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05화 (105/272)

105 화

케미 (3)

“송강오 선배를 어떻게 생각합니 까?”

갑작스런 질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양도윤 감독은 당황하지 않고 대답 했다.

“육감이 아주 뛰어난 배우라고 생 각합니다. 새로운 작품에서 새로운 배역을 맡았을 때,어떻게 연기를 해야 캐릭터를 가장 잘 살릴 수 있 는가를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육감이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 출연한 모든 작품에서 항상 관객들 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연기를 펼치 는 좋은 배우입니다.”

‘나랑 평가가 비슷하군!’

그 평가를 듣고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했을 때 양도윤이 덧붙였다.

“그렇지만 ‘사관, 왕을 만든 남자’ 에 어울리는 배우는 아니라고 판단 합니다.”

이어진 평가를 들은 이규한이 흥미 를 느꼈다.

양도윤이 평가했듯 송강오는 좋은 배우였다.

-송강오를 캐스팅하면 투자가 성 사된다.

이런 이야기가 충무로에 공공연하 게 나돌고 있는 것이 송강오가 티켓 파워를 갖춘 훌륭한 배우라는 증거 였다.

그래서일까.

감독과 제작사들은 과연 송강오가 작품과 배역에 어울리는가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그를 캐스팅하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양도윤은 달랐다.

송강오가 ‘사관, 왕을 만든 남자’의 남자 주인공 배역에 어울리지 않는 다는 이유로 캐스팅을 반대했다.

‘고집도 있어.’

이 대화를 통해 양도윤에 대한 호 감이 더 커졌을 때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질문을 던지 신 겁니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 중에 아시게 될 겁니다.”

이규한이 대답을 미루며 화제를 돌 렸다.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재 감 이규한이 마지막 질문을 던지자 양 도윤이 바로 대답했다.

“따로 계약되어 있는 작품은 없습 니다.”

“가계약 된 작품이 없으시다고요?”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의아하단 생각을 했다.

‘혈루’와 ‘목소리’.

양도윤 감독이 이전에 연출했던 두 작품의 스코어는 나쁘지 않았다.

중박까지는 미치지 못했지만, 두 작품 모두 손익 분기점을 넘겼으니 까.

그리고 현재 충무로는 감독 구인난 이 심각한 편이었다.

상업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검증 된 감독의 수가 워낙 적다 보니,어 지간한 감독들은 이미 여러 작품의 계약이 돼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양도윤 감독 역시 이런 조 건을 갖춘 감독 가운데 한 명이었 다.

해서 당연히 다른 작품의 연출 계 약이 돼 있을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그 예상이 빗나간 셈이었다.

“다른 제작사에서 감독님께 연출 계약을 맺자는 제의가 들어오지 않

았습니까?”

“여러 차례 들어왔었습니다.”

“그런데 왜 연출 계약을 맺지 않으 셨습니까?”

“보류한 상태라고 표현하는 게 맞 을 것 같습니다.”

“보류요?”

“일단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연 출을 맡게 되는가 여부가 최우선이 라고 판단했습니다. 다른 작품을 이 미 계약한 상태라면 ‘사관,왕을 만 든 남자’의 연출을 맡았을 때 최선 을 다하지 못할 거라는 우려가 들었 거든요.” 이규한이 양도윤에게 새삼스런 시 선을 던졌다.

방금 양도윤이 꺼낸 대답.

모범 답안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이게 모범 답안이라는 것 을 알면서도,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영화감독의 삶이 무척 불안했기 때 문이었다.

연출을 맡은 작품이 개봉한 후 흥 행에 참패하면,언제든지 백수 신세 가 될 수 있는 것이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의 특성.

그래서 보통의 감독들은 연출 계약 을 맺을 기회가 있을 때,여러 작품 의 계약을 미리 해 두는 편이었다.

그런데 양도윤의 선택은 달랐다.

다른 작품의 연출 계약을 맺을 기 회가 있음에도,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작품에 최선을 다할 것이 다. 그리고 이 작품을 무조건 성공 시킬 자신이 있다. 새로운 계약은 그 후에 더 좋은 조건으로 맺겠다.’

양도윤의 표정에서는 이런 자신감 이 묻어났다.

“그 자신감이 무척 마음에 드네요. 저와 계약하시죠.”

이규한이 더 망설이지 않고 계약서 를 내밀었다.

강남에 소재한 고급 일식집. 종업원의 안내를 받은 이규한이 룸 으로 들어서자,미리 도착해서 기다 리던 송강오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왔어? 혼자 멍하니 앉아 있기 그 래서 나 먼저 시작했어.”

작은 사기잔을 들어 올리며 송강오 가 말했다.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규한이 사과하며 덧붙였다.

“사죄의 의미로 오늘 술값은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송강오가 손사래를 쳤다.

“그건 안 될 말이지. 내가 찐하게 한잔 사겠다고 약속했었잖아?”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술값을 계산하려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지?”

“선배님께 양해를 구할 일이 있어 서요.”

이규한의 이야기를 들은 송강오가 흥미를 드러냈다. 그렇지만 그는 바 로 질문을 던지는 대신 자리를 권했 다.

“일단 앉아. 마시면서 얘기하자고.”

“알겠습니다.”

쪼르륵.

이규한의 앞에 놓인 사기잔을 채워 준 송강오가 술잔을 들어 올려 단숨 에 비웠다.

역시 잔을 단숨에 비운 이규한이 술 주전자를 들어 올리며 입을 됐 다.

“거절당했습니다.”

사기잔을 앞으로 내밀고 있던 송강 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캐스팅? 누가 감히 이 대표와 일 하는 걸 마다해?”

“제가 아니라 선배님이요.”

“응?”

송강오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두 눈을 빛내며 흥미를 드 러냈다.

“자세히 말해 봐.”

사기잔을 내려놓으며 송강오가 재 촉한 순간 이규한이 입을 열었다.

화인 ‘사관,왕을 만든 남자’라는 작 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연 줄을 맡길 적임자를 찾는 과정에서 양도윤 감독과 접촉했습니다.”

“양도윤 감독이라면 나도 알지.”

“어떻게 아십니까?”

“사적인 친분은 없지만,이 바닥이 워낙 좁잖아. 한 다리 건너면 다 아 는 사이나 마찬가지니까.”

이규한이 틀린 이야기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때,송강오가 덧붙였다.

“연출 실력이 괜찮은 친구라던데?”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소신도 있습니다.”

“그래?”

“선배님의 캐스팅을 거절한 것이 양도윤 감독이 소신이 있다는 증거 가 아니겠습니까?”

사기잔을 비운 송강오가 물었다.

“내 캐스팅을 거절한 게 양 감독이 야?”

“그렇습니다.”

“아까 괜찮은 감독이라고 했던 것 취소야.”

“몰랐는데 선배님도 뒤끝이……

“좋은 감독이네.”

송강오가 웃으며 덧붙인 말을 들은 이규한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좋은 감독이라는 겁니까?”

“내 캐스팅을 거절할 정도로 소신 이 있으니까. 그런데 이 대표.”

“말씀하십시오.”

“좀 길군.”

" ‘……?"

“사설이라고 여기기엔 너무 길다는 뜻이야. 양도윤 감독 이야기를 이렇 게 길게 하는 것,다른 이유가 있 지?”

송강오의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희 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괜히 연륜이 무섭다는 얘기가 나오 는 것이 아니었다.

이규한이 양도윤 감독의 이야기를 꺼내는데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송강오는 금세 간파했으니까.

“예상하신 대로 다른 이유가 있습 니다.”

“어떤 이유지?”

이규한이 대답했다.

“양도윤 감독에게 ‘스파이들’의 연 출을 맡기고 싶습니다.”

이규한이 ‘스파이들’의 연출을 양 도윤 감독에게 맡기고 싶다는 계획 을 밝혔다. 그리고 송강오를 만나서 이런 계획을 털어놓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송강오는 그저 그런 배우가 아니었 다.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티켓 파워를 갖춘 특급 배우.

그래서 ‘스파이들’의 연출을 맡을 감독을 결정하기 전에 송강오를 만 나서 상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 단했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송강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규한은 ‘스파이들’을 마지막으로 송강오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지 않 았다.

앞으로도 계속 그와 작품을 해 나 가고 싶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규한이 조심스럽게 의중을 묻자, 송강오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대답했다.

“내가 전에 했던 말, 벌써 잊었 나?”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스파이들’이라는 작품에 출 연하려는 이유는 이 대표 때문이라 고 말했어. 그러니 감독이 누가 되 는가는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또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 지. 이미 그때 이 대표를 믿기로 했 으니 끝까지 믿을 거야.”

나는 배우일 뿐이다.

작품의 제작을 책임지고 진두지휘 하는 것은 제작사인 블루문 엔터테 인먼트 이규한 대표의 역할이다.

나는 그 결정을 군말 없이 따르겠 다.

방금 송강오가 꺼낸 말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규한이 감사 인사를 건네자 송강 오가 고개를 흔들었다.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지. 일부 러 내 의견을 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찾아왔으니까.”

송강오가 술 주전자를 들어 이규한 의 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이 대표가 양해를 구할 일이 뭔지 짐작이 가는군. ‘스파이들’의 제작이 조금 늦춰지기 때문이지?”

이규한의 표정이 밝아졌다.

‘스파이들’의 연출을 맡을 감독으 로 양도윤을 내정한 상황.

그렇지만 문제가 하나 존재했다.

양도윤 감독이 먼저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연출을 맡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스파이들’의 제작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송강오에게 알려야 했는 데,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송강오가 먼저 말을 꺼내 준 것이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한번 스케줄을 조정해 보자고. 난 이 대표가 제작하는 영화에 꼭 한번 출연하고 싶다는 마음에 변함이 없 거든.”

“감사합니다.”

이규한이 재차 감사 인사를 건넸을 때,송강오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하

게 바뀌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 표정 변화를 확인한 이규한이 묻자 송강오가 대답했다.

“갑자기 걱정이 돼서 말이지.”

“뭐가 걱정이 되시는 겁니까? 혹시 스케줄 조정 때문에 소속사와 갈등 이 생길 수도 있는 겁니까?”

“그건 아냐. 내가 걱정하는 건 다 른 거야. 기껏 스케줄까지 조정했는 데,‘스파이들’에 출연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질까 봐 말이야.”

“왜 그런 걱정을 하시는 겁니까?”

“이미 한 번 거절당했으니까.” “한 번 거절당했는데 두 번 거절당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비로소 송강오가 우려하는 것이 무 엇인지 알아챈 이규한이 힘주어 말 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확실해?”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만의 하나 그런 경우가 발생한다면,연출 을 맡을 감독을 교체하겠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송강오가 기꺼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뗐다.

;이 대표가 성공한 이유를 알겠군.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법을 알 아.”

작게 고개를 끄덕이던 송강오가 덧 붙였다.

“이 대표 덕분에 근심이 사라졌으 니까 이제 편하게 술을 마시지.”

송강오가 술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규한도 환하게 웃으며 술잔을 들 어 올렸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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