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75화 (75/272)

75 화

그 노래 ⑶ “저를 압니까?”

“네,잘 알고 있습니다.”

“권지영 팀장이 제 이야기를 데이 비드 윤에게 했는가 보군요.”

“아닙니다. 그 전부터 알고 있었습 니다.”

“어떻게요?”

“‘과속 삼대 스캔들’이란 영화를

무척 인상 깊게 봤거든요. 그래서 이규한이라는 피디에 대해서 홍미가 생겼었죠.”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영화가 가진 파급력.

막연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컸다.

미국에서 영화 관련 일을 하는 데 이비드 윤도 ‘과속 삼대 스캔들’을 흥미롭게 보았고,그래서 이규한에 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 그 증거였 다.

“지영이가 이 대표님 말씀을 많이 하더군요.”

“권지영 팀장이 제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요?”

“네.”

“어떤 이야기를 하던가요? 음,혹시 같이 일하기 무척 피곤한 스타일이 라고 흉을 잔뜩 보던가요?”

“아닙니다. 아주 능력 있는 영화 제작자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래 서 저도 이 대표님이 준비하고 계신 ‘수상한 여자’라는 작품을 무척 관 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저만이 아닙니 다.”

데이비드 윤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떤 채 덧붙인 순간,이규한이 물었 다.

“또 누가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할리우드의 여러 투자사들이 관심 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규한이 불신 어린 시선을 던지자, 데이비드 윤이 설명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요즘 할리우 드는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영화 시장을 관심 있 게 지켜보고 있죠. 그리고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 투 트랙 전 락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투 트랙 전략이요?”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뜻 입니다. 첫 번째 방식은 아시아 시 장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입 니다. 공략할 아시아 시장을 정해서 그 국가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하거 나 영화에 출연한 주연 배우들이나 감독들이 그 국가로 찾아가서 팬미 팅을 여는 등의 방식이죠. 그리고 두 번째 방식은 아시아 시장에서 주 목받는 감독이나 배우를 직접 섭외 하고 계약을 해서 아예 직접 투자를 하는 것이죠.”

데이비드 윤의 설명은 명쾌했다.

덕분에 단숨에 이해했던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어!’

이규한이 기억하고 있는 미래 속에 는 할리우드 제작사들이 대한민국에 법인을 세우고 직접 투자를 했던 것 이 남아 있었다.

다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기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었다.

그렇지만 데이비드 윤과 대화를 통 해서 이규한은 더 이상 자신과 무관 한 일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당장 할리우드에서 영화의 투자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데이비드 윤 이 이규한을 알고 있고,또 이규한 이 제작하는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

는 것이 그 증거였다.

‘나쁠 건 없지!’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했다.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할리우드 제 작자들과 투자사들이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는 것.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 나쁜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규한의 생각은 거기서 멈 추었다.

당장 급한 것은 ‘수상한 여자’에 삽입할 곡인 ‘나성에 가거든’의 저 작권자였던 임희영의 직계 가족을 만나서 음원을 사용한 권리를 얻어

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규한의 속내를 읽은 걸까.

데이비드 윤이 핸들을 꺾으며 말했 다.

“제가 지영이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미리 고인이 된 임희영 씨의 직계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을 수소문해 봤 습니다.”

“그렇게까지 신경 써 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데이비드 윤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 했다.

물론 뉴욕에서 오래 살았던 데이비 드 윤 입장에서는 자신의 인맥을 동 원해서 수소문을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그렇지만 이규한의 입장에서는 달 랐다.

‘만약 데이비드 윤의 도움이 없었 다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막연했던 상황.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데이비드 윤의 도움이 무척 고마웠다.

“혹시 찾았습니까?” “현재 한인촌에는 살고 있지 않더 군요.”

“그래요?”

뉴욕에는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한 인촌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규한은 임희영의 직계 가족이 당연히 한인 촌에 살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셈이었다.

“그럼 찾을 수 없는 겁니까?”

해서 이규한의 낯빛이 어둡게 변했 을 때였다.

“다행히 임희영 씨의 여동생과 친 하게 지냈던 재미동표를 찾았습니 다. 덕분에 현재 임희영 씨의 여동 생인 임주영 씨가 어디에 살고 있는 지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다!’

하마터면 여기까지 왔다가 빈손으 로 돌아갈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을 면했다는 생각에 이규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모홍크란 곳입니다. 관광지로 유 명한 곳이죠. 잠깐 눈 좀 붙이시죠. 도착할 때까지 꽤 시간이 걸리니까 요.”

데이비드 윤이 액셀러레이터를 밟 으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멀리서 오셨는데 대접할 게 변변 치 않네요.”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임주영은 병색 이 완연했다.

몸이 불편한 그녀를 대신해서 커피 를 타 온 것은 그녀의 딸인 최소림 이었다.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이어 가고 있기 때문일까.

최소림의 얼굴에는 피곤이 덕지덕 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예고도 없 이 불쑥 찾아온 손님인 이규한과 데 이비드 윤을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 력 했다.

“무슨 일로 어머니를 찾아오셨죠?”

임주영을 대신해 최소림이 용건을 물었다.

“고인이 된 임희영 씨가 이모님 되 시죠?”

“네,맞아요.”

“저는 한국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입니다.”

이규한이 명함을 꺼내서 최소림에 게 건넸다.

그 명함을 받아들고 힐끗 살피고

있는 최소림에게 이규한이 설명했 다.

“이번에 제가 제작하는 ‘수상한 여 자’라는 영화에 임희영 씨의 곡인 ‘나성에 가거든’이라는 곡을 삽입하 고 싶습니다.”

“그래서요?”

“음원을 사용할 권리를 얻기 위해 서 찾아왔습니다. 제 영화에 음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임희영 씨의 직 계 가족의 허락이 필요하거든요.”

이규한이 설명을 마친 후,최소림 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그녀가 명함에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헛걸음하셨네요.”

‘헛걸음을 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이규한이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을 때였다.

“굳이 여기까지 찾아올 필요가 없 었다는 뜻이에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냥 썼어도 됐거든요.”

“하지만……

“9600원이 입금됐더군요.”

‘......?"

“제 통장에 입금된 이모의 음원 수 익료 금액이에요.”

“일 년 동안이요.”

임희영의 곡이었던 ‘나성에 가거

드,

이규한도 황세운을 만나서 처음 들 어봤던 곡이었다.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얻었던 곡 도 아니었고,또 발표된 지 무척 많 은 시간이 흐른 만큼 음원 수익료가 적게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최소 림이 그냥 음원을 쓰라고 말했던 이 유도 여기 있었다.

“호텔에서 청소 한 시간만 해도 1 년 치 음원 수익료보다 더 많은 돈 을 벌 수 있어요. 그런데 굳이 허락 까지 받으러 한국에서 여기까지 찾 아온 것,비행기값이 아깝네요. 차라 리 비행기값을 내게 줬으면 좋았을 것을.”

최소림이 냉소를 머금은 채 말했 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이규한이 고개를 돌렸다.

데이비드 윤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 문이었다.

‘자,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굳이 계약서를 작성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당신은 공짜로 ‘나성에 가거든’이 라는 곡을 ‘수상한 여자’라는 작품 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대로 돌아가겠느냐?

데이비드 윤이 던지고 있는 시선에 담긴 질문이었다.

물론 이규한의 입장에서는 최상의 상황이었다.

원하던 대로 ‘나성에 가거든’이라 는 곡을 ‘수상한 여자’에 어떤 대가 도 지불하지 않고 삽입할 수 있었으 니까.

그렇지만 이규한은 그냥 돌아설 수 없었다.

호텔에서 청소 일을 하면서 몸이 불편한 노모를 혼자 돌보는 고단하 고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최소 림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백팩에서 미리 준 비해 온 음원 사용 관련 계약서를 꺼냈다.

“이걸 한번 보시죠.”

이규한이 계약서를 내밀었지만, 최 소림은 받지 않았다.

“그냥 써도 된다니까요.”

그녀가 재차 곡을 그냥 사용해도 된다고 말했지만,이규한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 다.”

“네?”

“인생은 모르는 겁니다.”

“무슨 뜻이죠?”

“이 계약서에 서명을 하시면 최소 림 씨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 다.”

이규한이 강조하고 나서야,최소림 이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규한이 말했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조 건입니다. 거기 서명만 하시면 됩니 다.”

“여기 서명만 하면 된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알겠어요.”

최소림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계약 서에 서명을 했다.

샤사삭.

그녀가 계약서에 서명을 하면서 이 규한은 아낄 수 있는 돈을 날렸다.

그렇지만 속이 쓰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이제 끝난 건가요?”

“네,끝났습니다. 최소림 씨에게 이 번 계약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기대하지 않아요.”

그녀가 딱 잘라 말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웃음을 잃지 않 은 채 덧붙였다.

“조금은 기대해 보셔도 좋을 겁니 다.” 뉴욕 공항.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준비를 마친 이규한이 데이비드 윤과 작별 인사 를 나누었다.

“만약 데이비드 윤이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국제 미아가 될 뻔했습니 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규한의 감사 인사를 받은 데이비 드 윤이 화답했다.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 다. 그리고 아쉽네요.”

“뭐가 아쉬운 겁니까?”

“술 한 잔 같이하면서 이런저런 이 야기를 나누고 싶었거든요.”

데이비드 윤이 아쉬움을 토로한 순 간,이규한이 말했다.

“한국에 오시면 연락 주시죠. 제가 한 잔 사겠습니다.” “약속 지키셔야 합니다.”

“물론이죠.”

탑승 시간이 다가온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 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과악.

그 손을 맞잡으며 데이비드 윤이 서둘러 말했다.

“참,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최소림 씨를 만났을 때,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나성에 가거 든’이라는 곡을 사용할 기회가 있었 습니다. 그렇지만 이 대표님은 저절 로 굴러들어 온 기회를 제 발로 걷 어찼습니다. 그 이유를 들을 수 있 을까요?”

“양심이 허락하질 않더군요.”

“양심… 이요?”

“제게는 두 가지 신조가 있습니다. 첫 번째 신조는 같이 잘 먹고 잘 살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신조는 최소한 양아치는 되지 말자입니다. 그래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최소림 씨를 마주한 순간,계약서를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규한이 대답하자,데이비드 윤이 웃으며 말했다.

“영화만 잘 만드시는 게 아니군요. 인성도 훌륭하신 분이었습니다.”

“과찬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이번 영화의 성공을 기원하겠습니 다.”

“감사합니다.”

이규한이 악수를 마친 후 몸을 돌 렸다.

그리고 탑승장으로 향하던 이규한 의 등뒤로 데이비드 윤이 던진 말이 따라붙었다.

“머잖아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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