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화
모 아니면 도 (2) 극장 내부가 크게 술렁인 이유. 김수한이 카메오로 등장했기 때문 이었다.
“김수한이다!”
“진짜 김수한,맞아?”
“내가 제대로 본 것 맞지?”
“헐,대박!”
전혀 예상치 못했던 김수한의 등장
에 관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 다. 그리고 그의 깜짝 등장에 놀라 는 한편,무척 반가워했다.
‘내 판단대로 됐네!’
만약 다른 배우였다면?
이렇게까지 관객들이 놀라면서 반 가워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때,옆좌석에 앉아 있던 이규리 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김수한,맞아?”
“보고도 몰라?”
“그런데… 김수한이 저기서 왜 나 와?” 이규한이 대답했다.
내가 불렀으니까.” “끄응!”
이규한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과음을 한 탓에 머리가 아팠다.
눈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생수 를 꺼내 마시기 위해서 냉장고를 향 해 걸어가던 이규한이 뭔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뭐야?’
바닥에 넘어졌던 이규한이 서둘러 눈을 뜨고 살폈다.
그제야 바닥에 널브러져 자고 있는 최호인의 모습이 보였다.
“이 자식이 왜 내 집에… 아,내 집이 아니구나.”
드르렁. 드르렁.
코까지 골며 곤히 잠들어 있는 최 호인을 발견하고 나서야,이규한은 자신의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 았다.
“본가에서 마셨지.”
이규한이 기억을 떠올리는 데 성공 했다.
“집으로 와서 밥 먹고 가.”
아버지는 불쑥 전화해서 집으로 초 대했다.
영화값 대신이라는 말을 덧붙인 탓 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어머니가 만든 집 밥을 먹었고,자연스레 술자리로 이 어졌다. 그리고 아버지의 술은 여전 히 셌다.
“필름이 끊겼네!”
최호인은 아버지의 술 상대를 하다 가 일찌감치 나가떨어졌고,이규한 도 마지막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 로 취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네가 만든 영화 볼 만했다.”
이규한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 은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었다.
“늦었네!”
그 말을 떠올리고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던 이규한이 이미 아흡 시가 넘은 시간을 확인하고 서두르기 시 작했다.
평소였다면 느긋하게 출근해도 상
관없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바로 ‘수상한 여자’가 개봉하는 날 이었기 때문이었다.
“밥은 다음에 먹을게요.”
빨리 가서 영화의 반응을 체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규한의 마음은 조 급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식탁에 차 려놓은 밥도 먹지 못한 채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사무실 앞 에 도착한 이규한이 당황했다.
사무실 문이 잠겨 있었기 때문이었 다.
‘왜 아직 출근 안 했지?” 사무실 문이 잠겨 있다는 것.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유일한 직 원인 김미주가 아직 출근하지 않았 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단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는 성실함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김미주가 아직 까지 출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규한을 당혹스럽게 만든 이유였다.
“어디 아픈가?”
김미주가 걱정된 이규한이 그녀에 게 전화를 걸기 위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막 통화버튼을 눌렀 을 때였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요란한 벨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그리고 벨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잠시 후, 김미주가 계단을 올라오 는 것을 발견한 이규한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미주 씨,지금 출근하는 거야?”
“네.”
“지각한 주제에 너무 당당하게 대 꾸하는 것 아냐?”
이규한이 탓했지만,김미주는 여전 히 당당했다.
그런 그녀가 한심하다는 둣이 바라 보며 물었다.
“설마 기억 안 나세요?” “무슨 기억?”
“어제 저랑 통화했던 거요.”
“내가 미주 씨랑 통화를 했다고?”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이규한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김미주가 덧붙였다.
“내일 오전에 반차 쓰겠다고 말씀 드리려고 전화했고,대표님께서 그 렇게 하라고 대답했었는데.”
“내가… 그랬어?”
“진짜 기억 안 나세요?”
“내가 술이 과했네. 그리고 아까 했던 말은 사과할게.”
이규한이 사과했다.
김미주는 당당할 자격이 있었다. 지각한 것이 아니라 반차를 썼던 것이니까.
“그런데 왜 반차를 쓴 거야?”
잠시 후,이규한이 묻자,김미주가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반차를 쓰려는 이유에 대해서도 어제 설명했거든요.”
“그랬어?”
“그것도 기억 안 나나 보네요.”
이규한이 멋쩍은 표정으로 재차 머 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김미주가 반차를 쓴 이유를 알려 주었다.
“영화 보고 왔어요.”
“무슨 영화를 보고 왔는데?”
“뭘 봤을 것 같아요?”
“당연히 ‘수상한 여자’겠지.”
“아닌데요.”
“아니라고? 그럼 뭘 봤는데?”
“‘광안리’요.”
김미주는 엄연히 블루문 엔터테인 먼트의 직원이었다. 그런데 개봉일 에 ‘수상한 여자’가 아니라 ‘광안리’ 를 보고 왔다고 대답한 순간,이규 한은 지독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 서 이규한이 물었다.
“왜 ‘수상한 여자’가 아니라 ‘광안 리’를 본 거야?”
“인센티브 때문이죠.”
김미주는 여전히 당당하게 대꾸했 다.
“제작사 수익의 1%를 받기로 한 내 인센티브가 대체 얼마나 나올까 를 가늠하기 위해서 ‘광안리’를 보 고 온 거에요.”
“경쟁작인 ‘광안리’의 완성도에 따 라서 미주 씨의 인센티브 액수가 달 라진다?” “맞아요.”
김미주의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인센티브를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게 됐어?”
“국내 여행 말고 해외여행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김미주에게서 대답이 돌아온 순간, 이규한이 두 눈을 빛내며 다시 물었 다.
“아시아?”
김미주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유럽 여행도 가능할 것 같은데 요.” ‘제작사 지분의 1%인 인센티브를 받아서 유럽 여행을 떠나는 것이 가 능할 정도이다?’
이규한의 표정이 밝아졌다.
김미주는 기획 피디 역할을 맡아도 될 정도로 영화를 보는 눈이 정확한 편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런 평가를 내렸다는 것은 오늘 개봉한 ‘광안리’의 완성 도가 형편없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신중하기 위해 애썼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 김미주는 엄연히 블루문 엔터테인 먼트의 직원.
그래서 ‘수상한 여자’의 경쟁작인 ‘광안리’에 더 혹독한 평가를 내렸 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이규한이 컴 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포털 사 이트로 접속한 뒤,우선 ‘수상한 여 자’를 검색했다.
- 네티즌 평점: 7.14
‘수상한 여자’의 현재 평점은 m점 만점에 7점대 초반을 기록하고 있었 다.
내심 기대했던 것보다는 낮은 평 점.
그래서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던 이 규한이 관람평을 확인했다.
- 연출,연기,스토리까지, 삼박자 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최고의 작품.
- 웃다가 울다가,마지막에는 깜짝 놀라고 나왔다. 당신이 무엇을 기대 했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 ‘과속 삼대 스캔들’ 제작진이 뭉 쳐서 ‘과속 삼대 스캔들’보다 더 유
쾌하고 감동적인 영화를 만들었음.
- 올해 최고의 반전 영화임. 감히 장담하자면 ‘식스센스’급 반전임. 궁 금한 사람은 영화관으로 고고.
이규한이 확인한 ‘수상한 여자’의 관람평.
7점대 초반의 낮은 평점이 의아하 게 느껴질 정도로 호평 일색이었다.
‘일단 작품에 대한 반응은 나쁘지 않다.’
어느 정도 안도한 이규한이 다음으 로 ‘광안리’를 검색했다.
- 네티즌 평점: 9.48
우선 평점부터 확인했던 이규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광안리’가 10점 만점에 9점대 중 반의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상한 여자’와 비교하더라도 2점 이상 높은 평점이었다.
그리고 ‘광안리’의 관람평도 무척 좋았다.
- 드디어 한국에도 제대로 된 SF 장르 작품이 나왔음.
- 완벽한 CG에 감동적인 스토리 라인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 할리우드 재난 영화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음.
- 무조건 극장 가서 봐라. 두 번 봐라. 후회는 없다.
‘역시 팔이 안으로 굽었던 건가?’
포털사이트에서 ‘광안리’의 평점과 관객들이 남긴 관람평을 확인한 이 규한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이었 다.
그때 였다.
언제 다가왔을까.
바로 옆에 서서 컴퓨터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는 김미주의 존재를 뒤 늦게 알아첸 이규한이 깜짝 놀라며 입을 뗐다.
“미주 씨 눈을 의심하지 않기에는 ‘광안리’의 평점이 너무 높은데?”
“평점이 높은 데는 이유가 있어 요.”
“무슨 이유가 있다는 거야?”
“알바를 풀었을 거예요.”
“알바?”
“그리고 ‘수상한 여자’의 평점이
낮은 것도 같은 이유일 거예요.”
“무슨 뜻이야?”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푼 알바 들이 평점 테러를 했기 때문이죠.” 김미주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언 했다.
‘진짜 그런 이유 때문이었으면 좋 겠다!’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했을 때,김 미주가 다시 말했다.
“두고 보세요. 머잖아 평점이 뒤집 힐 테니까.”
“정말 그렇게 될까?”
이규한이 물은 순간,김미주가 대
“알바는 분노한 영화팬을 이길 수 없는 법이거든요.” 개봉 첫날.
영화 ‘광안리’는 예상대로 박스오 피스 1위에 올랐다.
첫날 관객수는 64만.
같은 날 개봉한 유일한 경쟁작인 ‘수상한 여자’와의 격차를 두 배 가 까이 벌리면서 압승을 거두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빈 대가지.”
내심 원하고 있던 만족스런 성적표 를 받아 든 김기현이 환하게 웃었 다. 그렇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개봉 2일차에 접어들며 벌써 이상 기류가 감지됐다.
28만 대 26만.
‘광안리’는 개봉 2일차에도 여전히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그렇지만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는 ‘수상한 여자’와의 격차는 눈에 띄게 줄어들 었다.
고작 2만 명 차이로 간신히 1위를 차지한 것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상영관의 수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음에도 이런 결과가 도출됐다는 점이었다.
‘좌석 점유율에서 밀린다!’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기현 은 포털사이트로 들어가서 ‘광안리’ 를 검색한 후,잔뜩 미간을 찌푸렸 다.
- 네티즌 평점: 5.11
개봉 첫날,‘광안리’의 평점은 9점 대로 출발했다. 그러나 개봉 2일째 가 되자,‘광안리’의 평점은 5점대
초반으로 추락했다.
거의 반 토막이 난 셈이었다.
그리고 평점만 추락한 것이 아니었 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이 작성한 관 람평도 악평 일색이었다.
- 이 엉성한 CG는 내 눈을 썩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내 아까운 돈과 시간을 모두 날 렸다. 두 번 보라고 했던 놈,그리 고 영화 보고 후회 없다고 말했던 놈,잡히면 내 손에 뒤진다.
- 이거 왜 이렇게 평점이 높음?
알바 풀었음?
- 내가 두 번 다시 한국 영화 보 면 성을 간다.
- 한겨울에 한여름 배경의 영화를 개봉한 것부터 글러먹었음. 실력도 없으면서 근자감 찐다. 쩔어.
관람평을 확인하던 김기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