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91화 (91/272)

91 화

그래도 작품은 지켰으니까 (2) 이규한이 기억하는 미래의 투자 배 급사들.

투자와 배급을 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더 많은 수익을 거둬들일 욕심에 사로잡혀서 거대 투자 배급사들은 직접 제작까지 뛰어들었다.

물론 거대 투자 배급사들이 영화의 제작까지 뛰어드는 것은 불법이었 그렇지만 그들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가면서 제작에 나섰다.

일종의 자회사 개념의 제작사를 만 드는 방식이었다.

‘사거리 픽처스가 대표적인 예지. 그리고 이런 투자 배급사의 편법들 이 결국 영화 제작자들의 가느다란 숨 줄기까지 끊어 놓았지.’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이규한이 참 지 못하고 혼잣말을 꺼냈다.

“일처리 대충하는 건 여전하네.”

본인이 배정훈 감독의 배후에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던 걸

까.

김기현은 배정훈 감독과 직접 계약 을 맺지 않았다.

대신 사거리 픽처스와 계약을 맺도 록 손을 썼다.

그러나 이규한을 속이기에는 너무 허술한 일처리였다.

“이 대표,무슨 소리야?”

“죄송합니다. 혼잣말을 한 거니 신 경 쓰지 마십시오.”

“그래?”

“그보다 배정훈 감독이 사거리 픽 처스와 어떤 작품으로 계약을 맺었 는지도 알아내셨습니까?”

이규한이 질문한 순간,김태훈에게 서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알아냈어.”

“어떤 작품입니까?”

“‘사랑이 운다’라는 작품이라고 하 더군.” 배정훈 감독을 뒤에서 조종한 것. 이규한의 예상대로 김기현이었다. 그리고 이미 예상을 했기에,지금까 지의 전개 상황에 대한 그림이 머릿 속으로 훤히 그려졌다.

‘광안리’를 공동 제작하자고 김기 현은 먼저 제안했었다. 그러나 이규 한은 그 제안을 뿌리쳤다.

모르긴 몰라도 이규한이 ‘광안리’ 를 공동 제작하자는 김기현의 제안 을 거절한 게 시작이었을 것이었다.

김기현은 그 일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터.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은 ‘수상 한 여자’와 ‘광안리’의 맞대결 결과 였다.

이규한이 제작한 ‘수상한 여자’와 맞대결을 펼쳤던 ‘광안리’가 완패한 것이 김기현과의 관계가 틀어진 결 정적인 계기가 됐을 가능성이 높았 ‘복수하자!’

자존심이 잔뜩 구겨진 김기현은 복 수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그가 찾아낸 해법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와 연출 계약을 맺은 배정훈 감독을 빼앗아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배정 훈 감독을 빼앗는 것은 김기현에게 식은 죽 먹기였을 터였다.

거액의 연출 계약료를 안겨 주고, 씨제스 엔터테인먼트가 확실하게 밀 어줄 거라는 약속을 해서 배정훈 감 독의 마음을 돌렸으리라.

“제발 아니길 빌었는데.”

이번에는 김기현과 적이 되고 싶지

그렇지만 상황은 이규한의 계획대 로 홀러가지 않았다. 그리고 김기현 이 선전포고를 했는데,가만히 손 놓고 당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이번엔 다를 거야.”

이규한이 김기현을 만나기 위해서 스카이 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무슨 일로 찾아왔어?”

이규한이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대 표실로 들어서자, 김기현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 주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웃지 못했다.

‘무슨 일로 찾아왔냐고?’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모를 리 없 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현은 시치 미를 뚝 떼고 있었다.

“거기 앉아. 차는 뭘로 할래?”

“달달한 거로 부탁해. 입안이 지독 히 써서 말이지.”

김기현이 권한 자리에 앉으며 이규 한이 대답했다.

잠시 후,김기현이 이규한의 맞은 편에 앉으며 입을 뗐다.

“많이 늦긴 했지만 천만 영화 제작 한 기념으로 내가 축하주 한 잔 산 다니까. 왜 거절한 거야?”

“우리가 웃으면서 술 마실 사이는 아닌 것 같아서.”

“그런가?”

픽 웃는 김기현을 노려보며 이규한 이 말했다.

“부럽네.”

“뭐가 부럽다는 거야?”

“회사가 여전히 잘 돌아가는 것 말 이야.”

“보통의 제작사는 제작비가 100억 이 넘는 대작을 제작했다가 실패하 게 되면 더 이상 투자를 못 받아서 망하기 일쑤거든.”

이규한이 일침을 가했지만,김기현 은 여유롭게 받아쳤다.

“아버지 덕분이지. 내가 백억짜리 영화를 서너 편 더 말아먹어도 회사 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굴러갈걸? 그래서 다들 나와 같이 손잡고 일을 하고 싶어서 안달인 거야. 그런데 넌 대체 왜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잘난 척 그만하란 뜻이야.” 김기현이 팔짱을 끼며 덧붙였다.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 란 뜻이기도 하고. 이번 일을 겪으 면서 너도 느끼지 않았나?”

방금 김기현이 입에 올린 이번 일.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돼 있던 배정훈 감독을 빼앗아 간 것을 의미했다.

감출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일까.

노골적으로 본인이 배정훈 감독을 뒤에서 조종했다고 밝히는 김기현을 이규한이 매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내가 잘못

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아니,잘못했어.”

" ……?"

“넌 날 무시했고,내게 모욕감을 안겨 줬으니까.”

김기현이 당연하다는 둣이 꺼낸 대 답을 듣고서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 었다

지금의 상황을 돌리기에는 너무 늦 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 었다.

그때 였다.

“왜? 이제 좀 겁이 나는가 보지? 아직 기회는 남아 있어.” “무슨 기회가 남아 있다는 거야?”

“더 늦기 전에 내가 내민 손을 못 이긴 척 잡아. 그럼 부와 명예를 손 에 1 수 있을 테니까.”

김기현이 선심 쓰듯 말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속으로 코웃음 을 치며 말했다.

“웃지 마.”

{구"

“오히려 네가 두려워한다는 걸 알 고 있으니까.”

“내가 뭘 두려워한다는 거지?”

“날 두려워하지.” 김기현이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그 반응을 무시 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날 어떻게든 이기고 싶을 거야. 아버지에게서 인정받고 싶을 테니 까. 그래서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와 이미 계약한 배정훈 감독을 빼가는 치졸한 짓까지 했다는 것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증거이지.”

“무슨 헛소리를……

“그런데 한참 잘못된 선택이었어. 배정훈은 그만한 가치가 없는 감독 이거든. 오히려 날 적으로 돌리는

“두고 봐.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테니까.”

이규한이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열고 막 빠 져나가려는 이규한의 등 뒤로 김기 현이 소리쳤다.

“최악의 선택을 한 건 너야. 내가 증명해 주지.”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규한이 근처 포장마차로 들어가서 소주와 꼼장어를 시켰다.

조르르.

소주 한 잔을 마신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만약 김기현이 내밀었던 손을 못 이긴 척 잡았다면?’

지금쯤 포장마차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지 않을 것이었다.

고급 바에서 바텐더가 따라 주는 비싼 양주를 마시고 있을 터.

그뿐이 아니었다.

앞으로 이규한은 영화를 쉽게 제작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또,제작한 영화의 흥행에 일희일 비하며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됐을 터였다.

그러나 이규한은 결국 김기현이 내 민 손을 잡지 않고 뿌리쳤다. 그리 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나랑 안 맞아!”

영화 제작자로서 새로운 기회를 얻 은 순간,이규한은 두 가지 신조를 가슴에 품었다.

하나는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 는 것이었고,나머지 하나는 최소한 양아치는 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기현과 손을 잡는다면 그 두 가지 신조를 모두 지키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뜨끈하니 좋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오뎅 국물 을 한 모금 들이켠 후,이규한이 잔 을 채우기 위해서 다시 소주병을 들 어 올렸을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탁자맡에 올려 둔 휴대전화가 진동 했다.

국제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을 확인 한 이규한이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 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규한 대표님,전화가 맞나요?”

“그런데요. 누구시죠?”

“저 최소림입니다. 혹시 기억하시 나요?”

이규한이 휴대전화를 고쳐 쥐었다.

최소림이라는 이름.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성에 가거든’이란 곡을 ‘수상한 여자’에 삽입하기 위해서 뉴욕에 찾 아갔다가 그녀를 만났던 기억이 생 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최소림 을 떠올리자,삶에 지친 둣 생기 없 는 표정과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떠

올랐다.

‘목소리가 변했네!’

감기에 걸려서 허스키하게 변했다 는 뜻이 아니었다.

지금 통화를 하고 있는 최소림의 목소리에서는 생기가 넘쳤다.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규한이 서둘러 대답한 후 물었 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습 니까?”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요.”

“감사 인사요?”

“이규한 대표님이 그날 하셨던 말 씀이 틀렸습니다.”

‘내가 그때 무슨 말을 했었지?’

이규한이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였 다.

“조금은 기대해 봐도 좋을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아!”

이규한이 기억을 떠올리는 데 성공 했다.

“조금은 기대해 보셔도 좋을 겁니 다.” 이규한의 재촉을 이기지 못하고 계

약서에 서명을 하긴 했지만,최소림 은 전혀 기대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 반응을 확인하고 이규한이 꺼냈 던 말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이규한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때,최소림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 다.

“조금이 아니었어요.”

** ??

“깜짝 놀란 만큼 많은 돈이 통장에 입금됐어요.”

‘입금이 됐다?’ 그 말을 듣고서야 이규한이 상황을 이해했다.

‘수상한 여자’의 정산이 끝나고, 정 산금 중 일부가 최소림의 통장으로 입금된 것이었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이규한이 뉴욕에서 직접 눈으로 목 격했던 최소림의 형편은 결코 좋지 않았다.

고단한 삶을 힘겹게 이어 가고 있 었지만,형편이 나아지기는커녕 점 점 더 어려워졌기에 희망을 잃어버 린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가 다시 희망을 되찾을

계기가 생겼다는 것이 기했다.

“이규한 대표님.”

“말씀하시죠.”

“제가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도 되 는 걸까요?”

“물론 됩니다. 당연한 최소림 씨의 권리이니까요.”

“그렇지만……

“정말 받아도 됩니다.”

이규한이 재차 말한 순간,최소림 이 다시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흐느끼는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 는 최소림에게 이규한이 웃으며 말 했다.

“제게 감사할 일이 아닙니다. 아까 도 말씀드렸지만 최소림 씨가 받아 야 당연한 권리의 돈이니까요.”

“아니요. 당연한 게 아닙니다.”

“네?”

“만약 이규한 대표님이 나쁜 마음 을 먹었다면,계약서를 작성하지 않 았을 거라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랬다면 이 돈도 받지 못했겠죠. 그래서 더 이규한 대표님 께 감사합니다.”

“제가 좀 양심이 있는 편이긴 합니 다.” 이규한이 웃으며 말하자,최소림이 재차 인사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 다.”

“저는 당연한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베푼 게 아니니까 잊으셔도 됩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도 용기는 잃지 마세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연신 감사 인사를 한 후,최소림이 전화를 끊었다.

그녀와 통화를 마친 후,이규한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1억 관객 제작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