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77화 (77/272)

77화

카메오 김수한 ‘이미 구상이 다 끝났어!’

원래 이렇게 얘기하려 했던 이규한 이 도중에 마음을 바꾸었다.

장준경은 대학을 다닐 때부터 감각 이 남달랐던 편이었다.

특히 보통 사람들이 놓치고 지나가 기 쉬운 부분을 캐치해서 극의 흥미 를 더하는 감각이 탁월했다.

그래서 이규한이 ‘수상한 여자’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 설명을 모두 들은 장준경이 두 눈을 감았다.

이규한의 설명을 토대로 머릿속으 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후, 장준경이 감았던 눈을 뜨 며 말했다.

“남자 배우는 누구로 생각하고 있 어?”

“남자 주인공으로는 임인권을 캐스 팅했어.”

이규한이 대답했지만,장준경은 원 하던 대답이 아닌 둣 고개를 흔들었 “내가 물은 건 여주인공을 어린 시 절부터 짝사랑했던 남자 배우를 말 하는 거야.”

장준경이 던진 질문을 들은 이규한 이 새삼스런 시선을 던졌다.

그가 던진 질문이 예상과 한참 달 랐기 때문이었다.

“윤제춘 선배님을 캐스팅했어.”

이규한이 대답을 꺼내자,장준경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캐스팅 잘했네. 윤제춘 선배님이 하면 딱 어울릴 것 같아. 그런데 조 금 아쉬운 부분이 존재하긴 해.” “어떤 부분이 아쉬운데?”

“역지사지.”

역지사지 (易地思之).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한다는 뜻 의 사자성어였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장준경이 뜬금 없이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를 꺼낸 이유를 간파하기 어려웠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봐.”

그래서 이규한이 호기심을 느끼며 묻자, 장준경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 답했다.

“대단한 건 아닌데 문득 그런 생각 이 들었어. 윤제춘 선배님은 조금 억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 야.”

“왜 억울하다는 거야?”

“평생 짝사랑만 하다가 끝난 거잖 아.” “저기 태출이처럼 말이야.”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 연신 술잔을 들어 올리고 있는 양태출을 힐끗 살핀 장준경이 웃으며 제안했 다.

“윤제춘 선배님도 한번 젊어지게 만들면 어때?”

‘윤제춘 선배님을 젊어지게 만들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꽤 재밌는 생각이라고 판 단했을 때,장준경이 덧붙였다.

“꽃미남이 되면 재밌지 않을까?” ‘꽤 재미있는 생각인데.’

장준경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이 규한이 처음 했던 생각이었다.

‘기발한 생각인데.’

그 생각이 다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윤제춘 선배님이 젊은 시절에 임 동완처럼 잘생긴 젊은 배우라면 관 객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규한의 생각이 바뀐 계기는 장준 경이 덧붙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게 기발한 생각이라는 확신을 가진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술이 깨고 난 후에도 여전히 기발 한 아이디어라는 판단이 들었다는 것.

진짜 좋은 아이디어라는 뜻이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네.”

‘나성에 가거든’이란 곡을 삽입하 는 것을 끝으로 ‘수상한 여자’를 위 해 더 할 일이 남아 있지 않다고 판단했는데.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이규한이 결심을 굳히고 휴대전화 를 들었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회의 실.

“어떤가요?”

이규한이 강형진 감독과 권지영 팀 장에게 우선 의견을 구했다.

“재밌는 아이디어네요.”

“에필로그로 이 대표님이 말씀하신 부분을 넣는다면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웃 음도 줄 수 있을 것 같고요.”

다행히 강형진 감독과 권지영 팀장 도 호의적이었다.

그 호의적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 이 다시 입을 뗐다.

“그럼 남은 건 어떤 배우를 카메오 로 기용하는가에 대해 상의하는 거 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강형진 감독이 물 었다.

“혹시 대표님이 염두에 두고 있는 배우가 있습니까?”

“네,있습니다.”

“누구인가요?”

“김 수한입니다.”

이규한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 순 간,강형진 감독과 권지영 팀장이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하필이면 김수한인가요?” 이번에는 권지영 팀장이 질문했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남자 배우니 까요.”

이규한이 역시 망설이지 않고 대답 했다. 그리고 부연 설명을 더했다.

“비록 ‘수상한 여자’가 스릴러나 미스터리 장르의 영화는 아니지만, 이번 아이디어는 꽤 훌륭한 반전이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반전의 효 과가 가장 극대화되는 때는 관객들 의 예상 범위를 훌쩍 벗어나는 경우 입니다. 그래서 김수한을 카메오로 쓰려는 겁니다.”

이규한이 설명을 마치자,강형진 감독이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김수한이 카메오로 등장하겠 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관객들 의 허를 찌르겠다는 뜻이로군요.”

“정확합니다.”

“저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아니,좋습니다.”

강형진 감독은 김수한을 카메오로 쓰겠다는 이규한의 의견에 동조했 다. 그렇지만 권지영 팀장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또,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 였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알아챈 이규한 이 말했다.

“권 팀장,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 면 편하게 해 봐.”

“저도 큰 틀에서는 동의해요. 그런 데 두 가지가 마음에 걸려요.”

“마음에 걸리는 두 가지가 뭐지?”

“우선 김수한이 과연 카메오로 출 연하겠느냐는 거예요.”

그녀가 우려를 표한 데는 일리가 있었다.

아까도 말했둣이 김수한은 현재 가 장 인기 있는 남자 배우 중 한 명 이었다.

당연히 김수한을 캐스팅하기 위해 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

그런데 김수한이 뭐가 아쉬워서 ‘수상한 여자’에 카메오로 출연하겠 느냐?

권지영 팀장이 한 말에 숨은 의미 였다.

“할 거야.”

그러나 이규한은 확신에 찬 목소리 로 대답했다.

“그걸 이 대표님이 어떻게 확신하 세요?”

권지영이 반박한 순간, 이규한이 다시 대답했다.

“물어봤거든.” “내가 김수한 매니저와 친분이 좀 있거든. 그래서 김수한 매니저를 통 해서 ‘수상한 여자’에 카메오로 출 연할 생각이 있느냐? 이렇게 의향을 물어봤어.”

“언제요?”

“어제.”

“그래서요? 김수한이 정말 출연하 겠다는 의사를 밝혔어요?”

“응. 카메오로 출연하겠다고 했어.”

이규한이 대답했지만,권지영 팀장 은 여전히 불신 어린 시선을 던졌 다.

‘왜요?” 그리고 오히려 이유를 물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규한이 대답했다.

“나와 강형진 감독님 때문이지.”

“네?”

“권 팀장은 자주 봐서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나도,그리고 강형진 감 독님도 요새 무척 잘나가는 편이거든 ”

‘......?'

“일종의 보험이라고 표현하면 적당 하지 않을까?”

“보험… 이요?”

“사람 인생 모르는 거잖아. 그것도 배우들의 인생은 특히 흥망성쇠가 더 심하다는 것,권 팀장도 누구보 다 잘 알잖아? 지금이야 김수한이 톱스타이지만,출연한 작품 몇 편 망하고 나면 아무도 안 찾게 될 수 도 있어.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보 험을 들어 놓은 셈이지. 당신들이 필요할 때 내가 도움을 줬다. 그러 니 홋날 내가 어려워지면 당신들도 날 외면하면 안 된다. 김수한의 카 메오 수락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 다고 보면 돼.”

권지영 팀장이 비로소 납득한 표정 을 지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이규한이 물 었다.

“아까 두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고 했었지? 나머지 하나는 뭐야?”

“페이요. 김수한을 카메오로 쓰려 면 적잖은 페이를 지불해야 할 것 같은데요?”

“당연히 지불해야지.”

권지영이 진짜 우려하는 것이 무엇 인지는 충분히 짐작이 갔다.

제작비가 상승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었다.

“얼마를 생각하고 계세요?”

“한 장!”

“천만 원이요?”

그 정도면 괜찮다고 판단했기 때문 권지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 간,이규한이 고개를 흔들었다.

“천만 원 아닌데.”

“그럼요? 설마… 일억이요?”

“그 설마가 맞아.”

권지영이 입을 쩍 벌렸다.

김수한이 등장하는 것은 딱 한 씬.

비록 김수한이 톱스타이기는 하지 만,한 씬 촬영을 하는 것에 일억의 개런티를 지불하는 것은 너무 과하 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터였다.

그리고 놀란 것은 강형진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데요?”

강형진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 게,권지영도 거들었다.

“카메오로 출연하는 대가로 일억을 지불하는 것은 너무 많은 것 같아 요. 차라리 다른 배우를 쓰는 게 낫 지 않겠어요?”

“누구?”

“요새 신인들 중에도 잘생긴 배우 들 많잖아요. 신인급이라면 개런티 를 절감할 수 있어요. 어쩌면 노개 런티로 출연할 수도 있고요.”

권지영이 열변을 토해 냈지만,이 규한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까 내가 했던 얘기,벌써 잊었 어? 이 반전의 효과가 극대화되려면 단순히 잘생긴 배우로는 역부족이 야. 관객들의 예상 범위를 훌쩍 뛰 어넘는 톱스타가 등장해야만 반전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어. 그래서 김수한이 적임자라는 거지.”

이규한의 마음을 바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일까.

권지영 팀장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그래도 너무 많은데……

그 혼잣말을 들은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카메오로 한 씬을 출연하는 대가로 지급하는 출연료 1억.

권지영 팀장은 너무 과하다고 판단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의 생각은 달랐다.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은 결국 배우 의 이미지를 소모하는 것이었다.

특히 카메오로 등장했을 때 임팩트 가 강렬할수록 배우의 이미지 소모 는 더욱 컸다.

의도는 카메오 출연이었지만,결과 적으로는 배우가 그 작품에 출연했 다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경우도 허다 했기 때문이었다.

김수한은 톱스타.

영화 한 편에 출연하는 대가로 받 는 개런티는 최소 오억 수준이었다.

거기에 흥행에 따른 러닝개런티 계 약까지 맺는 것을 감안하면,영화 한 편에 출연하고 대략 십억 정도를 챙겨 가는 편이었다.

이번 카메오 출연으로 인해 김수한 의 이미지가 소모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그래서 일억의 개런티가 적당하다 고 이규한은 판단한 것이었다.

물론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권지영 팀장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이규한과 권지영 팀장은 처한 입장 이 달랐고,그래서 의견도 다른 것 이었으니까.

“답정너,아닌가요?”

답정 너.

답은 정해져 있고,너는 대답만 하 면 돼,라는 표현의 줄임말이었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군!’

여전히 마뜩찮은 기색인 권지영 팀 장을 확인한 이규한이 입을 뗐다.

“권 팀장,내 말 아직 안 끝났다.” “또 뭐가 더 남았어요?”

“그래. 김수한이 천만 원만 받고 출연하겠다더 라고.” “일억을 제시했는데,김수한 측에 서 천만 원만 받겠다더군.”

“왜요?”

“보험을 드는 입장인데 일억을 받 는 건 너무 과하다고 판단했나 보 지. 그리고 배우 이미지도 고려했겠 지.”

“이미지요?”

“카메오로 한 씬 출연하고 일억을 받아갔다는 이야기가 나중에 알려지 면 대중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 같 아? 아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거 야. 그래서 김수한을 돈을 지나치게 밝힌다고 비난할 가능성이 높지. 아 마 이런 부분까지 고려한 것 같아.”

“그렇군요.”

“우리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 이규한의 입장에서도 나쁠 것은 없 엇다.

제작비를 최소한으로 추가 투입하 면서 김수한이라는 톱스타를 카메오 로 활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 다.

“자,그럼 다들 이의 없으신 거죠?” 예상대로 두 사람 모두 이의를 표 하지 않았다.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백팩에

서 ‘수상한 여자’의 시나리오 책을 꺼냈다.

- 카메오: 김수한.

이규한이 펜을 들어 ‘수상한 여자’ 의 시나리오 책 앞장에 카메오로 출 연할 김수한의 이름을 적어 넣은 후,신중한 표정으로 집어 들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는데. 새로운 정보를 기입하고 난 후 시 나리오 책을 집어 들었음에도,눈앞 에 숫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 안 되네!’ 이규한이 쓰게 웃었을 때,유심히 살피던 권지영 팀장이 물었다.

“지금 뭐 하신 거예요?”

“기도했어.”

“무슨 기도요?”

“‘수상한 여자’가 천만 영화가 되 게 해 달라고.”

강형진 감독,권지영 팀장과 차례 로 시선을 교환한 후,이규한이 힘 주어 말했다.

“자,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1억 관객 제작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