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04화 (104/272)

104화

감독 따로,배우 따로.

이렇게 감정을 했던 탓에 ‘사관, 왕을 만든 남자’라는 작품에서 감정 이라는 특수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 는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 선택을 내렸던 것에 대해서 자책하던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 다.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다는 사실

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 을 수는 없는 노릇.

지금은 후회할 때가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아직이야?”

황진호가 대답을 재촉한 순간,이 규한이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던 시 나리오 책을 내려놓았다.

“바로 결정을 내리기 어렵네요.”

“왜? 이번엔 직감이 잘 안 와?” 이규한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아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연출을 양도윤 감독이 맡고,이선규가 주연 배우로 출연했을 경우의 예상 관객 수였다.

총 일곱 차례 감정을 거치는 동안 가장 많은 예상 관객수가 떠오른 조 합.

그리고 425만 명의 예상 관객수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사극 영화의 제작비가 많이 드는

편이라고는 하나,‘사관,왕을 만든 남자’는 전쟁이 주요 소재가 아니었 다.

즉,제작비가 가장 많이 소요되는 대규모 전투신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규한이 예상하는 ‘사관,왕을 만 든 남자’의 제작비는 70억에서 80억 수준.

관객이 대략 300만 명을 돌파하면 손익 분기점을 넘길 수 있었다.

‘이 조합으로 그냥 갈까?’

영화 제작자에게 손익 분기점을 넘 기느냐, 넘기지 못하느냐는 무척 중 요했다.

다음 작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양도윤 감독과 배우 이선규가 손익 분기점을 넘길 수 있는 조합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았기 때문에 이규한 이 마지막까지 고심한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결국 황진호에 게 대답을 하는 것을 뒤로 미루었 다.

양도윤 감독과 배우 김명인.

아직 확인하지 못했던 조합에 미련 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아쉬운 점은 이미 일곱 번의 감정 기회를 모두 소진했다는 점이었다.

-감독: 양도윤.

-남자 주인공: 김명인.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은 채 이렇 게 기입한 후,‘사관,왕을 만든 남 자’의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어 보 았다.

그렇지만 예상대로 이규한의 눈앞 에 숫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젠 거의 확실해졌어.’

비록 눈앞에 새로운 숫자가 떠오르 지는 않았지만,아무런 소득이 없었 던 것은 아니었다.

작품당 일곱 번.

이규한이 가진 특수한 능력인 감정 의 기회가 한 작품당 일곱 번으로 제한된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감정의 기회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규한은 양도윤 감독을 직접 만나기로 결심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양도윤입니다.” “이규한입니다.” 가볍게 악수를 나누며 이규한이 양 도윤을 살폈다.

7 대 3으로 단정하게 빗어 넘긴 가르마와 은테 안경 너머의 착 가라 앉은 눈동자,그리고 정장을 입고 찾아온 양도윤은 흔한 영화감독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은행 창구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은행원에 더 어울리는 외양이었다.

“평소에도 정장을 즐겨 입으시는 편이십니까?”

이규한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 문하자 양도윤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즐겨 입는 편입니다.”

“그런데 왜 웃으신 겁니까?”

“그동안 똑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 거든요. 왜 편한 캐주얼 복장 대신 불편한 정장을 고수하는지가 궁금하 신 것이죠?”

“맞습니다.”

이규한이 수긍하자 양도윤이 말했 다.

“제가 평소 정장 차림을 고수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직장을 다녔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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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관련 학과를 졸업하긴 했지 만,영화감독이 될 생각은 없었습니 다. 나는 영화감독이 될 정도로 재 능도 없고,영화감독으로 성공하기 도 힘들다. 일찌감치 이렇게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대 학을 졸업하자마자,무역 회사에 입 사해서 꽤 오랫동안 다녔습니다. 그 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시 영화 연출을 하고 싶더군요. 그래서 틈틈이 단편 영화를 찍었고,영화제 에 출품했던 단편 영화가 운 좋게 수상을 한 것을 계기로 회사를 그만 두고 영화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었습니다.”

이규한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 었다.

“그럼 직장 생활을 할 당시의 습관 때문에 계속 정장을 고수하시는 겁 니까?”

“그건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 면 직장을 그만두고 난 후에는 캐주 얼 복장을 즐겨 입었습니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일정 시점이 지나고 난 뒤부터 다시 정장 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네,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너무 방만하게 생활 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다시 정장 차림을 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을 다닐 때처럼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자. 이런 다 짐과 각오가 제가 고수하고 있는 정 장 차림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 니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면 풀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고,다 시 스스로를 다잡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신력과 자제력이 무척 강하다는 증거.

양도윤에게 새삼스런 시선을 던지 던 이규한이 고개를 흔들었다.

양도윤을 만난 이유.

그의 사람 됨됨이나 인품을 확인하 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규한이 오늘 양도윤을 만나서 확 인할 것은 그가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연출을 맡기에 적임자인가 여부였다.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감독 님을 만나 뵙자고 청했습니다.”

“편하게 질문하시죠.”

“혹시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연 출을 맡게 되신다는 가정 하에 남자 주인공으로 섭외하고 싶은 배우가 있습니까?”

“네,두 명의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김명인과 이선규입니다.”

양도윤이 대답한 순간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왜 두 배우를 염두에 두셨던 겁니

까?”

“우선 지적인 이미지가 필요한 주 인공 배역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들 이라고 판단했고,개인적으로도 두 배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이유야!’

이규한과 황진호가 김명인과 이선 규를 남자 주인공 후보로 올렸던 이 유와 양도윤이 두 배우를 후보로 올 린 이유가 비슷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말이 나온 김에 이걸 한번 보시겠 습니까?”

양도윤이 서류 가방에서 두 권의 책자를 꺼냈다.

“그게 뭡니까?”

이규한이 그 책자에 호기심을 드러 낸 순간 양도윤이 대답했다.

“두 배우를 ‘사관,왕을 만든 남자’ 에 캐스팅하려는 이유를 정리한 겁 니다.”

그 대답과 함께 양도윤이 두 권의 책자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걸 정리했다고?’

이규한이 놀란 표정으로 두 권의 책자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양도윤 감독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조금, 아니,많이 놀랐습니다. 이 런 경우는 처음이라서요.”

양도윤 감독은 아직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연출을 맡기로 결정된 상황이 아니었다.

두 명의 감독 후보군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즉,‘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연출 을 맡지 못할 확률도 절반이나 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자까지 작성했다는 사실이 이규한을 놀라게 만든 것이었다.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양도윤의 생각은 달랐다.

“왜 당연한 거라고 말씀하시는 겁 니까?”

“제가 판단하는 영화감독은 일종의 구직자입니다. 내가 이 제작사에서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맡을 적 임자라는 것을 어필해야 하는 구직

자이기 때문에 선택을 받기 위해서 는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하는 게 옳 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 책자가 준비의 일환이라 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자세가 남달라.’

이규한이 내심 감탄했다. 그리고 양도윤을 직접 만나기 전과 만나고 난 후, 그에 대한 인상이 확 바뀌어 있었다.

‘혈루’와 ‘목소리’라는 손익 분기점 을 넘겼던 두 편의 작품을 연출했던 괜찮은 감독.

이것이 양도윤을 직접 만나기 전에 이규한이 갖고 있던 그에 대한 생각 이었다.

연출 실력도 괜찮은 편이지만,작 업에 임하는 태도와 인성이 더 뛰어 난 감독.

그렇지만 양도윤을 만나고 난 후, 이규한은 그에 대한 생각이 이렇게 바뀌었다.

이런 마인드를 갖추고 있는 영화감 독은 흔하지 않았다.

극히 드문 편이었다.

‘꼭 한번 같이 작업하고 싶다.’ 아니더라도 꼭 한번 함께 작업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이규한은 앞에 놓인 두 권의 책자를 살피기 시작했다.

잠시 후,이규한의 눈이 커졌다.

양도윤이 정리한 책자가 이규한이 막연히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체 계적이고 자세하게 분석을 했기 때 문이었다.

단순히 이선규와 김명인이 주인공 배역에 어울리는가를 분석한 것이 다가 아니었다.

무명 시절 때부터 이선규와 김명인 이 맡았던 배역들을 모두 조사해서 누가 더 이 배역에 어울리는가를 분

석했다.

또,이선규와 김명인의 향후 작품 계약 상황과 촬영 스케줄까지 조사 해서 만약 ‘사관,왕을 만든 남자’에 서 남자 주인공 배역을 맡을 경우 누가 더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가 여부까지도 함께 분석했다.

-이선규 총점 : 7.8 / 10.

-김명인 총점 : 9.1 / 10.

이런 여러 요인들을 분석한 끝에 책자의 마지막 장에 기록한 총점을 확인한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굳이 이런 결과가 도출된 이유에 대해 질문할 필요도 없었다.

양도윤이 작성한 책자에 자세히 적 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김명인과 친분이 있으십니 까?”

이규한이 책자를 덮으며 질문을 던 지자 양도윤이 고개를 흔들었다.

“사적인 친분은 없습니다. 다만,이 번 작품 배역에 어울릴 것이라 판단 을 내린 후,나름대로 조사를 거친 끝에 최적임자라는 판단을 내렸습니 다.”

“그렇군요.”

이규한이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내심 바랐던 대답이었기 때문이었 다.

‘이제 남은 건 내가 결단을 내리는 것뿐이다.’

양도윤 감독과 이선규 조합과 달리 양도윤 감독과 김명인 조합은 아직 감정을 통해 예상 관객수를 확인하 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양도윤 감독과 김명인 조합 을 선택하는 것에는 분명히 위험 부 담이 존재했다.

안전한 길을 선택하느냐?

모험을 선택하느냐?

갈림길 앞에 선 이규한이 고심 끝 에 내린 선택은 후자였다.

‘양도윤 감독을, 또,그가 작성한 책자를 믿어 보자.’

이규한이 모험을 선택한 이유였다. 그리고 아직 끝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좋은 감독이 아닌가?’

이렇게 판단을 내린 순간,이규한 이 떠올린 것은 ‘스파이들’이였다.

“감독님.”

“면접 결과가 나왔습니까?”

진짜 면접에 임한 구직자처럼 양도 윤 감독이 긴장한 채 물었다.

“아직 두 가지 질문이 남았습니 다.”

“어떤 질문입니까?”

이규한이 그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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