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71화 (71/272)

기화

캐스팅 작전 (4)

서초구에 위치한 민속주점.

잔에 가득 담겨 있던 동동주를 단 숨에 비운 후,권지영 팀장이 말했 다.

“제가 틀렸네요.”

“무슨 소리야?”

이규한이 묻자,권지영 팀장이 설 명을 더했다.

“파이어니어 필름과 NEXT 엔터테 인먼트. 체급 차이가 너무 나서 싸 움이 안 날 거라고 예상했던 제가 틀렸다고요. ‘불굴의 소방관’ 제작이 무산될 거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파 이어니어 필름과 NEXT 엔터테인먼 트의 불화가 심해요.”

이규한이 동동주가 담긴 잔을 들어 올리며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자신의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권지영이 다시 말했다.

“파이어니어 필름의 윤희태 대표를 다시 보게 됐어요. 이 정도로 깡이 있는 사람인 줄은 몰랐거든요.”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어. 전가의 보도를 얻었기 때문에 깡인 생긴 거 지.”

“지난번에도 윤희태 대표가 전가의 보도를 얻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 전가의 보도가 대체 뭔가요?”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네.”

“권 팀장이야.”

“저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로터스 엔터 테인먼트 투자팀장 권지영이지. 로 터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불굴의 소 방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윤희태 대표가 NEXT 엔터 테인먼트를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거거든.”

비로소 말뜻을 이해한 권지영 팀장 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그녀가 주걱으로 동동주를 떠 서 잔에 옮겨 담으며 말했다.

“결국 ‘불굴의 소방관’ 촬영 일정 이 연기됐으니까,이 대표님 계획대 로 됐네요.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 는 파이어니어 필름의 윤희태 대표 이고요.”

“아니,피해자는 없어.”

“내 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파이어니어 필름 에 추가 투자를 할 거야.”

“왜 추가 투자를 할 거라고 판단하 시는데요?”

“권 팀장 때문이지.”

“또 저인가요?”

“그래.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서도 ‘불굴의 소방관’에 관심을 갖고 있 다는 정보를 알게 되면 NEXT 엔 터테인먼트도 더 버티지 못하고 추 가 투자를 할 거야. 그럼 윤희태 대 표는 후반 CG 작업에 공을 들여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테 니까 피해를 본 건 아니지. 그리고

NEXT 엔터테인먼트도 마찬가지야. 추가 투자를 한 덕분에 더 좋은 작 품이 나와서 홍행을 하면 손해를 보 는 것은 아니지.”

이규한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 한 권지영 팀장이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이 대표님이 다시 보이네요. 내 짐작보다 훨씬 치밀하고 무서운 사 람이 에요.”

이규한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뗐 다.

“적으로 만나면 부담스러운 상대지 만,아군으로 만나면 든든한 존재 지.”

“딱 어울리는 표현이네요.”

“그러니까 우린 적이 되어 만나지 말자고.”

“저 역시 바라는 바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배 한번 할까요?”

“좋지!”

째앵.

사기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한 후, 단숨에 비웠을 때였다.

“다음 수순은 뭔가요?”

권지영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지 며 물었다.

“파이어니어 필름과 NEXT 엔터테 인먼트 사이에 불화설이 돌면서 ‘불

굴의 소방관’의 촬영 일정이 연기됐 다는 것. 권 팀장이 알고 있는데 씨 제스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모를까?”

“당연히 알겠죠.”

“그럼 기현이가 모를까?”

“모를 리 없죠.”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와 김기현의 관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권지영 팀장이 대답했다.

“그럼 기현이는 어떻게 할까?”

“흐음.”

잠시 고민하던 권지영 팀장이 두 눈을 빛냈다.

변요섭에게 다시 접근하려나요?” “맞아. ‘불굴의 소방관’ 촬영이 미 뤄지면서 변요섭의 스케줄이 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기현이는 다시 변요섭에게 ‘광안리’ 출연 제안을 할 거야.”

“그럼 ‘광안리’에 임인권을 캐스팅 하려고 했던 계획은 취소되겠네요.”

“정확해.”

여기까지가 이규한이 그렸던 큰 그 림이 었다.

비로소 이규한의 큰그림을 파악하 고 무릎을 치던 권지영이 물었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죠?”

이규한이 대답했다.

“이제 우리가 움직일 차례지J 〈배우 변요섭,국내 최초 재난 영 화 ‘광안리’ 출연 확정. 최신현 감독 과의 첫 만남으로 흥행에 대한 기대

상승 >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기사였다. 그리고 변요섭외 ‘광안리’ 캐스팅 확정 기사는 이제 임인권과 접촉할 때가 됐다는 출발 신호였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회의 실.

“권지영이라고 합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규한 입니다.”

권지영과 이규한이 차례로 임인권 에게 인사를 건넸다.

“임인권입니다.”

인사를 주고받으며 이규한이 임인 권을 유심히 살폈다.

예상대로 임인권의 표정은 밝지 않 았다. 그리고 이규한은 임인권의 표 정이 어두운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어!’

이미 기사가 나온 상황.

임인권 역시 변요섭이 ‘광안리’의 남자 주인공 배역에 캐스팅이 확정 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임인권과 변요섭은 라이벌 관계.

자신에게 캐스팅 제의를 했던 ‘광 안리’를 제작하는 스카이 엔터테인 먼트 측에서 도중에 마음을 바꿔서 변요섭에게 캐스팅을 제안한 것으로 인해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무슨 일 때문에 저를 만나자고 하 셨습니까?”

이번이 임인권과의 첫 미팅.

아직 ‘수상한 여자’의 시나리오 책 을 건네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임인권이 질문한 순간,이 규한이 권지영 팀장을 바라보았다.

마침 권지영 팀장 역시 자신을 바 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어깨를 으쑥하는 것을 확인 한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자,판은 마련해 드렸습니다. 이제 이 대표님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

권지영 팀장은 어깨를 으족한 것으 로 대화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는 뜻 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결국 이규한이 대화를 주도했다.

“캐스팅 제의를 드리려고 연락 드 렸습니다.”

“어떤 작품인가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 준 비 중인 ‘수상한 여자’라는 작품입 니다.”

“‘수상한 여자’요?”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일까.

고개를 갸웃하는 임인권을 확인한 이규한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더했 “투자와 배급은 로터스 엔터테인먼 트에서 맡았습니다. 그리고 연출은 ‘과속 삼대 스캔들’과 ‘써니 걸즈’를 잇따라 흥행시켰던 강형진 감독님이 맡기로 했습니다.”

이미 투자가 확정된 상황.

게다가 ‘과속 삼대 스캔들’과 ‘써니 걸즈’를 성공시키며,홍행 감독의 반열에 오른 강형진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임인권이 흥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작비는 얼마입니까?”

“50억 정도 규모입니다.”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임인권의 두 눈에 실망스런 기색이 떠올랐다. 그리고 임인권은 더 이상 질문을 던 지지 않았다.

그런 임인권을 유심히 살피던 이규 한이 권지영 팀장의 시선을 느끼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보다시피 임인권이 ‘수상한 여자’ 의 캐스팅 제안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있 느냐?’

권지영 팀장이 던지고 있는 흥미로 운 시선에 담긴 의미였다.

물론 이규한은 임인권의 마음을 돌 릴 자신이 있었다.

그가 ‘수상한 여자’의 남자 주인공 으로 캐스팅하고 싶다는 제의를 했 음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이 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가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수 상한 여자’는 극장가 성수기에 개봉 하기로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와 합의 가 끝났습니다.”

“성수기에 개봉을 한다고요?”

이규한이 설명을 더한 순간,임인 권이 다시 관심을 드러냈다.

그런 그는 의아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아까 ‘수상한 여자’의 제작비는 50 억 규모라고 했는데,제작비가 100 억대인 대작들이 대거 몰리는 성수 기에 개봉하는 것이 정말 맞느냐?

임인권이 의구심을 품은 이유였다.

그는 이규한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 하기 위해서 권지영 팀장을 바라보 았다.

“이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권지영 팀장이 대답하자,임인권이 다시 질 문했다.

“왜 극장 성수기에 개봉하는 겁니 까?”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으니까

요.”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올해 로터스 엔터테인먼트가 개봉을 준비하고 있 는 작품들 가운데 ‘수상한 여자’에 대한 기대가 가장 큽니다. 여기 계 신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이규한 대표님에 대한 믿음이 있거든요.”

지원사격을 해 준 권지영 팀장에게 이규한이 감사의 의미가 담긴 눈짓 을 보낸 후,다시 입을 뗐다.

“제작비 규모에 따라서 흥행의 성 패가 갈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 니다.”

“그렇긴 하지만…… “제작비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의 완성도라고 생각합니다. 제 가 제작에 참여했었던 ‘과속 삼대 스캔들’과 ‘청춘,우리가 가장 빛났 던 순간’이라는 작품들이 증거입니 다. 그리고 이번에 준비하는 ‘수상 한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제작비 규모는 적지만,저는 천만 영화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자신이 있으신 겁니 까?”

“시나리오를 보고 나면 아시겠지 만,제작자인 저는 자신이 있습니 다.” 이규한이 힘주어 대답했다.

‘바뀌기 시작했다!’

아까와 지금.

임인권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좀 더 적극적이고 의욕적으로 바뀌 었달까.

‘때가 됐다!’

이렇게 판단한 이규한이 다시 말문 을 열었다.

“단 ‘수상한 여자’가 천만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 합니다.”

“무슨 조건입니까?”

“임인권 씨가 저희 작품에 출연하 는 겁니다.” 임인권의 출연 승낙을 받기 위해서 꺼낸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다.

‘수상한 여자’가 천만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임인권의 출연이 필요했 다.

감정을 통해서 확인한 결과.

그리고 이규한이 이런 말을 꺼낸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변요섭에게 밀려서 임인권은 ‘광안 리’ 출연이 무산된 상황.

임인권은 본인이 ‘수상한 여자’라 는 작품의 흥행을 위해서 꼭 필요하 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 다.”

이규한의 예상대로 임인권의 표정 은 한층 밝아져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이규한이 덧붙였다.

“아까 ‘수상한 여자’의 개봉이 성 수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정확한 개봉 시기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언제입니까?”

“바로 겨울 성수기 시장입니다.”

“겨울이요?”

“네. 아마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에 서 제작 중인 ‘광안리’와 맞붙게 될 겁니다.” 이규한이 말을 마친 순간,임인권 의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광안리’ 출연을 둘러싸고 안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도 잠시,임인권의 눈빛 이 강렬해졌다.

‘광안리’와 맞붙고 싶다. 그리고 이 기고 싶다. 그래서 자신을 버리고 변요섭을 캐스팅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임인권은 강렬한 시선을 던지며 의 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동기부여!’

그 반응을 살피던 이규한이 떠올린

단어였다.

임인권이 복수심에 불타는 것은 분 명히 동기부여가 될 터였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가진 것 이상의 능력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

“일단 ‘수상한 여자’라는 작품의 시나리오를 보여 주시죠.”

‘넘어왔다!’

임인권이 먼저 시나리오를 보고 싶 다고 요구하는 것을 들은 이규한이 확신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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