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01화 (101/272)

101 화

복권을 사다 (2)

백진엽이 한 지적.

무척 정확하고 날카로웠다. 그래서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 적였다.

‘아주 거짓말은 아닌데.’

박상구 작가가 곧 연재를 시작할 작품인 ‘은밀한 작전’.

이규한은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대략의 내용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또,박상구 작가의 작품인 ‘은밀한 작전’이 제목을 바꾸어 ‘은밀하면서 도 위대하게’란 영화로 제작되어 개 봉을 했을뿐더러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것이 이규한이 ‘은밀한 작전’의 판권 가격으로 이천만 원을 책정한 이유.

그렇지만 백진엽에게 이렇게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서 고민하던 이규한이 결국 다른 이유를 밝혔다.

“적정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싶어.”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현재 우리 회사에서 제작하고 있 는 ‘사관,왕을 만든 남자’의 원작소 설인 ‘사초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물론 알죠.”

“그 소설책의 판권을 내가 얼마에 구입했는지 알아?”

이규한이 단풍나무 출판사의 흥달 수 대표를 만나서 ‘사초 살인 사건’ 의 판권을 구입했을 당시,백진엽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직원이 아니었 다. 그래서 ‘사초 살인 사건’ 판권

구입 과정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이천만 원이야.”

이규한이 ‘사초 살인 사건’의 판권 을 구입하기 위해서 이천만 원을 지 급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백 진엽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호구네요.”

“호구?”

“내가 보기엔 그만한 가치가 없어 보이던데.”

백진엽이 의견을 제시한 순간,이 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구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냐.” ‘사초 살인 사건’은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도 없었고,영상화 판권을 구매하기 위해 제작사들 간의 경쟁 이 붙지도 않았다.

“천만 원이면 적정가일 것 같습니 다.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팔백으로 할까요?”

당시 단풍나무 출판사의 홍달수 대 표는 ‘사초 살인 사건’의 판권 가격 으로 최초 천만 원을 제시했다가, 이규한의 반응을 살핀 후 팔백만 원 까지 금액을 내렸었다.

만약 이규한이 더 흥정을 시도했다 면,판권 가격이 오백만 원까지 떨 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흥달수 역시 ‘사초 살인 사건’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알면서 왜 호구 짓을 하신 겁니까?”

“아까도 대답했듯이 적정가를 만들 어 주고 싶었어.”

“판권 시장을 정립하기 위해서요?”

“맞아.”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백진엽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왜 대표님이 하는 건데요?” “응?”

“오히려 반대가 됐어야 하는 것 아 닙니까?”

이규한은 영화 제작자.

그리고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자선 사업이 아니다.

영화를 제작해서 최대한 많은 수익 을 거두어야 하는 입장인 만큼,원 작 소설의 판권을 최대한 낮은 가격 에 구입해야 맞지 않느냐?

지금 백진엽이 던진 질문 속에 숨 은 의미였다.

또,백진엽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 정을 짓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영화 제작자로서 내가 갖고 있는 신조에 대해 말한 적이 있나?”

“어떤 신조요?”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게 내가 가진 신조 중 하나야.”

이규한이 자신이 갖고 있는 신조 가운데 하나에 대해서 알려 주었지 만,백진엽은 여전히 마뜩찮은 표정 을 짓고 있었다.

“대표님은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입 니다.”

“그래서?”

“소설가,만화가들의 처우까지 신 경 쓰는 것,너무 오지람이 넓은 것

아닙니까?”

백진엽이 질문을 던져낸 순간,이 규한이 순순히 인정했다.

“네 말대로 과한 오지람이지. 일개 영화 제작자에 불과한 내가 소설가 나 만화가들의 인생을 바꿔 줄 수도 없고.”

“그걸 알면서 대체 왜……?”

“그렇지만 나와 판권 계약을 맺은 소설가와 만화가들은 내가 제작하는 영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으 로 변하니까.”

…?" 때가 판권을 산 소설이나 만화가 영화로 제작돼서 개봉하는 경우,난 원작을 만든 소설가나 만화가도 영 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판단해. 그 런데 영화가 흥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원작을 만든 소설가나 만화가는 흥 행의 대가를 같이 누리지 못하는 게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규한이 말을 마친 순간,백진엽 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은 참 특이한 사람이네요.”

“좋은 쪽으로? 아니면, 나쁜 쪽으 로?”

“꼰대치고는 마인드가 괜찮은 편이 네요.”

백진엽의 평가를 들은 이규한이 픽

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그래서 싫어?”

“싫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오히려 대표님이랑 일하는 것, 재밌을 것 같네요.”

백진엽과 대화를 마친 이규한이 박 상구 작가에게 고개를 돌렸다.

“들으셨죠? 이런 이유로 박 작가님 의 작품인 ‘은밀한 작전’의 판권을 이천만 원에 구입하려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도 다 돈 을 벌려고 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멋쩍어서 꺼낸 빈말이 아니 었다.

‘은밀한 작전’의 판권을 이천만 원 에 판매한 덕분에 박상구 작가는 생 계 곤란에서 벗어나면서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은밀한 작전’이 연재를 시 작하기도 전에 영화 판권 계약을 맺 었다는 것은 작품의 홍보에 유리한 측면이 될 수 있었다.

또,홋날 영화가 개봉해서 흥행하 게 된다면,‘은밀한 작전’이 연재하 는 곳으로 더 많은 팬들이 찾아와서 연재하는 작품을 보게 되면서 더 많 그렇지만 이규한도 절대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이천만 원으로 ‘은밀한 작전’의 판 권을 구매하면서, 영상화 판권은 물 론이고 공연 판권까지 모두 손에 넣 었다.

홋날 영화가 흥행한다면,‘은밀한 작전’의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서 지 불한 돈은 말 그대로 껌값에 불과했 다.

또,영화를 제외한 다른 매체로 작 품이 확장될 경우,이규한은 거액의 부가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괜히 복권이라고 표현했던 게 아

이규한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을 때 였다.

“저는 이제 뭘 해야 할까요?”

박상구 작가가 비장한 표정으로 물 었다.

“지금부터 작가님이 해 주실 것은 두 가지입니다.”

“무엇입니까?”

“우선 소문을 내 주십시오. 이규한 이라는 영화 제작자가 웹툰의 판권 을 구입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 리고 판권 가격도 후려치려 하지 않 고 적정 가격을 제시하는 양심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요.”

“그건 제게 맡겨 주십시오.”

박상구 작가가 의욕을 불태울 때, 이규한이 다시 입을 됐다.

“나머지 하나는 작품 활동에 매진 하시는 겁니다. ‘은밀한 작전’이 재 미있다는 입소문이 나도록 좋은 작 품을 만들어 주십시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입니까?”

박상구 작가가 질문한 순간,이규 한이 하나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뗐다.

비건 개인적인 의견임을 미리 밝 히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작품의 제 목을 바꾸시는 게 어떨까요?”

“제목을요? 어떻게요?”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 제가 생 각해 본 제목입니다. 어떻습니까?”

“왜 그런 제목을 떠올리신 겁니 까?”

박상구 작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 었다.

“제가 알기로 이번 작품의 주인공 은 버려진 간첩입니다. 그래서 항상 배가 고픈 생활을 이어 가고 있기 때문에 설정상 식사량이 많다고 알 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대하다는 표현을 제목에 삽입하자는 겁니까?”

박상구 작가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 로 물었다.

“거기에 하나 더. 주인공은 나중에 다시 중요한 임무에 투입됩니다. 그 런 그가 위대한 선택을 하게 되죠.

그래서

“중첩적인 의미다?”

“맞습니다.”

이규한이 대답하면서 박상구 작가 를 살폈다.

그런 그의 표정은 아까와 또 달랐 다.

떨떠름하던 표정은 사라지고,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좋습니다. 훨씬 더 낫네요.”

‘당연히 좋겠지!’

이규한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미래를 알고 있는 이규한은 이것이 이 작품에게 가장 어울리는 최고의 제목임을 알고 있는 상황.

박상구 작가가 지금 보이는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판권 계약에 이어 작품에 잘 어울 리는 좋은 제목까지 얻게 된 박상구 작가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 다.

그런 그를 더 기쁘게 해 주기 위 해서 이규한이 제안했다.

“이제 식사하러 갈까요?”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커피숍.

목이 탄 듯 아이스커피를 단숨에 들이켠 이대풍 작가가 물었다.

“진짜 제 작품의 판권을 구매하실 겁니까?”

“그러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이대풍 작 가가 다시 물었다.

“왜요?”

이대풍 작가가 이유에 대해 질문한 순간,이규한이 미소를 머금었다.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이었다.

“외계인이 주인공인데 왜 제 작품 의 판권을 구매하려는 겁니까?”

“늑대인간이 주인공이라는 건 알고 판권을 사시려는 겁니까?”

“설마 인어를 모르는 건 아니죠? 인간이 아니라 인어가 주인공입니 다. 그런데도 판권을 사시려는 겁니 까?” 그동안 웹툰 작가들을 꽤 많이 만 났다.

그 과정에서 비슷한 질문을 이미 여러 차례 받았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초반에는 이규한도 작품의 판권을 사려는 이유에 대해서 나름 정성껏 대답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작가들을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질문에 대한 대답 방식 도 바뀌었다.

지금 마주 앉아 있는 김대풍 작가 가 덧붙이려는 질문도 능히 짐작이 갔다.

“제 작품의 주인공은 뱀파이어입니 다. 그런데도 판권을 사실 생각입니 까?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가 성공할 것 같습니까?”

아마 이런 질문을 던질 준비를 하 고 있으리라.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는 이규한이 먼저 입을 뗐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네?”

“판권을 사는 것도,영화를 제작하 는 것도 저입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판권만 파시면 됩니다.”

예상대로 김대풍 작가의 말문이 막 힌 순간,이규한이 지체하지 않고 계약서를 내밀었다.

“자,계약서를 읽어 보시고 서명만 하시면 됩니다.”

“정말 판권을……

“네,판권을 살 겁니다. 그리고 영 화도 만들 겁니다. 아까도 말씀드렸 듯이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작 가님은 계약서를 읽고 서명만 해 주 시면 됩니다.”

샤사삭.

잠시 후,계약서를 확인한 김대풍

작가가 서명했다.

그 서명을 받아낸 순간,이규한의 표정이 밝아졌다.

‘끝났다!’

백진엽이 만들었던 판권 구매 리스 트에 올라 있던 작품은 총 22개.

그러나 판권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세 작품이 더 추가됐다.

박상구 작가가 리스트에 없는 작품 을 쓴 작가들을 소개해 주었기 때문 이었다. 그리고 방금 김대풍 작가의 작품인 ‘매력 터지는 뱀파이어’와 판권 계약을 맺으면서 총 25작품에 대한 판권 구입 작업이 끝이 난 것 이었다.

김대풍 작가의 서명이 적혀 있는 계약서를 바라보며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복권이 당첨되길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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