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92화 (92/272)

92 화

이게 맞아 “좋네!”

오뎅 국물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뱃 속이 뜨끈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까와 달리 소주가 달았다.

“이게 맞아!”

비록 앞으로 험난한 길을 걸어가야 하겠지만,지금처럼 신조를 지키며 사는 것이 옳다는 확신이 들었다.

잠시 후,이규한이 두 눈을 빛내며 혼잣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내 정산금은 얼마나 들 어왔을까?” “이게… 대체 얼마야?”

기대에 찬 시선을 던지고 있던 이 규한의 두 눈이 커졌다.

통장에 찍혀 있는 금액.

바로 계산이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둘,셋…….,

통장에 들어온 정산금의 자릿수를 세던 이규한이 잠시 후 헛숨을 들이 켰다.

“사십구억?”

‘수상한 여자’의 최종 관객수는 1202만 명.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8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많은 관객들을 불 러모았다.

그래서 정산금이 적지 않을 것이라 는 예상은 했다.

그렇지만 이 장도로 많은 정산금이 들어올 것은 상상도 못 했다.

물론 사십구억이 모두 수익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그동안 쓴 기획 개발비를 제해야 하고,감독 및 배우들과 계 약할 당시 약속했던 지분만큼 정산 금을 나눠 줘야 했다.

그렇지만 그 금액을 제한다고 하더 라도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는 것 은 부인할 수 없었다.

“이래서 천만 영화를 제작하면 빌 딩을 산다고 하는구나!”

영화계의 속설이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그 말을 실감한 적이 없었다.

주변에 천만 영화를 만들었던 제작 자가 없었던 데다가,이규한 역시 천만 영화룰 제작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발 손익분기점만 넘기자!’

어렵게 제작한 영화가 개봉할 때마 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만 바랐는 데.

마침내 천만 영화를 제작한 덕분에 이규한도 그 속설을 실감하게 된 것 이었다.

너무 많은 정산금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던 이규한이 잠시 후 혼 잣말을 꺼냈다.

“이 돈으로… 뭘 해야 하지?”

“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요.”

김미주가 만족스런 표정으로 말했 다.

“무슨 뜻이야?”

이규한이 묻자,김미주가 통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개봉하는 날,‘광안리’를 보고 난 직후에 인센티브 받아서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었잖아 요.”

김미주는 어지간해서는 흥분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달랐다.

통장에 들어와 있는 인센티브를 확 인하고 난 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목소리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하긴 그럴 만하지.’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미주가 ‘수상한 여자’가 흥행한 덕분에 수령한 인센티브 액수.

그녀의 연봉보다 더 많았다.

이렇게 흥분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좋아?”

“돈 싫어하는 사람 봤어요?”

“좋겠네.” “좋기도 하지만 내 스스로가 대견 하게 느껴져요.”

“왜?”

“램프 엔터테인먼트를 그만두고 블 루문 엔터테인먼트로 이직한 것. 내 가 가장 잘한 선택이니까요.”

웃으며 대답하는 김미주에게 이규 한이 물었다.

“인센티브 받은 돈으로 해외여행 갈 거야?”

“아직 고민 중이에요.”

“왜 고민 중이야?”

“인센티브를 막상 받고 나니,생각 이 좀 바뀌었거든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목표가 바뀌었달까요?”

이규한이 흥미를 느끼고 물었다.

“어떤 목표가 생겼는데?”

“자가 보유자가 되고 싶어졌어요.”

“집을 사고 싶다는 뜻이야?”

“맞아요.”

서울의 아파트 한 채 값은 족히 수억을 호가했다.

김미주가 ‘수상한 여자’의 흥행 덕 분에 받은 인센티브는 약 오천만 원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서울에서 집을 구입해 자 가 보유자가 되기에는 한참 모자랐 다.

그래서 이규한이 지적했다.

“집 사기엔 한참 부족할 텐데?”

“그 정도는 나도 알아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다섯 번만 더 반복하 면 경기도 쪽에 아파트 한 채를 사 는 건 가능할 것 같은데요.”

“이런 식으로 다섯 번을 더 반복한 다면… 천만 영화를 다섯 번 더 만 들어야 한다는 뜻이잖아?”

“정확해요.”

이규한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천만 영화를 한 편만 제작해도 성 공한 제작자라고 불리며 부러움을 사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천만 영화를 다섯 편이나 만들자니.

이 바닥을 너무 몰라서 꺼낸 말이 라고 생각했던 이규한이 두 눈을 가 늘게 좁혔다.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규한은 이미 미래에 홍행할 작품 들을 대략 알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시나리오를 집어 들면 예상 관객수를 볼 수 있는 특수한 능력도 갖고 있었다.

이 두 가지 능력을 잘 이용한다면 천만 영화를 여러 편 제작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것을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였다.

“대표님은요?”

김미주가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을 받고 이규한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나? 이미 어떻게 쓸지 생각해 뒀 어.”

“어디에 어떻게 쓸 건데요?”

이규한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가 될 거야.” 강원도 정선.

내국인의 출입이 허가되는 카지노 인 강원랜드가 유명한 정선의 톨게 이트를 지나친 순간,운전대를 잡고 있던 김미주가 걱정스레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도박은 패가 망신의 지름길이에요.”

“나도 알고 있거든.”

“그런데 여긴 왜 왔어요?”

김미주는 이규한이 정선까지 찾아 온 이유가 강원랜드에 출입하기 위 해서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정선까지 찾아 온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놀러 온 거 아냐.”

“그럼요?”

“일하러 온 거야.”

이규한이 대답했지만,김미주는 순 순히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자료 조사 핑계로 강원랜드 가려 는 거죠?”

“아니거든.”

“그럼 여긴 대체 왜 온 건데요?”

“진짜 일하러 왔어. 정선에서 영화 ‘파란 소금’ 촬영을 하고 있거든.” “다른 제작사에서 제작하는 영화 촬영 현장에는 왜 온 건데요?”

“만날 사람이 있어서.”

“누구요?”

“송강오 선배.”

김미주가 배우 송강오를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일까.

김미주가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방금 송강오 선배라고 했어요?”

“응.”

“송강오랑 아는 사이세요?”

“아니.”

이규한이 대답하자,김미주가 실망 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런데 왜 선배라고 했어요?”

“같은 영화 일을 하니까 선배라고 불렀지.”

“난 또 아는 사이인지 알았네요.”

입을 삐죽이는 김미주을 바라보던 이규한이 길가에 위치해 있는 마트 를 발견하고 말했다.

“저기서 좀 세워 줘.”

끼이익.

김미주가 차를 세운 순간,이규한 이 차에서 내렸다.

“왜 여기서 내려요?” “살 게 있어.”

“뭐요?”

“돼지목살.”

“뜬금없이 돼지목살을 사려는 이유 가 뭔데요?”

“송강오 선배가 돼지목살을 좋아하 거든.”

“모르는 사이라면서 그건 어떻게 알아요?”

“송강오 선배 지인에게 물어봤어. 오늘은 내가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 이라서 잘 보여야 하거든.”

이규한이 마트 쪽으로 걸음을 옮기 다가 다시 멈추고 김미주에게 말했

다.

“먼저 올라가.”

“어딜요?”

“서울로 올라가서 사무실 지켜야 지.”

“그럼 대표님은요?”

이규한이 대답했다.

“난 여기서 밤새고 내일 올라갈 거 야. 어쩌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 고.” “오늘 촬영은 한 신 남았습니다. 모두 힘드시겠지만,조금만 더 힘을 내 주세요. 준비 끝나면 바로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파란 소금’의 연출을 맡은 흥종구 감독의 우렁찬 목소리가 촬영장 내 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촬영 현장에 오는 것도 무척 오래 간만이네.”

영화 제작자이긴 하지만, 이규한은 촬영 현장을 가능하면 찾지 않는 편 이었다.

‘현장은 철저하게 감독에게 맡긴 다!’

이게 이규한이 제작자로서 가진 소 신이기 때문이었다.

구석에서 촬영 현장을 둘러보고 있 던 이규한의 귓가로 스랩들이 불만 을 쏟아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다.”

“어제 밤샘 촬영했으면,오늘은 좀 일찍 끝내 줘야 할 것 아냐?”

“제작비가 없으면 촬영을 하지를 말던가.”

“아직도 입금 안 됐더라. 일은 부 려먹고,돈은 안 주고. 개고생만 하 고 나중에 돈도 못 받는 것 아냐?”

작은 목소리로 앞다투어 불만을 쏟

아내는 스렙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났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스랩들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그들이 쏟아내는 불만을 들은 이규 한이 팔짱을 꼈다.

“남의 촬영장에서도 배울 게 있구 나!”

한국 영화 스템들이 처해 있는 환 경.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이규한도 거기까지는 미 처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 촬영 현장에 찾아가지 않으니 스랩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이나 불

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텝들의 처우에도 신경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하는 스텝 들.

대부분 영화가 좋아서 촬영 현장에 뛰어든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고 하더라도, 본인이 일한 것에 대 한 적당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다 면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 리고 불만이 쌓이면,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파란 소금‘은 흥행하기 힘들겠

영화는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었 다.

작가와 감독,배우,피디,제작자, 그리고 현장의 스렙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친 끝에 한 편의 영화가 제작되는 만큼,당연히 팀워크가 중요했다.

그런데 스텝들이 불만을 쏟아내며 팀워크가 무너지는 경우,좋은 영화 가 나올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질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을 캐치한 것만으로도 여기까 지 온 보람은 충분해.”

이규한이 이렇게 막 판단을 내렸을 때였다.

“홍 감독!”

송강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규한이 송강오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오늘은 그만 찍는 게 어때?”

흥종구 감독에게 다가간 송강오가 제안했다.

“왜요?”

“좀 피곤해서 그래.”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들 피곤해하는

것 같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촬영을 접자고.”

송강오는 영화계에서 연륜과 실력 이 쌓인 주연 배우.

그래서 흥종구 감독도 바로 거절하 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래도 이번 신까지만 촬영을 마 치고 난 후에……

“제작비 때문에 그래?” “제작비 몇 푼 아끼겠다고 계속 이 렇게 밀어붙이다가는 사고 나. 그리 고 진짜 사고 나면 수습하는데 시간 이랑 돈이 더 들어. 그러니까 내 말 대로 하자고.”

송강오가 다시 말하고 나서야,흥 종구 감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그런 그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수긍 했다.

그 모습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이규한이 감탄했다.

“괜히 송강오가 아니구나!”

송강오는 흥종구 감독이 연출을 맡 은 이번 작품 ‘파란 소금’의 원톱 주연 배우였다.

당연히 촬영 분량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본인의 연기

를 펼치는 데만 급급하지 않았다.

촬영 현장의 분위기나 스템들에게 도 신경을 쓸 정도로 여유가 있었 다.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송강오와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더 욱 생겼다.

그래서 이규한이 지체하지 않고 움 직였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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