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복권을 사다 (1)
“꿈의 직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백진엽이 재차 코웃음을 친 순간, 박상구 작가가 두 눈을 빛냈다.
“방금 좋은 아이템이 떠올랐습니 다. ‘최고의 회사’라는 아이템인데 요. 사장이 직원들에게 쩔쩔 매 ‘상구야.” “‘은밀한 작전’에 최선을 다해라. 밥은 먹고 살아야지.”
“네,그렇게 하겠습니다.”
백진엽과 박상구 작가 사이에 오가 는 대화를 듣고 있던 이규한이 의구 심을 품었다.
이규한이 기억하는 웹툰 작품인 ‘은밀한 작전’은 꽤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왜 수익이 나질 않는지 이해 가 가지 않은 것이었다.
그때 였다.
“형, 믿지? ‘은밀한 작전’ 분명히 터진다.” “‘백야의 고수’를 연재하기 전에도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응?”
“그런데 안 터졌죠.”
“그래서 형을 못 믿는다는 거야?”
“못 믿는다는 게 아니라……
“‘백야의 고수’는 네가 그림을 너 무 못 그려서 망한 거야. 이번엔 분 명히 터진다니까. 형 한 번만 더 믿 어 봐.”
“저도 믿고 싶긴 한데……
백진엽을 바라보는 박상구 작가의 두 눈에는 불신이란 감정이 가득 들 어차 있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주 목한 것은 두 사람 사이의 신뢰 여 부가 아니었다.
“그럼 아직 ‘은밀한 작전’은 연재 를 시작하지 않은 겁니까?”
이규한이 묻자,박상구 작가가 대 답했다.
“네,아직입니다.”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백진엽에 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왜 리스트에 적었던 거 야?”
“전 봤거든요.”
“응?”
“저는 벌써 ‘은밀한 작전’을 모니
터링했단 뜻입니다. 작품을 보고 난 후에 이건 무조건 터진다. 이렇게 판단해서 리스트에 올린 겁니다.”
백진엽이 이규한의 시선을 슬그머 니 피하며 대답했다.
“그 이유가 다가 아니지?”
“그게……
백진엽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 뭇거렸다.
그 반응을 통해서 이규한은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 다.
백진엽은 무척 발이 넓은 편이었 고, 웹툰 작가인 박상구 작가와도 가까운 사이였다. 그래서 재능이 있 음에도 불구하고,생계에 어려옴을 겪고 있는 박상구 작가를 돕고 싶어 서 리스트에 ‘은밀한 작전’을 올렸 던 것이었다.
그런 속셈이 들켰다고 판단해서일 까.
백진엽은 고개를 모로 꼰 채 이규 한의 시선을 줄곧 피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백진엽은 오해하고 있었 다.
이규한은 백진엽을 탓하기 위해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었다.
백진엽 덕분에 판권 구매를 위한 경쟁이 붙기 전에 싼 가격에 ‘은밀 한 작전’의 판권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까.
“이미 백 피디에게서 이야기를 들 으셨겠지만,저는 작가님께서 연재 를 준비하시는 ‘은밀한 작전’이라는 작품의 판권을 구매하고 싶습니다.”
이규한이 판권 구매 의사를 밝힌 순간,박상구 작가가 포크를 내려놓 았다.
“정말 판권을 구매하실 겁니까?”
“네. 구매할 생각입니다.”
“왜요?” 박상구 작가가 이유를 물은 순간, 이규한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오히려 제가 이 대표님께 묻고 싶 습니다. 왜입니까? 왜 하필 ‘사초 살인 사건’의 판권을 사려고 하시는 겁니까?” 얼마 전 ‘사초 살인 사건’이란 소 설책의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서 단 풍나무 출판사로 찾아갔을 때,흥달 수가 던졌던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던지던 홍달수의 모습과 지금 마주 앉아 있는 박상구 작가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에 이규한이 쓰게 웃은 것이었다.
‘장사 못 하는 건 마찬가지네.’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였다.
“‘은밀한 작전’은 아직 연재를 시 작하기도 전인데 왜 벌써 판권을 구 입하시려는 겁니까?”
박상구 작가가 다시 물었다.
“물론 저는 ‘은밀한 작전’이란 작 품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판권을 구입하려는 이유는 백 피디를 믿기 때문입니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기 때문일까?
백진엽이 놀란 표정으로 이규한을 바라보았다.
“절 믿어요?”
“당연히 믿지.”
“왜요?”
“감각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또 우리 회사 직원이니까.”
이규한이 덧붙인 말을 들은 백진엽 의 두 눈이 커졌다.
잠시 후,백진엽이 서둘러 창밖으 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백진엽의 두 눈
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을 놓치지 않 았다.
“설마… 우는 거냐?”
“우는 거 아니거든요.”
“맞는 것 같은데.”
이규한이 추궁하고 있을 때,박상 구도 거들었다.
“저도 봤습니다. 울었어요.”
박상구까지 목격했다고 증언하자, 백진엽이 더 버티지 못하고 인정했 다.
“네,울었어요. 울었습니다. 이제 됐죠?”
“왜 울었어?” “기뻐서 울었습니다. 누군가가 날 믿은 것,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순순히 인정한 이상, 더 감출 필요 가 없다고 판단할 걸까.
소매로 붉어진 눈가를 슥 홈친 후, 백진엽이 덧붙였다.
“부모님도,제작자들도,투자자들도 다 절 안 믿었습니다. 제가 기획했 던 작품들이 제작도 투자도 안 됐던 게 그 증거죠. 심지어 상구 저 녀석 까지도 절 안 믿었죠.”
“제가 언제……?”
“아까 날 안 믿는다고 했잖아?”
박상구에게 쏘아붙인 백진엽이 말
을 이었다.
“날 믿어 준 것,대표님이 처음이 었습니다.”
백진엽이 눈물을 쏟은 이유에 대해 털어놓은 순간,이규한이 질문했다.
“이제 후회하지 않지?”
“뭘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것 말이야.”
‘얼마에 사면 될까?’
이규한이 고민에 잠겼다.
박상구가 만화 작가로서 재능은 있 지만,장사 수완은 전혀 없다는 것 을 이미 간파한 상황이었다.
만약 이규한이 독하게 마음을 먹는 다면?
‘은밀한 작전’의 판권 가격을 싸게 후려쳐서 구입할 수 있을 거라는 확 신이 있었다.
‘일단 물어나 보자.’
이규한이 결심을 굳히고 질문했다.
“박 작가님,‘은밀한 작전’의 판권 을 넘기는 대가로 어느 정도의 금액 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마침내 가장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 다고 판단한 걸까.
박상구 작가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제 입으로 이런 말씀 드리기 뭐 하지만,저는 제 작품에 대한 자부 심을 갖고 있습니다. 또,제 작품을 자식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편입니 다. 그래서 제 작품의 판권을 헐값 에 넘기고 싶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래 서 원하는 가격이 얼마입니까?”
이규한이 다시 물은 순간,박상구 작가가 비장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더니 손가락을 쫙 펼쳤다.
“이게 제가 원하는 금액입니다.”
이규한이 ‘은밀한 작전’의 판권을 구입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소식 을 백진엽에게 전해들은 후,박상구 작가는 대체 얼마를 받고 판권을 넘 겨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을 터였 다.
모르긴 몰라도,밤을 꼬박 새며 고 민을 거듭한 끝에 이 금액을 받아야 겠다고 결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오천만 원이라!’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주 많은 금액도 아니었 다.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
이규한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성 공한 영화였다.
인기 웹툰 원작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흥행에 성공했다.
‘오백만은 넘겼던 것 같은데.’
정확한 관객수까지는 기억나지 않 았지만,대략 오백만 명 가까운 관 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던 것 같 았다.
이 정도 흥행한 작품의 원작 웹툰 판권을 구매하는 대가로 오천만 원 을 지불하는 것.
절대 과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싼 가격에 구입한 셈이었 다.
‘오천만 원에 판권을 사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규한이 결 심하고 입을 뗐다.
그 순간,박상구 작가가 두 눈을 치켜 떴다.
“정말 이 가격에 판권을 구입하실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규한이 재차 확인해 준 순간,박 상구 작가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쉽게 수락할 줄 알았다면, 육백만 원을 부를 걸 그랬습니다.”
‘육백… 만 원?’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은 자신이 단단히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
‘오천만 원이 아니라 오백만 원이 었나?’
아까 박상구 작가가 오른손을 쫙 편 것을 보고,그가 ‘은밀한 작전’의 판권 가격으로 원한 금액이 당연히 오천만 원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천만 원이 아니라 오백만 원이었 다.
‘돈 벌었네.’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이규한에 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은밀한 작전’의 판권 가격으로 오 천만 원을 기꺼이 지불한 생각이었
는데,무려 10분의 1로 판권 가격이 줄어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아니다!’
다음으로 이규한이 한 생각이었다.
‘사초 살인 사건’에 이어 ‘은밀한 작전’까지.
이규한이 판단하기에는 판권의 가 격이 너무 쌌다. 그리고 판권의 가 격이 너무 싼 이유는,아직 판권 시 장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 문이었다.
“상구야.”
“네,형.”
“욕심이 과하면 독이 된다.” “그렇죠?”
“오백만 원에 만족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라면 말고 깜 뽕에 탕수육도 시켜 먹어야겠습니 다. 이게 얼마 만에 먹는 탕수육인 지 모르겠습니다.”
짬뽕과 탕수육.
소박하기 짝이 없는 음식을 먹을 기대에 잔뜩 들떠 있는 박상구 작가 를 확인한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뗐다.
“제가 사죠.”
“네?”
“탕수육에 팔보채까지 제가 사겠습
이규한이 제안과 함께 덧붙였다.
“대신 판권 구입 금액을 바꿔야겠 습니다.”
“얼마로 바꾸시려는 겁니까?”
이규한이 대답 대신 손가락 두 개 를 펼쳤다.
그것을 확인한 박상구 작가의 표정 이 어두워졌다.
“이백만 원이요?”
“아닙니다. 거기에 0 하나 더 붙이 시면 됩니다.”
“이백만 원에 0을 하나 더 붙이 면… 이천만 원이요?”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하자,박상구 작가가 두 눈을 부릅떴다.
지금의 상황이 영 실감이 나질 않 는 표정이었다.
오백만 원에서 이천만 원으로.
갑자기 판권 가격이 네 배로 뛰었 기 때문이었다.
‘반값 이하로 줄었네.’
원래 판권 가격으로 오천만 원을 지불할 생각을 했던 이규한의 입장 에서도 판권 가격이 반값 이하로 줄 어든 상황이었다.
‘이 정도면 서로에게 공평하지 않
을까?’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할 때,박상 구 작가가 물었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제가 뭘 잘못했나요?”
“잘못했다는 뜻이 아니라,그 반대 입니다. ‘은밀한 작전’의 판권 가격 이 갑자기 너무 많이 올라서……
“좋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맞습 니까?”
“네? 네.”
“이유는 간단합니다. 박상구 작가 님의 ‘은밀한 작전’이란 작품에 이 정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이규한이 대답했지만, 박상구 작가 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그를 대신해서 곁에 앉아 있 던 백진엽이 작은 목소리로 질문했 다.
“진짜 이유가 뭐예요?”
“아까 대답했듯이 ‘은밀한 작전’이 란 작품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 단했어.”
이규한이 똑같은 대답을 꺼냈다.
그렇지만 백진엽은 박상구와 달리 의문을 품었다.
“못 보셨잖아요.”
“뭘 못 봤다는 거지?”
“상구가 그린 ‘은밀한 작전’이란 작품이요. 아직 연재를 시작하기 전 이라 대표님은 그 작품을 볼 수가 없어요. 그런데 판권 구입 가격으로 이천만 원을 책정할 정도로 작품에 가치가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죠.”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