아첸 순간, 이규한이 다시 입을 됐다.

“연출 계약을 맺은 감독은 제작사 와 협의하에 더 나은 작품을 제작하 기 위해서 작품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적혀 있습니다. 그렇 지만 감독님은 제작사와 협의하지 않은 채로 수정을 했습니다.”

“그건 객관적인 판단이 아닙니다.”

“감독님께서는 더 나은 작품을 만 들기 위해서 이지희 작가에게 지시 해서 작품의 수정 작업을 거쳤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심수창이 대답한 순간 이규한이 고 개를 돌렸다.

“장 대표.”

“응? 응.”

“이지희 작가에게 ‘베테랑들’의 시 나리오 수정을 맡기는 과정에서 여 기 계신 심 감독님과 충분한 협의를 거쳤어?”

“아니,나는 반대했어.”

“확실해?”

“나는 분명히 반대 의사를 밝혔지 만,감독님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 지.” 장준경이 대답한 순간,이규한이 다시 심수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독님의 주장에는 두 가지 허점 이 있습니다.”

“어떤 허점입니까?”

“첫 번째 허점은 이지희 작가에게 기획 개발비를 지출한 증빙 서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테랑들’ 의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이지희 작 가에게 맡기는 과정에서 장준경 대 표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는 증거이죠.”

마땅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심 수창이 인상을 구겼을 때,이규한이 말을 이었다.

“두 번째 허점은 이지희 작가가 수 정한 시나리오가 기존의 시나리오에 비해서 형편없다는 점입니다. 이것 이 의미하는 것은……

“역시 객관적인 판단이 아닙니다. 주관적인 판단일 뿐입니다.”

" 7”

“시나리오의 완성도에 관한 평가는 주관적인 잣대가 작용할 수밖에 없 으니까요.”

심수창이 언성을 높여 강변했지만, 이규한은 픽 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그 반응을 확인한 심수창이 더욱 언성을 높였다.

“왜 웃는 겁니까?”

“감독님,아직 시나리오 안 보셨 죠?”

이규한이 이지희 작가가 수정한 ‘베테랑들’의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며 물었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일까.

심수창이 움찔하는 것을 확인한 이 규한이 손에 들고 있던 시나리오 책 을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보시죠.”

……?" “다섯 페이지,아니,세 페이지만 읽어 보시면 제가 아까 드렸던 말씀 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 던 심수창이 이규한이 내밀고 있던 시나리오 책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이규한의 예상이 틀렸다.

세 페이지까지도 필요하지 않았다.

시나리오 책의 첫 페이지를 읽으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던 심수창은 두 번째 페이지를 읽던 도중 그대로 덮어 버렸다. 그리고 이규한은 그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이유를 짐작 할 수 있었다.

이지희 작가가 수정한 시나리오 책 에서 비문과 오타 그리고 틀린 시나 리오 용어를 잔뜩 발견했기 때문이 리라.

“감독님도 직접 보셔서 아시겠지 만,이건 시나리오 완성도를 논할 수준이 아닙니다. 아마추어 작가가 고쳤다는 표가 확실히 나니까요. 이 제 제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심수창은 대답하지 않았다.

반쯤 체념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 를 바라보던 이규한이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감독님께서 끝까지 이의를 제기하신다면, 영화진흥위원회에 판

단을 내려 달라고 요구할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판단이 내려지지 않는다면,최후의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후의 방법이라면……?”

“계약서에 적시된 대로 할 겁니다. 계약 이행에 대해 분쟁이 발생할 경 우에는 서울남부지법에서 시시비비 를 가리라고 적혀 있으니까요. 그리 고 법정까지 간다면 지금 감독님의 손에 들려 있는 이지희 작가가 수정 한 ‘베테랑들’의 시나리오가 저희 측에 유리한 결정적인 중거가 될 겁 니다.”

고,고집을 피운다면 법적으로 분쟁 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법 정에서는 우리가 승소할 확률이 훨 씬 높다.

이런 말뜻을 알아챈 심수창의 낯빛 이 창백하게 질린 순간, 이규한이 덧붙였다.

“개인적으로는 법정까지 가는 불상 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 니다. 아시다시피 영화판은 무척 좁 은 바닥이고,법정까지 가게 된다면 감독님이 하셨던 치졸한 일들에 대 한 소문이 퍼지게 될 테니까요.”

어서 결정을 내리라는 재촉을 받은 심수창이 결국 한숨을 내쉬며 대답 “배상하겠습니다.“

“잘 결정하셨습니다.”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먼 길 오셨는데 커피라도 한잔 하 고 가시죠? 이 건물 1층에 입점한 커피 전문점의 커피가 맛이 괜찮거 든요.”

“됐습니다. 커피는 다음에 마시죠.”

애써 화를 삭이던 심수창이 도망치 듯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후우.”

그가 떠나자마자 장준경이 내쉬는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왜?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아?”

“속이 시원하긴 한데… 이래도 괜 찮을까?”

장준경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물었다.

“뭐가 마음에 걸려?”

“네 말대로 이 바닥 좁잖아. 만약 심수창 감독이 이번 일로 앙심을 품 고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린다면 장준경이 슬그머니 말끝을 흐렸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그가 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 심수창 감독이 앙심을 품고 악의적 인 거짓 소문을 퍼트린다면,앞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 지 않겠느냐?

장준경이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우린 옳은 일을 한 거야.”

“나도 그걸 모르는 건 아냐.”

“네가 지금 우려하는 걸 두려워해 서 자꾸 저자세로 나가니까 투자 배 급사들과 감독들이 제작자들을 우습 게 보면서 이용하기 위해서 수작을 부리는 거야. 그래서 난 오히려 이 번 일을 퍼트릴 생각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영화 제작자들을 우습게 보고 함 부로 수작질을 부리다가는 심수창 감독처럼 큰 코를 다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해 주고 싶거든.”

“하지만 그러다가 역풍을 맞으면?”

“그럴 수 없을 거야. 더 많은 수익 을 챙기기 위해서 계약 사항을 위반 한 건 어디까지나 심수창 감독이야. 게다가 증거까지 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함부로 떠들지 못할 테니까. 속이 부글부글 끓겠지만 참을 수밖 에 없는 상황이지.”

그제야 장준경이 조금 안심한 표정 을 지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완 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이제 어느 감독에게 ‘베테랑들’의 연출을 맡기지?”

“그거라면 걱정 마. 내가 생각해 둔 괜찮은 감독이 있으니까.”

“네가?”

“나도 ‘베테랑들’의 공동 제작자잖 아. 다 차려져 있는 밥상에 숟가락 만 얹기는 싫거든.”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 장준경이 물 었다.

“어떤 감독을 염두에 두고 있는 데?” “나중에 알려 줄게.”

“왜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알려 준 다는 거야?”

이규한이 대답했다.

“지금 해야 할 더 급한 일이 있으 니까.” 투자 배급사 빅박스.

빅박스의 전경이 모두 보이는 커피 전문점에 혼자 앉아 있던 이규한이 팔짱을 낀 채 혼잣말을 꺼냈다.

“잘할 수 있으려나?”

원래 이규한의 계획은 장준경과 함 께 빅박스 투자팀으로 찾아가서 백 기원 팀장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장준경이 반대했다.

“나 혼자 찾아갈게. 그게 맞는 것 같아.”

장준경이 반대하면서 꺼냈던 말이 었다. 그리고 이규한은 그가 혼자서 백기원 팀장을 만나려는 이유를 짐 작할 수 있었다.

오늘 백기원 팀장을 만나는 용건.

초기 투자금 오억을 돌려주고,빅 박스와의 투자 계약을 파기하는 것 이었다.

좋은 일로 만나는 것이 아닌 만큼 분위기가 화기애애할 리 없었다. 그 리고 투자 계약을 파기하기로 하면 서 빅스빅 픽처스와 빅박스의 관계 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 는 셈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꽤 오랫동안 빅스빅 픽처스는 빅박스에서 투자를 받는 것이 불가능해지리라.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장준경은 혼자서 빅박스로 찾아가 백기원 팀장과 담판을 짓겠다고 고 집을 피운 것이었다.

이규한이 함께 간다면 블루문 엔터 테인먼트 역시 투자 배급사인 빅박 스에게 미운 털이 박힐 터.

그 상황만큼은 막기 위한 결정이었 다.

“진짜 괜찮은데.”

이규한이 팔짱을 끼면서 다시 혼잣 말을 꺼냈다.

메이저 투자 배급사 가운데 하나인 빅박스와 척을 지는 것.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 선택지가 하 나 사라지는 것인 만큼 분명히 불리 한 것이었다.

예전의 이규한이었다면 분명 빅박 스와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두려워

하면서 피하기 급급했으리라.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와 NEXT 엔 터테인먼트.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메이저 투자 배급사가 두 곳이나 있었다.

또,빅박스와 관계가 일시적으로 악화되더라도,블루문 엔터테인먼트 가 흥행작을 꾸준히 제작한다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영화에 투자를 하지 않는 빅박스만 손해를 보며 뒤처지게 될 것이었다.

목이 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그때는 빅박스가 먼저 손을 내밀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작품이야.”

영화 제작자에게 가장 강력한 무 기.

좋은 작품을 꾸준히 제작해서 흥행 을 시키는 것이라는 각오를 이규한 이 새삼 다지고 있을 때,빅박스 정 문을 빠져나오는 장준경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장준경이 이규한이 앉아 있던 커피 전문점 안으로 들어왔다.

“한 모금만 마시자.”

던 아이스커피를 들어 올려 마셨다. 달달달.

아이스커피가 담겨 있는 잔을 움켜 쥔 장준경의 손이 심하게 떨리는 것 을 확인한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그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 수 있 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됐어?”

이규한이 묻자,장준경이 크게 한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사고 쳤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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