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74화 (74/272)

74 화

그 노래 (2) 권지영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이규한의 대답을 듣자마자,상황을 간파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신가 보네 요.”

“역시 권 팀장과는 얘기가 잘 통 해.”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J “노래가 신경 쓰여.”

“노래요?”

“그래. 들어봐.”

이규한이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해 서 간략하게 요약해서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은 권지영이 팔짱을 꼈다.

“애매한 상황이긴 하네요.”

“그래. 아주 애매한 상황이야.”

“이 대표님,생각은 어떠세요?”

“반반이야.”

“그렇군요.”

이해한다는 둣 고개를 끄덕이는 권

지영을 살피던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그래서 권 팀장을 만나러 찾아온 거야.”

“제 의견을 구하시려고요?”

“그건 아냐.”

이규한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왜 저를 찾아오셨어요?”

권지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한 순간 이규한이 대답했다.

“애매한 상황을 확실하게 만들고 싶어서 권 팀장을 찾아왔어.”

f?

“계약서를 수정하고 싶어.”

이규한이 본론을 꺼내자마자,권지 영이 난색을 드러냈다.

계약서를 수정하는 것이 내키지 않 기 때문이리라.

“어떤 부분을 수정하고 싶으신데 요?”

“음원 수익에 관한 배분 쪽을 확실 히 하고 싶어.”

“음원 수익이요?”

“그래. 현재의 수익 배분은 내 쪽 에 너무 불리해.”

이규한이 불만을 토로했다.

그 불만을 들은 권지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의외네요.”

“왜 의외라는 거야?”

“중요한 부분이 아닌 것에 신경을 쓰시니까요.”

권지영은 영화에 삽입된 음원의 수 익 분배가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말하 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영화 ‘미녀는 힘들어’의 경우에는 이례적으로 영화에 삽입됐던 음원들 이 큰 수익을 거둬들였다.

그렇지만 말 그대로 이례적인 케이 스였다.

그 후에 개봉한 영화들에 삽입된

음악들은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

영화의 극적 효과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말 그대로 영화음악 본연의 기 능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당연히 음원 수익은 많이 발생하지 않았다.

수익 전체를 놓고 보자면, 극히 미 비한 수준.

이것이 권지영이 의아함을 드러낸 이유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규한은 이런 부분이 협상에서 유 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요인이라 고 판단했다.

어차피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 부 분인 만큼,그냥 양보해도 된다.

권지영을 비롯한 로터스 엔터테인 먼트 윗선에서 이렇게 판단할 가능 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방금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때, 권지영이 다시 말했다.

“무슨 뜻이야?”

“이 대표님이 이렇게 신경을 쓰시 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까,갑자기 이 부분이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 했어요.”

권지영이 두 눈을 빛내며 꺼낸 대 답을 들은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권지영은 눈치 가 빠른 편이었다. 그래서 함께 일

그렇지만 눈치가 빠른 것이 다 좋 은 것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흥미를 드러내기 시작 한 권지영을 확인한 이규한이 한숨 을 내쉬었을 때였다.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계약서를 수정하려는 데 이유가 있죠?”

“역시 권 팀장은 못 속이겠네.”

“빨리 이유를 말씀해 보세요.”

“이게 맞다고 생각하니까.”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 권지영이 되물었다.

“왜 그게 맞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나도 먹고살아야지.”

“네?”

“죽어라 열심히 해서 천만 영화를 만들면 뭐 해? 투자 배급사에서 한 몫 가져가고,극장에서도 두둑히 챙 겨가지. 그뿐인가? 요샌 감독이랑 배우들도 지분 계약을 해서 많이 가 져가 버려. 이렇게 다 떼어 주고 나 면 기껏 천만 영화를 제작해도 별로 남는 게 없어.”

이규한이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리 고 권지영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 해서 과장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 제작자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 일 뿐이었다.

권지영도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일인(一人).

그래서일까.

권지영이 이규한의 시선을 슬그머 니 피하며 입을 뗐다.

“갑자기 왜 신세타령이세요?”

“권 팀장도 미안하지?”

“저도 투자 배급사에서 일하는 사 람이니까 아주 책임이 없다고 할 수 는 없죠.”

권지영이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한 순간,이규한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치고 들어갔다.

“그래서 음원 수익 배분과 관련된 계약서 내용을 바꾸려는 거야.”

“무슨 뜻이세요?”

“권 팀장도 아까 말했듯이 음원 수 익은 전체 수익에서 극히 미비한 수 준일 정도로 적어. 그렇지만 그건 투자 배급사 입장이지. 재정 상태가 열악하기 짝이 없는 영화 제작자 입 장에서는 그 적은 수익도 숨 쉴 구 멍을 만들어 주거든.”

이규한이 열변을 토해낸 후,권지 영의 반응을 살폈다.

선뜻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일 까.

습관처럼 약지에 끼고 있던 반지를 매만지던 그녀가 잠시 후 결심을 굳 힌 둣 입을 뗐다.

“수익 배분을 어떻게 바꾸길 원하 세요?”

“어떻게 바꾸고 싶냐면……

이규한이 대답하려 했지만,권지영 이 손을 들어 막았다.

“미리 말씀드릴 게 있어요.”

“또 뭔데?”

“너무 무리한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런 권지영의 반응을 이규한은 이 미 예상하고 있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그렇게 경우가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

이규한이 대답하며 백팩을 열었다.

“한번 봐.”

백팩에서 서류봉투를 꺼낸 이규한 이 권지영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계약 조건.”

이규한이 대답하자,권지영이 혀를 내둘렀다.

“이걸 미리 준비해 오셨어요?”

“내가 준비성이 철저한 편이잖아.”

“만약에 내가 단칼에 잘라 거절했 으면 어쩌시려고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

“왜요?”

“권 팀장은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 니까.”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권지영이 서류봉투를 건네받 았다. 그리고 이규한이 준비해 온 서류를 살핀 후,권지영이 입을 뗐 다.

“무리한 요구는 아니네요.”

“내가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그랬잖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게요.”

‘됐다!’

이규한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조금 전 이규한이 제안했던 투자 배급사와 제작사의 음원 수익 배분 은 5 대 5.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런 식으로 음 원 수익 배분을 바꾸더라도 수익이 별로 나지 않을 터였다. 그렇지만 ‘수상한 여자’의 경우는 달랐다.

이규한의 기억대로라면 영화에 삽 입됐던 곡들이 화제를 모으며 인기 를 얻을 터.

적지 않은 수익이 발생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가치가 생겼다!’

이규한이 만족스레 웃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이제 ‘나성에 가거든’이라는 곡을 영화에 삽입하 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가 생긴 셈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이 권지영과의 협상 에 적극적으로 임했던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이게 관행이 될 거야!’

지금까지는 투자 배급사가 영화에 삽입했던 음원 수익마저도 다 가져 가는 구조였다.

그렇지만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수상한 여자’가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와 음원 수익 배분 계 약을 5 대 5로 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영화 제작자들도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투자 배급사에 똑같은 요구를 할 것 이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일종의 관행이 되는 것이었다.

‘이게 맞아!’

이규한이 영화 제작자라서 하는 말 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영화가 흥행 했을 때,투자 배급사가 가져가는 수익이 하는 일에 비해서 너무 과할 정도로 많았다.

잘못된 관행.

이규한은 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 고 싶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물론 당장 잘못된 관행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이규한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 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음원 수익 배분과 관련된 계약 수정이 변화의 시발점 은 될 수 있었다.

“권 팀장. 미국에 좀 갔다 와야 할 것 같아.”

이규한이 말하자,권지영이 두 눈 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미국은 왜요?”

“‘수상한 여자’에 꼭 삽입하고 싶 은 곡이 있거든.”

이규한이 미국에 가야 하는 이유를 간추려 설명했다.

그 설명을 모두 들은 권지영이 물 었다.

“이 대표님이 미국까지 찾아갈 정 도로 가치가 있는 곡인가요?”

“난 그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렇지만……

“천만 영화가 쉽게 나오는 게 아니 잖아.”

이규한이 덧붙인 말을 들은 후,권 지영이 물었다.

“그런데… 영어는 할 줄 아세요?” 영화가 좋았다.

그래서 한국 영화는 물론이고 외국 영화도 열심히 봤다.

그렇지만 외국 영화를 많이 본 것 과 영어를 잘하는 것.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학창 시절에 배운 영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뉴욕 공항에 도착하고 난 후, 이규 한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가까스로 출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을 빠져나오는 데까지는 어찌어찌 성공했지만,진짜 난관은 거기서부 터였다.

위축됐기 때문일까.

의사소통을 위해서 필요한 간단한 영어조차도 입 밖으로 내뱉기 어려

웠다.

그로 인해 이규한이 뉴욕 공항 한 편에 길 잃은 미아처럼 우두커니 서 있을 때였다.

“이규한 대표님,맞으신가요?” 구세주가 등장했다.

청바지에 면티를 입고 등장한 구세 주는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청년 이었다.

“혹시 데이비드 윤입니까?”

이규한이 묻자,남자가 대답했다.

“네,제가 데이비드 윤입니다.”

“반갑습니다.”

데이비드 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

자마자,이규한이 인사를 건넸다. 건성으로 던진 인사가 아니었다. 구세주처럼 등장한 데이비드 윤이 이규한은 진심으로 반가웠다 “저를 따라오세요.”

“어디로 가는 겁니까?”

“공항 밖에 주차를 해 뒀습니다. 제 차로 이동하시죠.”

이규한이 데이비드 윤의 뒤를 따랐 다. 그리고 데이비드 윤의 차에 타 고 나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데이비드 윤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지영이가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이 대표님이 영어도 못하고 해외에 나가는 것도 처음인 만큼,분명히 어려움을 겪을 테니 오빠가 잘 챙겨 야 한다고 말입니다.”

데이비드 윤의 이야기를 듣던 이규 한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오빠라고 했습니까?”

“네. 뭐가 잘못됐습니까?”

“실은… 권지영 팀장 후배라고 판 단했습니다. 너무 젊어 보여서요.” “하하. 제가 지영이보다 세 살 더 많습니다.”

“그래요?”

이규한이 데이비드 윤이 무척 동안

“지영이가 방금 이규한 대표님이 하신 말씀을 전해 들으면 무척 슬퍼 하겠군요. 자랑해도 됩니까?”

“그건 좀 곤란합니다.”

“하하,알겠습니다. 저희 두 사람만 의 비밀로 간직하죠.”

호탕하게 웃으며 데이비드 윤이 시 동을 걸고 차량을 출발시켰다.

‘시원시원한 성격이네!’

이규한이 데이비드 윤에 대해 판단 하며 질문했다.

“혹시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도 실 례가 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 다. 투자 쪽 일을 맡고 있죠.”

“그렇군요.”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난 것만으 로도 반가웠다. 그런데 그가 영화 관련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 니 더 반갑게 느껴졌다.

그때 였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만나 뵙고 싶 었습니다.”

데이비드 윤이 불쑥 꺼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1억 관객 제작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