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87화 (87/272)

87 화

마음의 빚 (1)

소설과 시나리오.

작법이 많이 달랐다.

그래서 시나리오로 바꾸는 과정에 여러 어려움이 존재했다.

우선 원작에서 가져가야 할 것을 선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고, 바꿔야 할 부분을 결정하고 어떤 방 식으로 바꿔야만 영화의 극적 요소 를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오랫

동안 고민해야 했다.

‘오히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든 작업일 수도 있어.’

박동선 역시 원작 소설을 시나리오 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연히 시행착오를 겪게 될 터.

그가 자신 있게 말했던 삼 개월보 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확률이 높 았다.

‘최소 반년!’

이규한이 예상한 시간이었다.

물론 박동선 작가가 ‘사초 살인 사 건’의 시나리오 작업을 마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캐스팅 작업도 준비해야 했고,감 독 선임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했 으니까.

“감독은… 그대로 갈까?”

이규한이 ‘사초 살인 사건’의 감독 선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였 다.

지이잉. 지이잉.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발신자가 박한정 작가임을 확인한 이규한이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작가님,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

박한정이 대답했다.

“각색 작업 끝냈습니다.”

- 각본,연출: 배정훈.

- 각색: 박한정.

- 주연: 송강오,임동완

- 제작: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스파이들’의 제작을 준비하고 있 는 이규한이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

‘감독이 약한 것은 부인할 수 없 어!’

배정훈 감독은 아직 입봉작이 없는 신인 감독이었다. 그렇지만 투자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이규 한은 판단했다.

송강오와 임동완이라는 티켓 파워 를 갖춘 두 배우가 출연을 확정하 고,‘수상한 여자’를 제작해서 상종 가를 치고 있는 블루문 엔터테인먼 트가 제작을 맡는다면?

투자 배급사들이 서로 투자하겠다 고 달려들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수상한 여자’의 투자와 배

급을 맡았던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 서는 ‘스파이들’의 시나리오도 보지 도 않은 상태로 투자 의사를 피력했 었다.

“내 예상보다 빨리 끝났어.”

이규한이 ‘수상한 여자’ 이후 차기 작으로 내심 염두에 두었던 작품은 둘이었다.

‘사초 살인 사건’과 ‘스파이들’.

그 두 작품 가운데 ‘사초 살인 사 건’을 먼저 제작하겠다고 결심했던 이유는 박한정 작가 때문이었다.

만필.

박한정 작가는 글을 빨리 쓰지 못

그래서 ‘스파이들’의 각색 작업에 짧으면 6개월,길면 1년이 넘는 시 간이 걸릴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박한정 작가가 쓴 각색고가 예상보다 더 빨리 나왔다.

각색 작업을 시작한 지 오 개월 만에 각색고가 나왔으니까.

‘두 작품을 동시에 진행해도 되지 않을까?’

이규한이 이렇게 판단하면서 박한 정 작가가 각색한 ‘스파이들’의 시 나리오 책을 긴장한 채 들어 올렸 다.

잠시 후,이규한의 눈앞에 숫자가 떠올랐다.

- 4,351,239.

이규한의 눈앞에 떠오른 숫자였다.

‘늘었다!’

2,783,428에서 4,351,239로.

박한정 작가가 각색한 시나리오는 배정훈 감독이 쓴 시나리오 초고에 비해서 예상 관객수가 늘어 있었다. 그것도 무척 크게 늘어 있었다.

약 150만 명 가까이 예상 관객수

‘내 선택이 옳았어!’

이규한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스파이들’의 각색 작업을 박한정 작가에게 맡겼던 이규한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었다.

“이제 다음 수순으로 넘어가자!”

세팅이 이미 어느 정도 끝난 상황.

‘스파이들’을 ‘사초 살인 사건’과 동시에 진행하기로 결심했으니, 이 제 투자처를 찾을 순서였다.

“어디가 좋을까?”

‘스파이들’의 투자처를 고민하고 있던 이규한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였 다.

‘과속 삼대 스캔들’과 ‘수상한 여 자’,그리고 ‘사초 살인 사건’까지.

지금까지 이규한은 로터스 엔터테 인먼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또,로터스 엔터테인먼트도 이규한 이 대표로서 이끌고 있는 블루문 엔 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작품에 투자 하는 것을 반기고 있었다.

“앞으로 최소 세 작품은 저희와 함 께하는 겁니다.” ‘수상한 여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 했을 때,축하주라도 한 듯 살짝 취 한 목소리로 권지영 팀장이 당부했 던 말이었다.

“무조건 투자할 거야.”

시나리오조차 나오지 않은 ‘사초 살인 사건’이라는 작품에도 과감하 게 투자 결정을 내렸던 로터스 엔터 테 인 먼트였다.

그런데 ‘스파이들’은 ‘사초 살인 사 건’과 비교하면,훨씬 세팅이 잘되 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스파이들’에 투자할 확률은 백 퍼 센트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로터스 엔터테 인먼트를 과감하게 배제했다.

그 이유는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와 만 계속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인다 면,훗날 선택의 폭이 좁아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는 로터스 엔 터테인먼트와 각별하고 돈독한 사이 다.’ 이런 이미지가 굳어진 상태에서 모 종의 이유로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와 의 관계가 틀어진다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는 다른 투자 처를 찾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주식으로 비유하자면 분산 투자와 비슷한 개념.

조건만 맞으면 로터스 엔터테인먼 트뿐만 아니라 다른 투자 배급사와 도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을 보 여 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 단이 들었다.

“권 팀장이 많이 서운해하겠네!”

만약 이규한이 다른 투자 배급사와 투자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뒤늦 게 알게 된다면?

권지영은 무척 서운해할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러나 이규한은 엄연한 사업가였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 는 사실을 알기에, 이규한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남은 건 세 군데로군.”

로터스 엔터테인먼트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메이저 투자 배급사라 할 수 있는 곳은 셋이 남아 있었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빅박스,그리 고 NEXT 엔터테인먼트였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우선 씨제스 엔 터테인먼트를 선택지에서 지웠다.

그 이유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인 김대환이 김기현의 아버지였

기 때문이었다.

어딘가 껄끄러운 느낌이랄까.

만약 선택의 여지가 아예 없었다 면,씨제스 엔터테인먼트를 배제하 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있 는 상황이었다.

빅박스와 NEXT 엔터테인먼트.

두 투자 배급사 모두 블루문 엔터 테인먼트와 이규한에게 호의적인 시 선을 던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두 곳 가운데 저울질을 하던 이규한이 결국 선택한 것은 NEXT 엔터 테 인먼트였다.

그리고 빅박스가 아니라 NEXT 엔터테인먼트를 선택한 이유는… 투 자팀장 김태훈과의 개인적인 인연 때문이었다.

영화 ‘만월’.

이규한을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트렸던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에게 위기가 찾아왔 던 것은 ‘만월’을 제작하기 이전부 터였다.

이규한이 ‘만월’ 이전에 제작했던 영화는 ‘혈전’.

그리고 ‘혈전’의 최종 관객수는 약 64만 명이었다.

손익분기점에 한참 미치지 못했던 스코어.

‘혈전’의 흥행 부진으로 인해 더욱 더 궁지에 몰렸던 이규한은 영화 ‘만월’로 화려한 재기를 꿈꿨다.

그렇지만 잇따라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제작자에게 계속 기회를 줄 정 도로 영화판은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당연히 ‘만월’의 제작 과정에서 이 규한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투자 유치가 어려웠다.

투자사들의 문턱이 닮을 정도로 자 주 찾아가면서 한 번만 기회를 달라 고 읍소했지만,대부분 외면하기 일 쑤였다.

그렇지만 이규한을 마지막까지 믿 어 준 몇 사람 덕분에 영화 ‘만월’ 은 간신히 제작이 가능했다.

당시 이규한을 믿어 주었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김태훈이었다.

“이규한,이게 얼마만이냐?” 김태훈은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

간 터라,풍기는 인상이 차갑고 날 카로운 편이었다. 그렇지만 대학 후 배로서 그를 알고 지낸 지 오래인 이규한은 김태훈이 무척 따뜻한 사 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 었다.

“한 칠 년 만인 것 같습니다.”

“겨우? 난 십 년은 더 된 것같이 느껴지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더 자주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잘못한 걸 알긴 아는구나.”

“앞으로 자주 뵙죠.”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김태훈과 악수를 나눈 이규한이 자 리를 권했다.

“앉으세요. 술은 여전히 하시죠?”

“술 못 마시게 되면 이 바닥 떠야 지.”

“다행이네요. 예전처럼 곱창에 소 주 한잔하고 싶어서 여기서 뵙자고 했습니다.”

“나야 좋지.”

이규한이 소주병을 들어서 김태훈 의 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갑자기 무슨 축하야?”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팀장 으로 승진하신 거요. 축하 인사를 드리는 것도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어쨌든 고맙다.”

채앵.

잔을 부딪치고 비우자마자,김태훈 이 소주병을 들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축하받을 일인 지 모르겠다.”

“왜 그러세요?”

“벌써 힘들어 죽겠다.”

김태훈은 이규한을 만나자마자 앓 는 소리부터 시작했다.

쪼르륵.

그런 그가 이규한이 내밀고 있던

“축하는 안 해 줘도 되니까 대신 날 좀 도와줘.”

“네?”

“요새 내 입장이 좀 곤란하거든.”

“무슨 말씀이십니까?”

“투자팀장으로 승진하자마자 두 작 품 시원하게 말아먹었어. ‘기원’과 ‘협상의 정석’이 손익분기점 못 넘 겼다는 것,너도 알고 있잖아? 물론 ‘기원’이야 전임자가 투자 결정을 한 것이긴 하지만,투자 실패에 대 한 책임의 화살은 나한테 돌아왔어. 회사가 원래 그런 곳이잖냐. 그래서 뭔가 보여 주긴 해야 하는데,딱히

“그래서 제게 도와달라는 뜻이로군 요.”

“맞아.”

김태훈이 다시 잔을 비운 후 입을 뗐다.

“솔직히 말하면 어제 한숨도 못 잤 다.”

“왜요?”

“네 전화 받고 떨려서.”

김태훈의 말이 끝나자마자,이규한 이 의심쩍은 시선을 던졌다.

“정말 제 전화 때문이었습니까?”

“응?”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한 작품들이 잇따라 실패해서 요새 계 속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는 것 아 닙니까?”

“자식,여전히 날카롭네.”

정곡을 찔려서일까.

멋쩍게 웃던 김태훈이 말했다.

“규한이가,아니 이 대표가 잘나가 는 이유가 있었네. 두 발 뻗고 잠 좀 편하게 잘 수 있게 이 대표가 좀 도와줘.”

김태훈은 무척 적극적이었다.

또,그의 표정에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그런 그와 마주하고 있으니,당연 하다는 듯이 예전 생각이 났다.

“선배님, 저 한 번만 믿고 도와주 십시오. 지금 제가 도와달라고 부탁 드릴 사람이 선배님밖에 없습니다.” 예전의 이규한도 무척 절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김태훈을 찾 아가서 간곡히 부탁했다. 그리고 김 태훈은 재기를 꿈꾸던 이규한을 마 지막까지 믿어 주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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