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화
모 아니면 도 ⑴ 극장가 겨울 성수기.
국내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은 극장 가 성수기 시장을 노리고 각각 작품 을 준비했다. 그래서 항상 극장가 성수기에는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 간의 치열한 각축전이 펼쳐졌다. 그 리고 이번 겨울 극장가 성수기에 가 장 주목받는 작품은 단연 ‘광안리’ 였다.
- 한국형 재난 SF 블록버스터의 시작.
‘광안리’가 내세운 홍보 카피였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재난 SF 블 록버스터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 다는 점.
게다가 국내 최대 투자 배급사인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전폭적인 지 원을 받으며 순제작비만 백억이 넘 어가는 대작이라는 점으로 인해 ‘광 안리’는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래서일까.
올 겨울 최고의 기대작이라고 평가 받는 ‘광안리’는 흥행에 대한 자신 감을 드러내며 일찌감치 개봉일을 결정했다. 그리고 ‘광안리’가 일찌감 치 개봉일을 결정한 것은 다른 작품 들의 개봉 시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단 ‘광안리’를 피해서 개봉하 자.” 이런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었 다.
빅 박스와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겨울 극장
가 성수기 시장을 노리고 준비했던 작품들의 개봉을 뒤로 미루었다. 그렇지만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의 선택은 달랐다.
‘수상한 여자’의 개봉일을 ‘광안리’ 의 개봉일과 같은 날로 결정했다.
모든 영화 관계자들의 예상을 빗나 가게 만든 결정.
그 결정으로 인해 ‘광안리’와 ‘수상 한 여자’의 정면 대결이 성사됐다.
■권 팀장,고마워.
이규한이 권지영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수상한 여자’의 개봉일을 ‘광안리’ 와 같은 날로 잡고 싶다고 부탁한 것은 이규한이었다. 그리고 권지영 은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윗선의 숱 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규한의 뜻대 로 개봉일을 밀어붙였다.
“한번 믿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믿 어 보는 겁니다.”
“두렵지 않아?”
“까짓것 일이 잘못되더라도 잘리기 밖에 더 하겠어요?”
권지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둣 대꾸 달달달.
그렇지만 이규한은 아이스커피를 들어 올리는 그녀의 손이 심하게 떨 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쓰게 웃으 며 입을 뗐다.
“겁나네.”
“뭐, 조금은요.”
“이렇게 겁을 내면서 왜 정면 대결 을 선택한 거야?”
“이 대표님과 같은 이유죠. 일전에 제가 드렸던 말씀,기억 안 나세 요?”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 거야?”
“왜 그러셨어요? 좀 참았으면 좋았 을걸. 여기까지는 로터스 엔터테인 먼트 투자팀장으로서 드린 말씀이었 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 권지영이 아 닌 개인 권지영 자격으로 드리는 말 씀입니다. 잘하셨어요. 저도 아버지 잘 둔 덕에 잘난 척 거들먹거리는 김기현 대표가 줄곧 마음에 안 들었 거든요.”
" ……?"
“이 대표님이 대형사고 쳤다고 제 게 고백했던 날,제가 드렸던 대답 이잖아요. 아직도 기억 안 나세요?” 물론 기억이 났다.
당시에 권지영에게서 돌아왔던 반 응.
이규한의 예상과 많이 달랐기 때문 이었다.
무척 뜻밖의 반응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권 팀장도 나 못지않게 용감하 네.”
이규한이 픽 웃으며 말한 순간, 권 지영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욕하신 거죠?”
“내가 언제 욕을 했다는 거야?” “저한테 무식하다고 욕하신 거잖아 요?”
“응?”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니까요.”
“그런 뜻이 아니라……
“젊은 혈기만으로 이런 용감한 결 정을 내렸던 것은 아니랍니다. 제가 ‘수상한 여자’와 ‘광안리’의 정면 대 결을 밀어붙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답니다.”
“어떤 이유가 있는데?”
“소문을 들었어요.”
권지영에게서 대답이 돌아온 순간, 이규한이 흥미를 느꼈다.
“무슨 소문?”
“‘광안리’ 제작을 맡은 김기현 대 표와 연출을 맡은 최신현 감독이 한 판 제대로 붙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 거든요.”
금시초문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서둘러 물었다.
“두 사람이 싸웠다고? 왜 싸웠는 데?”
“개봉 시기를 놓고 이견이 있었대 요.”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이규한의 재촉을 받은 권지영이 설 명을 시작했다.
“최신현 감독은 ‘광안리’의 개봉을 미루길 바랐다고 해요.”
“얼마나?”
“겨울이 아닌 내년 여름 시즌에 개 봉하길 바랐어요. 그런데 김기현 대 표는 무조건 올 겨울에 개봉해야 한 다고 고집을 꺾지 않으면서 일방적 으로 밀어붙였대요.”
“혹시 최신현 감독이 개봉을 내년 여름으로 미루려고 했던 이유도 알 고 있어?”
“CG 때문이래요.”
“컴퓨터 그래픽?”
“네,최신현 감독은 CG의 완성도 를 높여야 한다는 이유로 ‘광안리’ 의 개봉일을 반년 정도 미루자고 주 장했지만,김기현 대표가 무시한 거
죠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그래. CG가 있었구나!’
권지영의 이야기를 듣던 도중, CG 가 커다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사 실을 뒤늦게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이규한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광 안리’의 개봉 시기는 2013년.
그리고 ‘광안리’가 천만 관객을 동 원한 흥행작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빼어난 CG였다.
-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게 CG의 완성도가 높다.
당시 ‘광안리’의 CG에 대한 평가 였다.
기존의 한국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완성도 높은 CG가 관객들 의 입소문을 탔던 것이었다.
물론 할리우드 작품들과 비교하자 면 ‘광안리’의 CG는 허술한 편이었 다. 그러나 국내 CG 기술이 많이 발전했다는 점을 관객들은 높이 평 가했다.
하지만 지금 개봉을 앞두고 있는 ‘광안리’는 또 달랐다.
개봉 시기가 2013년이 아니라 2011년이라는 점.
개봉을 너무 서두른 탓에 CG 작 업에 충분히 공을 들이지 못했을 가 능성이 컸다.
그리고 하나 더.
2011년과 2013년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 다.
당연히 CG의 완성도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신현 감독은 ’광안리‘의 개봉을 미루고 CG 작업의 완성도 를 높이려고 했지만,김기현은 그냥 밀어붙이려고 했던 거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이규 한의 표정이 밝아졌다.
홍보 카피에서도 알 수 있듯 ‘광안 리’는 한국형 재난 SF 블록버스터를 표방했다.
즉,‘광안리’의 장르는 SF였다. 그 리고 SF 장르의 영화에서 가장 중 요한 것은 CG의 완성도였다.
물론 스토리도 중요하긴 했지만, CG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SF 장르 의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 다.
앙꼬 빠진 찐빵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광안리’는 위험할 수도 있겠네.”
이규한이 운을 땐 순간,권지영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쉬쉬하고는 있지만,씨제스 엔터 테인먼트 내부에서도 불안감이 높아 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모 아니면 도라고 판단하고 정면 대결을 밀어붙였죠.”
“모 아니면 도라니?”
“마땅한 경쟁작들이 없는 상황이니 까,‘광안리’만 제칠 수 있다면,‘수 상한 여자’는 한동안 적수가 없으니 권지영의 설명을 들은 이규한이 천 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광안리’가 장기 흥행할 거라고 예 상한 투자 배급사와 제작사들이 일 찌감치 경쟁 작품들의 개봉 시기를 뒤로 미룬 상황이었다.
만약 정면 대결에서 ‘수상한 여자’ 가 ‘광안리’에 압승을 거둘 수 있다 면?
뚜렷한 경쟁작들이 없는 만큼 ‘수 상한 여자’는 꽤 오랫동안 박스오피 스 독주 체제를 굳힐 수 있었다.
‘진짜 모 아니면 도인 상황이네.’ 이규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처 이규한도 놓치고 지나갔던 부 부
그렇지만 권지영은 그 부분을 놓치 지 않고 과감한 승부수를 띄운 셈이 었다.
‘괜히 젊은 나이에 로터스 엔터테 인먼트 투자팀장이 된 게 아냐.’
그래서 이규한이 새삼스런 시선을 던지고 있을 때,권지영이 덧붙였다. “모가 나오길 바라야죠.”
로터스 극장 강남점.
‘수상한 여자’의 VIP 시사회가 열 리는 장소였다.
이규한이 일찌감치 도착해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권지영 이 앞으로 다가왔다.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한숨도 못 잤거든.”
“왜요? 떨리세요?”
그녀의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대답 했다.
“응,떨려. 그것도 많이.”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서 제작한 영화의 첫 선을 보이는
당연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규한이 무척 긴장하고 있 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오늘 시사회에 처음으로 부모님을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자신 있다!’
부모님에게 보여 드리기에 자신이 제작한 작품인 ‘수상한 여자’가 부 끄럼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이규한은 시사회에 두 분을 초대한 것이었다.
이규한이 극장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형님,축하드립니다.”
이규리와 함께 등장한 최호인이 인 사를 건넸다.
“고맙다. 그리고 고생했다.”
이규한을 대신해서 부모님을 모시 고 온 것이 최호인이었다.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이규한이 부 모님의 앞으로 다가갔다.
(‘과속 삼대 스캔들’ 제작진이 다시 뭉쳤다.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을 웃 음과 감동,눈물을 선사할 ‘수상한 여자’가 나타났다.)
영화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니가 물었다.
“이게 우리 아들이 만든 영화야?”
“네,제가 제작한 영화입니다.”
“고생 많았지?”
“아니요.”
“아니긴. 그동안 고생을 얼마나 했 으면 얼굴이 까칠하네.”
“정말 괜찮습니다.”
어머니와 짤막한 대화를 나눈 후, 이규한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영화를 제작한다는 말만 하고,제 가 제작한 영화를 직접 보여 드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너무 늦어 져서 죄송합니다.”
“니가 만든 영화, 재밌나?”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까 확신하 기는 어렵지만,아마 재밌을 겁니 다.”
“만약에 재미없으면 중간에 나가서 집에 가 버릴 거다.”
엄포를 늘어놓던 아버지가 작은 목 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쨌든 고생했다.”
그 말을 듣고 환하게 웃던 이규한 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좌석으로 부 모님과 여동생,그리고 최호인을 안
얼마 지나지 않아 시사회가 시작됐 다.
정작 영화가 시작됐지만,이규한은 제대로 영화의 내용에 집중하지 못 했다.
부모님과 시사회장을 찾아온 손님 들의 반응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 다.
까르르.
하하.
다행인 점은 중간중간 객석에서 시 원한 웃음이 터졌다는 점이었다.
그사이에도 시간은 흘렀고,영화는 ‘아주 재미없지는 않은 모양이네!’
아까 재미가 없으면 영화를 보는 도중에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 버리 겠다고 엄포를 늘어놓았던 아버지는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흑흑!”
그런 이규한의 눈에 어머니가 우시 는 모습이 들어왔다.
우연한 기회에 젊음을 되찾았지만, 자식과 손자를 위해서 젊음을 포기 하기로 결심하는 심인경.
그런 그녀가 어머니임을 알아챈 자 식이 그러지 말라고,이제부터라도
행복하게 살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 어머니의 눈물샘이 터진 것이었다.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꽤 많은 관객들이 이 장면에서 눈 물을 홀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영화의 에필로 그 장면이 시작됐다. 그리고 잠시 후,극장 내부가 크게 술렁였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