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70화 (70/272)

70 화

“제작사는 어디야?”

“파이어니어 필름이요.”

“파이어니어 필름이면… 윤희태 대 표가 있는 곳이지?”

“맞아요.”

“투자와 배급은 어디서 맡았어?” “NEXT 엔터테인먼트라고 알고 있 어요.”

권지영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이 규한이 다시 물었다.

“분위기는 어때?”

“분위기라니요?”

“사이가 좋으냐는 뜻이야.”

이규한이 물은 것.

제작사인 파이어니어 필름과 투자 배급사인 NEXT 엔터테인먼트의 관 계에 대해서 물은 것이었다.

현직 투자팀 팀장인 권지영은 이규 한이 앞뒤를 다 잘라먹은 채 물었음 에도 제대로 말뜻을 이해하고 대답 했다.

“삐걱거린다는 소문이 돌아요.” “삐걱거리는 이유는?”

“이유야 뻔하죠.”

“제작사와 투자 배급사 사이의 관 계가 삐걱대는 이유,이 대표님도 잘 아시다시피 십중팔구 제작비 때 문이죠.”

마침내 원하던 정보를 모두 얻어 낸 이규한이 힘주어 말했다.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어떤 방법인데요?”

이규한이 대답했다.

“틈을 더 벌리자!”

영화 제작사 파이어니어 필름. 사무실의 분위기는 싸했다.

“저,영화 못 찍어요. 아니,안 찍 어.”

사무실의 분위기가 싸한 이유는 홍 일규 감독 때문이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협박 아닌 협박을 늘어놓고 있는 홍일규 감독을 윤희태가 매섭게 노려보았 다.

‘나이도 한참 어린 새끼가!’ 안하무인처럼 성질을 부리며 언성 을 높이고 있는 홍일규 감독이 왜 못마땅하지 않을까.

‘참자. 참아! 참을 인자 셋이면 살 인도 면한다고 하잖아. 어떻게든 참 아야 이번 영화 찍을 수 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기 위해서 윤희태가 필사적으로 애썼다.

흥일규는 상업영화 세 편을 연출한 중견 감독.

이번에 준비 중인 ‘불굴의 소방관’ 이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데는 홍일규 감독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만약 흥일규 감독이 연출을 못 하겠다고 그만둬 버리면?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당연히 투자금을 회수할 터였다.

그때는 ‘불굴의 소방관’의 제작은 물 건너가는 것이었다.

“홍 감독,나도 좀 살자.”

윤희태가 비굴한 표정으로 부탁했 다. 그러나 홍일규 감독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누가 대표님을 죽이려고 합니까?”

‘너! 네가 날 죽이려고 하잖아!’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윤 희태가 간신히 참아내며 말을 이었 “투자사는 한 푼도 더 못 내 놓는 다고 하지. 홍 감독은 죽어도 제작 비 더 만들어 오라고 하지. 중간에 서 내가 아주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요?”

“투자사 놈들 지독하다는 건 흥 감 독도 잘 알잖아?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홍 감독이 양보하면 안 돼?” “안 됩니다.”

“그러지 말고 신중하게 생각해 보 고…… “지금 제작비로는 절대 CG 제대 로 안 나옵니다. 이번 영화에서 건 물에 불이 나는 CG가 얼마나 중요 한지 제가 벌써 몇 번씩이나 말씀드 렸잖아요? 이대로 찍어서 개봉하면 제 감독 인생에 흑역사가 될 겁니 다. 그러니까 절대 양보 못 합니다.”

‘하여간 말이 안 통하는 새끼야!’

윤희태도 더 참기 힘들었다.

“그럼 찍지 마. 세상에 감독이 너 하나뿐인지 알아? 입봉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감독 지망생들이 지천으 로 늘렸어.”

“아,그래요? 그럼 감독 지망생 하 나 잡아서 이번 영화 찍으세요.”

“감사합니다. 먼저 잘라 주셔서. 그 럼 저는 갑니다.”

흥일규 감독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홍 감독,이렇게 가는 법이……. 벌써 갔네!”

쾅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윤희태가 인상을 구겼다.

“에이,더러워서 때려치우던가 해 야지.”

뒷목이 뻐근했다.

혈압약을 꺼내서 입속에 털어 넣은 윤희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끼러다 제명에 못 죽겠네!”

담배 생각이 간절한 것을 필사적으 로 참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 다.

“지도 미안하긴 했나 보네.”

전화를 건 게 흥일규 감독일 거란 윤희태의 예상은 빗나갔다.

액정에는 낯선 번호가 떠올라 있었 다.

“여보세요?”

“파이어니어 필름,윤희태 대표님 이시죠?”

“그런데 누구시죠?”

“저는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장 권지영이라고 합니다.” “누구요?”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 권 지영이요.”

잘못 들은 게 아님을 알아첸 윤희 태가 자세를 고쳐앉았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로 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께서 무 슨 일로 먼저 전화주신 겁니까?”

“파이어니어 필름에서 제작 준비 중인 작품에 관심이 있어서요.”

“저희 회사 작품이요? 어떤 작품이 요?”

“‘불굴의 소방관’이란 작품입니다.”

“그렇지만……

‘불굴의 소방관’은 이미 NEXT 엔 터테인먼트에서 투자를 받은 작품이 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곤란하다 는 말을 꺼내려 했지만,권지영이 한발 더 빨랐다.

“이미 NEXT 엔터테인먼트와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는 건 알고 있습니 다.”

“알고 있다고요?”

“네,

“그런데 왜 전화를 한 겁니까?”

“NEXT 엔터테인먼트와 관계가 원 활치 않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하여간 이 바닥 소문을 더럽게 빨 라!’

윤희태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을 때,권지영이 덧붙였다.

“저희에게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쪼옥!

아이스 커피를 단숨에 절반 가량 비운 권지영 팀장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제대로 한 것 맞죠?” “맞아. 권 팀장이 윤희태 대표한테 전화를 한 덕분에 파이어니어 필름 과 NEXT 엔터테인먼트 사이의 틈 이 더 벌어졌어.”

“제대로 했다니 다행이네요.”

한숨을 내쉬는 권지영 팀장에게 이 규한이 물었다.

“다행이라면서 뭐가 그렇게 불안한 거야?”

“저희가 했던 제안을 윤희태 대표 가 덥석 물까 봐요.”

바로 돌아온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실소를 터트렸다.

권지영이 불안해하는 이유가 짐작

했던 대로였기 때문이었다.

“윤희태 대표, 잘 모르지?”

“몰라요. 이 대표님은 잘 아세요?”

“잘 알지는 못 해. 그렇지만 이번 에 좀 알아봤어.”

“누구한테요?”

“대학 선배에게 물어봤더니,무척 소심한 성격이라고 하더라고.”

하태열에게서 물어서 들었던 대답 을 이규한이 권지영 팀장에게 전달 했다.

“소심한 성격이다?”

“그러니까 권 팀장이 한 제안을 윤 희태 대표가 덥석 물지는 못할 거 야. 윤희태 대표도 이번 작품을 끝 으로 영화판 떠날 사람이 아닌 만 큼, NEXT 엔터테인먼트와의 관계 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테니 까.”

일리가 있다고 판단할 걸까.

권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 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덥석 물어 버 리면요?”

“그것도 나쁘지 않지.”

“네? 남의 일이라고 너무 막 말씀 하시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남이야?”

“이거 좀 서운하네. 난 권 팀장을 한배를 탄 동지라고 생각했지,남이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규한이 서운한 기색을 드러내며 덧붙였다.

“그리고 막 이야기한 것 아냐. 파 이어니어 필름에서 준비하고 있는 ‘불굴의 소방관’의 로터스 엔터테인 먼트 측에서 투자를 맡는 것도 나쁘 지 않아.”

“왜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손해는 안 볼 테니까.”

이규한이 알고 있는 미래 속에 개 봉했던 ‘불굴의 소방관’은 손익분기 점을 살짝 넘겼었다.

큰 수익을 올리지는 못했지만,로 터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 을 맡는다고 해도 손해는 보지 않았 다.

물론 권지영 팀장은 이규한의 말을 순순히 믿지 않았다.

여전히 불신 어린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그나저나 이제 또 뭘 하면 되죠?”

“기다려야지.”

“뭘 기다려요?”

“크게 싸움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기다려 보자고.”

“누가 싸우길 기다리는데요?”

“파이어니어 필름과 NEXT 엔터테 인먼트.”

이규한이 대답했지만,권지영 팀장 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일이 벌어질 리 없잖아요.”

“왜 파이어니어 필름과 NEXT 엔 터테인먼트가 싸울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

“체급이 다르니까요.”

파이어니어 필름은 일개 영화 제작 사.

반면 NEXT 엔터테인먼트는 메이

저 투자 배급사.

권지영 팀장의 말처럼 체급이 다를 뿐만 아니라,굳이 표현하면 갑을 관계였다.

이것이 권지영 팀장이 파이어니어 필름과 NEXT 엔터테인먼트 간에 싸음이 벌어질 일이 없다고 확신하 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두고 봐. 싸움이 날 테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데요?”

이규한이 대답했다.

“파이어니어 필름의 윤희태 대표가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사무 실.

영화 제작사 파이어니어 필름의 윤 희태 대표와 통화를 하던 투자팀장 조석구가 언성을 높였다.

“윤 대표,계속 이런 식으로 나올 거야?”

평소 자신이 정색만 해도 눈치를 살피며 전전긍긍하던 윤희태였다. 그렇지만 오늘은 달랐다.

통화 중에 조석구가 언성을 높였음 에도 불구하고,윤희태는 전혀 당황 하거나 주눅이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투자를 더해 주시면 될 것 아닙니까?”

윤희태는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 얘긴 이미 끝났잖아.”

“안 끝났습니다. 제가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이러는 겁니까? 영화가 잘 나와서 흥행해야 NEXT 엔터테인먼트도 좋을 것 아닙니까? 지금 이대로는 안 됩니다. CG 후반 작업 제대로 해야 좋은 영화 만들 수 있습니다.”

“난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어.”

“진짜 이러실 겁니까?”

“그래. 백번을 말해도 내 대답은 똑같아. 안 돼. 절대 안 돼.”

“알겠습니다.”

“뭘 알겠다는 거야?”

“일정을 미루죠.”

“뭐? 일정을 미루자고?”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죽어도 돈을 더 안 내놓는다고 하니 다른 데서라도 돈을 구해 봐야죠. 그러려 면 시간이 필요할 것 아닙니까? 그 래서 ‘불굴의 소방관’의 촬영 일정 을 미루자는 겁니다.”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있던 조석구 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인간이 약이라도 먹었나?’

투자를 받기 위해서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굴던 윤희태였다.

그런 그의 태도는 돌변해 있었다.

먼저 촬영 일정을 미루겠다고 말할 것까지는 예상치 못했기에 조석구가 당황한 기색으로 다시 소리쳤다.

“윤 대표,미쳤어?”

“미치기 일보 직전이긴 한데,아직 은 멀쩡합니다.”

“그런데 왜 이래? 그리고 돈을 어 디서 구할 건데?”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치미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며 조석 구가 물었다.

“진짜… 촬영 일정 미룰 거야?”

“그건 팀장님에게 달렸죠.”

“나한테 달렸다니?”

“팀장님이 추가 투자를 해 주시면 원래 일정대로 촬영이 진행될 겁니 다. 그렇지만 추가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촬영 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습니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이만 끊겠습 니다. 고민해 보시고 다시 연락 주 윤희태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는 사 실을 깨달은 조석구가 와락 인상을 구겼다.

“건방지게 먼저 전화를 끊어?”

성질 같아서는 당장 파이어니어 필 름에서 준비 중인 ‘불굴의 소방관’ 에 투자했던 투자금을 회수해 버리 고 싶었다.

그렇지만 조석구의 나이도 어느덧 쉰이 넘었다.

성질대로 세상을 살아서는 안 된다 는 사실을 알기에 충분한 나이.

“믿는 구석이 있어!”

파이어니어 필름의 윤희태 대표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믿는 구석이 있 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는 구석이 대체 뭘까?”

조석구의 고민이 깊어졌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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