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88화 (88/272)

88 화

마음의 빚 (2)

‘물론 끝은 안 좋았지만.’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당시 NEXT 엔터테인먼트의 투자 팀장 직책을 맡고 있던 김태훈은 이 규한을 믿고 영화 ‘만월’에 10억을 투자했다. 그러나 김태훈의 도움을 받아 제작했던 영화 ‘만월’의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아니,흥행 성적이 신통치 않다는 말로는 부족 말 그대로 흥행 참패를 기록했으니 까.

당연히 김태훈은 영화 ‘만월’에 투 자했던 10억 원을 회수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만월’의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 직책에서 쫓 겨나듯 물러났었다.

“이 대표.”

‘......?'

“이 대표,괜찮아?”

김태훈의 부름을 듣고서야 이규한 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내가 너 무 무리한 부탁을 해서 그래?”

“아니요. 전혀 무리한 부탁이 아닙 니다.”

“응? 그게 무슨 뜻이야?”

“선배님께서 이렇게 부탁하시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진심이야?”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김태훈이 반 색했다.

“그렇지 않아도 선배님께 만나자고 청했던 이유.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에서 제작하고 있는 작품의 투자 문 이규한이 덧붙인 말을 들은 김태훈 이 바로 말했다.

“고맙다.”

“아니요. 당연한 겁니다.”

“당연하다니?”

“마음의 빚을 졌으니까요.”

예전 이규한이 곤경에 처했을 때, 김태훈은 이규한을 믿고 거액을 투 자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려 주었었 다.

또,그 결단으로 인해 김태훈은 곤 란한 상황에 처했고,결국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 직책에서 물

당시에 김태훈이 보여 주었던 믿음 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 믿음의 대 가로 김태훈이 곤경에 처했던 것이 이규한은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었 다.

‘기회가 왔어!’

다시 과거로 돌아온 덕분에 이규한 에게는 김태훈에게 갖고 있던 마음 의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었다.

“마음의… 빚이라니?”

김태훈은 이런 사정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김태훈에게 이규한이 웃 으며 대답했다.

“그런 게 있습니다.”

‘……?'

“선배님은 모르셔도 됩니다.”

더 자세한 설명을 하는 대신,이규 한이 백팩을 열었다. 그리고 박한정 작가가 각색한 ‘스파이들’의 시나리 오 책을 꺼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준비 중 인 작품입니다.”

“그래?”

“한번 검토해 보시죠.”

김태훈이 신중한 손길로 시나리오 를 받아 들었다.

그런 그에게 이규한이 간단한 설명 을 더했다.

“세팅은 어느 정도 끝난 상황입니 다. 배정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기로 했고,송강오와 임동완의 출연이 유 력합니다.”

배정훈이 신인 감독이기 때문일까.

배정훈 감독의 이름을 듣고 슬쩍 눈살을 찌푸렸던 김태훈은 송강오와 임동완의 이름을 듣고서 언제 그랬 냐는 둣 표정이 밝아졌다.

김태훈은 마음이 급한 듯 ‘스파이 들’의 시나리오 책을 바로 보고 싶 어 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고개를 흔들었 다.

“시나리오는 내일 보시죠.”

“왜?”

“오랜만에 만났는데 오늘은 거하게 한잔하셔야죠.”

“그래도……

“선배님, 저 어디 안 갑니다.”

“……?"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선배님에게 마음의 빚이 있으니까요.” 이규한이 더한 말을 들은 김태훈이 물었다.

“그러니까 다른 투자 배급사와 계 약할 일은 없다는 뜻이지?”

“네,천천히 보셔도 됩니다.”

“알았다.”

그제야 김태훈이 ‘스파이들’의 시 나리오 책을 서류 가방 속에 넣었 다.

원하던 바를 얻었기 때문일까.

김태훈이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입 을 뗐다.

“오늘 코가 삐뜰어질 때까지 마시 는 거야.”

“예전처럼요?”

“그래. 예전처럼.”

째앵.

두 개의 술잔이 부딪쳤다.

잠시 후,이규한이 환하게 웃었다.

술잔이 비어 가는 속도가 빨라질수 록,마음의 빚도 함께 사라져 갔다.

툭.

시나리오를 반쯤 읽다가 덮어 버린 김기현이 바닥에 던져 버렸다.

“부족해!”

방금 바닥에 던져 버린 시나리오.

충무로에서 주목하는 감독 가운데 한 명이 준비 중인 작품의 시나리오 였다.

그렇지만 김기현의 기대를 충족시 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나리오가 형편없는 것이 아니었 다.

김기현의 기대치가 워낙 높아서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었 다.

“어렵네!”

밤을 꼬박 샌 탓에 핏발이 선 김 기현의 눈에 어느새 바닥에 수북이 쌓인 시나리오 책들이 보였다.

나름대로 잘나가는 감독이나 시나 리오 작가들이 쓴 작품들이었지만, 김기현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이었 다.

벅벅.

양손을 얼굴로 들어 올려 마른세수 를 하던 김기현이 아버지인 김대환 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럼 증명해라. 네가 이규한보다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거라.” 아버지인 김대환의 인정을 받고 싶 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이규한보다 더 낫다는 것 을 증명해야 했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 다.

지금까지 김기현은 어렵지 않게 영 화를 제작해 왔다.

- 최고의 작가가 쓴 시나리오를 최고의 감독이 연출하게 하고,최고 의 배우가 연기를 하게 만든다.

이것이 김기현이 영화를 만들어 온

방식이었다.

아버지가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대 표이기에 가능했던 제작 방식.

그렇지만 기존의 방식이 무조건 성 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광안 리’를 통해 뼈저리게 경험한 후였 다.

그래서 김기현의 고민이 깊어진 것 이었고.

“어떻게든 증명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조바심 이 생겼다.

“이규한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야 동데.” 혼잣말을 연신 중얼거리던 김기현 이 잠시 후 두 눈을 빛냈다.

한 가지 방법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래.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 었어.”

아버지인 김대환이 주문한 것.

천만 영화를 제작하라는 것이 아니 었다.

이규한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라 는 것이 아버지의 주문이었다. 그리 고 단순하게 생각하자,이규한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김기현이 거울을 보며 헝클어진 머 리를 손질한 후,대표실을 빠져나갔 다.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을 내 려다보던 김기현이 기획팀장 손주일 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손짓했다.

“부르셨습니까?”

“손 팀장님이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김기현이 지시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준비 중 인 작품에 대해 알아보십시오.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고,어느 감독과 연출 계약을 맺었고, 어느 작가와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지까 지. 하나도 빼놓지 말고 알아내서 내게 보고하세요.” 두근두근.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이규한은 몸 의 이상을 느꼈다.

심장이 이유 없이 무척 빨리 뛰고 있었다. 그리고 심장 박동 속도가 빨라질수록 불안감도 커져갔다.

‘이러다 말겠지!’

처음에는 무심코 넘겼지만,사무실 로 출근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 다.

이유 없는 불안감이랄까.

‘왜 이래?’

이규한이 그제야 심각성을 느꼈다. 그래서 이유 없는 불안감이 깃들고 있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그렇지만 마땅한 이유를 찾는 데 실패했다.

현재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는 아 무런 문제도 없었으니까.

“미주 씨.”

“왜요?”

“혹시 회사에 무슨 문제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미주에게도 질문해 보았지만,그녀는 황당한 표 정으로 대꾸했다.

“대표님.”

“말해.”

“대표님이 이 회사 대표거든요.”

“그렇긴 하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문제없어요.”

“그렇지?”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전 화를 꺼내서 배정훈 감독에게 전화 를 걸었다.

“여보세요?”

잠시 후,배정훈 감독이 전화를 받 았다.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기 때문일까.

배정훈 감독이 전화를 받은 순간,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잘 지내고 계시죠?”

“네,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어제는 왜 전화를 안 받으셨습니 까?”

“…급한 일이 있어서요.”

그런 느낌은 배정훈 감독과의 통화 가 이어질수록 더욱 짙어졌다.

현재 배정훈 감독은 블루문 엔터테 인먼트와 연출 계약을 맺은 상태였 다. 그리고 배정훈 감독은 이번 작 품 ‘스파이들’을 통해 꼭 입봉을 해 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이규한과 ‘스파이들’의 진 행 상황에 대해서 긴밀하게 소통을 해야 했다. 그러니 이규한과의 통화 가 무조건 1순위가 돼야 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배정훈 감독은 이규한이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경우가 부쩍 늘어 있었다.

“기쁜 소식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 다.” 이규한이 이상한 기분을 내색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말했다.

“어떤 소식입니까?”

“‘스파이들’의 투자가 확정됐습니 다.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스파 이들’에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습니 다.”

이규 한이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스파이들’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는 사실을 전했다.

“…그렇군요.” 그렇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배정훈 감독의 목소리는 시큰둥했 다.

‘반응이 왜 이래?’

배정훈은 입봉이 꼭 필요한 신인 감독.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스파이 들’에 투자하기로 확정이 되면서, 그의 입봉은 한층 더 가까워진 셈이 었다.

당연히 기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배정훈 감독에게서 돌아온 반응은 의아할 정도로 무미건조했다.

“그래서 다음 수순에 대해 감독님 과 만나서 상의를 해야 할 것 같습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표 님을 만나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 니다.”

“어떤 이야기입니까?”

“그건…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 다.”

배정훈 감독과 통화를 마친 후,이 규한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이규한이 혼잣말을 꺼냈 다.

:뭔가 잘못되고 있어.”

이규한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사무실로 찾아온 배정훈 감독은 평 소와 달랐다.

자꾸 이규한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 다.

또,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었 다.

“김 감독,영화 잘 나왔지? 왜 대 답을 못 해? 그리고 왜 아까부터 자꾸 내 눈을 못 보고 딴 데를 보

는 거야?”

영화 ‘만월’의 시사회가 열렸던 날.

이규한이 ‘만월’의 연출을 맡았던 김대만 감독에게 질문했지만,그는 대답을 미루며 이규한이 던지는 시 선을 피하기 급급했었다.

당시 김대만 감독의 모습과 지금 배정훈 감독의 모습.

무척 흡사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 다.

“감독님. 제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죠?”

“네.” “제가 먼저 말할까요? 아니면,감 독님이 먼저 말씀하시겠습니까?”

이규한이 질문한 순간,배정훈 감 독이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 대답했 다.

“제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그게 맞 는 순서인 것 같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제게 하실 말씀이 뭡 니까?”

배정훈 감독이 커피를 한 모금 마 신 후 입을 뗐다.

“아무래도 ‘스파이들’의 연출을 못 할 것 같습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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