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97화 (97/272)

97화

“제목이 마음에 걸린다? 이유는?”

“사초가 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 을 것 같거든요. 실은 이 대표님 오 시기 전에 팀원들에게도 물어봤는데 사초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 이 절반도 안 됐어요.”

권지영의 이야기가 끝난 순간,이 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목은 대중적일수록 유리했다.

그런 면에서 ‘사초 살인 사건’은 애매한 면이 있었다.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는 성공했 지만,대중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이 었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로 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직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초의 의미를 몰랐다고 권지영은 말했던 것이 그 증거였다.

그 말은 즉슨,일반인들은 사초의 정확한 뜻과 의미에 대해서 모를 가 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었다.

“좋은 지적이네.”

‘사초 살인 사건’이라는 원작 소설 이 있었다. 그래서 별 고민 없이 ‘사초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을 그 대로 썼었다.

그렇지만 너무 안이한 접근이었다 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의 중요성.

몇 번 강조해도 부족했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이미 ‘삼대 가족사’에서 ‘과속 삼대 스캔들’로 제목이 바뀌면서 관객수 가 크게 늘었다는 것을 확인했던 상 황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규한이 물었다.

“혹시 권 팀장이 생각해 둔 제목 있어?”

“음,그냥 의견이니까 참고만 하세 요. ‘사관’은 어떠세요?”

“사관?”

“사관이 기록한 사초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사관에 대해 서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팀원들 이 다 알고 있더라고요.”

‘사관’이라는 제목도 나쁘지는 않 았다. 그렇지만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심하던 이규한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이규한이 백진엽에게 전화를 걸었 다.

“네,대표님.”

“지금 뭐 하고 있어?”

“대표님이 지시하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죠.”

백진엽의 목소리에는 귀찮아 죽겠 다는 기색이 역력하게 묻어났다. 그 렇지만 백진엽이 앓는 소리를 하면 서도 자신이 지시를 내린 일을 충실 히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규한 이 웃으며 말했다.

“‘사초 살인 사건’의 시나리오 읽 어봤지?”

“읽기는 했죠.”

“혹시 ‘사초 살인 사건’ 말고 괜찮 은 제목이 떠오른 건 없었어?”

“있었죠.”

“그런데 왜 말 안 했어?”

“그거 말한다고 월급 더 주는 건 아니잖아요?”

백진엽은 당당하게 대꾸했다. 대표와 직원.

상하 관계가 분명했지만,백진엽은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렇지만 이규 한은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백진엽을 채용하기로 결심했을 때 이미 어느 정도 각오했던 부분.

또,조직 생활에 적응하라고 강요 하다 보면,백진엽의 창의성이나 젊 은 감각이 무뎌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채찍 대신 당근.’

이규한이 백진엽을 다루는 방식이 었다.

“잊지 마라.”

“대표와 직원이라는 관계요?”

“아니,인센티브.”

황진호와 백진엽을 블루문 엔터테 인먼트의 직원으로 채용하면서,이 규한은 계약서에 인센티브 조항을 삽입했다.

본인이 기획한 작품의 경우 제작사 수익의 10%,본인이 기획하지 않은 작품이라도 제작사 수익의 1%를 지 급하는 조항이었다.

기존의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직원 이었던 김미주와의 형평성을 고려했 고,애사심을 고착시키기 위한 의도 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인센티브 조항을 삽 입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같이 잘 먹 고 잘 살자는 이규한의 신조 때문이 었다.

어쨌든 그런 이규한의 의도는 먹혔 다.

‘사관,왕을 만든 남자.” 인센티브의 존재를 떠올린 백진엽 이 ‘사초 살인 사건’을 읽고 난 후 떠올렸던 제목을 바로 알려 주었다.

‘좋다!’

귀가 번쩍 뜨이는 느낌을 받은 이 규한이 물었다.

“왜 이런 제목을 떠올렸던 거지?”

“시나리오의 내용대로라면 사관이 결국 킹메이커 역할을 하니까요.”

“백 피디.”

“이상해요?”

“아니,넌 인센티브 받을 자격이 있다.”

백진엽과의 통화를 마친 이규한이

백팩을 열었다.

“누구랑 통화한 거예요?”

그사이,권지영이 호기심을 드러내 며 물었다.

“새로 뽑은 직원.”

“직원을 새로 뽑았어요?”

“응. 진호 형 알지?”

“‘지옥도’ 제작한 황진호 대표요?”

“맞아. 진호 형이랑 백진엽이란 기 획피디를 얼마 전에 새 식구로 들였 어.”

“방금 누구라고 했어요?”

“백진엽. 왜? 혹시 알아?” “알아요. 얼마 전에도 투자팀으로 찾아왔었거든요.”

“그랬어? 왜 찾아왔었는데?”

“절 찾아올 다른 이유가 뭐가 있겠 어요? 투자 받으려고 찾아왔죠.”

백팩에서 ‘사초 살인 사건’의 시나 리오 책과 펜을 꺼낸 이규한이 흥미 를 느끼고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는 뭘 그래서예요. 당연히 거절했죠.”

“왜 당연히 거절했는데?”

“말도 안 되는 작품을 들고 와서는 투자를 받으려고 하니까 거절했죠.

그랬더니 작품을 보는 눈이 형편없 다고 일장연설을 하고 돌아갔어요.”

이규한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비록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사무실에서 어 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머릿속에 그 림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어떤 작품인지 기억해?”

“그 난리를 치고 갔는데 당연히 기 억하죠. ‘인천행 버스’라는 작품이었 어요.”

백진엽이 투자를 받기 위해서 로터 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에 들고 찾 아왔던 작품이 ‘인천행 버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규한이 웃으며 입

을 뗐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 받 기는 어렵겠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할 거거든.”

“뭘 제작해요? 설마 ‘인천행 버스’ 라는 작품을 제작할 생각이세요?”

“그 설마가 맞아.”

이규한이 대답하자,권지영이 입을 쩍 벌렸다.

“왜 하필이면 그 작품을……?”

“가능성을 엿봤거든.”

“무슨 가능성이요?”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권지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녀의 두 눈에 담긴 감정은 불신이었다.

‘과연 내가 이규한 대표를 계속 믿 어도 될까?’

‘인천행 버스’를 제작하겠다는 의 사를 밝힌 자신을 바라보는 권지영 의 두 눈에는 불신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러나 이규한은 그녀의 두 눈에 떠올라 있는 불신의 빛을 지우 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다.

‘만약 투자를 안 하면 결국 후회하

는 건 권 팀장이니까.’

백진엽이 기획한 ‘인천행 버스’.

비록 지금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지 만,머잖아 ‘부산행 열차’라는 매력 적인 작품으로 바낄 터였다. 그리고 이규한은 이미 ‘부산행 열차’가 대 단한 흥행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 었다.

그러니 이규한의 입장에서는 급할 것이 전혀 없었다.

“잠깐 기다려 봐.”

이규한이 시간을 번 후,펜을 들었 다.

‘사초 살인 사건’이란 제목 위에 펜으로 두 줄을 그은 이규한이 새로 운 제목을 적었다.

‘사관,왕을 만든 남자.’

백진엽이 제안했던 새로운 제목을 정성들여 적은 후,이규한이 펜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후우.

크게 한숨을 내쉰 이규한이 시나리 오 책을 집어 들었다.

잠시 후, 이규한의 눈앞에 숫자가 떠올랐다.

- 3,223,947.

이규한의 눈앞에 떠오른 숫자였다.

‘늘었다!’

‘사초 살인 사건’에서 ‘사관,왕을 만든 남자’로 제목을 바꾸자,예상 관객수가 늘어나 있었다.

그것도 꽤 많이 늘어나 있었다.

2,871,549에서 3,223,947로.

약 35만 명 가까이 예상 관객수가 늘어났으니까.

‘연봉값은 벌써 하고도 남았네.’

이규한이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을 때였다.

“‘사관,왕을 만든 남자’? 이건 뭐 예요?”

“새로 바꾼 제목이야. 어때?”

“괜찮은 것 같은데요. 아니,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좋네요. 작품의 내용 을 압축하고 있기도 하고,대중들의 호기심도 불러일으키니까요. ”

권지영도 이미 시나리오를 읽은 후 였다.

작품의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바뀐 제목인 ‘사관,왕을 만든 남자’ 에 만족스런 기색을 드러내는 것이 었다.

“백 피디가 정한 제목이야.” “백 피디라면… 백진엽이요?”

“응,권 팀장이 무시했던 ‘인천행 버스’를 기획했던 백진엽 피디 말이 야.”

“흥,금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긴 하네요.”

권지영은 여전히 백진엽을 못마땅 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신경 쓰지 않 고,화제를 돌렸다.

“감독과 주연 배우,모두 최고로 붙일 거야.”

“자신 있으세요?”

“응,권 팀장만 서포트를 잘해 준

이규한이 힘주어 대답하는 것을 들 은 권지영도 두 눈을 빛냈다.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서포트해야 죠. 그래야 또 바람을 안 피우실 테 니까요.”

“권 팀장도 참 뒤끝 있네.”

“뒤끝 없는 사람도 있나요?”

픽 웃은 권지영이 다시 물었다.

“그 외에도 제가 도울 게 있으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하나 부탁할 게 있 었어.”

“뭔데요?”

“개봉 시기.”

이제 막 시나리오가 나온 만큼,아 직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지도 않 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규한이 벌 써 개봉 시기를 입에 올리자,권지 영은 의아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사거리 픽처스라는 제작사는 알 지?”

“당연히 알죠. 심규동 대표가 세운 곳이잖아요.”

“잘 아네. 사거리 픽처스에서 지금 ‘사랑이 운다’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 자와 배급을 맡았고.” “그런데 ‘사랑이 운다’라는 작품 이야기는 갑자기 왜 꺼내시는 거예 요?”

“맞대결을 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사랑이 운다’라는 작품 과 비슷한 시기에 ‘사초 살인…… 아니,‘사관,왕을 만든 남자’를 개 봉하고 싶다는 뜻인가요?”

“맞아.”

“왜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진짜 이유는 복수였다.

악감정을 갖고서 블루문 엔터테인 먼트와 계약이 돼 있던 배정훈 감독

을 빼 갔던 김기현에게 복수하고 싶 어서 꼭 맞대결을 펼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권지영에게 그런 이유까 지 시시콜콜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 고 판단했기에 이규한은 대충 얼버 무렸다.

“잠시만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권 지영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약 이십여 분 후,다시 회의실로 돌아온 권지영은 우려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꼭 ‘사랑이 운다’와 맞붙어야 해요?” “왜? 문제 있어?”

“상대가 만만치 않아서요.”

남자 주인공인 임동완의 캐스팅은 이미 확정된 상황.

거기에 여자 주인공으로 박수지가 얼마 전에 합류했다.

팬층이 두터운 임동완과 박수지가 남녀주인공을 맡은 데다가,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든든한 지원까지.

아마 권지영은 회의실을 빠져나가 자마자 ‘사랑이 운다’라는 작품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았을 것 이었다. 그리고 상대할 ‘사랑이 운 다’라는 작품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우려 섞인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그건 권 팀장 판단이고.”

“네?”

“내 판단은 달라. ‘사랑은 운다’는 분명히 망할 거야.”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권지영이 의 아한 시선을 던졌다.

“그걸 이 대표님이 어떻게 아시는 데요?”

“봤거든.”

“뭘 봤는데요?”

이규한이 대답했다.

“‘사랑이 운다’의 시나리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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