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지금껏 한 번도 ‘사초 살인 사건’ 의 판권이 팔릴 거라고 예상하지 않 아서 일까.
홍달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한 참을 머뭇거렸다.
그로 인해 이규한이 답답함을 느낄 때쯤,흥달수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 다.
“천만 원이면 적정가일 것 같습니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쓰게 웃 었다.
소설책의 판권 가격은 천차만별이 었다.
소설책이 베스트셀러였느냐 여부가 일단 판권의 가격에 큰 영향을 미쳤 고,소설책의 판권을 사기 위해 경 쟁이 붙었는가 여부도 판권의 가격 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사초 살인 사 건’의 판권 가격은 높을 이유가 없 었다.
‘사초 살인 사건’은 베스트셀러 순 위에 오른 적도 없었고,영상화 판
권을 구입하기 위해서 경쟁이 붙은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한이 쓰게 웃은 이유.
흥달수가 부른 판권 가격이 너무 쌌기 때문이었다.
‘최소 이천만 원!’
‘사초 살인 사건’의 판권을 구입하 기로 결심한 이규한은 판권의 가격 을 이천만 원부터 홍정할 생각을 갖 고 찾아왔다.
그런데 최소로 생각했던 금액의 절 반 가격에 ‘사초 살인 사건’의 판권 을 구입할 기회가 찾아와 있는 셈이 었다.
이규한의 입장에서는 최상의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한은 바로 흥달수의 제안을 수락하지 못했다. “왜 천만 원에 ‘사초 살인 사건’의 판권을 파실 생각을 하신 겁니까?” 이규한이 질문하자,홍달수의 동공 이 흔들렸다.
“그게……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십니까?”
“ ……?"
“그럼 팔백으로 할까요?”
슬그머니 판권의 가격을 이백만 원 내리고 있는 홍달수를 확인한 이규 한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홍달수는 이규한이 ‘사초 살인 사 건’의 판권 가격으로 천만 원을 책 정한 것이 너무 비싸서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 었다.
더 얘기해 봐야 입만 아플 거라고 판단한 이규한이 물었다.
“윤규진 작가도 제가 ‘사초 살인 사건’의 판권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 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네,제가 알려 줬습니다.”
“그럼 윤규진 작가가 원하는 건 어 느 쪽인가요?” “어느… 쪽이냐니요?”
“판권 계약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 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방식은 일 정 금액의 돈만 받고 작품의 판권을 넘기는 것이고,두 번째 방식은 홋 날 영화가 개봉했을 때 흥행 수익에 따라서 계약 시에 정한 비율로 추후 정산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말씀드렸던 두 번째 방식으로 판권 계약을 맺을 경우 첫 번째 방식에 비해서는 판권을 구매하는 대가로 지급하는 초기 금액이 조금 줄어들 겁니다.”
이규한이 두 가지 판권 계약 방식 에 대해서 설명을 마치자,흥달수가 이번에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 답했다.
“아직 정확한 의사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윤규진 작가는 분명히 전 자 쪽을 원하고 있을 겁니다.”
“왜 그렇게 판단하신 겁니까?”
“아까 말씀드렸듯이 ‘사초 살인 사 건’의 판매량이 형편없었습니다. 그 로 인해 지금까지 차기작을 못 내고 있으니,윤규진 작가 역시 생활고를 겪고 있을 겁니다. 분명히 조금이라 도 돈을 많이 받는 쪽을 원할 겁니 다.”
“대표님도 마찬가지 생각이십니 까?” “그렇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건 윤규진 작가만이 아니었다.
단풍나무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홍달수 역시 장사수완이 꽝인 만큼, 출판사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이유가 하나 더 있으시죠?”
“네?”
“후자 방식의 판권 계약이 아니라, 전자 방식의 판권 계약을 원하시는 이유가 하나 더 있으신 것 아닙니 까?” 이규한의 질문이 날카로워서일까.
흥달수가 흠칫하며 수긍했다.
“네,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판권을 산 ‘사초 살인 사건’ 이 영화로 제작돼서 개봉할 확률이 무척 낮다고 판단하신 것,맞습니 까?”
“맞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제작을 마치고 개봉한다 하더라도 흥행에 성공할지 여부도 불확실하니까요.”
과연 받을 수 있을지 여부도 확실 하지 않은 러닝개런티 계약을 맺느 니, 차라리 확실히 받을 수 있는 돈 을 최대한 챙기겠다.
이게 홍달수 대표와 윤규진 작가가
공통으로 가진 생각이었다.
‘이것까지도 똑같네!’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단풍나무 출판사의 홍달수 대표의 장사수완이 형편없는 것도,그들이 후자가 아닌 전자 방식의 판권 계약 을 맺으려고 하는 것도 예전과 다르 지 않았다.
그렇지만 흥달수가 한 가지 간과하 고 있는 게 있었다.
바로 예전에 판권 계약을 맺을 당 시의 이규한과 지금 판권 계약을 맺 기 위해 찾아온 이규한의 위상이 달 라졌다는 점이었다.
‘영화가 개봉하고 흥행에 성공할 확률이 높은데.’
이규한이 홍달수를 안쓰럽게 바라 보았다.
그때 후회한다 한들 너무 늦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이규한이 말했다.
“분명히 ‘사초 살인 사건’은 개봉 할 겁니다.”
“네?”
“아마 흥행도 할겁니다.”
“네,저도 그러길 바라겠습니다.” 흥달수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 반응을 통해서 흥달수가 ‘사초 살인 사건’이 확실히 개봉을 할뿐더 러 흥행에도 성공할 것이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규한 은 간파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
“괜찮습니다.”
홍달수가 변명하려는 것을 이규한 이 제지했다.
‘여기까지!’
목마른 자를 물가까지 끌고 갈 수 는 있었다. 그렇지만 그 물을 마시 는가 여부는 결국 목마른 자가 결정
한 문제였다.
이규한이 홍달수를 가만히 응시했 다.
예전의 이규한은 팔백만 원에 ‘사 초 살인 사건’의 판권을 구입했었 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내리 기로 결심을 굳히고 이규한이 입을 뗐다.
“이렇게 하시죠.”
“어떻게 말입니까?”
“이천만 원에 ‘사초 살인 사건’의 판권을 구매하겠습니다.”
“방금… 얼마라고 하셨습니까?” 흥달수가 연신 눈을 깜박이며 다시 물었다.
“이천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이규한이 재차 알려 주고 난 후에 야 홍달수는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 다는 것을 확신한 모양새였다.
그런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네?”
“왜 판권 가격으로 그렇게 높은 금 액을 제시한 겁니까?”
흥달수가 판권을 판매하는 조건으 로 처음 제시했던 금액은 일천만 원.
그런 그는 판권의 가격을 팔백만 원까지 내리며 흥정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규한이 돌연 이천만 원에 ‘사초 살인 사건’의 판권을 구입하 겠다는 의사를 밝히자,당황한 것이 었다.
“단,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입니까?”
“영화 판권뿐만 아니라 다른 부가 판권도 모두 넘겨주십시오.”
“다른 부가 판권이라면……?”
“일단 영상화 판권이 있겠죠. 쉽게 말해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포 함한 다양한 방식의 영상으로 제작 되는 경우의 판권을 모두 블루문 엔 터테인먼트가 가지겠습니다. 또, 공 연 판권도 함께 넘겨주십시오. 연극 이나 뮤지컬 등으로 제작될 경우의 판권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규한이 설명을 마친 순간,흥달 수가 물었다.
“그건 왜 가져가려는 겁니까?”
“사람 일은 모르니까요.”
“ 9”
“만약 ‘사초 살인 사건’이 개봉해 서 흥행에 성공하고 나면,드라마나 뮤지컬로 제작이 될 수도 있다고 판 단하기 때문입니다.”
OSMU.
최근 들어 빈번하게 등장하는 용어 였다.
One Source Multi Use의 줄임말 로 하나의 원천스토리가 영화와 드 라마,연극,뮤지컬 등 여러 방식의 매체로 확장되는 것을 뜻하는 용어 였다.
물론 이규한은 어디까지나 영화 제 작자였다.
드라마나 연극,뮤지컬을 제작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초 살인 사 건’의 영상화 판권과 공연 판권을 모두 갖고 있으려는 이유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까 홍달수에게 설명했듯이 ‘사초 살인 사건’이 개봉을 하고 난 후, 흥행에도 성공하게 된다면?
‘사초 살인 사건’을 드라마 혹은 뮤지컬로 제작하려는 움직임이 생길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했다.
그때는 ‘사초 살인 사건’의 영상화 판권과 공연 판권을 모두 가지고 있 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 대가를 지불하고 판권 사용 허락을 받아야 했다.
즉,이규한 입장에서는 부가 수익 을 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시죠.”
그때 흥달수가 대답했다. 그리고 흥달수가 오래 망설이지 않고 대답 한 이유는 이규한이 바라던 대로 상 황이 흘러가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 기 때문이었다.
“그럼 판권 계약을 진행하시죠.”
이규한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백 팩에서 미리 준비해 온 판권 계약서 를 꺼냈다.
샤사삭.
이규한이 먼저 계약서에 서명을 마 쳤다.
“여기에 서명을 하시면 됩니다.” 이규한이 설명하자,홍달수는 서둘 러 펜을 들었다.
그런 흥달수의 표정에는 조급함이 묻어났다.
행여나 이규한의 마음이 바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샤사삭.
흥달수가 서명을 마치며 물었다.
“이제 끝난 겁니까?”
“네,끝났습니다.”
“저기… 입금은 언제쯤 가능할까 요?”
사정이 많이 급한 걸까.
홍달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바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바로요?”
“네.”
흥달수의 표정에 화색이 떠오른 순 간,이규한의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장사수완이 형편없는 게 다가 아 냐!’
물론 홍달수의 장사수완이 형편없 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 다.
그렇지만 다른 원인도 있었다.
아직 판권 시장이 확실하게 정립되 지 않은 것도 무척 싼 가격에 ‘사초 살인 사건’의 판권을 구입할 수 있 었던 요인이었다.
‘판권을 미리 사 두는 게 좋지 않 을까?’
이규한이 알고 있는 미래에는 판권 시장이 무척 커졌다.
소설 혹은 웹툰을 원작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되는 경우가 부지기수 로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즉,OSMU 시장이 커지는 것이었 다.
‘문제는 판권을 구입할 자금인데!’ 이것도 해결이 어렵지 않았다.
‘수상한 여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 한 상황.
정산이 끝나고 정산금이 입금되면, 여러 소설이나 웹툰들의 판권을 구 입할 수 있는 자금의 여유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음 수순은 각색 작가를 구하는 거구나!’
‘사초 살인 사건’의 판권 계약을
마친 상황.
다음으로 소설을 시나리오로 바꿀 각색 작가를 구해야 했다.
‘이전에 각색을 맡겼던 게 최민훈 작가였지!’
최민훈 작가는 사극 영화의 시나리 오를 두 편 쓴 작가였다.
또,개봉했던 여러 편의 영화에 각 색 작가로 참여했던 기성 작가였다.
그래서 이규한은 사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지급하고 최민훈 작가에서 ‘사초 살인 사건’의 각색을 맡겼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최민훈 작가에 게 각색 작업을 맡길 생각이 없었 각색료를 아끼기 위함이 아니었다.
당시 최민훈 작가가 각색했던 결과 물인 시나리오가 이규한의 마음에 들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돈값을 못 했어.’
이규한이 미간에 찌푸린 채 고민했 다.
‘누가 적임자일까?’
바로 떠오르는 작가가 없었다. 그 래서 이규한의 고민이 깊어졌을 때 였다.
지이잉. 지이잉.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발신자가 안유천임을 확인한 이규 한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날 잊지 말라고 어필이라도 하는 건가?’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